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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Humanities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과 자본주의 정신 by 막스 베버

by hoyony 2017. 7. 4.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문예출판사
2010.10.20
Max Weber


소유욕, 금전욕, 망설이지 않는 영리 충동은 언제나 어느 곳에나 있었다. 일체의 규범에 종속하는 것을 배제하고 생활을 위해서 필요 이상의 재화를 취득하는 것, 즉 투기 자본주의, 약탈 자본주의, 식민지 자본주의, 기타 이것에 속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화폐를 사용하는 모든 경제 구조의 고유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윤추구의 동기에 의해 작동하는 모험가적 자본주의는 어느 시대에서, 어느 곳에서나 존재했다. 그러나 윤리적 측면에서 영리추구를 긍정한 것은 자명한 일이 결코 아니었으며 어느 일정한 시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그것도 서구에서만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가 생겨나기 위해서 서양의 시민계급은 어느 특정한 생활태도의 훈련을 받고 합리적이며 방법적인 노동을 도덕적 의무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생활태도를 가져온 것이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다. 자본주의 정신은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소명의식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으로 인해 비로소 노동과 이윤추구 행위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금욕적 생활과 저축 관념을 매개로 근대적 자본축적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1부. 문제

1. 종파와 계층

엄숙함과 생활을 강력히 지배하는 종교적 관심을 비세속성이라 부른다면, 프랑스의 칼뱅주의자들은 적어도 지구상의 어느 민족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카톨릭교에 열렬한 북부 독일의 가톨릭만큼 비세속적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그리고 이들 두 종파 모두 지배적인 종교 분파들과는 구별되었다. 즉 프랑스의 경우는 하층은 극히 삶을 즐기고 상층은 종교에 단적으로 적대적이던 가톨릭과 구별되며, 독일은 상층이 현재 세속적 영리활동에 몰두하고 있었고 종교에 대해 현저한 무관심을 보이는 프로테스탄트와 구별된다. 이러한 평행 관계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소위) 가톨릭의 비세속성이나 프로테스탄티즘의 유물론적 세속성 따위처럼 모호한 표상으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아무런 출발점도 찾을수 없다는 것이다.

노종의 정신 또는 진보의 정신, 아니면 그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프로테스탄티즘이 환기시켰다고 하는 그 정신은 세속성이나 계몽주의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 자본주의 정신

인간은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말하는 자연적 사태를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감각이 보기에 무의미할 정도로 전도시키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추진 동기다. 이는 자본주의의 입김을 쐬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도는 동시에 일정한 종교적 표상과 밀접히 닿아 있는 일련의 감각을 포함한다. 도대체 인간에게서 돈을 짜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벤저민 플랭클린은, 비록 그 자신이 종파적 색채가 없는 이신론자이지만, 그의 자서전에서 성경구절로 대답한다. 그 구절은 그가 말하고 있듯이 엄격한 칼뱅 교도였던 그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주입시켰던 것이다. 즉 '그의 직업에 충실한 자를 보았느냐, 그는 왕 앞에 서리라'가 그것이다.

화폐취득은ㅡ그것이 합법적 방법으로 얻어진 것인 한ㅡ근대적 경제질서 안에서 직업상 유능함의 표현이며, 이 유능함은 쉽게 알 수 있듯이 플랭클린 도덕의 실질적인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사실상 오늘날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닌 이 독특한 직업의무라는 사상은 개인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즉 자신의 직업적 활동과 무관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의무이다. 이 의무는 직업이 무엇이든, 특히 그 직업이 자신의 순수한 노동력의 사용인지 아니면 자신의 소유물(자본으로서)의 사용인지와 무관하게 성립한다.

근대적 기업가가 그가 고용한 노동자로부터 가능한 한 극대의 노동 성과를 올리기 위해, 즉 노동 강도를 증대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보통의 기술적 수단중 하나는 성과급이다. 예를 들어 농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확기에는 노동 강도의 극단적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며, 특히 기후가 불확실할 때는 매우 심각한 손익의 기회가 수확의 속도에 달려있다. 그래서 농업에서는 거의 성과급이 적용된다.그런데 노동자는 성과급의 인상에 대해 하루 노동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소시키는 반응을 한다.  그 이유는 종전처럼 벌고 성경 말씀처럼 그것에 만족해버리기 때문이다. 잉여수입보다는 노동을 적게 하는 것이 그에게 더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즉 노동자는 자신이 노동을 극대화시키면 매일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묻지 않고, 자기가 지금까지 벌었고 또 자신의 전통적 필요에 알맞던 그 액수를 벌려면 하루에 얼마나 일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통주의'라 불리는 태도의 한 사례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성상'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기보단 단지 자신이 살아온 대로 살고 그에 필요한 만큼만 벌려고 한다. 근대 자본주의가 노동 강도의 제고를 통해 인간의 노동 생산성을 제고시키기 시작했던 모든 곳에서 자본주의는 전자본주의적 경제노동의 이러한 동기가 갖는 무한히 끈질긴 저항에 부딪혔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자본주의의 토대로 여겨지는 노동계급이 후진적인 곳일수록 도처에서 더 끈질긴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오늘날 확고한 지위를 얻고 있는 자본주의는 모든 산업국가에서, 그리고 한 나라의 모든 공업지대에서 비교적 쉽게 노동자를 충원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것이 때마다 어려운 문제였다. 오늘날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자본주의가 생생하던 시대에 조력했던 강력한 보조자의 지지 없이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후진적인 전통주의적 형태의 노동은 오늘날 특히 '부녀'노동자, 그중에서도 미혼 노동자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래되어 일단 습득된 종류의 노동을 다른 좀 더 실제적인 노동을 위해 포기하고, 새로운 노동 형태에 적응하고 학습하고 이해력을 집중시키거나 아니면 그저 사용하는 모든 일에 대한 능력과 의사의 절대적 결여는 처녀, 특히 독일 처녀를 고용하고 있는 고용자들의 거의 보편적인 고충이다.

노동을 쉽고 특히 수익성 있게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설명도 그녀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성과급 비율의 인상도 습관의 벽에 부딪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대체로 특정한 종교적 양육을 받은 처녀, 특히 경건파 지방의 처녀들만은 다른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범주에게는 경제교육을 시키는 것이 훨씬 용이했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고, 때로는 수치상의 조사가 확증하고 있다. 사고의 집중력과 노동을 의무시하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태도가 특히 이들의 경우에는 자주 수입과 그 액수를 산정하는 엄격한 경제적 성격, 그리고 작업 능률을 상당히 제고시키는 냉철한 자제 및 절제 등과 결합되어 나타난다. 그와 같이 노동을 자기 목적, 즉 자본주의가 요구하듯이 직업(소명)으로 파악하는 것은 이 경우 종교적 교육에 의해 주로 결과된 것으로서 전통주의적 구습을 극복하는 최선의 기회이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경제생활에 새로운 정신을 관철시키는 데 결정적 전환을 이룬 사람들은, 경제사의 모든 시대에서 볼 수 있는 무모하고 파렴치한 투기업자나 경제적 모험가들 또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대체적으로 엄격한 시민적 관점과 원칙을 갖고 냉정한 인생의 학교에서 자라나 신중하고도 과감하게, 특히 공정하고 성실하게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었다.

독일의 자본주의적 벼락부자들이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습재산을 얻거나 명목적 귀족이 되면 자식들을 대학이나 장교단에 집어넣어 자신의 출신을 은폐시키려는 일들은 아류들의 퇴폐적 산물이다. 자본주의 기업가의 이념형은 몇몇 탁월한 실례에서 나타나듯이 비천하건 세련되건 그러한 벼락부자 근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념형의 기업가는 과시, 불필요한 낭비, 권력의 고의적 사용 등을 꺼리며 자기가 받는 사회적 존경이 겉으로 표현되는 것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한다. 그의 생활태도는 달리 말해 일종의 금욕주의적인 특징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매우 계산적으로 추천했던 신중함보다 본질적으로 더욱 정직한 냉정한 겸손이 매우 빈번히 나타나는 것이 결코 드문 경우가 아니다. 그는 자기 개인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조금도 사용치 않으며, 단지 완벽한 직무 완수라는 비합리적 감각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자본주의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힘들고 수수께끼 같았으며, 불결하고 결멸할 만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누구든 막대한 양의 화폐와 재화를 갖고 무덤 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자기 일생 동안의 노동이 갖는 목적이라 본다면, 그것은 단지 도착적인 충동인 금전욕의 산물로밖에는 설명될 수 없는 듯했다. 현재의 경제에 고유한 구조와 기업 형태를 가진 지금과 같은 정치, 사법, 유통제도 아래서는 흔히 언급되듯 자본주의 정신이 순수한 적응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는 화폐 증식의 직업(소명)에 대한 이러한 몰두를 필요로 한다. 이 같은 몰두는 현 경제구조에 매우 적합하고 경제적 생존경쟁에서의 승리와 밀접히 관련된 재화 취급 태도이기 때문에, 그러한 화폐증식적 생활방식이 현재 어떤 통일적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고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즉 그러한 생활방식은 더 이상 어떤 종교적 힘에 의한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교회 규범에 의한 경제생활의 간섭은 국가 간섭과 마찬가지로 장애라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상업정책적, 사회정책적인 이해관계의 상황이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이다. 

3. 루터의 직업 개념, 탐구의 과제

이미 독일어의 직업Beruf이라는 단어에, 그리고 아마 좀 더 분명하게 영어의 calling이라는 단어에 종교적 내용ㅡ신으로부터 받은 임무ㅡ이 적어도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며, 이 말은 구체적인 경우에 강조하면 할수록 훨씬 분명하게 감지된다. 그리고 그 말을 역사적으로 여러 문명 언어들과 비교하여 추적해보면, 우선 드러나는 사실은 우리가 직업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색조의 표현을 가톨릭적인 민족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으며 고전적 고대에서도 마찬가지인 반면에 주로 프로테스탄트적인 모든 민족에게는 그러한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직업 개념에는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파의 중심 교리가 표현되어 있다. 이 교리는 도덕적 계율을 명령과 권고로 나누는 가툴릭적 태도를 거부하고, 신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수도승적 금욕주의를 통해 현세적 도덕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세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라 보았다. 이러한 현세적 의무는 각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서 곧 그의 직업이 된다.

루터에 있어 이러한 사상은 그의 종교개혁 활동 첫 10년 동안에 발전되었다. 처음에 그는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했듯이 현저히 중세적인 전통적 생각에서, 세속적 노동은 아무리 신에 의해 의욕된 것이라 해도 피조물에 속하는 것이라 보았고 마치 먹고 마시는 것처럼 도덕적으로 무관한 신앙생활의 불가결한 자연적 토대라고 보았다. 그러나 오직 신앙뿐이라는 사상이 좀 더 분명하게 철저화되고 그럼으로써 악마에 의해 강제된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톨릭의 복음주의적 권고와의 대립이 점차 첨예하게 강조되자 직업의 중요성은 점증해갔다. 수도승적인 생활방식은 이제 신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데는 전적으로 무가치할 뿐 아니라 세속적 의무를 회피한 이기적인 냉혹함의 산물로 여겨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속적인 직업 노동은 이웃 사랑의 외적 표현으로 여겨졌다. 세속적 의무의 이행은 모든 경우에 신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것만이 신의 뜻이고, 따라서 허용된 모든 직업은 신 앞에서 단적으로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직업 생활에 대한 이러한 도덕적 규정이 종교개혁, 특히 루터의 영향력 있는 업적 중 하나라는 사실은 실제로 의심할 수 없는 것이며 마침내 상식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신약에 나타난 사도 시대의 기독교인, 특히 바울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초대 기독교인들을 가득 채우고 있던 종말론적 기대 때문에 세속적인 직업 생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본질적으로 전통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즉 모든 이가 주의 재림을 기대했기 때문에 각자는 자신들이 주의 부르심을 받을 그 신분과 세속적 활동에 머물러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일하면 되었다. 일해야 하는 이유는 가난한 자로서 형제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ㅡ물론 이것도 잠시뿐이다. 루터는 당시 자신의 관점에 맞추어 성서를 읽었고, 이 관점은 1518-1530년경에 이르는 발전 과정에서 계속 전통주의적이었을 뿐 아니라 더욱더 전통주의적으로 되어갔다.

그이 종교개혁 활동 초기에 직업을 본질적으로 피조물의 것이라 평가했기 때문에 현세적 활동 방식에 관해 루트를 지배한 관점은 <고린도전서> 7장에 표현된 바울의 종말론적 무관심과 내면적으로 유사한 것이었다. 즉 사람은 모든 신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삶의 짧은 순례길에서 직업의 종류에 연연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필요를 넘어서는 물질적 이익의 추구는 은총을 받지 못했다는 징후로 여겨졌고, 그것이 더군다나 타인의 희생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이유로 직접적인 비난을 받았다. 자신이 세속의 잡무에 점점 얽혀 들어감에 따라 루터는 직업 노동의 중요성을 점점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루터에게 있어 각 개인의 구체적 직업은 그 개인에게 신의 섭리가 지정한 그러한 구체적 위치를 충족시키라는 신의 특별한 명령이 되었다. 그리고 광진자와 농민 폭동에 대항해 싸우고 난 뒤 루터에게는 각자가 신으로부터 지정받은 객관적인 역사적 질서가 점점 신의 뜻의 직접적 현시로 되어갔기 때문에 삶의 사소한 일에서마저 섭리를 강조함으로써 점차 운명 사상에 대응하는 전통주의적 색채를 강화시켰다. 각자는 근본적으로 신이 일단 신이 정채준 그 직업과 신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며, 지상의 노력은 주어진 삶의 지위가 정해준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터의 직업 개념은 전통주의적인 것에 머물렀다. 직업은 인간이 신의 섭리로 받은 것이며, 그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 이러한 특색이 직업 노동은 신이 부여한 임무, 아니 유일한 임무라는 그의 또 다른 사상을 가려버렸다. 게다가 정통 루터교의 발전은 이러한 특색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 결과는 소극적인 내용의 것으로서, 금용주의적 의무가 현세적 의무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앙을 버렸음에도 주어진 처지에서 당국과 운명에 복종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선 유일한 윤리적 수확이었따. 더욱이 루터에 있어 합리적 직업윤리에 대한 심리적 토대가 신비가들보다 상당히 불안정해져 있는 한에서 루터주의는 신비가들보다 퇴조한 것을 의미하며, 특히 후술되듯이 루터가 금욕적 자기 연마의 경향에 위선이라는 혐의를 두었고, 따럿 루터교회에서는 그것이 더욱더 뒷전에 밀렸기 때무에 그렇다.

2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

1. 현세적 금욕주의의 종교적 토대

16, 17세기에 자본주의적으로 가장 발달한 문화국가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서 위대한 정치투장과 문화투쟁을 수행했던 것이 칼뱅주의였고, 따라서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할 신앙은 칼뱅주의다. 그 당시에, 그리고 대체적으로 현재에도 가장 특징적인 칼뱅주의의 교리는 예정설이다. 물론 예정설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교리인지, 아니면 부차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 역사적 현상의 본질적인 면에 대한 판단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가치 판단, 즉 신앙 판단이다. 부 번쨰로는 그 현상이 다른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갖는 인과적 중요성이 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인데,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역사적 인과 구명이다. 

칼뱅에 있어 가공할 신의 결정은 루터의 경우처럼 체험된 것이 아니라 안출된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만 쏠리는 그의 종교적 관심의 방향에서 사상적 철저화가 진전됨에 딸 그 이론의 중요성은 더해갔다. 신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위해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은 오직 신의 위엄을 영광케 한다는 목적의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신만이 자유롭고, 즉 아무런 법칙에도 종속되지 않고, 신의 결단은 당신이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저 좋다고 생각하시는 한에서만 이해될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상의 정의의 척도로 신의 지고한 섭리를 측정하려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신의 위엄을 침범하는 것이다.

이 이론은 그 격앙된 비인간성을 통해 그 장엄한 결론에 몸을 맡긴 한 세대의 감정에 낳은 결과는 무엇보다도 전대미문의 개인적인 내적 고립감이었다. 종교개혁 시대의 인간들에게 결정적이었던 삶의 관심사, 즉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인간은 태초로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을 향해 홀로 길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다. 설교자도 도울 수 없다. 교회도 도울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신조차 도움이 단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역시 선택된 자들을 위해서 죽은 것에 불과하며, 신은 영원한 과거부터 선택된 자들을 위한 속되의 죽음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세계는 (오직) 신의 자기 영광에 봉사하도록 정해져 있고, 선택된 기독교는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세계에 신의 영광을 각자의 몫만큼 증대시키도록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신은 기독교도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신은 삶의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그 형성이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이뤄지는 칼뱅 교도들의 사회적 노동은 오직 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한 노동일 뿐이다.그러므로 모든 이의 현세적 삶에 봉사하는 직업 노동도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갖는다. 

이미 우리는 루터에게서 이웃사랑으로부터 분업적 직업 노동의 도출을 보았다. 그러나 그에 있어 좀 더 불확실하고 순수한 구성적, 사상적 단초에 머물렀던 것이 칼뱅주의자에 와서는 그들의 윤리체계의 특징적 일부가 되었다. 이웃 사랑은ㅡ그것이 피조물의 영광이 아닌 신의 영광에 봉사할 수 있을 뿐이므로ㅡ우선 자연법에 의해 주어진 직업 임무의 이행에서 표현되며, 그 경우 이웃 사랑은 본질적으로 사물적이고 비인격적인 성격, 즉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우주의 합리적 형성에 이바지한다는 성격을 띠게 된다.

분명히 하나의 문제가 모든 신자에게 떠올랐을 테고 다른 모든 관심사를 뒷전에 밀어놓았을 것이 분명하다. 즉 나는 선택되었는가? 선택되었다면 나는 그 선택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러나 칼뱅 자신에게는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도구'라고 여겼고 자신의 구원을 확신했다. 따라서 그는 개인이 무엇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대답밖에는 할 수 없었다. 즉 우리는 신의 결정에 대한 지식과 참된 신앙을 통해 결과된 그리스도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신뢰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원칙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보고 선택되었는지 버림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을 신의 비밀에 관여하려는 주제넘은 시도라며 비난했다. 선택된 자는 외적으로 현세에서 버림받은 자와 구별되지 않으며, 선택된 자의 모든 주관적 경험도 끝까지 지속되는 신앙이라는 유일한 예외 말고는 버림받은 자에게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선택된 자는 신의 보이지 않는 교회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일찍이 그를 추종했던 베자와 같은 계승자들과특히 광범한 층의 평신도들에게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이들에게는 구원의 인식 가능성이라는 의미에서 구원의 확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고, 에정설이 확립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선택된 자에 속함을 인식할 수 있는 확실한 표지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이 곧 제기되었다.

그 경우 구원의 선택을 달리 해석하고 완화시키고 근본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특히 두 가지 상호 결부된 목회적 권고가 특징적으로 부각된다.

첫째는 자신을 선택된 자로 여기고 모든 의심을 악마의 유혹으로서 거절하는 것이 단적으로 의무화된다.

둘째로 자기 확신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탁월한 수단으로 부단한 직업 노동이 임명되었다. 이러한 노동만이 종교적 회의를 씻어버리고 구원의 확실성을 제동한다는 것이다. 세속적 직업 노동이 이러한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ㅡ달리 말해 세속적 노동이 종교적 불안감을 진정시키는 데 적합한 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따는 것ㅡ은 개혁파 교외에 널리 퍼져 있던 종교적 감정의 뿌리깊은 특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선행은 구원을 얻는 기술적 수단이 아니라 구원에의 불안을 떨쳐버리는 기술적 수단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행은 종종 구원에 불가결한 것이라 표현되거나 구원의 소유와 결부되었다. 그런데 근본에 있어 이것이 실천적으로 의미했던 것은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 따라서 종종 표현되듯이 칼뱅주의자들은 자신의 구원ㅡ정확히 말해 구원의 확신ㅡ을 스스로 창조한다.

카톨릭의 윤리는 의도의 윤리였다. 그러나 개별적 행위의 구체적 의도가 행위의 가치를 결정했다. 그리고 개별적 행위는 행위자에 그 책임이 물어졌고, 그의 현세적 또는 내세적 운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와 동시에 교회는 매우 현실주의적으로, 인간이 결코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결정되어 평가될 통일체가 아니며 인간의 윤리적 삶은 상충하는 동기의 영향을 받아 매우 모순적이기도 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했다. 물론 교회도 인간에게 이상으로서 원칙적인 삶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조차도 교회의 가장 중요한 권력 수단이자 교육 수단인 고해성사를 통해 (대체로) 약화되었다. 이 고해성사의 기능은 가톨릭 신앙의 가장 내밀한 특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세계의 탈마법화, 즉 구원 수단으로서의 마술을 배제하는 것이 가톨릭 신앙에서는 청교도적 경건성에서와 같이 철저히 수행되지 않았다. 카톨릭 신자에게는 그의 교회가 주로 성례의 은총이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것이었다. 사제는 변체의 기적을 수행하고 교황의 징계권을 장악한 마술사였다. 신도들은 회개와 참회에서 사제에게 바랄 수 있었고, 그러면 사제는 죄를 사해주고 구원의 희망을 베풀고 면죄의 확신을 심어주었으며, 그럼으로써 빠져나올 수도 없고 무엇으로도 위안받을 수 없는 칼맹주의자들의 운명이 겪어야 했던 저 엄청난 긴장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칼뱅주의자들에게 우호적이고 인간적인 위안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가톨릭과 루터주의자들처럼 결함과 경솔의 시간을 다른 시간의 고양된 선의지로 보상한다는 것은 바랄 수도 없었다. 칼뱅주의의 신은 신도에게 개별적으 선행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체계로 끌어올려진 선한 생활을 요구했다. 죄, 회개, 속죄, 평안, 또다시 새로운 죄 사이의 지극히 인간적인 카톨릭의 기복이라든지, 전 생애의 결산을 현세적 형벌로 속죄하고 교회의 구원수단을 통해 청산한다는 것 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일상적인 윤리적 실천은 그 무계획성과 비체계성을 벗어버리게 되었고 전 생활방식의 일관된 방법으로 발전되었다.

그 생활방식은 체계적으로 형성된 합리적 생활방식의 방법이 되었으며, 그 목적은 자연상태를 극복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비합리적 충동의 힘과 세계 및 자연에 대한 의존을 탈피하게 하여 계획적 의지의 우선성에 부속시킴으로써 그의 행위를 지속적인 자기 통제와 그 행위의 윤리적 효과의 숙고 아래 두는 것이며 수도승을 신의 왕국에 봉사하는 노동자로 교육시키고, 그리하여 다시 그의 구원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경건주의가 육성한 덕은 한편으로 '직업에 충실한' 관리, 종업원, 노동자, 가내공업자 등을 발전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로 신을 만족시키는 겸속한 태도의 가부장적 고용주를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칼뱅주의는 부르주아-자본주의 경영자의 엄격하고 정직하고 적극적인 정신에 더 가까운 듯이 보인다. 결국 순수한 감정적 경건주의는 '유한계급'을 위한 종교적 도락이었다. 이러한 특징 부여는 결코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이 두 가지 금욕주의 종파 중 하나에서 영향을 받아 성립한 국민들의 경제적 특성에서 오늘날 발견되는 일정한 차이와도 일치한다.


칼뱅주의를 제외하고 프로테스탄트적 금욕주의를 독자적으로 담당한 두 번째 교파는 침례교와 16세기 17세기에 그로부터 직접 유래했거나 그 종교적 사고 형식을 채택하여 발생한 교파들인 침례파, 메노파, 그리고 특히 퀘이커교 등이다. 이들은 그 윤리가 개혁파 교회와는 원칙적으로 이질적인 토대에 서 있는 종교 공동체이다. 종교 공동체, 개혁기 교회의 용어에 따르면 가시적 교회는 더 이상 천상의 목적을 위한 일종의 세습재산이나, 필연적으로 의로운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모두를 포괄하는 제도ㅡ신의 영향을 더하기 위한 것이든(칼뱅주의) 아니면 인간에게 구원을 매개하기 위한 것이든(가톨릭과 루터주의) 간에ㅡ로 여겨지지 않고 단지 개인적인 신자와 거듭난 자의 공동체로 파악된다. 달리 말해 교회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종파'로 간주된다. 실제로 오직 개인으로서 신앙을 내면적으로 획득하고 고백한 성인만이 세례를 받는다는 그 자체로는 순전히 외적인 원리도 이 점을 상징하는 것 이상일 수는 없다. 

그런데 모든 종교적 논의에서 계속 반복되었듯이 침례파에게는 이러한 신앙을 통한 '의인'이 초기 프로테스탄티즘의 정통 교리를 지배했던,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를 법률적으로 귀속시키는 사상과는 철저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마치 초대 교회가 오직 개인적으로 신에 의해 각성되고 부름을 받은 자만으로 이루어졌떤 것처럼 거듭난 자만이 그리스도의 형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처럼 직접 성령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세속', 즉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 세상 사람들과의 교류를 엄격히 회피하는 것이 초대 기독교도의 삶을 모범으로 삼는다는 의미에서의 가장 엄격한 성서주의와 더불어 초기의 침례교단에 성립되었고, 옛 정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세속 회피의 원칙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침례파는 예정설 신봉자, 특히 엄격한 칼뱅주의자들과 더불어 구원 수단으로서의 모든 성례를 극단적으로 평가절하했고, 그렇게 해서 세계의 종교적 탈마법화를 철저히 수행하여 마무리지었다. 지속적 계시의 내면적 빛 만이 성서에 있는 신의 계시도 참되게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은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이 선사하는 은총이기는 하나 오직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사는 자만이 자신을 거듭난 자로 여길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선행은 불가결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신은 피조물이 침묵할 때만 말씀하신다는 사상은, 침례교가 일상적인 세속적 직업 생활에 침투함에 따라 분명히 행위에 대한 침착한 숙고와 꼼꼼한 개인적 양심 추구에 입각한 행위 등의 교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후에 침례교 공동체, 특히 퀘이커교단의 생활 실천은 이러한 침착하고 냉정하며 탁월하게 양심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세계의 철저한 탈마법화는 현세적 금욕 이외의 길을 내면적으로 혀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권력이나 그것의 사용과 전혀 무관하려 했던 이 교단에 있어서는 외적으로도 이러한 금욕적 덕이 직업 노동에 유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침례교, 특히 퀘이커교에서 현세적 금욕이 취했던 특수한 형태가 17세기의 판단에 따르더라도 보통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윤리'의 중요한 실천적 증명에서 나타남을 알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칼뱅주의의 영향이 오히려 영리의 사경제적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방향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욕적 생활방식은 자신의 전 존재를 신의 뜻에 맞추어 합리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이 금욕은 더 이상 과외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요구되는 행위였다. 자연적 생활과 구별되고 종교적으로 요구된 성도의 특별한 생활은ㅡ이 점이 결정적인 것이다ㅡ더 이상 세속 밖의 수도원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그 질서 안에서 행해졌다. 내세를 바라보면서 세상 안에서 생활방식을 합리화한 것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 사상이 낳은 결과였다.

처음에는 세속을 벗어나 고독으로 도피했던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세속을 단념한 상태에서도 이미 수도원에서 나와 세계를 기독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그 금욕주의는 대체적으로 세속적 일상생활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 성격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금욕주의는 닫아버린 수도원의 문을 뒤로하고 삶의 시장에 걸어 나와 현세적 일상생활에 자신의 방법을 침투시키기 시작했고, 일상생활을 세속 안에서ㅡ그러나 세속에 의해서나 세속을 위해서는 아니었다ㅡ합리적 생활로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2. 금욕과 자본주의 정신

루터에 있어서처럼 청교도적인 직업 사상에서는 일단 신이 배당해준 운명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적 금욕의 이러한 방법적 성격에 강조점이 놓인다. 어떤 직업의 효용성과 그에 대응하는 신의 만족은 물론 첫째로는 도덕적 척도에 따라, 그 다음으로는 거기서 생산될 재화가 전체에 대해 갖는 중요성의 척도에 따라 평가되지만, 세번째로 실천적으로는 보다 더 중요한 관점인 사경제적 수익성에 따라 평가된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이 삶의 구석구석에 작용하고 있다고 본 신이 그의 신도들 각각에게 하나의 이윤의 기회를 준다면, 그것은 신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자는 그 기회를 사용하여 그러한 부르심에 따라야만 한다. 만일 신이 너에게 네 영혼이나 타인의 영혼에 해를 주지 않고 다른 방법보다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을 지시하였는데, 네가 이를 마다하고 보다 적은 이익을 주는 방법을 따른다면, 너는 네 소명calling의 목적 하나에 역행한 것이며, 신의 대리인(집사)이 될 것을 거부한 것이며, 신의 선물을 받아 신이 요구할 때 그 선물을 그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한 것이다. 당연히 육욕과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신을 위해서라면 부자가 되기 위해 노동해도 괜찮다. 이렇게 부는 게으른 휴식과 죄 많은 삶의 향락에 대한 유혹으로서 위험시된 것이며, 부의 추구도 나중에 근심없이 안일하게 살기 위한 것일 경우에만 위험시된 것이다.

반면에 직업 의무의 행사로서의 부의 추구는 도덕적으로 혀용될 뿐만 아니라 명령된 것이기까지 하다. 빈곤해지려는 것은 빈번히 논증되었듯이 병들려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리고 노동능력이 있는 자가 구걸하는 것은 나태이므로 죄일 뿐만 아니라 사도의 말씀에 따르더라도 이웃사랑에 위배되는 것이다.확고한 직업의 금욕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근대적인 전문 직업을 윤리적으로 신성시했듯이, 이윤 기회에 대한 섭리적 해석은 기업가를 신성하게 만들었다. 영주의 고상한 방종과 벼락부자의 과시적 허세는 모두 금욕주의가 증오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정직하게 자수성가한 부르주아는 대단한 윤리적 평가를 받았다.

대체적으로 삶 자체를 소박하게 평가하는 쪽으로 기울던 옛 유대교의 분의기는 청교도주의의 특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ㅡ이것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인데ㅡ자본주의적 에토스의 발전을 결정지었던 특징이란 면에서 보더라도 중세와 근대 유태교의 경제 윤리는 프로테스탄티즘과 거리가 멀다. 유대교는 정치나 투기에 의존하던 모험가 자본주의에 속한다. 즉 유대교의 에토스는 한마디로 말해 천민자본주의의 에토스이다ㅡ청교도주의는 합리적인 부르주아 경영과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를 수행했다. 청교도주의는 유대교 윤리 중에서 이러한 테두리에 적합한 것만을 채택했다.

엄격한 칼뱅주의의 지배를 7년밖에 받지 않았떤 네덜란드에서도, 종교적으로 독실한 사람들은 거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매우 소박한 생활을 했기 때무에 막대한 자본축적열이 일어났다. 17세기 이후의 영국사회는 좋았던 옛날의 영국을 대표하는 지주계급과 불안정한 사회적 힘을 가진 청교도로 양분되었다. 거리낌 없이 소박하게 삶을 즐기는 것과 엄격히 통제되고 억제된 자기 규제 및 관습적인 윤리적 구속, 이 두 특징은 오늘날에도 영국인의 민족성의 모습에 나란히 나타나고 있다.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 그리고 그뿐 아니라 근대적 문화에 구성적 요소 증 하나인 직업 사상에 입각한 합리적 생활방식은 ㅡ이것이 이 책이 증명하려는 점인데ㅡ기독교적 금욕의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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