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e of Access
민음사
2001. 5. 25
Jeremy Rifkin
문화 생산의 발전
다니엘 벨은 현대 문명을 분명히 구분되지만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세 가지 권역으로 나눈다. 그것은 경제, 정치, 문화이다. 경제 영역의 핵심적 원리는 자원 이용의 효율화라고 벨은 주장한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다. 문화 영역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자기실현과 자기고양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정치 영역과 문화 영역의 가치는 경제 영역으로 포섭되어 끈임없이 상품화되었다.
민주주의적 참여와 개인적 권리라는 관념은 소비자 주권과 소비자 권리로 변신하여 시장에서 다시 태어났다. 수많은 미국인에게는 상품을 구입하고 소유할 수 있는 권리가 투표소에서 공민권을 행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개인적 자유의 표현수단이 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소비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던 단어였다. 소비는 낭비, 약탈, 탕진, 고갈을 의미했다. 영어로 소비를 뜻하는 comsumption은 이 당시에는 폐병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브랜드 제품이 늘어나고 대중 광고와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소비 행위는 긍정적 이미지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미국 땅으로 몰려든 이민자들이 못내 부러워한 것은 교실과 공식석상에서 찬양하던 시민적 참여의 이상이 아니라 탐나는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는 궁전처럼 으리으리한 백화점에 가서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사는 것이었다. 참여는 정치적 영역의 고매한 횃대에서 굴러 떨어져 상업적 영역에서 소비자로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기회로 격하되었다.
반면에 문화는 물질적 가치만이 팽배한 세태를 경고하던 비판자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도피처로서의 구실을 한동안은 했다. 낭만주의자들과 뒤이어 나타난 보헤미안들은 자연과 예술속에서 자기 실현을 꿈꾸었다. 그들은 물질로 오염되지 않은 진보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정신을 드높여야 한다고 부르짖었으며 예술과 미적 체험이야말로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노동과 물질적 축적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사회 비평가들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보다는 자기 변신을 갈망했다. 그러나 자기 실현을 위한 갈망은 점점 상업적 영역으로 흡수되었다. 그것은 정치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적 가치가 설 자리를 잃고 시장이 요구하는 상업적 가치로 변질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물과 기긂의 관계처럼 보였던 소비 윤리와 자기 실현의 윤리가 20세기의 자본주의 시장에서 서서히 공동의 토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업의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하고 흥미 깊은 사건이다.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두 가치를 하나로 묶은 힘은 문화적 기준을 전달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
예술은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정교한 수단으로 문화의 가장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 예술은 경제나 정치라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보다 인간 정신의 심츨을 더욱 깊게 파고드는 방식으로 사회적 경험을 조직하고 전달한다. 1960년대와 70년에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 의식에 록 음악과 새로운 형태의 미술과 무용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데서도 우리는 예술이 사회적 의미의 전달과 가치공유 의식 조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알수 있다.
예술가는 저항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와 19세기의 낭만주의 시대부터였다. 예술가는 계몽주의 철학에 의해 억눌리고 산업시장의 요구에 짖눌려온 감정과 욕망을 표현했다. 효율성, 유용성, 객관성, 초연성 위주로 짜지고 물질적 가치와 재산의 축적에 집착하는 세계에서 예술가는 인간 경험의 다른 차원, 다시 말해서 산업 시대의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는 욕망을 전달했다. 예술가는 현대성의 이면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객관성 대신 주관성을 앞세웠고 근면성 대신 창조성을 내세웠다.
예술가는 자유 분망함과 희열의 감정을, 작업대와 기계 앞에 꼼짝없이 묶어두는 청교도적 생활의 단조로운 반복으로부터 해방감을 노래했다. 그들은 대량 생산품이 흘러 넘치고 대중의 익명성에 잠긴 세계에서 자기 표현과 자기 실현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개인의 욕망에 호소했다.
이런 예술의 저항적 자세를 1920년대에 들어와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같은 곳에서 활동하던 새로운 세대의 보헤미안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자기 희생, 근면, 육체적 정서적 쾌락의 승화라고 하는 금욕주의적 가치관을 강조하던 기조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마찰을 빚었다.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에서 사회 이론을 가르치는 마이크 페더스톤 교수에 따르면 이 새로운 예술가들은 <순간의 삶, 향락주의, 자기 표현, 육체미, 무종교, 사회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머나먼 곳에 대한 동경, 스타일의 개발과 삶의 미학화를 찬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감수성은 자본주의라는 지배 체제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것은 생산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변하는 과도기의 경제에서 이상적인 자극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처음 100년 동안은 저축, 자본 형성, 생산양식의 조직, 노동력의 훈련에 무게 중심이 두어졌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은 20세기 초반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난제를 던졌다. 무수히 많은 조립 라인과 컨베이어벨트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의 재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기업가는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을 비판하기 위해 예술가가 썼던 바로 그 저항적 가치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과거의 생산 지향 자본주의가 창조성, 자기 충족, 쾌락과 유희를 추구하는 욕망을 억누르기에 급급했다면 새로운 소비 지향 자본주의는 이 억눌린 심리적 욕구를 예술이라는 분출구로 해방시켜 거대한 소비 문화를 창출한다. 새로운 소비자 지향의 시장은 예술을 문화적 영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끌고 나왔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소임을 맡았던 예술은, 이제 광고 회사와 마케팅 전문가의 볼모가 되어 <생활양식>을 파는데 동원되었다.
1920년대부터 <소비자 문화>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광고 회사는 재능이 뛰어난 젊은 작가, 화가, 지식인을 영입하여 상품을 문화적 기호로 포장하는 임무를 맡겼다. 창조성, 자기 실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정신적 고양감 같은 것은 지금까지 문화적 영역에서 추구해 온 것들이지만 이제 이런 것들은 문화적으로 덧칠된 상품이나 서비스의 형태로 시장에서 손쉽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품이나 서비서의 효용성과 심리적 가치는 겉돌게 되었다.
광고회사는 석판 인쇄, 전기, 영화, 판화, 라디오 같은 다양한 매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대중의 심리적 에너지를 문화적 영역으로부터 상품 시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통신 기술과 예술 매체로 무장한 자본주의 시장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 얼굴을 맞대고 직접 관람하는 데 의존해 온 그림, 무용, 노래, 연극, 야외 공연, 행렬, 축제, 운동 경기, 놀이, 시민 행사 같은 기존의 문화적 매체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했다. 이제 전자매체를 통해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게 된 문화는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현장감은 덜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문화적 경험의 공유로 대중을 결속시키고 있다.
국지적으로 생산되는 예술과 문화는 영화나 라디오 같은 전자 예술 형식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예술과 예술가를 시장에 빼앗긴 문화는 공유하는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고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는 강력한 목소리를 상실했다. 이런 문화적 고사 상태의 의미를 처음으로 절감하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앤디 워홀이 캠벨 사의 수프 통조림 같은 상품을 그려서 예술 작품이라고 내놓았을 때 전통 문화는 벌쎠 소비문화로 이행한지 오래였다. 한떄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가장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처음 100년 동안은 저축, 자본형성, 생산양식의 조직, 노동력의 훈련에 무게 중심이 두어졌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은 20세기 초반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난제를 던졌다.
무수히 많은 조립라인과 컨베이어 벨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의 재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기업가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을 비판하기 위해 예술가가 썼던 바로 그 저항적 가치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과거의 생산지향 자본주의가 창조성, 자기충족, 쾌락과 유희를 추구하는 욕망을 억누르기에 급급했다면 새로운 소비지향 자본주의는 이 억눌린 심리적 욕구를 예술이라는 분출구로 해방시켜 거대한 소비 문화를 창출한다. 새로운 소비자 지향의 시장은 예술을 문화적 영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끌고 나왔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소임을 맡았던 예술은, 이제 광고회사와 마케팅 전문가의 볼모가 되어 <생활양식>을 파는데 동원되었다.
1920년대부터 <소비자 문화>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광고회사는 재능이 뛰어난 젊은 작가, 화가, 지식인을 영입하여 상품을 문화적 기호로 포장하는 임무를 맡겼다.
창조성, 자기실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정신적 고양감 같은 것은 지금까지 문화적 영역에서 추구해 온 것들이지만 이제 이런 것들은 문화적으로 덧칠된 상품이나 서비스의 형태로 시장에서 손쉽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효율성과 심리적 가치는 겉돌게 되었다.
광고회사는 석판인쇄, 전기, 영화, 판화, 라디오 같은 다양한 매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대중의 심리적 에너지를 문화적 영역으로부터 상품시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통신기술과 예술 매체로 무장한 자본주의 시장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 얼굴을 맞대고 직접 관람하는 데 의존해 온 그림, 무용, 노래, 연극, 야외공연, 행렬, 축제, 운동경기, 놀이, 시민행사 같은 기존의 문화적 매체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했다. 이제 전자매체를 통해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게 된 문화는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현장감은 덜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문화적 경험의 공유로 대중을 결속시키고 있다. 국지적으로 생산되는 예술과 문화는 영화나 라디오같은 전자 예술형식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예술과 예술가를 시장에 뺴앗긴 문화는 공유하는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고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는 강력한 목소리를 상실했다.
이런 문화적 고사상태의 의미를 사람들이 처음으로 절감하게 된 것은 1960년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앤디 워홀이 캠벨 사의 수프 통조림 같은 상품을 그려서 예술 작품이라고 내놓았을 때 전통문화는 벌써 소비 문화로 이행한지 오래였다. 한때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던 예술이 이제는 시장이 내세우는 가치의 가장 중요한 전달자, 가장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달라지는 의식구조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은 얼마나 많이 생산했고 얼마나 많이 축적했는가보다는 얼마나 생생한 경험을 많이 했고 얼마나 많은 관계에 접속할 수 있는가에 흥미가 있다.
인간의 의식은 근대의 여명기에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으로 인해 크게 달라졌는데 부르주아지는 산업시대를 이끌고 나간 상공업자, 공장주인, 상인, 전문직 종사자였다. 신분이 계급으로 바뀌어가던 시대에 그들은 위로 상승하는 중산층이었다.
그들의 위에는 소명해가던 중세의 귀족이 있었고 아래에는 억압속에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연명하던 노동자 프롤레타리아와 아무런 특권을 누리지 못하던 소규모 자영농과 소작인이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자본으로 사업을 벌이고 자본을 축적했다. 그들은 서서히 신학을 버리고 이념을 택한 계급이었으며, 천국의 구원보다는 지상의 낙원을 추구한 계급이었다.
유물론이라는 복음을 사방에 전파하고 사유재산의 미덕을 찬양했다.
중세인의 생활은 개방되고 공개된 공간에서 이루어졌지만 부르주아지는 대게 국데 닫힌 문 뒤에서 살았다. 그들의 생활은 실내생활이었다. 작은 점포와 응접실은 그들의 전형적 공간이었으며 사유재산을 관리하듯 자신의 생활을 조직했다. 생활의 구석을 에워싸고, 사유화하고, 통제하고, 울타리를 치고, 범주화하고, 보호하고, 저장하고,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차단했다. 이 사유세계는 하나같이 구성되고 조직된 것이었고 이질적인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물질생활의 내부화는 의식의 내면화를 수반했다. 인간이 처음으로 자아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도 부르주아 시대로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서양 역사에서 자아라는 개념은 오래전부터 서서히 발전해왔지만 유독 부르주아지는 이 자아에 거의 강박 관념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집에는 어디를 가나 거울이 달려 있었고 자기 점검과 자기 반성은 취미이면서 동시에 집착으로 자리잡았다. 자기확신, 자기애, 자기연민, 자긍, 자중, 인격, 에고, 양심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릐 담론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었고 자화상과 전기는 인기있는 문화 형식이 되었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부터 부르주아지는 본격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되었다.
<부르주아 의식의 역사>에서 도널드 라우는 이렇게 말한다. 부르주아지는 집안에 있는 가시 공간을 야단스러운 가구와 정교한 장식으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어쩌다가 빈 공간이 눈에 띄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집안 구석구석에 물건을 들여놓았다라고.
그들은 재산으로 자신을 에워쌌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모든 형태의 경계선을 만들었다. 소유라는 개념은 심지어 그들의 의식 안으로 철저히 내면화되었다.
부르주아지는 덕보다는 양식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양식은 무엇보다도 자기 절제와 자기 통제라는 관념을 연상시켰다. 양식은 시민의식, 근면, 성실, 의지, 검약, 청렴, 그리고 성숙함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노동 윤리에 담긴 정신을 세속화시키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유재산 체제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생산자 정신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새로운 자아의 개념이 처음으로 자아를 향상시크는 요령을 가르치는 책에서 나타나더니 나중에는 대중문화로까지 침투한다. 오리즌 스웨트 마든이 1921년에 <매련있는 인간>이라는 책을 써서 독자들에게 개인적 매력을 발산하는 비결을 배우라고 촉구했다. 마든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의범절, 경우에 맞는 옷차림, 원만한 화술, 활역, 절도있는 생활, 바른 몸가짐만 익히면 누구나 만인을 자기편으로 만들수 있다고 조언했다.
매력있는 인간을 묘사하는 데 동원되는 단어는 양식있는 인간을 묘사하는 데 쓰이던 단어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호감을 주고 창조적이고 흡인력 있고 끄는 힘이 있고 애교있고 쾌활하고 속을 드러내는 포근한 사람을 두고 우리는 매력있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수많은 군중 속에 있어도 단번에 좌중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고 남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 자신이 되자>, <나의 개성을 표현하자>, <자기 확신을 가지자>같은 구호가 시대를 풍미했따. 이런 구호는 저축과 생산 중심의 사회를 지출과 소비 중심의 사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고안된 마케팅 기법과 국가 차원의 선전을 위한 심리적 재료가 되었다.
19세기의 부르주아지는 재산과 부를 축적하기는 했어도 인생에 대해서는 금욕적 태도를 고수했다고 볼 수 있다. 소비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러나 1920년대로 접어들면서 물건이 남아돌기 시작한다. 자연히 소비생활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새로운 인간형이 필요해졌다.
진지함은 줄어들었지만 놀긱를 좋아하고 절제심은 없어졌지만 모험심은 늘어난 사람,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안달하는 사람이 필요해졌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기다렸따는 듯이 적절한 조언을 제공했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 그래서 세련되고 현대적이고 전위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주장을 하고 자기만의 매력을 가시적으로 발산하는 길이었다. 현대 마케팅과 매력 예찬론이 손을 잡고 새로운 인간을 창조했다. 이 새로운 인간에게 자기 충족은 자기 제어 못지않게 중요했다. 양식이 매력으로 바뀌는 기나긴 여정에서 사유재산은 여전히 사회에서 가장 으뜸하는 지위를 차지했지만 강조점은 서서히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했다.
변화무쌍한 인간형
19세기만 하더라도 사람은 고정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인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증식되는 상품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인생은 무언가를 부단히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정>이 <존재>를 압도하게 되었다.
자아 개념만 달라진게 아니다. 지금까지는 소유 관계라는 비유가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데 더없이 유효적절하게 쓰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헌터 대학의 마이클 우드와 텍사스 대학의 루이스 주커 두 사회학자는 <탈근대 자아의 전개>라는 책에서 누적된 노력을 통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자아가 부단한 과정 속에서 각성되고 발견되고 실현되는 현재 지향의 자아로 변모하는 양상에 주목한다. 이제 자아는 만들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자아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편집되는 이야기의 전개로 여겨진다.
소유라는 비유가 퇴색한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역사의식의 붕괴와 심리치료의 부상이다. 18,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부르주아지는 역사적 맥락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찾았다. 그들은 웅장하게 펼쳐지는 역사적 드라마 안에 참여하고 있다고 믿었고 그 드라마의 종착점은 세속의 유토피아라고 믿었다. 소유관계야말로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믿었고 개개인의 인간은 거대한 역사극 안에서 일역을 맡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한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미래의 낙원을 건설하는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확신과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20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역사의식은 쇠학하고 심리치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역사적 사명감을 의식하기 보다는 자신의 개인사를 훨씬 비중있게 생각했다. 생산활동을 하고 스스로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것은 생산지향의 역사의식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알맞았을지 모르나 이제는 그야말로 고역이 되었다.
인생은 역사나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너무 짧다는 각성이 움튼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는 그런 생각에 더욱 이끌리게 마련이다. <역사를 지향하는 인간>은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위해 살아가지만 <치료를 지향하는 인간>은 현재를 위해 살아가며 거창한 역사적 사명감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마음의 개조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놓은 데 기여한 요인의 수는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용한 것은 통신 기술이 인쇄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이다.
인간의 의식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는 사회적 관계를 창조하는 데 사람들이 이용하는 통신형태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통신기술에서 마지막으로 일어난 큰 변화는 근대의 여명기에 구두문화와 필사문화가 인쇄문화로 바뀐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인간 의식의 성격이 결정적으로 변했다. 인쇄혁명은 사유재산관계와 시장교환이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에 더할 나위없이 어울리는 사유의 길을 터주었다.
우선 새로운 인쇄매체는 사람이 지식을 조직하는 방법을 재정의했다. 머리로 외워서 입으로 전달하는 비생산적인 방법이나 중세의 필사본처럼 베끼는 사람의 주관이 가미되는 방법은 사라지고 지식에 좀 더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며 분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쇄는 인간의 기억에 의존하던 옛날 방식과는 달리 내용이 요약된 도표, 일련 번호, 주석, 색인을 짜임새있게 제공하여 끝없이 과거를 환기해야 하는 부담에서 인간의 정신을 해방시켜 주면서 현재와 미래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이런 의식의 변화는 불질의 무한한 획득과 인간의 진보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이어졌다.
인쇄는 도표, 목록, 그래프 같은 다양한 장치를 도입했다. 이런 시각적 보조물은 세계를 좀 더 정교하게 묘사하는 데 더없이 요긴한 역할을 했다. 인쇄는 또 표준화되고 쉽게 재생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들어 육로와 해로를 통한 여행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해주었다. 해로와 육로가 뚫리면서 무역과 시장의 범위도 덩달아 확대되었다. 부단히 갱신되고 대량으로 찍히며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인쇄 시각표는 철도 교통과 대양 항해를 용이하게 만들어주었다.
상인과 자본가가 점점 복잡해지는 시장 활동을 조율하고 오지의 상거래를 세세히 파악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계약>에 의거한 상업문화가 정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근대식 부기, 일정표, 선하증권, 송장, 수표, 약속어음은 시장 자본주의를 꾸려나가는 데 꼭 필요한 관리 수단이었다. 균일한 가격 체계가 없이는 근대적 재산교환의 관념이 발전하기 어려웠는데 바로 이런 가격 체계의 정착도 인쇄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산업 자본주의의 발달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 조립이라는 관념도 따지고 보면 인쇄에서 자극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알파벳을 교환과 재사용이 가능한 균일하고 표준화된 글꼴의 단위로 나눔으로써 인쇄는 최초의 근대적 생산 공정을 선구적으로 실현했다. 글자를 균일한 간격으로 조판하여 인쇄기에 걸어 찍으면 원본과 전혀 차이가 없는 문서를 얼마든지 많이 펴낼 수 있었다. 조립, 균일하고 대체 가능한 부품, 공간 속에 있는 대상의 규칙적인 위치, 대량생산은 바로 산업 자본주의의 생활 양식 밑바탕에 깔린 원칙이었는데 인쇄는 이런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본보기를 제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인쇄는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방식으로 현상을 조직하며 이 과정에서 직선적, 순차적, 인과적 사유방식을 장려한다.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엮는다>는 것은 논리적 연쇄에 따라서 하나의 관념을 또 하나의 관념으로 발전시키는 직선적 연결고리를 연상시킨다. 이런 방식은 대화 도중에 내용이 중복되거나 끊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구슬 문화의 사유방식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입으로 하는 낭비를 없애고 가장 정확한 측정과 묘사를 가능케 함으로써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이제 현상을 엄밀하게 점검하고 관찰하고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정밀함을 요구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서 실험을 반복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필사나 구술에 바탕을 둔 문화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다.
인쇄는 또 저작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필사는 대개 익명으로 행해졌다. 한 권의 책은 많은 필경자들이 오랜 세월 쏟아 부은 집단적 노력의 결실이었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은 집단의 목소리에 파묻혀 있던 개인을 특수한 지위로 끌어올렸다.
또한 저작권이라는 관념은 자기가 쓴 말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발상으로 연결되었다. 저작권법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수단을 상품으로 만들어주었다. 개인이 생각과 말을 소유할 수 있고, 그것을 듣고 싶은 사람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발상은 인간관계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을 이룬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구두로, 서로 만나서 나누는 대화로 생각을 공유했다. 심지어는 필사본까지도 큰 소리로 읽었다. 필사본의 일차적 용도는 독서가 아니라 낭독이었다. 인쇄혁명은 차분히 성찰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책이란 것은 혼자서 조용히 읽는 것이 제격이다. 이렇게 해서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관념이 싹텄다. 아울러 자기를 반성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자기와 세계를 치료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구조에 혁명을 몰고 온 컴퓨터는 문화자원과 실체험의 마케팅, 접속관계에 바탕을 둔 경제를 운영하는 데 더없이 이상적인 도구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컴퓨터는 인간의식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컴퓨터 통신은 직선으로 전개되지 않고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 진다. 순서와 인과는 밀려나고 그 자리에 연속적이고 통합된 활동의 총체적 장이 들어선다. 모든 층위에서 끊임없이 수정되고 쇄신되는 역동적 문화의 관계망 안에서 모든 부분은 하나의 접속점이 된다.
전자통신은 인쇄 기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조직한다. 인쇄물의 제한적이고 협소한 연결기능을 압도하는 하이퍼텍스트가 등장한다. 지금까지 책은 일정한 수의 사실을 폐쇄적으로 제시했지만 사이버 공간이라는 확 트인 정보의 장에서는 각주와 출전이 무한히 확대되며 새로운 하위 텍스트와 상위 텍스트가 끝없이 쏟아져나온다.
책이 단선적이고 경계선이 분명하고 고정되어 있다면, 하이퍼텍스트는 연결 지향적이며 원리적으로는 딱히 경계선을 정할 수가 없다. 책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며 독립된 형식으로 존재하지만 하이퍼텍스트는 배타성을 거부하며 관계를 쫓는다. 요컨대 책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책은 완전하다, 하이퍼텍스트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다. 관련된 자료들을 사용자가 연결짓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있을 뿐이며 부단히 변신한면서 완성이라는 것을 모른다.
책은 결과이지만 하이퍼텍스트는 과정이다. 책은 오래도록 소유하는 것이지만 하이퍼텍스트는 순간순간 접속하는 게 제격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인쇄문화의 중요한 특성 하나를 잠식한다. 그것은 바로 책에 씌여진 생각이나 단어는 개별 저자의 소유라는 발상이다. 종래의 저자 개념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매체 자체가 배타성과 독립성보다는 포괄성과 연결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이 사람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저 사람의 몫인가를 나누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통로와 매체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끊임없이 분할하고 재조합하고 편집하고 비튼 다음 자기 것과 결합시켜서 다양한 네트워크 안의 다른 접속점들로 보낸다. 모든 종류의 자료가 한사람의 창조적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광범위한 시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서 형성회는 무한히 열린 과정안에 놓여 있는 것이라면 배타적 소유권을 누구엑 부여해야 하는지가 곤혹스러울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는 프랑스의 문학 이론가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새로운 권리이론
토론토대학의 크로퍼드 맥퍼슨 교수는 우리의 머릿속에 지금 들어 있는 소유의 개념은 대부분 17,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분석을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소유 개념의 첫번째 특징은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다. 그리도 두번째가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 즉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는 공공 소유라는 소유의 두번째 범주를 만들어 이 안에 공원, 도시, 거리, 공유지, 수로를 집어넣었다. 개인은 누구든지 이런 공공재산을 사용하거나 향유할 수 있는 데서 배제당하지 않을 법적 권리를 보장받았다. 사유재산과 공공재산이라는 소유의 두 형태는 사회의 모든 성원이 개별적으로 누리는 재산권의 일부분이었다. 사유재산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공유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공유재산은 사라져버렸다. 근대적 시장과 산업 자본주의의 부상은 배타적 소유를 경제 관계와 사회관계의 전면으로 부각시켰다.
맥퍼슨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만으로 인간의 경제적 관계를 구조화하는 조건을 정의하는 것은 이제 무리라고 주장한다. 상호 의존성이 높은 복잡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의 형태는 <사회 전체의 누적된 생산 자원을 이용하거나 여기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이다.
소유 개념은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시키는 쪽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로서의 소유는 비중이 줄어들게 마련이라고 맥퍼슨은 지적한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모든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웬만큼 만족시킬 수 있으며 타인을 배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소유관계를 조직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이렇다 할 의미가 없다.
물질적 희소성을 극복한 사회에서는 비물질적 가치가 우위를 점하며, 자기 실현과 자기 변신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그런 사회에서는 <충만한 삶>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권리야말로 개인이 보장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소유의 가치가 된다. 새로운 시대에 소유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보장하는 역학 관계의 체제에 참여하는 권리로 성격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맥퍼슨은 결론짓는다.
공감
문화는 인간 문명이 원활하게 기능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또다른 가치의 산실이 된다. 리프턴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통해 동질성을 확인한다> 사회적 신뢰는 공감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공감은 <타자의 인간성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요구한다. 공감은 가장 심오한 인간의 감정에 해당된다. 친밀함과 예의 바름을 하나로 이어주는 힘도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서 타인 안에서 감정의 둥지를 틀고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희로애락을 함께 체험한다는 뜻이다. 그런 감정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서로를 배려하게 된다.
공감은 다른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접할 때 길러진다. 다른 인간의 체험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공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줄어든다.
가령 코소보의 끔찍한 살육 현장이나 소말리아에서 굶어죽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면 가슴이 찌릿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감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180도 달라진다. 갑자기 사람과 상황은 생생한 현실이 되고 그들의 곤경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체험이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모의 현실로 자꾸만 옮겨가고 그 속에서 체험을 문화상품으로 구입하는 추세가 일반화될때 공감 능력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서로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세대는 문화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
교육의 새로운 사명
시장에서 자기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21세기 교육 이념으로는 지나치게 옹색하다. 이런 교육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의식을 가진 균형잡힌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남에게 팔아먹을 수 있는 재산쯤으로 치부하는 어른을 양산한다. 시민교육 옹호론자들은 문화를 자기 삶의 중요한 일부로 여길 수 있도록 학생의 자기 정체성을 심화 확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육은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육성하고 타인과의 유대를 권장하며 문화가 문명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가를 학생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시장이 문화의 파생물인 것처럼 시장성을 가진 기술도 기본적인 사회성의 파생물이다. 시장에서 팔아먹을 수 있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수적인 조역에 그쳐야지 시민 교육을 희생시키면서 맨 앞자리를 차지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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