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은 명백하게 거짓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을 발견할 때까지 또는 최악의 경우,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확신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나아갈 터이다. 아르키메데스가 확고부동한 한 점만 있다면 충분히 긴 지렛대로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듯이, 나도 작지만 확고부동한 한 가지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위대한 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보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가정한다. 내 기억은 거짓뿐이라고 믿겠다. 또 내게는 아무런 감각도 없다. 몸, 형태, 연장, 움직임, 장소도 환영에 불과하다. 그러면 무엇이 진실로 남게 될까? 아마도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단 한 가지 사실뿐일 것이다.
《제1철학에 관한 성찰》, 르네 데카르트, 1639년
관점을 바꾸면 다르게 보인다.
낯선 여행지에 가면 개인 문제나 업무로부터 정신적 거리를 두기 쉽고, 그 덕에 진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된다. 고민하던 문제가 별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도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 환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전부 해결했기 때문에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낮은 곳에 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격한 갈등과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던 것이 높은 산꼭대기에서 굽어보면 골짜기를 지나는 바람쯤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가 현실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환자가 문제 한복판이 아니라 그 위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때 우리는 자기중심적 편향에서 벗어나게 된다. 본성적으로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이러한 편향성은 나르시시스트나 과대망상증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지나치게 수줍어하는 사람 또는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대단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중심적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해 때로는 불리한 대화를 피하려 들고, 실패할 것 같은 일을 마다하곤 한다. 내 자존심이 다치는 꼴은 죽어도 못 볼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편향을 내려놓으면 내가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을 안다. 이렇게 우선순위가 바뀌는 경험을 가장 잘 담아낸 말이 ‘조망효과’다. 조망효과는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우주비행사들이 느끼는 감정을 가리킨다.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은 우주에 덩그러니 놓인 작고 연약한 지구를 보며, “검은 벨벳 하늘에 박혀 빛나는 보석 같다”라고 말했다. 관점을 바꾸는 순간, 지구 안의 국경선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전쟁은 비이성적인 자해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의 고민거리들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깨달았다고 해서 반드시 회의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깨달음이 삶에 풍부한 의미를 부여하고 의욕을 불어넣는다.
미켈란젤로나 셰익스피어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또 우리가 정말로 원대한 업적을 남긴다 한들, 그 흔적이 우주에 남을 리도 없다. 우리는 삶에서 거창한 의미를 발견하려 하지만, 결국 발견하게 될 진신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잣대로 삶을 평가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 부담감을 내려놓고 나면 마음 편히 다른 잣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술 작품을 만들고 공동체나 가족을 가꾸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로 삶을 평가하는 것은 어떨까?
인쇄술이 감각에 미친 영향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필사본 시대의 특징이던 글씨체의 촉감과 독특함은 인쇄술 시대에 필요한 균질성과 획일성에 밀려났다. 매클루언에 따르면, 인쇄술이 시각을 우선시하고 다른 감각들과 분리함으로써 감각 체계에 극단적인 불균형이 발생했다. 인쇄술은 구전 문화에서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의 말보다, 힘들게 제작된 필사본보다, 더 많은 힘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인쇄술로 인해 권력은 비인간화되어, 언어 뒤에 숨은 사람에게서 분리되었다. 그러는 동안 홀로 독서하고 자기 책을 소유하는 일이 개성의 발달을 촉진했다.
지각에 관한 상식
공감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보거나, 냄새 맡거나, 맛보거나, 만지거나, 들을 때 감각들이 혼합되는 것을 경험한다. 이런 사람들의 뇌는 뉴런과 시냅스가 과도하게 연결되어 있거나 지나치게 흥분해 잇다. 그래서 무언가 오감 중 하나를 자극할 때 다른 감각까지 반응한다. 이 혼합 때문에 소리를 보거나, 색깔의 냄새를 맡거나, 모양을 맛볼 수 있다.
후각은 인간이 물체나 다른 사람을 식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사회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사람들은 오로지 냄새만으로 특정한 음식이나 물건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경제적 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진화의 측면에서 볼 때 후각은 가장 오래된 감각 중 하나이며, 냄새 맡기는 포유동물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 하나다. 포유동물은 식량과 잠재적인 짝짓기 대상, 불이나 적 같은 위험 요소를 보거나 듣기 전에 냄새로 먼저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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