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변화>
미국의 한 대통령이 치과에 가서 이를 하나 뽑았다. 그 순간 그는 변했다. 조금 전까지 그의 치아는 32개였지만, 지금은 31개다. 이것은 작은 변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영국 버킹엄궁전의 여왕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여왕은 조금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미국 대통령보다 치아가 한 개 더 많아진 것이다. 이것을 진정한 변화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어쨌거나 여왕은 성인이 된 후로도 32개의 치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479년 사망한 공자도 변화를 겼었다. 미국 대통령이 이를 한 개 뽑음으로써 공자가 살았던 세상은 앞으로 뽑힐 치아가 한 개 더 늘어난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단순한 말장난일까? 여왕과 공자의 경우는 철학에서 말하는 캠브리지 변화의 예. 이는 어떤 주어에 대해 기존에는 없었던 술어가 어느 한순간 생겨났다는 의미. 문제는 여왕과 공자의 경우처럼 명백히 가짜인 변화가 포함.진정한 변화는 어떤 대상의 본질적 속성이 변하는 것. 치아를 하나 갖는 것은 본질적인 속성이지만, 대통령보다 치아가 하나 더 많은 것은 관계적이고 외부적인 속성. 그렇지만 어디서 본질적인 속성이 끝나고 관계적 속성이 시작하는지를 구분하기는 놀랄 만큼 어렵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내일도 다를 우리>
철학자 로리 폴은 인간에게 ‘전환적 경험(transformation experience)’이 존재한다고 주장. 이는 우리가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경험. 이 경험은 무언가를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우리의 개념 자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 예를 들어 내가 자녀를 낳겠다고 결정한 것은 앞으로 마음 쓸 대상을 바꾸는 경험을 겪겠다고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 이 변화는 너무도 극단적이어서 나 역시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미래의 내 마음도 움직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처럼 서로 반대 방향을 동시에 봐라봐야 한다. 뒤를 돌아보면서 계속해서 과거에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제 더는 수의사가 되고 싶지 않지만, 과거의 내가 왜 그런 꿈을 품었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당신의 마음을 지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 지금의 원숙한 판단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가 과거에 했던 일이 모두 지지받을 만한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진 길을 바라보면서는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지금의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도 똑같이 대해주어야 한다.
<불변하는 단 하나의 원리, 변화>
신경과학자 마크 루이스는 <욕망의 생물학>에서 습관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언급. 우리는 습관을 가볍게 즐기거나 선택하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습관에 집착하거나 구속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뇌는 습관을 그렇게 느슨하게 이해하지 못함. 즐거움이나 편안함을 느끼는 행동을 더 많이 반복할수록, 그 행동에 의해 활성화되는 신경회로가 점점 더 강화. 루이스는 뇌를 일종의 당구대라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우리 몸에 배일수록 뇌 표면에 새기는 홈이 더 깊어져서 마침내 습관에 반응하는 뉴런들이 당구대 포켓 같은 골을 이루게 되고, 그 골이 신경학적으로 강력한 중력과 같은 힘을 발휘. 습관은 곧 중독이며 신경학적으로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없음.
<걸리버가 전하는 말>
나는 이성으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말은 내게 설득력을 잃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믿는 진실을 누군가에게 납득시키는 데 있어 이성이나 설득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성과 설득을 활용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득은 목적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사실적 설득’은 누군가와 사실에 관해 소통할 때 필요.
두 번째는 ‘관계적 설득’. 관계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할 때, 또는 무엇을 강요할 때처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순간 효과를 발휘. “이 옷을 입으면 뚱뚱해 보이려나?‘라고 묻는 연인에게 뭐라고 답할지.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
사실적 설득과 달리 관계적 설득은 굉장한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감정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통해, 상대를 향한 존중과 신뢰를 통해, 사회적 압박을 통해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 협박, 기만이 설득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성적 설득이 가능해지는 지점에 도달하려면 일단 관계적 설득에 많이 참여해 알맞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성적 설득은 참여자들끼리 신뢰와 존중을 쌓고, 서로의 신념을 알아가고, 설령 그 신념이 틀렸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가능해지기 때문.
누군가를 이해시키려고 할 때 이성보다 관계적 설득에 의존. 상대방과 신뢰를 쌓고, 가치관의 접점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성은 물론 감정에도 호소. 그러다 이성적 설득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 이성적 설득의 단계로 넘어간다. 그전까지 이성은 우리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며 이성적 설득에 참여할 순간을 기다린다.
문제는 관계적 설득의 과정이 자칫 궤변이나 선동으로 빠지지 않게 조심하는 것. 조종, 기만, 강요는 타당한 설득의 형태가 아님. 관계적 설득을 왜곡하는 권력의 불균형과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인지가 필요.
<우리 발아래서 지구는 돈다>
다양한 생물이 자원을 두고 경쟁한다. 가용 자원이 많고 회복력이 빠른 생물일수록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들의 자손은 부모로부터 유리한 유전자를 물려받고, 더 많은 변이를 일으킨다. 창조자의 도움 없이도, 생물은 끊임없이 스스로 변형될 수 있다. 이런 원리들은 생명체보다 수명이 훨씬 길었다. 당연히 안정된 패턴이 불안한 패턴보다 오래 간다. 논리적으로 안정된 패턴의 수는 더 많아지고,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 결합과 변이라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한, 모든 것은 결국 가장 단순한 최초 형태에서 탈피할 수 있다. 결국 진화는 생명의 발달뿐만 아니라 생명(행성, 별, 원소 그 자체)을 일으키는 핵심 요소가 된다.
진화를 일으키는 상호작용은 그 결과물인 임의의 모든 형성물보다 중요하다. 엄밀히 말하면 형성물은 없고 과정만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이렇게 썼다. “모든 과학적 진보는 세상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해주는 원리가 영속성이 아니라 변화임을 보여준다.”
로벨리는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인간이라는 동물만 경험한다고 주장. 즉 시간이란 기억과 기대에서 파생된 일련의 결과물이며, 우리는 그 기억과 기대를 통해 흐르는 우주 속에서 형성물을 만들어낸다.
다윈이 창조의 맨 꼭대기에 있던 인간을 동물의 하나로 끌어내렸다면 약 50년 후 또 다른 혁명적 사상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지성을 권자에서 몰아냈다. 그의 정신역동이론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알 가능성을 두 가지 이유에서 차단. 하나는 무의식을 직접 조사할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변하는 역동적 상태를 고정된 상태에서 관찰할 수 없기 때문. 로벨 리가 연구한 양자론의 방정식처럼, 시스템 밖에서 중립적인 관찰자나 관찰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시스템 밖에서는 그럴 자리도 없고, 완벽하게 정확하고 지속 가능한 고정점도 없기 때문.
<변화에 관한 통계>
1907년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가 생산. 이로부터 거의 100년 후인 215년 생산된 플라스틱은 3억 8,100만 톤. 이는 전 세계 인구 2/3의 몸무게와 비슷한 수치.
2001년 영국 어린이 중 거의 절반이 상상 속 친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현재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내는 어린이 비율은 17%. 연구자들은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과 콘텐츠 다운로드가 원인이라고 밝힘.
최초의 조어들은 10만 년 전에 출현. 2019년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6,912개.
사람의 머리 크기가 전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출생 직후 33%이지만, 성인이 되면 12%로 줄어든다.
1800년에는 전 세계의 15세 이상 인구 중 12%만이 읽을 수 있었다. 2016년 이 수치는 86%로 늘었다.
상업 비행 100만 건당 치명적 항공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70년 6.5명, 1995년 3.4명이었지만, 2017년에는 고작 0.27명.
천연두는 유일하게 종식된 질병. 1949년 전 세계 발병 건수가 63만 2,000건이었지만, 1979년 이후로 감염은 보고되지 않았다.
정신 건강 장애를 앓는 인구 비율 순위에서 호주가 18% 이상으로 1위. 2위는 이란, 3위는 그린란드. 이 순위는 1990년에 기록이 시작된 이후 거의 변동이 없다.
<변화에 관한 생각들>
가장 급진적인 혁명은 혁명이 끝난 다음날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
논쟁이나 토론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진보여야 한다 (칼 포퍼)
인간은 저절로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대로 되지 못한다. 변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게오르크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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