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행복한지도 모른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보다 목적에 집중한다면, 즉 인생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 가는 것에 집중한다면 말이다.
<사유, 완벽한 행복을 위한 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삶의 목적은 행복이었다. 그런데 벤담의 행복이 쾌락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은 헤도네(그리스어로 쾌락)가 아닌 에우다이모니아이다. 직역하자면 ‘인간의 번영’이다. 고통을 최소화하고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과 무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은 어떠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이 상태를 의미한다면 평생 잠만 자는 사람도 행복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행복은 구체적인 활동을 가리키며, 아리스토렐레스는 ‘완벽한 행복이란 사유하는 활동의 일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동물적 육체가 우리를 소처럼 우둔하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사유하는 소가 되어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행복할까?>
19세기 작가이자 성직자 조지 워싱턴 버냅의 격언. “인생에서 행복의 필수 조건은 해야 할 것이 있고, 사랑할 것이 있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 상태다.”
사실 전형적인 은태 계획과 점점 높아지고 있는 우울증 비율을 연관 짓는 연구는 하나하나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우울증은 물론이고,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 정서적 의존증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의사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는 노년과 인간의 유한성에 관한 연구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집필하며 노인과 말기 환자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가완디는 당장 눈앞에 죽음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신적, 신체적 요소가 행복과 웰빙에 도움을 주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가완디는 찾아올 손자가 있는 것, 사회관계나 물질적 안락함을 즐기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큰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적에 대한 생각>
목적은 생물학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역사는 목적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조지 쿠블러)
작은 일에는 열정을 찾을 수 없다. 자기 능력에 못 미치는 삶에 안주하면 안된다. (넬슨 만델라)
인간은 반드시 될 수 있는 모습대로 반드시 된다. (에이브러햄 매슬로)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진정한 행복은 자기만족에 빠졌을 때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에 충실했을 때 얻어진다. (헬렌 켈러)
죽음을 두려워 말고, 이루지 못한 삶을 두려워하라. (나탈리 배비트)
삶의 목적은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로버트 번)
자라서 진짜 자신의 모습대로 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E E 커밍스)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려면 장기 목표와 위대한 저항이 필요하다. 이 저항은 대중의 저항보다 위대할 수 있다. (알프레드 리처드 오리지)
인간은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오르지만, 예술가는 작품이 그곳에 없기 때문에 만든다. (칼 안드레)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
자기반성이나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욕망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특징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확신 없이 길을 떠나는 것, 답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탐색하는 것, 길을 잃으면서도 계속 여행하는 것, 지식과 생각의 틀을 습득하고 넓히고 시험하는 것, 개인의 해방에 이르는 것,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몸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면 두뇌가 강력한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눈앞의 난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즉 두뇌가 우리 몸을 투쟁-도피 모드로 바꾼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감각과 집중력은 날카로워진다. “레이저처럼 날카로워져서 당신은 ‘특별한 지점’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 들어서면 일상의 고민이 사라지고 주변의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심장 박동이 당신의 귓전에 울려 퍼진다. 시야와 집중력이 바늘 끝처럼 정확해진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완전한 몰입’을 경험한다.
추구의 행위가 갈수록 강해지는 것은 고통과 투쟁을 무릅쓴 결과가 아니라 바로 그 고통과 투쟁으로 인한 결과다.
고생하지 않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은 고된 등산 후에 주변을 바라볼 때와 전혀 다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정이다. 정신적?육체적 용기를 발휘하여 고난을 이겨내는 여정이 없으면, 산꼭대기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
삶에 궁극적 의미란 없다. 하지만 삶을 목적으로 채울 수는 있다. 그리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살아야 한다면,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카뮈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던 1942년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이런 결론을 내린다.
“높은 곳을 향한 투쟁 그 자체로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한 시시포스를 상상해야 한다.”
<오직 내적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다>
인간의 삶에 목적이 있을까? 대답은 질문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만약 그 질문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이끌어주는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면, 단언컨대 대답은 확실한 부정이다. 인간이 자유로운 까닭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그럴 수 없음이 명백하지 않은가. 오히려 각자 삶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고,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롭다.
만약 질문의 취지가 ‘인간이 충만한 삶을 영위하려면 목적이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라면,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경험적 연구가 있다.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는 <행복의 함정>에서 이 주제와 관련된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를 종합한 끝에 인간의 장기적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크게 7가지라고 결론지었다. 7가지 요인은 가족관계, 재정상황, 직업, 공동체와 교우관계, 건강, 개인의 가치관(인생철학)이다.
7대 요인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1) 내적 요인, 즉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 있는 요소(개인적 가치), 2) 외적/관계적 요인(가족, 공동체, 친구, 개인의 자유), 3) 외적/물질적 요인, 즉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요소에 좌우되는 요인(재산, 직장, 건강)이 그것이다.
어떤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판단, 동기, 욕망, 혐오 등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스스로 하는 일이다. 한편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건강, 재산, 명예, 출세처럼 우리 의지와 직접 상관없는 일이다.
행복의 비결은 첫 번째 범주, 즉 우리가 좌우할 수 잇는 일에 승부를 거는 한편 두 번째 범주, 즉 우리가 좌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평정심을 기르는 것이다. 물론 평정심은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동시에, 때로는 뜻대로 되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까지 되어 있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스토아주의자의 목표는 가족, 친구, 공동체와 원만한 관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만한 관계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된다.
목표를 내면화한 덕분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범주로 옮겨졌고, 결과적으로 행복에 있어서 개인의 행위주체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우리는 많은 재산과 경력, 건강을 바라는 대신, 자산을 관리하고 업무를 잘 해내며 건강을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자신을 단련시킨다. 이렇게 목표를 외부에서 내면으로 옮기면,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위주체성이 강화된다.
인간에게 의미 있는 자유는 오직 내적 자유뿐이고 이런 자유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위해서 사회적 번영과 더불어 정치적 자유도 극대화되기를 희망하지만, 결국 온전히 자유로운 영역은 우리 각자의 판단과 가치의 영역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토아주의자에게 의미 있는 인생이란 행위주체성을 극대화해서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데 크게 기여하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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