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8. 08 나무생각
01. 인간은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한다.
19세기의 악덕 : ①권위주의(어린이, 여성, 노동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의 요구), ②야만적 착취(노예무역), ③성과 인종차별, ④탐욕과 축재, ⑤자기중심적 이기주의
19세기 악덕의 변화
1) 권위주의 : 먼저, 공개적 권위와 익명의 권위를 구분할 필요. 공개적 권위란 "그렇게 하지 마라.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도 알쟎니". 익명의 권위란 "엄마는 네가 그걸 하고 싶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단다" 엄마의 목소리 톤에서 엄마가 무엇을 원하고 원치 않는지를 알아차리는 것. 19세기에는 공개적 권위에 대해 저항했고, 대결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 그러나 익명의 권위는 난공불락의 철벽이며 배후에서 작용하기에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게 함. 오늘날 익명의 권위는 시장이요, 여론이며, 건강한 인간 이성. 남들과 다르지 않고 싶다는 소망, 무리에서 벗어나다가는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모두가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제로 현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착각.
2) 착취 : 오늘날은 자기 자신을 착취. 자기 밖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이용. 사물의 생산이라는 한 가지 전능한 목표만이 존재하며 우리가 입으로 고백하는 목표, 즉 인격의 완벽한 발달, 인간의 완벽한 탄생과 완벽한 성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음.
3) 불평등 : 오늘날은 평등을 동일하다는 의미로 이해. 같다는 것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임.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등한 권리를 원한다면 타인들과 동일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요가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타인과 같아짐. 인간은 자신을, 자신의 확신,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자기 고유의 것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타인들과 구분되지 않을 때 자신과 일치한다고 느낌. 타인들과 순응하지 못하면 끔찍한 고독이 닥칠 것이며 집단에서 추방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 느낌.
4) 탐욕 : 이전 세대에게 대단한 덕목이었던 축재와 절약을 고스란히 오늘날 강제로 실행한다면 경제는 무너짐. 오늘날 인간은 돈을 지출하고 소비하고 구매를 하고 사용해야 함.
5) 자기중심주의 : 과거 “내 집이 내 성이다”라는 악덕은 사생활을 누릴 수 없는 무능력(반드시 타인과 함꼐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바뀜. 우리는 이것을 ‘소속감’, ‘팀워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실상은 자신과 혼자 있을 수 없는 무능력, 자신이나 이웃의 은둔을 참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 19세기 중산층, 상류층이 자기중심주의, 개인주의라 부르던 행동과 정반대의 행동.
02.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인간은 사물이 아니고 누구에게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을 때, 현대 산업사회처럼 인간 본성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시대는 없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술력을 통해 고무된 인간은 전 에너지를 물건의 생산과 소비에 집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를 조작하고 그 기계에 조작당하는 사물로 느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그만큼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인간은 인간 본질을 생계비 벌이에 투자하고, 대부분 인위적으로 조장된 쉼 없이 증가하는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힘을 이용한다. 그러느라 자신이 인간임을 망각할 위험에 처한다. 따라서 인간 본질을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을 새롭게 고민하기가 지금보다 어려운 때가 없었으며, 지금보다 시급한 때도 없었다.
03. 자유는 진짜 인격의 실현이다.
가장 자유를 잘 표현한 것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자기 발의 족쇄를 끊고 아무리 힘들어도 참으며 동굴의 가파른 벽을 올라 마침내 정의의 태양을 보겠다는 노력이 없다면 자유가 존재할까? 태양을 본 철학자가 동굴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그들이 본 것을 환영이라고, 진정한 자유는 진리의 인식에서 나온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자유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피곤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염세주의자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피곤할수록, 절망에 젖어 있을수록, 염세적일수록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 열정적인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퇴보에 빠지지 않고 전진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타인의 가장 깊은 내면에 숨은 본질은 그의 침묵 탓에 알 수가 없지만 이런 침묵에는 부정적 면과 긍정적 면이 존재. 그 뒤로 몸을 숨기는 데 일조한다는 부정적인 면, 타인이 자기 자아의 복사품이어서는 안 될뿐더러 실제로 내가 알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우리가 방해하지 말아야 할 사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타인의 소위 ‘불투명성’에도 불구 그의 정체성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까지 이해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 존재. 아이의 첫 움직임은 비록 자기중심적일망정 분명 타인을 향한 움직임. 생의 첫 순간부터 일종의 공존이 존재하는 것. 이런 공존을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 실제의 공동체를 이루려면 이 모든 장애, 불투명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아를 넘어 타인의 자아를 이해해야 함.
04.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강하다.
활동은 어떤 것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감정의 영역은 물론이고 지적, 감각적, 의지의 영역에서도 이루어지는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의미.
우리는 자발성을 갖춘 혹은 갖추었던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사고, 감정, 행동은 자동인형의 표현이 아니라 자아의 표현. 그들의 대부분은 예술가. 그런데 예술가의 처지는 매우 곤란. 성공한 예술가의 개성이나 자발성만 존중받기 때문. 작품을 파는 데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미친놈 아니면 신경증 환자 취급. 혁명가와 비슷.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인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혁명가는 범죄자.
어떤 것으로부터의 해방인 소극적 자유만 있다면 인간은 고립된 존재. 불신에 차서 연약하고 항상 위태로운 자아를 가진 채 세상과 멀리 떨어진 존재가 됨. 자발적 활동은 자아의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의식을 하건 안하건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으며, 진짜 자기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활동 그 자체. 우리는 구체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하는 대신 상품을 팔겠다는 추상적 목표를 위해 생산. 돈만 주면 다 소유가 된다고 여김. 개인의 특성과 노력의 성공 또한 돈과 명성, 권력을 위해 팔 수 있는 상품이라 생각. 그 결과 무게중심이 창의적 활동이 주는 순간적 만족에서 완제품의 가치로 옮겨감. 인간은 진정으로 행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만족을 잃고서 잡았다고 믿는 순간 실망을 안겨주는 환영과 성공이라는 이름의 가짜 행복의 뒤를 쫓아다닌다.
교육과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적대적 충동의 제거. 아이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위협과 처벌에서부터 아이에게 혼란을 유발하여 적대감을 포기하게 만드는 매수나 설명 같은 기묘한 방법이 동원. 그러면 아이는 더는 자기 감정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다가 결국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을 아예 포기. 또 한편 교육은 아주 일찍부터 자기의 것이 아닌 감정을 느끼도록 가르침. 특히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무비판적으로 친절하며 미소를 지으라고 가르친다. 그래도 미처 교육이 다 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사회적 압력이 해결. 우리의 교육은 아이의 독자적 사고를 막고 아이의 머리에 완성된 생각을 심는 것을 목표.
인간 내면의 강인함은 자신에 대한 진리를 아는지 여부에 크게 좌우. 자신에 대한 환상은 지팡이와 같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은 되지만 그를 더 약하게 만들 뿐.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온전하게 완성할수록, ‘자신을 꿰뚫어 볼수록’ 더 강해진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인간의 힘과 행복을 목표로 하는 기본 계명.
현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원하는 게 마땅한 것만 원한다.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현대인은 모두가 자신의 목표라고 우기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모험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지만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고 자기 자신의 목표를 정하는 데에는 심각한 공포를 느낀다. 혼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증거라는 착각속에 빠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인간은 타인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느끼고 원하며, 그러느라 자유로운 인간의 가짜 확신의 근거가 될 자아를 상실. 자아의 상실은 타인에 순응해야 할 필요를 더욱 키웠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유발.
오늘날 인간은 삶에 굶주려 있다 하지만 순응주의자이기에 삶을 자발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자극과 스릴의 형태를 띤 대용품을 움켜잡는다. 결국 술과 스포츠가 주는 스릴이나 스크린의 허구적 인물을 통해 경험.
05.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시장에 내다 판다.
인간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한다면, 스스로 결심을 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관습을 지키거나 의무감에서 혹은 아주 단순히 압박감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깜짝 놀랄 것이다. 개인의 결정의 자유를 존재의 초석으로 삼았다던 사회에서 독자적 결정이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타난 형국.인간의 자긍심은 그의 성공에 달려 있다. 그가 이윤을 남기고 자신을 판매할 수 있느냐, 경력의 출발 시점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 한마디로 그가 ‘성공했느냐’에 달려 있다. 그의 몸과 정신과 영혼은 그의 자산이며 그의 삶의 과제는 이엇을 유익하게 투자하여 이익을 거두는 것. 친절과 예의, 관용 같은 인간적 특성들은 상품이 되며, 인력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을 받게 해주는 ‘인성 꾸러미’의 차변 항목이 된다.
06. 현대인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우리 사회의 성인들은 사실 믿을 수 없을 정도록 무기력. 자신이 약한 것이 다 자기 책임이라고 믿게 될수록 무기력이 더욱 심한 압박. 그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힘이 전혀 없다. 어떤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를 출생의 우연이 결정.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본질적으로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는 요인들이 결정. 심지어 파트너를 선택하는 자유조차 경제적, 사회적 제약을 받는다. 기분, 의견, 취향은 주입된 것이며, 어떤 일탈을 저지르면 더 심한 고립으로 죗값을 치러야 함.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자신 및 사회의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결정적인 힘과 상황을 올바르게 통찰하는 것. 때문에 무지와 인식의 결핍은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고 무력감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온갖 망상을 총동원하여 절망적으로 저항해봤자 개인은 결국 내면저긍로 그 무기력을 인정하게 됨.
07. 진짜와 허울의 차이를 보다.
우리가 나무를 보면서 그것을 완벽하게 인식한다면, 나무의 완벽한 현실, 그것의 본질을 보고 우리의 온 인격으로 응답한다면 우리의 경험은 나무를 그릴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된다. 경험한 것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기술적 재주를 갖추었는지 여부는 다른 문제지만 화가가 자신의 특수한 대상을 우선 완벽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게 응답하지 않는다면 절대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없다.
나무는 추상의 대변인에 불과. 반대로 완벽한 인식의 경우 추상은 없다. 나무는 완벽한 구체성과 유일성을 간직. 나와 인연을 맺고 내가 보고 응답하는 나무는 한 그루밖에 없으며 나의 고유 창작품이 됨.
다른 사람을 사실대로 본다는 것은 그를 투영 없이,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본다는 뜻이며, 이는 투영과 왜곡을 낳는 자기 내부의 신경증적 악덕을 극복한다는 의미.
(진짜 삶의) 두 번째 조건은 집중력. 늘 분주하지만 집중하지 못한다. 어떤 일을 하면서도 이미 다음 것을, 지금 하는 일을 끝마칠 그 순간을 생각.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에 산다. 하지만 실제 경험으서의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만이 존재.
자신의 자아를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를 자기 세계의 중심으로, 자기 행동의 장본인으로 경험. 내가 말하는 독창성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기원을 두는 경험.
(진짜 삶의) 또 한 가지 조건은 회피하지 않고 양극성에서 나오는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는 능력. 갈등은 해로운 것이기에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류. 갈등은 감탄의 원천, 자신의 힘과 흔히 성격이라 부르는 것을 개발하는 원천. 계획을 세우고 예방 조치를 취하지만 의지와 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우연에 지배. 이런 갈등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심오하게 경험하며 이성뿐 아니라 감정으로도 수용해야 함
평등이란 우리 모두가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인간적 존엄성을 가진다는 의미. 우리의 차이를 개발할 권리가 있지만, 그 차이를 타인을 착취하는 데 이용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뜻. 하지만 오늘날 평등은 무리와 달라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동일성. 차이가 평등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일반적 공포가 지배.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 태어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 자신의 사고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관련해서도 진리 말고는 그 무엇도 추구하지 않겠다는 용기는 믿음을 바탕으로 해야 가능. 사고와 감정에서 자기 경험의 현실성을 확신하고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about Humanit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러 심리학 인문 by 알프레드 아들러 (0) | 2020.08.28 |
---|---|
뉴스의 시대 by 알랭드보통 (0) | 2020.06.24 |
인간의 위대한 여정 by 배철현 (0) | 2020.02.02 |
인간이해 by 알프레드 아들러 (0) | 2019.12.14 |
어떻게 살 것인가 by 유시민 (0) | 2019.1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