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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Humanities

시지프 신화 by 알베르 카뮈

by hoyony 2017. 2. 18.

The Myth of Sisyphus



민음사
2016.06.17
Albert Camus
Le Mythe de Sisyphe


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렸다. 그런데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다시 굴러 떨어지곤 했다. 신들은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이유 있는 생각이었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시지프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신중한 자였다. 그러나 또 다른 설화에 의하면 그의 직업은 강도였다고 전해진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그가 지옥에서 무용한 노동을 하는 벌을 받은 원인에 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우리는 이미 시지프가 부조리한 영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의 열정뿐 아니라 그의 고뇌로 인해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일에 전 존재를 바쳐야 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이것이 이 땅에 대한 정열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다. 지옥에서의 시지프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신화란 상상력으로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으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에서는 다만 거대한 돌을 들어 산비탈로 굴려 올리기를 수백 번이나 되풀이하느라고 잔뜩 긴장해 있는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 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의 온통 인간적인 확실성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나 측량할 수 있을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 때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아래 세계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상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그토록 돌덩이에 바싹 닿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이미 돌 그 자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 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는 그 생애의 그날그날을 똑같은 작업을 하며 사는데 그 운명도 시지프에 못지않게 부조리하다. 그러나 운명은 오직 의식이 깨어 있는 드문 순간들에만 비극적이다. 신들 중에서도 프롤레타리아요, 무력하고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넓이를 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에게 고뇌를 안겨 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어떤 날들에는 시지프가 고통스러워하면서 산을 내려오지만 그는 또한 기쁨 속에서 내려올 수도 있다. 이것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는 또한 그의 바위를 향해 되돌아가는 시지프를 상상해본다. 그것은 고통으로 시작되었다. 대지의 영상이 너무나도 기억에 생생할 때, 행복의 부름이 너무나도 강렬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 슬픔이 고개를 쳐들게 마련이니 그것은 바위의 승리요, 바위 그 자체다. 엄청난 비탄은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무겁다.

시지프의 소리 없는 기쁨은 송두리째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은 침묵한다. 문득 본연의 침묵으로 되돌아간 우주 안에서 경이에 찬 작은 목소리들이 대지로부터 무수히 솟아오른다. 은밀하고 무의식적인 부름이며 모든 얼굴의 초대인 그것들은 승리의 필연적인 이면이요, 대가다. 그림자 없는 햇빛이란 없기에 밤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부조리한 인간의 대답은 긍정이며 그의 노력에도 끝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운명은 있었도 인간을 능가하는 운명이란 없다. 혹 있다면 오직 그가 숙명이기에 경멸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단 한 가지 운명이 있을 뿐이다. 그 외의 것에 관한 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이 그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이 미묘한 순간에 시지프는 자기의 바위를 향하여 돌아가면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 행위들의 연속을 응시한다. 이 행위들의 연속이 곧 자신에 의해 창조되고 자신의 기억의 시선 속에서 통일되고 머지않아 죽음에 의해 봉인될 그의 운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적인 모든 것은 완전히 인간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보기를 원하는 장님 그리고 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장님인 시지프는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바위는 또다시 굴러떨어진다.

이제 나는 시지프를 산 아래에 남겨 둔다! 우리는 항상 그의 짐의 무게를 다시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 올리는 고귀한 성실성을 가르친다. 이 역시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 불모의 것으로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이 돌의 입자 하나하나, 어둠 가득한 이 산의 광물적 광체 하나하나가 그것 자체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 보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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