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urs de la méhode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창
2012
Descartes
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
<제1부> 학문에 관한 고찰
양식(bon sens)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것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모든 일에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상으로 양식을 갖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 양식 : 일상적으로 쓰이는 의미는 사려깊게 행동하는 사람이 가진 상식이란 뜻이다. 이 말을 철학적 의미로 사용한 사람은 데카르트인데, 그에 의하면 양식은 모든 사람이 갖는 것이고, 이것에 의해 사물의 진위가 식별된다고 한다. 거기에서 이 양식을 올바르게 기르는 것이 중요하게 되는데, 데카르트는 그 방식을 그의 철학에서 언급하고 있다. 또 단지 인식의 문제에 관해서뿐 아니라, 생활상에서도 도리에 맞는 판단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양식이라고 그는 쓰고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되는 양식이란, 다시 말하자면 바로 이성이며, 또 이성적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통용되고 있는 이 말의 의미이다(양식 [良識, Bon Sens]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우리의 의견이 서로 달라 갖가지인 것은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이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생각해 나아가며, 또 살피는 바가 동일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릇 좋은 정신을 가지는 것으로는 충분하기 못하고, 정신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위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가장 큰 덕행을 할 수도 있고, 가장 큰 악행을 할 수도 있다.
철학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것만을 말하련다. 즉, 철학은 오랜 세월에 거켜 가장 우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나, 논쟁의 여지가 없는,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직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나는 다름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해 나아가리라는 자부심은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에 관하여는 참된 의견이 하나 이상 있을 수 있을 터인데, 실제로는 갖가지 많은 의견이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학식 있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는 것을 ㅗㅂ고서 나는 참되어 보이기만 하는 모든 것은 거짓에 가까운 것이라고 여겼다.
다음으로 다른 학문들은 그 원리를 철학으로부터 빌려 오고 있는 까랅에 나는 그렇게도 든든치 못한 기초 위에는 견고한 것을 하나도 세울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그리고 그 학문들이 약속하는 명예나 이득은 그것들을 공부하도록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한 것이 못 되었다. 왜냐하면 다행히 나는 내 재산이 줄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학문을 직업으로 삼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있다고는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그릇된 학설들에 관하여는 나는 이미 그 정체를 잘 알고 있어서 연금술사의 약속에도, 점성술사의 예언에도, 마술사의 속임수에도, 또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떠들어대는 어느 누구의 계교나 허풍에도 더 이상 속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들의 감독을 받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자 나는 글공부를 아예 집어치웠다. 그리고 나 자신 속에서, 혹은 세계라고 하는 큰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학문 외에는 다른 어떤 학문도 찾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나는 여행하는 것과, 여러 곳의 궁정과 군대를 보는 것과, 갖가지 기질과 형편의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과, 갖가지 경험을 쌓는 것과, 운명이 나에게 몰아오는 사건들 속에서 나 자신을 시험해 보는 것과, 내가 부딪치는 일들로부터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ㅇ르까 하여 그것들에 대하여 반성하는 데에 청년 시절의 나머지를 보냈다.
이것은 학자가 서재에서 하는 추리보다는, 각자가 자기에게 중요한 그리고 판단을 잘못하면 곧 그 벌을 맏게 되는 일들에 관하여 하는 추리 속에서 더 많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자의 사색이란 아무 결과도 낳지 못하는 것이요, 또 그것이 상식에서 멀수록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가운데 머리를 짜내고 기교를 부려야 하는 까닭에 아마도 그만큼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밖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행동에 있어서 분명하게 보고,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기 위하여 참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부터 가려낼 줄 알았으면 하는 극도의 열의를 늘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기만 하는 동안, 나는 거기서 확신을 주는 것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또 전에 내가 철학자들의 갖가지 견해에서 본 바와 거의 같은 다양성을 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거기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우리에게는 아주 엉뚱하고 우습게 보이지만 다른 큰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시인되고 있는 것이 많이 있음을 보고, 그저 남들이 한다고 해서 혹은 습관 때문에 옳게 여겼던 것을 이제는 그 어느 것도 너무 굳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깨달은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우리들의 자연의 빛을 흐리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이성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게 하는 많은 미망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되어 갔다. 그러나 몇 해 동안 이와 같이 세상이라고 하는 책에서 공부하고 어느 정도의 경험을 쌓으려고 애쓰는 데 세월을 보낸 후, 나는 어느 날 또한 나 자신을 연구하기로, 또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선택함에 있어 내 정신의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다.
<제2부> 방법의 주요 규칙
우리는 어른이 되기 전에 모두 어린 아이였고, 또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들의 자연적 욕망과 교사들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두가지 것은 가끔 서로 어긋나는 것이었고, 그 어느 것이나 언제나 최선의 것을 알려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이성을 전저긍로 사용하고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이끌려 온 경우만큼 우리의 판단이 순수하고 확실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떤 도시의 집들이 그저 다른 모양으로 다시 짓고 그 가로를 좀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만 그 모든 집을 헐어 버리는 일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집을 헐고 다시 세우는 사람이 많고, 또 집이 쓰려지려 하거나 토대가 아주 든든하지 못할 때에는 집을 헐고 다시 세우지 않을 수 없음도 사실이다. 이 예로 미루어 어떤 개인이 한 나라를 개혁하려 하여 그 나라의 기초 전부를 뜯어 고쳐 그 나라를 뒤집어엎고 다시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부당하다는 것, 학문의 체계를 개혁하거나 여러 학교에서 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운 질서를 개혁하려는 것도 부당하다는 것,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하여 받아들인 모든 견해에 관하여는 한번 그것들을 깨끗이 버린 다음 좀 더 좋은 견해를 채택하거나, 혹은 전과 같은 견해라도 이성의 규준에 비추어 바로잡은 후 다시 받아들이거나 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나는 낡은 토대 위에 집을 세운 경우보다도, 또 내가 어렸을 적에 배운 원리들이 참된 것인지 한 번도 음미해 보지 않고 의히하는 경우보다도 내 생활을 훨씬 더 잘 가누어 갈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내 계획은 나 자신의 생각을 개혁하고 전적으로 나에게 속하는 토지 위에 집을 세우려는 것을 넘어서 지나친 데 나아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나 자신의 계획도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대담한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다. 전에 받아들여 옳다고 믿게 된 모든 견해를 버린다는 결심만 하더라도 누구나 따를 만한 본이 못 된다.
<제3부> 이 방법에서 나오는 도덕의 규칙
그리고 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다시 짓기 시작함에 앞서 집을 헐고 건축 재료와 건축가를 맞추어 두고, 혹은 자신이 건축술을 배워 두고, 나아가 설계도를 면밀히 꾸며 두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일 이외에 다시 집을 짓는 동안 편히 지낼 만한 곳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성이 내 여러 판단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하고 있는 동안에도 행동에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에 있지 않도록, 또 이미 그때부터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임시로 하나의 도덕을 마련하였다.
첫째는 내 나라의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가 어렸을 적부터 배워 온 종교를 한결같이 지키며, 다른 모든 일에서는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총명한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보통 받아들이고 있는 가장 온건하고 가장 극단에서 먼 의견들을 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의견을 모두 검토해 보려고 하여 그것들이 아무 가치도 없다고 여기기 시작하고 있었으므로, 가장 총명한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제일 좋다고 믿은 것이다.
또 페르시아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 가운데도 우리 가운데 총명한 사람 못지않게 총명한 사람이 있을 터이지만, 내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따라 나를 규제하는 것이 제일 유익하리라 생각하였다. 또무엇이 참으로 그들의 의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보다 그들의 실제 행동을 주의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습속이 타락하여 자기가 믿는 바를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일을 믿는 생각의 작용과 자기가 믿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생각의 작용은 서로 다른 것이며, 이 양자는 각기 다른 하나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결같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많은 의견 가운데서 나는 온건한 것들만을 택하였따. 온건한 의견은 언제나 실행하기에 가장 편하고 참으로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모든 극단은 으례 좋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요, 또한 실수할 경우에도 극단적인 의견 중 하나를 택하고 나서 나중에 그 반대의 극단을 따라야 했음을 깨닫는 것보다는 올바른 길에서 덜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특히 자신의 자유를 조금이라도 제한하게 될 모든 약속을 극단적인 것으로 여겼다. 세상에는 항상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본 때문이요, 또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면, 내 판단을 더욱더 완전케 하려고 기약하고 있고, 그것들을 더욱 나쁜 것이 되게 하려고 하지는 않으므로, 만일 어떤 일을 한 때 옳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 될 때, 혹은 내가 그것을 옳은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될 때, 여전히 그것을 좋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 양식에 대하여 큰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둘째, 격률은 행동에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확고하고 가장 결연한 태도를 취하며, 또 아무리 의심스런 의견이라 하더라도 일단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면, 아주 확실한 것인 양 어디까지나 그것을 따르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는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들을 본받아야 한다. 그들은 우왕자왕하면서 더욱 미로에 빠져 들어서도 안 되고, 또 한 군데 머물러 있어서도 안된다. 처음 우연한 생각으로 택한 방향일지라도 신통치 않은 이유로 바꿀 것이 아니라, 줄곧 그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의 행동들은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우리의 능력이 가장 참된 의견들을 가려낼 수 없을 경우에는 그 중 하나를 취할 것을 결심하여야 한다.
그렇게 결심한 이유는 아주 참되고 확실한 것이었으므로 실생활에 관한 한 나중에 그것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오히려 가장 참되고 확실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떄 이후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때는 어떤 일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행하다가 나중에는 나쁜 것으로 여겨 행하지 않는, 약하고 동요하기 쉬운 사람들의 마음을 늘 괴롭히는 모든 후회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셋째 격률은 언제나 운명보다도 나를 이기며, 세계의 질서보다는 오히려 내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또 일반적으로 우리가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우리의 생각밖에 없으므로, 우리의 외부에 것들에 관해서 최선을 다한 후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 모든 일은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 믿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얻을 수 없을 조금도 바라지 않게 하고, 그리하여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하는 데는 이 격률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지는 그 본성상 오성이 어떤 식으로 가능한 것으로 보여 주는 것들만을 바라므로, 만일 외부에 있는 모든 선을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출생으로 말미암는 것으로 생각되는 선들을,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좋은 집안에 태어나지 못함으로써 얻지 못한다고 해도, 중국이나 멕시코의 왕국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섭섭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지금 다이아몬드만큼 잘 썩지 않는 물질로 된 몸을 가지거나 새처럼 날기 위하여 날개를 가지기를 원치 낳는 것처럼, 앓고 있으면서 그대로 건강하거나 옥중에 있으면서 그대로 자유롭기를 원하지 않을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모든 사물을 이러한 각도에서 보는 버릇을 가지게 되는 데는 오랜 훈련과 명상을 되풀이하는 것이 필요함을 나는 인정한다. 그리고 옛날에 운명의 지배를 벗어나 여러 가지 고통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신들과 더불어 행복을 겨룰 수 있었던 철학자들의 비밀도 주로 여기에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이 자기들에게 준 여러 가지 제한을 항상 헤아림으로써 자기의 생각밖에는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완전히 깨닫고 있으므로, 오직 이 한 가지 깨달음만으로 다른 사물들에 대한 애착을 전혀 가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생각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점에서 그들은 이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자연과 행운에서는 아무리 많은 혜택을 입고 있을지라도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절대로 이렇게 처리하지 못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부유하고, 더 힘있고, 더 자유롭다고, 생각할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의 일에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더 마음을 쓰는 아주 활동적인 위대한 국민들 속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편의를 하나도 잃지 않으면서 가장 먼 사막에서만큼 호젓하게 숨어서 살 수 있었다.
<제4부> 하나님 및 인간 영혼의 현존의 증명
나는 오래 전부터 실생활에서는, 매우 불확실한 것임을 알고 있는 의견들을 마치 의심할 것이 아닌 양 따르는 것이 가끔 필요함을 꺠닫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오로지 진리 탐구에 몰두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와 아주 반대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즉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절대로 거짓된 것으로 버린 후에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내 신념에 남지 않을지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때때로 감각이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감각이 마음속에 그려주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상정하려 하였다. 그리고 기하학의 가장 단순한 문제에 관해서도 추리를 잘못하여 여러 가지 오류 추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나도 다른 누구 못지않게 잘못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내가 전에 논증으로 보았던 모든 추리를 잘못된 것으로 버렸다. 그리고 끝으로 깨어있을 때에 가지는 모든 생각과 똑같은 것이 잠들고 있을 때에도 우리에게 나타나는데, 이때 참된 것은 하나도 없음을 생각하고 나는 여태껏 정신 속에 들어온 모든 것이 내 꿈의 환상보다 더 참되지 못하다고 가정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금방 그 뒤에, 그렇게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동안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하여, 회의론자들이 제아무리 터무니없는 상정들을 모두 합치더라도 흔들어 놓을 수 없음을 주목하고 나는 주저없이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다음에 내가 무엇인지 주의하고 검토하고, 또 내가 신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도대체 세계도 없으며, 내가 있는 장소도 숫제 없다고 가상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없다고 가상할 수는 없고, 오히려 이와 반대로 다른 것들의 진리성을 의심하려고 생각하는 바로 이 사실로부터 내가 있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고 아주 확실하게 귀결되며, 거꾸로 만일 내가 생각하기를 그치기만 하면, 설사 그때까지 상상해온 나머지 모든 것이 참이라 하더라도 내가 있다고 믿을 아무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나는 내가 하나의 실체요, 그 본질 내지 본성은 오직 생각하는 것이요, 또 존재하기 위하여 아무 장소도 필요 없고, 어떠한 물질적인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따라서 이 <나>, 즉 나를 나 되게 하는 정신은 신체와 전혀 다른 것이요, 또 신체보다 인식하기가 더 쉬우며, 설사 신체가 없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온전히 스스로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는 일반적으로 한 명제가 참되고 확실한 것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방금 참되고 확실함을 내가 아는 하나의 명제를 발견했으므로, 그 확실성이 무엇에서 성립하고 있는지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라는 명제에서 내가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확신시키는 것은 생각하기 위해서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아주 명석하게 본다고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나는 우리가 아주 명석하고 아주 판명하게 마음속에 품어 생각하는 것은 모두 참되다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뒤이어 내가 의심하고 있었음을 반성하고, 또 따라서 의심한다는 것보다는 인식한다는 것이 더 큰 완전성임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내 존재는 아주 완전한 것이 못 됨을 반성하고 나보다 더 완전한 어떤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을 어디로부터 배웠는가 찾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상 더 완전한 어떤 본성을 가진 존재로부터 온 것임을 명증적으로 알았다. 외부에 있는 많은 다른 것들, 가령 하늘, 땅, 빛, 열, 그 밖의 무수한 것들에 대해서 내가 가진 생각들이 나는 이 생각들속에 이것들을 나보다 우월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므로, 만일 이것들이 참되다고 하면, 이것들은 내 본성이 어떤 완전성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이 본성에 의존하는 것이요, 또 만일 이것들이 참되지 않다고 하면, 내가 이것들을 무로부터 얻었다, 즉 내가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내 속에 있다고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존재보다 더 완전한 존재의 관념에 대해서는 이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무로부터 얻는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더 완전한 것이 덜 완전한 것의 결과이고, 또 이것에 의존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서 무엇인가가 나온다는 것 못지않게 모순된 일이므로, 그것을 나 자신으로부터 얻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나보다 정말 더 완전한 그리고 자기 속에 내가 거기에 대해서 어떤 관념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완전성을 가지고있는 어떤 본성 즉, 한 마디로 하나님에 의하여 내 속에 주어졌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추가하여, 나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어떤 완전성들을 알고 있으므로, 나만이 현존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거기 의존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로부터 얻은, 더 완전한 다른 어떤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만일 유일한 존재요,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해 있고, 따라서 조금이나마 내가 완전한 존재로부터 분유(分有)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나 자신으로부터 얻고 있다고 하면, 이와 똑같은 이유에서 내게 없음을 내가 있고 있는 나머지 모든 것을 나에게서 얻을 수 있었을 것이요, 그리하여 나 자신이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전지전능한 존재요, 결국 내가 하나님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완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되겠기 때문이다.
나는 의심, 변화무쌍, 슬픔, 그밖의 이와 비슷한 것들은 나 자신이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임을 미루어 하나님 속에는 있을 수 없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나는 꿈을 꾸고 있으며, 내가 보거나 상상하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때의 관념들이 정녕 내 생각 속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성적 본성이 물체적 본성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내 속에서 아주 명석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합성은 의존성을 나타내는 것이요, 또 의존성은 분명히 하나의 결함이라는 것을 살피고서 나는 여기서 이 두 가지 본성으로 합성된 것이 하나님의 속성일 수는 없고, 따라서 하나님은 그런 것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세계 안에 어떤 물체, 아주 완전하지는 못한 어떤 지성들(지성적 존재자 즉, 천사나 인간) 혹은 다른 본성들(존재자들)이 있다고 하면, 그것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한순간도 하나님 없이 존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다음에 나는 다른 진리들을 찾으려 하여 기하학자들의 대상을 살펴보았는데, 나는 이 대상을 하나의 연속적인 물체, 즉 길이나 높이나 넓이나 깊이에서 무한정 연장되어 있는 공간으로서, 갖가지 모양과 크기를 가질 수 있는 갖가지 부분으로 나뉠 수 있고, 또 온갖 모양으로 움직여지거나 옮겨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누구나가 이 논증들에 대해서 인정하는 큰 확실성은 내가 바로 위에서 말한 규칙을 따라 그것들을 명증적으로 파악하는 데에서만 성립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또 그 논증들 속에는 그 대상의 현존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왜냐하면 가령 삼각형을 생각할 때, 그 세각의 합이 2직각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삼각형이 있다고 확신시켜 주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한 존재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관념으로 되돌아와서 음미해 볼 때, 그 관념속에는 마치 삼각형의 관념 속에 그 세각의 합이 2직각과 같다는 것과, 또 구체적 관념 속에 그 모든 부분이 그 중심으로부터 똑같은 거리에 있다고 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명증적으로 현존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또 따라서 이 완전한 존재인 하나님이 있다(est), 즉 현존한다(existe)는 것은 적어도 기하학의 어느 논증보다도 더 확실하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음을 아는 것이나 자기의 영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어렵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그들이 정신을 감각적 사물들보다 높이 끌어 올려 본 적이 없기 때문이요, 또 그들이 사물들을 고찰할 때에는 그저 상상하기만 하는 습관에 젖어 있으며, 상상이란 물질적인 것들에만 어울리는 사고방식이건만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러 학원(스콜라철학)에서 철학자들마저 "먼저 감각속에 있지 않았던 것은 아무것도 오성 속에 없다"라 하는 것을 격률로 삼고 있음을 미루어 명백하다.
결국 깨어있건 잠들어 있건 우리는 이성의 명증이 없으면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이성의 명증이라 말하고, 결코 상상의 명증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가령 태양을 아주 명석하게 본다 하더라도 우리가 보는 태양의 크기가 그대로 그 실체의 크기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또 우리는 사자의 머리가 산양의 몸뚱이에 붙어 있는 동물을 판명하게 상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키마이라고 하는 이러한 괴물이 세상에 있다고 결론지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성은 우리가 그렇게 보거나 상상하는 것을 참된 것이라고 일러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은 우리의 모든 관념이나 개념이 진리의 어떤 기반을 가지고 있을 것임을 분명히 일러 준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적으로 완전하고 전적으로 진실한 하나님이 그 관념들을 우리 속에 주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추리들은 잠들어 있는 동안은 결코 깨어 있는 동안만큼 명확하지도 못하고 온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을 때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의 상상이 생생하고 또렷한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해도, 이성은 또한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들이 모두 참된 것은 못 되며, 그래도 진리를 지닌 생각은 꿈속에서보다는 오히려 깨어 있을 때 틀림없이 얻게 된다고 일러준다.
<제5부> 자연학의 문제의 순서
인간이 그 재주로 많은 뼈, 근육, 신경, 동맥, 정맥 및 이 밖에 각 동물의 신체 속에 있는 다른 모든 부분에 비하면 아주 적은 재료만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갖가지 자동기계, 즉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가를 잘 알고, 또 이 신체가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졌으므로 사람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느 기계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질서가 잡혀 있고, 그 자체 속에서 더 훌륭한 운동을 하는 하나의 기계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위에서 말한 것이 조금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원숭이 혹은 이성이 없는 다른 어떤 동물의 기관과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는 기계가 있다고 하면, 그것들이 이 동물들과 아주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단이 우리에게 전혀 없으며, 한편 우리들의 신체를 닮고 또 사실상 가능한 한 우리들의 행동을 흉내 내는 기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진정한 인간일 수 없음을 아는 아주 확실한 두 가지 수단을 우리가 언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 두가지 수단의 첫째는 그것들이 우리가 다른 사람한테 우리의 생각을 알게 할 때처럼, 말을 사용하거나 또 말을 꾸며서 다른 신호를 사용하거나 하는 일을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기계가 말을 하도록, 심지어는 그 기관 속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물체적 작용을 따라 어떤 말을 하도록 만들어진 것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기계가, 사람이라면 아무리 우둔해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들을 갖가지로 배열해서 자기 앞에서 말해지는 모든 것의 의미에 응답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둘째는, 그 기계들이 많은 일을 우리들 누구 못지않게 혹은 아마도 더 잘 한다 할지라도 다른 어떤 일은 결코 할 수 없어서, 이런 일들을 통해서 그것들이 인식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기관들의 배치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보편적인 도구로서 모든 상황에 적절히 사용될 수 있지만, 이 기관들은 특수한 행동을 할 때마다 거기 필요한 어떤 특수한 배치가 있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의 이성이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생의 모든 상황 속에서 행동하기에 충분한 갖가지 배치를 한 기계 속에 모두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까치와 앵무세는 우리들처럼 말을 할 수 있으나, 우리들처럼 즉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들이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내면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사람은 귀머거리요 벙어리로 태어나서 남들처럼 말하는 데 쓰는 기관이 짐승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없을지라도 스스로 어떤 신호들을 생각해내는 것이 보통이요, 이 신호들을 통하여 자기와 늘 함께 있어서 자기의 언어를 배울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짐승들이 사람들보다 이성을 적게 가지고 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또한 이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 다음에 나는 이성적 정신을 논술하여, 그것이 내가 논한 다른 것들처럼 물질의 힘에서 끌어내어질 수는 결코 없고 특별히 창조된 것이 아닐수 없음을 밝혔다.
<제6부> 자연탐구를 전진시키는 데 필요한 것
나는 이토록 필요한 학문의 탐구에 내 생애를 바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단명이나 실험의 부족에 의하여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런 학문의 발견에 이르게 해주리라고 여겨지는 길을 만났다. 그리고 이 두가지 방해에 대하여는, 내가 발견한 것이 극히 적을지라도 그 전부를 충실하게 대중에게 알리고, 우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쓰게 하고, 각자 그들의 취미와 능력을 따라, 필요한 실험에 협력하게 하고, 그리고는 그들이 배우고 얻는 모든 것을 대중에게 알리도록 권하여, 뒤에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앞선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데서 시작하게 하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애와 업적을 합침으로써 우리들 각자가 따로따로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가는 것이 제일 좋은 대책이라고 나는 판단하였다.
또 실험에 관하여는 우리의 지식이 진전할수록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때달았다. 무릇 처음에는 그 자체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고, 또 우리가 조금만 살펴보면 반드시 알게 되는 실험들을 이용하는 것이 그보다 더 드물고 까다로운 실험들을 찾는 것보다 낫다. 이러한 드문 실험들은 우리가 가장 흔한 일들의 원인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가끔 우리를 속이며, 또 그것들이 의존하는 조건들이 거의 언제나 아주 특수하고 세밀하여 파악하기가 아주 힘드니 말이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 내가 따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나는 세계 안에 있는 혹은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들 즉 제1원인들을 일반적으로 찾으려 하였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만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만을 고찰하며 또 그 원리들을 우리의 마음속에 본래부터 있는 진리의 어떤 씨앗으로부터만 끌어내었다.
이것 다음에, 나는 이 원인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최초의 그리고 가장 정상적인 결과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이 일을 통해 나는 하늘, 별, 지구 그리고 지구 위에 있는 물, 공기, 불, 광물 및 모든 것 중 가장 흔하고 가장 단순하여 가장 알기 쉬운 다른 것들을 발견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내가 좀더 특수한 것들로 내려가고자 했을 때 너무 갖가지 것이 내 앞에 나타났으므로 나는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또 많은 특수한 실험을 해보지 않는다면 지상에 있는 물체들의 형상들 즉 종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지상에 있는 무한히 많은 다른 물체들로부터 가려내는 것이란 인간의 정신으로는 불가능하며 또한 따라서 그것들을 우리가 이용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이것 다음에는 전에 내 감각에 나타난 일이 있는 모든 대상으로 내 정신을 돌이켜 다시 훑어보았는데, 내가 발견한 여러 원리를 가지고서 충분히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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