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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Humanities

폭정 by 티머시 스나이더

by hoyony 2018. 11. 8.

On Tyranny : Twenty Lessons from the Twentieth Century

2017.04.20, 열린책들
Timothy Snyder

1. 미리 복종하지 말라

권위주의는 권력의 대부분을 거저 얻는다.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개인들은, 억압적인 벙부가 무엇을 원할지 미리 생각한 다음, 요구가 없어도 자신을 내어준다.
이런 식으로 순응하는 시민은 권력자에게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2. 제도를 보호하라

우리가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제도이다.
제도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제도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그 제도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우리의 제도>가 어떻다는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
그중 무엇이든 처음부터 보호받지 못하면, 제도는 하나씩 무너져 내린다.
그러므로 법정이든, 언론이든, 법이든, 노동조합이든 보살필 제도를 하나 선택하라.
그리고 그 편에 서라.

우리는 제도가 가장 직접적인 공격에 직면해서도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지킬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히틀러와 나치가 정부를 수립한 이후 일부 독일 유대인들도 이와 같은 오판을 했다.

제도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통치자들이 바로 그 제도를 바꾸거나 파괴할 수는 없으리라고 추정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심지어 그들이 제도를 바꾸고 파괴하겠다고 공언했을 때조차 사람들은 그런 오판을 저질렀다. 혁명가들은 때때로 여러 제도를 단번에 파괴하려고 한다. 러시아의 볼세비키가 바로 이런 방식을 취했다. 때때로 제도는 그 생명력과 기능을 빼앗기고 껍데기만 남기도 한다. 그 결과 제도는 새로운 질서에 저항하기보다 그것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것이 바로 나치가 획일화라고 부른 것이다. 나치가 내세우는 새로운 질서가 공고해지기전까지는 1년이 채 안 걸렸다.

 

3. 일당 국가를 조심하라

국가를 개조하고 경쟁자들을 억압한 당들이 처음부터 전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역사적 계기를 이용하여 반대파의 정치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다당제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적 선거의 규칙을 수호하라.
할 수만 있으면 지방 선거와 중앙 선거에서 투표하라.
공직에 입후보할 것을 고려해 보라.

 

4. 세상의 얼굴에 책임을 져라

1978년, 반체제 사상가 바츨라프 하벨이 <무력한 자들의 권력>이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체제의 목적과 이데올로기를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사람들을 억압하는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가게 유리창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글귀를 붙여둔 한 채소 장수를 예를 들었다.

우리는 채소 장수가 구호를 내건 의도가 구호의 실제 의미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구호의 실제 의미는 매우 선명하며 일반적으로 잘 이해된다. 우리가 그 코드에 매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채소 장수는 사실상 그의 진심이 무엇이건 간에 정권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신의 충성을 선언한 것이다. 즉 미리 정해져 있는 의례를 받아들임으로써, 겉모습을 현실로 받아들임으로써, 주어진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게임이 계속 지속될 수 있게 했고, 무엇보다도 일단 그 게임이 존재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5. 직업윤리를 명심하라

정치 지도자들이 부정적인 본보기가 될 때, 직업적 책무를 다하는 것은 중요해진다.
직업적 책무를 다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진다.
법률가 없이 법치 국가를 파괴하거나, 판사 없이 보여 주기 식 재판을 진행하기는 어렵다.
어떤 권위주의자들에게는 복종하는 공무원이 필요하고,
강제 수용소 소장들에게는 값싼 노동력에 관심이 있는 사업가가 필요하다.

재판 없는 처형은 없다는 규범을 법률가들이 따랐다면, 동의 없는 수술은 없다는 규정을 의사들이 받아들였다면, 노예 노동 금지를 기업가들이 지지했다면, 살인과 관련된 서류 작업의 처리를 관료들이 거부했다면, 나치 정권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잔혹 행위를 실행에 옮기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일개 개인과 정부가 윤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직업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한다. 직업의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공동의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으로, 언제나 지켜야 할 규범과 규칙을 지닌 집단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은 자신감과 함께 일종의 권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말을 듣는 바로 그 순간, 직업윤리는 우리에게 따라야 할 지침을 제공한다. 그러면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6. 준군사 조직을 경계하라

체제에 반대하는 자들이 제복을 입고 총으로 무창한 채 횃불과 지도자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면,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이다.
지도자를 추종하는 준군사 조직이 국가의 경찰이나 군대와 뒤섞여 하나가 되면,
종말은 이미 온 것이다.

 

7. 무장을 해야 한다면 깊이 생각하라.

공무 집행을 위해 무기를 든다면, 신이 축복하고 지켜 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악폐에는 어느 날 자신이 비정상적인 일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경찰들과 군인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명심하라.
<안 됩니다>라고 말할 준비를 하라.

 

8. 앞장서라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남들을 따라가기는 쉽다.
다르게 행동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면 불펴한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이 없다면 자유도 없다.
로자 파스크를 기억하라.
당신이 모범을 보이는 순간, 현상 유지의 마법은 깨진다.
그 뒤를 다른 이들이 따를 것이다.

 

9. 어법에 공을 들여라

다른 사람들이 쓰는 표현을 피하라.
누구나 하는 말을 그저 전달할 뿐이더라도 자신만의 화법을 생각해 내라.
인터넷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라.
책을 읽어라.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은 텔레비전에서 상투적인 문구를 쏟아낸다. 심지어 진부한 문구를 되풀이하는 걸 반대하는 자들도 그렇게 한다. 텔레비전은 이미지를 전달함으로써 정치적 언어에 도전한다고 주장하지만, 영상 프레임의 연속은 선명한 사고를 방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일어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는 뉴스는 각각 다음 뉴스로 대체될 때까지만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이어 파도에 부딪치지만 결코 대양을 보지 못한다. 사건들의 내막과 의미를 명확히 하려면 낱말과 개념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각적 자극에 도취되면 이것들은 우리를 빗겨간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것은 때때로 그림이 아니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집단적 혼수상태를 정상적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서서히 그러한 혼수상태에 빠졌다.

 

10. 진실을 믿어라

사실을 포기하는 것은 곧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라면, 누구도 권력을 비판할 수 없다.
비판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진실이 나리라면, 모든 것은 쇼에 불과하다.
가장 눈이 부신 쇼에 갑부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듣고 싶은 말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다를 수 있음을 부정할 때, 우리는 폭정에 굴복하게 된다. 현실을 부정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개인의 종말이다. 또한 개인주의에 의존하는 정치 체제의 몰락이다.

 

11. 직접 조사하라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하라
긴 기사를 더 많이 읽어라.
인쇄 매체를 구독해 탐사 저널리즘을 지원하라.
인터넷에 있는 것들 중 일부는 우리에게해롭다는 걸 인식하라.
선전 활동의 실체를 밝히는 웹 사이트에서 정보를 습득하라.
다른 사람과 나눈 이야기에 책임을 져라.

 

12. 시선을 마주하고 작은 대화를 나누어라.

단순히 예의 바르게 처신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는 한 사회의 시민이요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는 과정의 일부다.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는 과정의 일부다.
또한 당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교류하고, 사회적 장벽을 허물며, 누구를 신뢰하고 신뢰하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방법이기도 하다.
비난의 분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 일상의 정신적 풍경이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고 싶을 것이다.

가장 위험했던 시기에 탈출해서 살아남은 자들은 대개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오래 친구를 갖는 것은 최후의 보루를 구축하는 정치적 행위다.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은 변화를 향한 첫걸음이다.

 

13. 몸의 정치를 실천하다.

권력은 우리의 몸이 의자에 파묻혀 나약해지기를, 우리의 감정이 스크린 속에서 허비되기를 원한다.
밖으로 나가라.
당신의 몸을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함께 전진하라.

저항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한계를 넘어야 한다. 첫째, 변화의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둘째, 우리는 홈그라운드를 떠나 이전에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항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조직될 수도 있지만, 결국 거리에서 결실을 맺지 않는 어떤 항의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자 하는 선택은 사적 영역의 유지가 가능한가에 달려 있다. 우리를 드러내 보일 때와 드러내지 않을 때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14. 사생활을 지켜라.

비열한 통치자일수록 우리를 마음대로 다루기 위해 그들이 우리에 대해 아는 것을 이용할 것이다.
컴퓨터에서 정기적으로 악성 소프트웨어를 없애라.
이메일은 비행기로 하늘에 글씨는 쓰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기억하라.
인터넷을 대체할 것을 찾거나 줄이는 것을 고려하라.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라.
같은 이유에서, 법적 분쟁을 해소하라.
폭압적 통치자는 당신을 얽어맬 고리를 찾고 있다. 걸려들 빌미를 주지 말라.

아렌트는 비밀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정치적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주의는 공과 사의 차이를 없애 개인의 자유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정상 정치에서 끌어내 음모 이론으로 몰아간다. 우리는 사실을 밝히고 이해를 이끌어내는 대신, 무엇이든 설명하는 숨겨진 진실과 검은 음모 같은 관념에 이끌린다.

 

15. 대의에 기여하라.

자신의 인생관을 나타낼 수 있는 단체에서 활동하라.
굳이 정치적인 단체일 필요는 없다.
자선 단체 한두 개를 골라 후원금 자동 이체를 신청하라.
그럼으로써 우리는 시민 사회를 지원하고 다른 이들의 선행을 돕는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자유의 한 가지 요소는 누구와 함께 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또 자유를 방어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는 구성원을 유지하기 위한 집단 활동이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친구, 우리의 가족에 이익이 되는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자부심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시민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공동의 프로젝트를 같이하다 보면, 우리는 친구와 가족이라는 좁은 범주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되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권위자를 발견하게 된다. 신뢰와 학습의 능력은 삶을 덜 혼란스럽게, 덜 모호하게 보이도록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를 더 타당하게 더 매력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16. 다른 나라의 동료들로부터 배우라.

우정을 넓히고, 새로운 외국 친구를 만들라.
현재 미국의 곤경은 더 큰 추세의 일부이다.
어떤 나라도 혼자 힘으로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자신과 가족의 여권을 만들어라.

 

17. 위험한 낱말을 경계하라.

‘극단주의’나 ‘테러리즘’이라는 말이 사용된다면 경계하라.
‘비상사태’나 ‘예외’라는 치명적인 관념에 민감하라.
애국적인 용어를 기만적으로 사용하는 데 분노하라.

가장 지적인 나치였던 법률 이론가 카를 슈미트는 파시즘 거버넌스의 본질을 명료한 언어로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규칙을 파괴하는 방법은 <예외>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나치 지도자는 지금 이 순간이 예외적이라는 보편적인 확신을 만들어 낸 다음, 그러한 예외적인 상황을 영구적인 비상사태로 전환함으로써 적들을 제압한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진짜 자유와 가짜 안전을 맞바꾼다.

자유와 안전을 맞바꾸는 건 전혀 불필요한 거래다. 경우에 따라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유를 대가로 치러야만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하는 자들은 대개 자유도 안전도 줄 생각이 없다.

권위에 복종하면 편안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 편안함이 실제 안전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자유는 불안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이 일시적인 불안이 위험은 아니다.

<극단주의>라는 낱말은 확실히 좋게 들리지 않고, 정부들은 종종 한 문장에서 테러리즘이라는 낱말을 같이 씀으로써 이 낱말의 어감을 더욱 나쁘게 만들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 낱말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극단주의라는 주의는 없다. 독재자들이 <극단주의>들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주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킬 뿐이다. 독재자들은 바로 그 특정한 순간에 스스로를 주류로 규정한다. 20세기의 반체제 인사들은 그들이 저항한 것이 파시즘이었든 공산주의였든, 모두 극단주의자로 불렀다. 러시아와 같은 현대의 권위주의 체제들은 그들의 정책을 비판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극단주의에 관한 법률을 이용한다. 이런 식으로 극단주의라는 관념은 사실상 진정으로 극단적인 것, 즉 폭정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의미하게 된다.

 

18.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

현대의 폭정은 테러 경영이다.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해 올 경우, 권위주의자들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러한 사건들을 이용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갑작스럽게 닥친 재앙이 견제와 균형을 끝장내고, 야당을 해산시키고, 표현의 자유와 공정 재판을 중단시킨다.
이것이 히틀러의 책에 나오는 가장 고전적인 술수이다. 속지 말라.

제국의회 의사당 방화 사건은 기본적으로 민주적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히틀러 정권이 포악한 나치 정권으로 항구적으로 바뀌는 계기였다. 그 사건은 테러 경영의 전형이었다. 1933년 2월 27일 오후 9시경, 독일 의회 건물인 제국의회 의사당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그날 밤 베를린에서 불을 질렀을까? 모른다. 그리고 그건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극적인 테러 행위가 비상사태의 정치학을 촉발했다는 점이다. 그날 밤 즐거운 마음으로 화염을 지켜보던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이 화재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나치가 방화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히틀러는 여기서 정치적 기회를 포착했다. ‘이제 자비는 없을 것이다. 우리 길을 막아서는 자는 누구든 때려눕힐 것이다’ 이튿날 발포된 법령은 모든 독일 시민의 기본권을 정지시켰다. 누구든지 경찰에 의해 ‘예방적 구금’에 처해질 수 있었다. 의사당 화재가 독일의 적들이 저지른 짓이라는 히틀러의 주장에 힘입어, 나치당은 3월 5일 의회선거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경찰과 나치의 준군사 단체들은 좌파 정당들의 당원들을 일제 검거하여 임시 수용소에 구금했다. 3월 23일 새로운 의회는 히틀러의 명령 통치를 가능하게 한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12년간 비상사태 상태였다.

제국의회 화재 사건이 독재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한순간의 충격이 영원한 복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본능적인 공포와 슬픔이 제도를 파괴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용기는 테러 경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즉 저항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 보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저항해야 한다.

 

19. 애국자가 되라.

다음 세대에 조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좋은 선례를 보여라.
그들에게는 모범이 필요하다.

 

20. 최대한 용기를 내라.

아무도 자유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폭정 아래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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