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cial conquest of earth
Edward Osborne Wilson
들어가는 말. 고갱의 그림 앞에서
인간 조건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열쇠야말로 우리의 정신이 갈망하는 가장 찾기 어려운 혹은 가장 귀중한 성배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찾아 나선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신화라는 미로를 탐험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종교에서는 창조 신화와 예언자들의 꿈을, 철학자들은 신화를 토대로 한 내성과 추론을 통한 깨달음을, 창작 예술가들은 감각의 유희를 토대로 한 작품을 추구해 왔다.
특히 위대한 시각 예술 작품은, 인간 조건의 이해라는 탐색에 나선 한 개인의 여정을 담은 표현물이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환기시키는 대상이다. 더 심층적이고 더 본질적인 의미가 그 안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비밀 사냥꾼이자 유명한 신화 창조자인 폴 고갱도 그 탐색을 시도했다. 그의 이야기는 현재의 탐색 활동이 찾게 될 현대적인 해답에 어울리는 배경역할을 한다.
1897년 말, 타히티의 파페에테 항구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푸나아우이아에서 고갱은 커다란 캔버스에 그의 예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매독과 잦아지는 급성 심극 경색증 때문에 점점 기력이 쇠하고 있었다. 돈은 거의 다 떨어졌고, 얼마 전 딸 알린이 프랑스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그는 몹시 침울했다. 고갱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이 그림이 마지막 작품이란 뜻이었다. 작품을 완성한 후 고갱은 파페에테 뒤쪽에 솟아 있는 산줄기로 올라갔다. 자살하기 위해서였다. 미리 준비해 둔 비소도 한 병 챙겼다. 비소를 삼켰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고 싶었다. 하지만 도중에 마음이 약해져서 그는 그냥 푸나아우이아로 돌아왔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꿋꿋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살아남기 위해 그는 파페에테에서 일당 6프랑을 받고 공공 사업 측량국의 서기로 일했다. 1901년 그는 더욱 외진 곳을 찾아 멀리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 오아라는 작은 섬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2년 뒤 폴 고갱은 법적 분쟁에 휘말려 씨름하다가 매독으로 인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히바 오아 섬의 카돌릭 묘지에 묻혔다.
"저는 야만인입니다." 그는 죽기 며칠 전 치안 판사에게 편지를 썼다. "문명인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겁니다. 제 작품에서 이 '무심결에 드러나는 야만적인' 측면만큼 경악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으니까요."
고갱은 평화와 예술적 표현의 최전선을 찾아, 세계의 끝(더 외진 곳은 핏케인 섬과 이스터 섬뿐이었다)이라 할 현실감이 전혀 없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로 왔다. 그는 두 번째 목적은 달성했지만, 첫 번째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고갱의 육체적, 정신적 여행은 당대의 주요 예술가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유별난 것이었다. 그는 1848년 파리에서 태어나, 페루의 리마에서 페루 인의 피가 절반 섞인 어머니의 손에서 크다가 프랑스 오를레앙으로 와서 자랐다. 이 혼혈 인종적 특성은 그의 인생 행로를 짐작하게 해 줄 한 가지 단서가 된다. 젊을 때 그는 프랑스 상선에 취직하여 6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녔다. 이 무렵인 1870~1871년에 그는 지중해와 북해에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목격했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처음에는 예술 쪽으로 진출할까 했지만, 마음을 바꿔 부유한 후견인 구스타브 아로사 밑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다. 애초에 그가 예술에 흥미를 갖게 되고 계속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사실 아로사 때문이었다. 아로사는 인상파의 최신 작품까지 포함하여 프랑스 미술품을 수집하는 큰 손이었다. 1882년 1월 프랑스 주식 시장이 붕괴하면서 아로사의 은행도 파산했다. 고갱은 미술 쪽으로 돌아섰고 상당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피사로, 세잔, 반 고흐, 마네, 쇠라, 드가 같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위대한 인상파 화가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들과 같은 반열에 들기 위해 애썼다. 그는 퐁투라즈에서 루앙으로, 퐁타방에서 파리로 옮겨 다니면서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를 그렸다. 서서히 그의 작품은 몽환적인 양상을 띠어 갔다. 훗날의 고갱의 출현을 알리는 전조였다. 하지만 고갱은 세상의 반응에 낙심했고, 눈부신 대가들과의 관계는 짧게 끝나고 말았다. 나중에 선언했듯이, 그는 자신이 위대한 화가임을 알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부유해지지도 유명해지지도 않았다. 그는 위대한 화가라는 운명을 충족시킬 더 단순하고 수월한 삶을 갈망했다. 1886년 그는 파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어울리는 황폐한 땅이다"라고 썼다. "나는 원주민의 삶을 살기 위해 파나마로 갈 것이다. ....화구를 가져가서 사람들과 동덜어진 곳에서 새롭게 활력을 얻으련다."
고갱을 문명 세계 밖으로 내몬 것이 가난만은 아니었다. 그는 본래 자신이 사는 곳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열망을 늘 품고 있었다. 그는 머물지 못하는 영혼, 타고난 모험가였다. 예술에 있어서는 실험가였다. 방황하던 그는 비서구 문화의 이국적 정서에 끌렸고, 새로운 시각 표현 양식을 찾기 위해 그런 문화에 깊이 몰입하고자 했다. 그는 파나마에 얼마간 머물다가 마르티니크 섬으로 옮겼다. 그는 현재의 베트남 북부인 프랑스령 통킹 지역에서 한 일자리에 지원했다. 취직이 안 되자 그는 마침내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로 향했다. 최종 낙원으로 말이다.
1891년 고갱은 파페에타에 도착했고, 토착 문화에 푹 빠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원주민 권리를 옹호하는 편에 섰고, 따라서 식민지 당국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원시주의'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평면적이고 목가적이며 때로는 몹시 다채롭고, 단순하면서 직접적이며 진실한 양식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고갱이 이 새로운 양식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그는 인간의 조건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것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화폭에 담을 수 있을지 고심했다. 프랑스의 대도시, 특히 파리는 서로 주의를 끌기 위해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곳이자, 각자 나름의 자그마한 전문 분야에서 인정받은 권위자들이 지적 및 예술적 삶을 좌지우지하는 곳이었다. 고갱은 그런 불협화음 속에서 새로운 통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타히티라는, 훨씬 단순하면서도 사회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갖추어진 세계에서는 그런 통일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인간 조건의 토대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점에서 고갱은 헨레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부류였다. 소로는 고갱보다 앞서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으로 마주하고, 삶이 가르치는 것을 내가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넓게 바짝 깎아 내고, 삶을 구석까지 내몰고, 가장 낮은 수준으로 환원시키기 위해서" 월든 호숫가의 작은 오두막에 은거했다.
고갱이 얻은 깨달음은 그의 폭 3.65미터짜리 걸작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자. 흐릿하게 뒤섞인 산과 바다 같은 타히티 경관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인물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모습으로 인간 삶의 주기를 나타낸다. 화가는 우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훑기를 원한다. 맨 오른쪽의 아기는 출생을 뜻한다. 중앙에는 성별이 모호한 어른이 양팔을 치켜들고 있다. 개인의 자아 인식을 상징한다. 그 왼쪽에는 사과를 따먹는 젊은 쌍이 그려져 있다. 지식을 추구하는 아담과 이브의 원형이다. 왼쪽 끝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늙은 여인이 고통과 절망에 찌든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왼쪽 배경에는 파란색을 띤 우상이 종교 의례를 연상시키는 자세로 양손을 든 채 우리를 응시한다. 자애로운 자세일 수도 있고 악의를 품은 자세일 수도 있다. 고갱 자신은 모호한 시적인 어투로 이 형상의 의미를 이렇게 기술한다.
이 우상은 문학적인 설명 장치가 아니라네. 하나의 조각상이지. 아니 조각상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동물의 형상이라는 게 맞겠지. 동물이 아닐 수도 있어. 내 꿈속에 나타난 그 형상은 내 오두막 앞에 있었지. 자연 전체를 품은 그것은 우리의 원시적 영혼을 지배하며, 우리의 기원과 미래라는 수수께끼 앞에서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우리의 고통을 위로하는 형상이자 그 고통이 가진 가치를 시각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라네.
캔버스의 왼쪽 위 구석에 그는 유명한 제목을 적어 놓았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Doù Venons Nous? Que Sommes Nous? Où Allons Nous?)
그림은 답이 아니다. 물음이다.
1부. 사회성이라는 수수께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종교는 이 거대한 수수께끼를 결코 풀지 못할 것이다. 석기 시대 이래 무수히 많은 부족이 각각 나름의 창조 신화를 창안했다. 우리 선조들이 거쳐 온 이 기나긴 꿈의 시대에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샤먼과 예언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들은 스스로를 유일신, 신들의 일족, 신성한 가문, 위대한 영, 태양, 선조들의 유령, 위대한 뱀, 온갖 동물들의 잡종, 인간과 동물의 키메라, 전능한 날거미 등으로 소개했다. 그들의 모습은 자신을 창안한 사람들의 환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폴리네시아에서는 신들이 하늘을 땅과 바다에서 떼어놓은 뒤에 생물들과 인류를 창조했다.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사막에서 가부장제를 이룬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사회들의 예언자들은 경전을 통해 부족민들에게 말을 하는 신성하면서 전능한 족장을 상상했다.
창조 신화는 각 부족민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부족민들은 창조 신화를 통해 다른 모든 부족들보다 자신들이 더 사랑받고 보호받는다고 느꼈다. 그 보답으로 신은 절대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했다. 부족민들은 당연히 그렇게 했다. 창조 신화는 부족을 하나로 묶는 핵심 고리였다. 질서를 강화했고, 법률을 하사했고, 용맹과 희생을 장려했으며, 삶과 죽음의 주기에 의미를 부여했다. 창조 신화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지 않고서는 어떤 부족도 오래 생존할 수 없었다. 쇠퇴하여 해체되어 사멸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각 부족은 초창기에 창조 신화를 영구히 새겨 놓아야 했다.
신화 창조만으로는 인류의 기원과 의미를 결코 밝혀낼 수 없다. 하지만 그 반대는 가능하다. 인류의 기원과 의미를 밝혀내면, 신화의 기원과 의미를, 따라서 조직화된 종교의 핵심을 설명할 수 있다.
인간 조건이라는 크나큰 수수께끼를 종교의 신화적 토대에 기대어 풀 수 없다면, 내면의 성찰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도 풀 수 없을 것이다. 합리적인 탐구의 도움 없이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조차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 또 뇌의 활동은 대부분 의식적인 마음이 지각조차 못 하는 것들이다. 찰스 로버트 다윈의 말마따나, 뇌는 직접 공략해서는 함락시킬 수 없는 대상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창작 예술의 핵심 과정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거의 말해 주지 못하며, 애초에 창작 예술이 왜 기원했는지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의식은 수백만 년에 걸친 삶과 죽음의 투쟁을 통해 진화했고, 그 투쟁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되었지 자기 점검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의식적 사고를 조종하는 것은 감정이다. 의식적 사고는 궁극적으로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에 철저하게 매진한다. 창작 예술은 마음의 복잡하게 뒤틀린 양상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인간 본성이 결코 진화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은 양 대한다. 예술의 강력한 은유도 고대 그리스의 연극이나 문학과 마찬가지로 그 수수께끼의 해답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이 책에서 나는 과학의 발전, 특히 지난 20년 동안에 이루어진 발전에 힘입어 이제는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을 일관성있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더욱 근본적인 두 가지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그 두 문제는 우리의 탐구를 야기한 것과 관련된 것이다. 첫 번째는 고도의 사회성이 대체 왜 존재하며, 생명의 역사에서 왜 그토록 드물게 출현했는가 하는 질문이다. 두 번째는 고도의 사회성을 존재하게 한 원동력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이 의문들은 분자 유전학, 신경 과학, 진화 생물학에서 고고학, 생태학, 사회 심리학,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들에서 얻은 정보들을 종합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런 복잡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을 검증하려면, 지구의 다른 사회적 정복자들, 즉 고도로 사회적인 개미, 꿀벌, 말벌, 흰개미를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성 진화의 이론을 개발하는 입장에서 필요하다. 곤충을 인간 옆에 나란히 놓는 것이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유인원도 마뜩잖은 데 곤충이라니? 하지만 인간 생물학에서 그런 병치는 늘 유익한 결과를 낳았다. 인간을 훨씬 미미한 생물들과 비교해 유익한 결과를 얻은 선례들이 있다. 생물학자들은 세균과 효모에 눈을 돌림으로써 인간 분자 유전학의 원리들을 배우는 데 큰 성과를 올렸다. 또 환형동물과 연체동물을 통해 인간의 신경체계와 기억의 토대를 세웠다. 그리고 초파리는 인간 배아의 발달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사회성 곤충으로도부터도 그에 못지 않은 것을 배울 수 있다.
2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동물적 본능의 요구에 좌지우지되는 지능에 의존해 살아가는 진화적 키메라이다. 이것이 바로 분별없이 생명권을 파괴하고, 그와 함께 우리 자신의 영속 가능성까지 없애고 있는 이유이다.
인간성 또는 인간다움은 장엄하지만 허약한 성취물이다. 아니, 그것보다 우리 종 자체가 더 인상적이다. 우리는 늘 위태로웠던 상황에서 계소된 진화적 사건들이 쌓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 집단들은 대부분 매우 작은 규모였다. 포유동물의 역사를 볼 때 일찍 멸종할 가능성을 늘 안고 있던 규모였다. 선행 인류 집단들은 모두 합쳐도 기껏해야 수만 명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아주 이른 시기에 우리의 조상인 선행 인류는 한 시대에 둘 이상의 계통으로 나뉘었다. 이 시기에 포유 동물 종의 평균 수명은 50만년에 불과했다. 이 원리에 부응하듯이, 선행 인류의 방계 혈통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현생 인류를 낳을 운명을 지닌 집단도 적어도 한 번은 거의 멸종할 뻔 했으며, 아마 50만년을 통틀어서 보면 그런 일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현재 육상 무척추동물 세계의 지배자인 사회성 곤충은 대부분 1억년 전에 진화했다. 개미와 흰개미가 지금처럼 독보적 우위에 서게 된 것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들은 한 번에 하나씩 혁신을 이루면서 서서히 힘을 축적했고, 6500만~5000만년 전에 현재의 수준에 이르렀다. 개미와 흰개미 무리가 전 세계로 퍼질 때, 다른 육상 무척추동물들도 그들과 공진화하면서 단순히 살아남는 차원을 넘어서 번성했다. 식물과 동물은 개미와 흰개미의 약탈 행위에 맞서 방어 체계를 진화시켰다. 많은 동식물이 개미, 흰개미, 벌을 먹이로 삼는 쪽으로 분화했다. 낭상엽식물, 끈끈이주걱처럼 곤충들을 잡아 소화하여 흙에서 얻지 못하는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는 식물도 나타났다. 또 사회성 곤충을 동반자로 받아들여 긴밀한 공생 관계를 형성하는 동식물도 생겼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개미와 흰개미의 진화 속도가 느렸기에 다른 생물들은 대항 수단을 진화시킬 수 있었고, 결국 생태계는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그 결과 개미들과 흰개미들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나머지 육상 생물권을 초토화하는 대신에, 그 생물권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오늘날 그들이 지배하는 생태계는 지속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정반대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으로 이루어진 인류는 겨우 수십만 년 전에 출현하여 지난 6만년 전 세계로 퍼졌다. 인류는 나머지 생물권과 공진화할 시간이 없었다. 다른 종들 역시 인류의 대량 학살에 대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 부족한 시간 때문에 인류를 제외한 나머지 생물들은 곧 끔찍한 종말을 맞이했다.
동물에게 적용되는 엄밀한 학술적 정의에 따른다고 해도, 호모 사피엔스는 생물학자들이 진사회성 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에 속한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여러 세대로 이루어져 있고 분업의 일부로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경향을 가진 동물이라는 의미이다. 이 점에서 인류는 학술적으로 볼 때 개미와 흰개미 같은 사회성 곤충에 비견할 만하다. 하지만 여기서 곧 덧붙일 말이 있다. 인류만이 문화, 언어, 고도의 지능을 지닌다는 점을 논의로 치더라도 인간과 고충 사이에는 큰 차이점들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인간 사회의 모든 정상적인 구성원들이 번식할 능력을 지니며, 번식하기 위해 대개 서로 경쟁한다는 것이다. 또 인간 집단은 가족 구성원들과만이 아니라 가족, 성별, 계급, 부족 사이에도 매우 유연한 동맹을 형성한다. 유대 형성 또는 동맹 형성은 서로를 아는 개인들이나 집단들 사이의 협력을 토대로 하며, 개인 차원에서 소유권과 지위를 분산시킬 수 있다. 동맹을 형성하려면 서로를 자세히 평가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그것은 선행 인류 조상들이 본응에 이끌리는 곤충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사회성을 획득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진사회성으로 향하는 경로는 '집단 내 개인들의 상대적인 성공을 토대로 한 선택' 대 '집단들 사이의 상대적인 성공을 토대로 한 선택' 사이의 경쟁을 통해 도출되었다. 이 게임들의 전략은 세밀하게 조정되는 이타성, 협력, 경쟁, 지배, 호혜성, 변절, 기만의 복잡한 혼합물이었다.
그 결과 인간의 뇌는 고도의 지능을 갖춘 장치가 되는 동시에 고도로 사회적인 장치가 되었다. 뇌는 대인 관계의 단기적, 장기적 예상 시나리오들을 마음속으로 재빨리 짜야 했다. 뇌의 기억 체계들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옛 시나리오들을 불러내고 멀리 미래로 나아가서 모든 관계의 결과들을 상상해야 했다. 다양한 행동 계획들을 놓고 판단하는 역할은 편도를 비롯한 뇌의 감정 통제 중추들과 자율 신경계가 맡았다. 그리하여 때때로 이기적이고 때때로 비이기적인 모습을 띠는, 서로 종종 충돌하는 두 충동을 함께 지닌 인간조건이 탄생했다.
진화라는 거대한 미로를 헤치고 나아가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이 독특한 지점에 이르게 되었을까? 답은 먼 조상들이 지녔던 두 가지 행물학적 특성이 우리의 운명을 미리 예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커다란 몸집과 제한된 이동성이 바로 그것이다.
포유동물, 특히 육식동물은 정착하여 보금자리를 지을 경우, 관리하는 세력권이 훨씬 더 크다. 어디로 가든 그들은 경쟁자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암컷은 정자를 몸에 저장할 수 없다. 새끼를 낳으려면 매번 수컷을 찾아 짝짓기를 해야 한다. 따라서 홀로 살아가는 것보다 사회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더 유리해지는 쪽으로 환경의 기회와 압력이 주저질 때, 포유돌물은 지능과 기억을 토대로 한 개체 간의 유대와 동맹을 통해 집단을 이룰 수 밖에 없다.
한 종의 가능한 진화 경로는 일종의 미로찾기로 시각화할 수 있다. 진사회성의 기원 같은 주요 발전에 다가갈 때, 각각의 유전적 변화, 즉 미로의 각 모퉁이는 그 수준의 성취를 어렵게 하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고, 혹은 다음 모퉁이까지 성취를 미룰 수도 있다 초기 단계에서 갈 길이 멀고 단계마다 모퉁이마다 대안들이 존재하기에, 저 멀리 있는 최종 성취 단계까지 나아갈 가능성이 가장 낮다. 반면에 마지막 몇 모퉁이만 남은 시점에서는 남은 거리가 짧고 성취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1억년전 우리의 원시 포유류 조상에서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될 존재로 향하는 한 계통에 이르기까지의 진화 과정에 전체에 필요한 개체의 총 수는 약 1000억 마리였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리를 위해 살고 죽었다. 진화 게임에 참가한 종들은 세대당 번식하는 개체가 평균 수천 마리였으며, 다른 종들과 함께 진화하다가 쇠퇴하여 사라지는 종도 많았다. 그런 멸종이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긴 계통 중 하나에서 일어났다면, 인류의 서사시는 그때 바로 끝났을 것이다. 우리의 선행 인류 조상들은 선택된 것도, 위대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200만년전, 사람과의 영장류는 긴 다리로 아프리카의 흙을 밟고 걸어다녔다. 해부 구조의 유전적 차이로 측정한 유전적 다양성이라는 기준을 적용했을 때, 그들은 성공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적응 방산을 이루었고, 여러 종이 동시대에 공존했고 각각의 지리적 분포 범위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겹쳤다. 두세 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고, 분류학자들이 새로 진화한 사람속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뇌 크기와 치열이 다른 종도 적어도 세 종이 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나뭇잎, 열매, 덩이줄기, 씨를 먹는 채식주의자였다. 사람속의 종들도 식물을 채집하여 먹었지만, 그들은 고기도 먹었다.
사람족을 더 큰 뇌, 더 뛰어난 지능, 그리하여 언어 기반의 문화를 향해 계속 내몬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필수적인 선적응 중 몇 가지를 이미 획득했다. 이제 그 종들 중 하나가 그다음 걸음을 밟았다. 그리고 세계 지배와 거의 무한한 수명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생명의 역사에서 일어난 여섯 번의 거대한 전환점 중 하나인 그 성취는 단순히 도약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의 전조인 진화는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300~2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한 종이 고기를 먹기 시작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채식성 식단에 고기를 추가함으로써 잡식성이 되었다. 이 변화는 호모 하빌리스에서 일어났다.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면, 사람과 뇌의 급속한 진화적 성장을 촉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개골과 치열의 해부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드러나듯이, 주된 단백질 공급원인 고기에 더욱 의존하게 된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먹잇감을 사냥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각 개체의 뇌 발달에 유용한 동물 단백질을 얻는다는 것 자체는 사람과의 뇌가 그렇게 커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진짜 이유는 먹잇감을 어떻게 사냥하는가인 듯하다. 현생 침팬지도 사냥을 한다. 주로 원숭이를 사냥하며, 그렇게 잡은 고기로부터 얻는 열량은 총열량의 3퍼센트다. 현생 인류는 선택권을 준다면 그것보다 10배는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빈약한 동기만으로도 침팬지들은 조직적인 집단을 구성하고 복잡한 전략을 수행한다. 그들의 행동은 영장류 가운데 거의 유일하다. 인간과 침팬지 이외의 영장류 중에는 사냥할 때 협력한다고 알려진 것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사는 커다란 뇌를 지닌 꼬리감는원숭이뿐이다.
포유류 전체로 보면 집단 사냥은 드물다. 영장류 이외에 집단 사냥하는 포유류로는 암사자들이 있다. 늑대와 아프리카들개도 집단 사냥을 한다. 침팬지와 보노보의 진화 역사는 60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에 그들은 인간 분기군과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그 계통 분기 이전에는 우리와 조상이 같은데, 왜 인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까? 답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조상이 살아 있는 동물을 잡아먹는 데 투자를 덜 했다는 데 있을지도 ㅁ른다. 사람속으로 진화한 집단은 동물 단백질을 많이 소비하는 쪽으로 분화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성공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했고, 그 노력을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고기는 1그램당 에너지 효율이 식물성 식량보다 높다. 이 추세는 호모 사피엔스의 빙하기 자매종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집단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진사회성을 진화시켰다고 알려진 다른 모든 동물들은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모아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출발했다. 비교적 큰 동물 중에서 동아프리카의 벌거숭이두더지쥐는 거의 개미만큼 진사회성을 진화시켰다. 그들도 안전한 보금자리 원리에 충실하다. 방어 가능한 안전한 보금자리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 그들은 먹이를 찾으려면 보금자리에서 벗어나 탐색에 나서야 하며, 다시 돌아와야 한다. 야영지에서 육식 동물들은 벌판을 돌아다니기만 하는 자에게는 불필요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압력을 받는다. 그들은 분업을 해야 한다. 누구는 먹이를 찾고 사냥을 하고, 누구는 야영지의 새끼를 지켜야 한다. 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식물성 먹이와 동물성 먹이를 분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속하는 끈은 약해질 것이다. 더군다나 집단 구성원들은 불가피하게 서로 경쟁한다. 먹이를 더 많이 차지할 지위, 짝짓기할 상대에게 접근할 권리, 편안한 잠자리 등을 위해서 말이다. 이 모든 압력은 남의 의도를 읽을 수 있고 신뢰와 협조를 얻는 능력이 뛰어나며 경쟁자를 다룰 줄 아는 이들에게 이점을 제공한다. 따라서 사회적 지능은 늘 우대받았다. 예리한 감정 이입 능력과 섬세한 공감능력은 큰 차이를 빚어낼 수 있으며, 조작하고 협력을 얻고 속이는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호모사피엔스는 대형 동물 중에서, 즉 인간의 뇌만 한 뇌가 진화할 만큼 큰 동물 가운데 진화의 미로에서 필요한 행운의 모퉁이를 다 돈 유일한 종이었다.
첫 번째 선적응은 육지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기술 전에는 불이 필요하다. 돌고래나 문어는 제 아무리 영리해도 연기를 피우거나 용광로를 발명할 수 없다. 현미경을 만들거나 광합성의 산화 반응을 추론하거나 목성의 위성 사진을 찍는 문화를 구축할 수 없다.
두 번째 선적응은 지구 역사상 육상 동물 중 소수만이 갖춘 수준의 큰 몸집이었다. 다 자랐을 때의 몸무게가 1킬로그램도 안 되는 동물이라면, 뇌 크기가 너무 작아서 고등한 추론과 문화를 구축하기에는 심한 제약이 따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잎꾼개미가 인간을 제외하고서 가장 복잡한 사회를 구축하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건설한 환기 시설을 갖춘 도시에서 농사를 지어 왔지만 2000만년 동안 더 이상의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지 못한 한 가지 이유다.
그 다음의 선적응은 사물을 쥐고 조작할 수 있도록 진화한 부드러운 납작한 손가락이 달린 움켜쥐는 손의 출현이었다. 이것은 영장류를 다른 모든 육상 포유동물과 구분하는 형질이다. 다른 종들의 통상적인 무기인 발톱과 엄니는 기술 발달에는 부적합하다. 진사회성을 향한 길에 있는 후보 종들은 그런 손과 발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손에서 이동 기능을 떼어 버려야 했다. 뇌의 통합능력은 사물을 만지작거리는 데에서 얻은 감각들을 처리하면서 발달하기 시작했고, 이 능력은 지능의 다른 모든 영역들로 확산되었다.
그렇다면 나름의 진화 미로를 헤치고 나아가도록 우리 계통을 추진한 진화적 원동력은 무엇일까? 환경과 상황을 구성하던 요소 중 무엇이 정확히 알맞은 순서로 그런 유전적 변화를 겪도록 그 종을 인도했을까? 그것은 초자연적인 권능을 지닌 이에게조차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성취였다. 창조주가 인간 조건을 출현시키기 위해서는 선행 인류가 진화의 미로 속에서 계속 올바른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수백만 년에 걸쳐 물리적 및 생물학적 환경을 가공하는 동시에 유전체에 천문학적인 수의 돌연변이를 흩뿌려야만 했을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난수 발생기를 계속 작동시키면서 같은 일을 하는 편이 나았을 정도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이 바늘에 실을 꿴 것은 설계가 아니라 자연 선택이었다.
인류 진화의 원동력은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 둘 다이다. 이 다수준적 선택 과정은 다윈이 인간의 유래에서 맨 처음 예견했다. 다수준 선택은 개별 구성원의 형질을 표적으로 삼는 선택압과 집단 전체의 형질을 표적으로 삼는 다른 선택압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구성된다. 이 이론은 혈통의 혈연 관계나 그것에 상응하는 유전적 근친도를 토대로 하는 기존 이론을 대체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집다 사이의 경쟁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각 구성원의 유전적 적합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전쟁 때나 호전적인 독재자의 통치 시기에 집단의 적합도가 증가하는 대신에, 개인은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개인의 유전적 적합도를 상실할 수 있다.
인간의 유전적 적합도는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 양쪽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집단 구성원으로서 얻는 혜택이 단독 생활로부터 얻는 혜택보다 못하다면, 진화는 개체가 집단을 따르거나 다른 구성원을 속이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길게 보면 그 사회는 해체될 것이다. 집단 구성원으로서 얻는 혜택이 충분히 커진다면, 또는 이기적인 지도자가 자신의 사적인 이익에 봉사하도록 집단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구성원들은 이타성과 순응의 경향을 보일 것이다. 정상적인 모든 구성원들이 번식 능력을 지니는 인간 사회는 개체 수준의 자연 선택과 집단 수준의 자연 선택의 사이에 본질적이고 어쩔 수 없는 갈등을 가지게 된다.
친숙한 유대 관계로부터 본능적인 위안과 자긍심을 이끌어내는 집단을 형성하고 경쟁 집단에 맞서 자기 집단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것. 이 두가지야말로 인간 본성, 따라서 문화의 절대 보편적 성향이다.
한 번 집단을 형성하고 나면 내집단 구성원을 선호하는 성향을 보편적으로 나타내며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은 그 성향이 본능임을 말해주는 특징이다. 내집단을 편애하는 성향이 이 모든 기준들을 충족시킨다면 그것은 유전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언어, 근친상간 회피, 공포증 습득도 인간의 경우에 준비된 학습이라고 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사례들이다. 사람들은 자민족 중심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죄책감과 무관한 선택을 하도록 했을 땡에도 사람들이 같은 인종, 국가, 가문, 종교에 속한 이들을 더 선호한다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더 신뢰하고, 그들과 함께 사업을 하거나 사교 활동을 할 때 더 긴장을 푼다. 또 그들을 혼인 상대자로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집단주의적 행동이 정말로 유전되는 준비된 학습을 통해 드러나는 본능이라면, 아주 어린아이에게도 그 징후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인지 심리학자들은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발견해 왔다. 신생아는 최초로 들은 소리, 어머니의 얼굴, 모어의 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중에 그들은 청각 범위 내에서 모어로 자신에게 말을 했던 사람을 더 많이 쳐다본다. 미취학 아동은 자신의 모어로 말하는 아이를 친구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이 선호 경향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시작되며, 말의 의미를 완전히 알아듣더라도 억양이 말을 들을 때에 나타난다.
뇌의 각 부위들은 집단 선택을 통해 집단주의 성향을 갖도록 진화해 왔다. 이렇게 진화한 뇌의 부위들은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을 폄하하거나, 그런 태도로부터 곧바로 자동적으로 파생될 결과들을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성향을 뇌에 새겨놓았다. 격렬한 운동 경기와 전쟁 영화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즐거움에는 죄책감이 거의 또는 전혀 없기에, 편도는 행동과 이야기 전개를 통제하여 적을 흡족하게 파괴할 수 있다.
1만년 전, 신석기혁명이 일어나 경작과 목축을 통해 식량이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것에 따라 인구가 급증했다. 하지만 그 발전으로 인간의 본성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새롭게 확보된 풍부한 자원이 허용하는 것만큼 인구가 빠르게 늘어났을 뿐이다. 그 결과 불가피하게 식ㅇ량이 다시 제한 요인이 되었고, 인류는 세력권 행동 본능에 복종했다. 최근의 연구들은 지역마다 인구가 식량과 물의 공급량에 따라 정해진 한계에 근접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새로운 땅이 발견되고 그곳의 원주민이 쫓겨나거나 살해당한 뒤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족이 언제나 이 일을 반복해왔다. 핵심 자원을 통제하려는 투쟁은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고,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핵심자원을 통제하는 문제는 인류가 신석기 시대의 여명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크나큰 기회를 움켜잡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죽 해 오던 대로, 더 초라하고 야만적인 환경에 속박된 구석기 시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본능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면서 번식과 소비를 계속하고 있다.
200만년 전 아프리카의 사바나림과 초원을 돌아다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은 유전자를 여러 종들에 분산시켰다. 그들의 집단들은 작았고 흩어져 있었으며, 늘 멸종의 위험을 안고 살았다. 사실 50만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단 한 집단만 빼고 말이다. 그 집단의 후손들은 계속 존속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지배할 운명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0만년 전, 자연 선택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계통은 더 큰 뇌를 지닌 호모 에렉투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현생 호모 사피엔스보다 뇌가 더 작았지만, 엉성한 석기를 만들 수 있었고, 야영지를 만들고 통제된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 집단은 아프리카 바깥으로 퍼져서 동북 아시아까지 올라갔고, 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까지 나아갔다. 호모 에렉투스는 영장류로서는 유례없는 수준의 적응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집단 중 일부는 현재의 중국 북부에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살았고, 자바의 찌는 듯한 열대 기후에서 살아남은 집단도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의 성공한 후손인 호모 사피엔스는 냉정하게 볼 때 사실 플로레스 섬의 작은 인류보다 더욱 기이하다. 불거진 이마, 지나치게 큰 뇌, 끝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는 긴 손가락 말고도, 우리 종은 생물 분류학자들이 '식별 형질'이라고 말하는 다른 놀라운 생물학적 특징들도 지닌다. 이 말은 우리의 형질들 중 일부는 조합되었을 때 모든 동물 가운데 독특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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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로 창안한 단어와 기호의 무한한 순열을 토대로 한 생산적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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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게 배열된 소리로 이루어진 음악. 언어와 마찬가지로 소리의 무한한 순열을 토대로 하여, 개인이 만들고자 하는 분위기에 맞춰 여러 방식으로 연주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박자를 지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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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지도를 받으며 오랜 기간 학습할 수 있는 유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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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생식기의 해부학적인 은폐와 배란 은폐. 둘이 결합함으로써 지속적인 성적 활동이 가능해진다. 후자는 장기간 무력한 상태로 지내야 하는 유년기 초의 아이에게 필요한 남녀의 유대관계와 부모의 공동 육아를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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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초기에 유달리 빨리 상당 수준까지 커지는 뇌. 태어났을 때부터 성숙할 때까지 3.3배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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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임을 시사하는 상대적으로 호리호리한 체형. 작은 치아, 약한 턱 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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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통해 부드러워진 음식을 먹도록 분화한 소화계.
지구 정복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뇌를 지닌 호모 사피엔스 집단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서 대를 이어 가면서 거침없는 물결을 이루어 구대륙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그들은 점점 더 복잡한 형태의 문화를 창조했다. 이 시기의 문화적 진화는 자기촉매적이었다.인류학자들은 문화적 창의성의 폭발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해왔다.
첫 번째는 아프리카 호모 사피엔스 집단이 유라시아로 탈출할 무렵에 변화를 야기할 중요한 돌연변이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우리의 자매종인 호모 네안데르탙렌시스가 유럽과 레반트에서 수십만 년 동안 살았지만 원시적인 석기 제작 기술에서 유의미한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겨우 3만년 전에 사라졌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찾는다.
그것보다는 창의성의 폭발이 하나의 유전적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6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 초기부터 시작된 점진적 과정의 누적이라는 견해가 더 현실성이 있다. 개인 장신구와 뼈에 새기고 황토로 물들인 추상적 문양 뿐만 아니라 색소 이용 사례가 10~7만년 전부터 나타난다는 최근의 발견들은 이 견해를 뒷받침한다.
세 번째 가설은 문화적 혁신과 그것의 채택이 같은 시기에 일어난 심각한 기후 변화에 발맞추어 오락가각했다는 것이다. 조개껍데기 구슬, 골각기, 추상적인 조각, 개선된 돌촉 등 아프리카 유물들이 7만~6만 년 전 기후가 유달리 나빴던 기나긴 시기에 드넓은 지역에서 사라졌음을 시사하는, 가장 이른 시대의 고고학 기록들도 이 견해를 뒷받침한다.
유전자가 사회 관계망의 다양성에 미친 영향도, 인간이나 다른 어떤 생물에게서 고도의 사회적 행동이 진화적으로 기원하는 데 적어도 동등하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에릭 터크하이머의 행동 유전학 제1법칙, 즉 "모든 형질은 유전자의 차이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어느 정도 다양성을 띤다"라는 법칙에 따라서, 그런 유전적 통제가 어느정도 이루어진다고 예상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한 사람이 접촉하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수의 차이뿐만 아니라 이행성(한 사람이 접촉하는 두 명도 서로 연결되어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 것)의 차이도 약 절반이 유전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중석기 시대까지 문화적 진화의 초창기에는 진화 속도가 느렸다. 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 농경과 마을이 발명되고 잉여 식량이 발생하면서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자, 문화적 진화도 급격히 가속되었다. 그 후 교역의 확대와 무력의 행사에 힘입어 문화적 혁신은 더 빨리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더 멀리까지 전파되었다. 여전히 혁신들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등 지속적인 재편성 과정을 거쳤지만 문화적 혁신을 성취한 인류 집단의 인구와 부족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짐에 따라 재편성 과정의 영향을 압도할 만큼 독창적이면서도 강력한 혁신도 나타났다.
인간 유전학자들은 모두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 인종적 특징이라고 분류되는 해부 구조와 생리 특성의 지리적 변이 대부분이 국지적인 자연 선택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유전적 부동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유전형이 이주한 뒤에 유전자의 지역 빈도가 무작위로 변동함으로써 생긴 유전적 부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햇빛의 자외선을 차단하여 몸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지리적 변이로서 적도로 갈수록 짙어지는 피부색 같은 특징은 예외이다. 그린란드 에스키모와 시베리아 부랴트 족의 유달리 넓적한 얼굴도 예외이다. 그것은 극도의 추위에 맞서 표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달한 특징이다.(넓적한 얼굴보다 돌출된 얼굴의 표면적이 더 넓다)
유전자 하나 또는 소수의 유전자 집합 수준에서 일어나는 진화로 유전자 빈도가 변하는 것을 생물학자들은 소진화라고 하는데, 이 진화는 자연 과정으로서 무한히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주와 인종 간 혼인이 소진화의 압도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유전자의 세계적인 분포를 균질화해 가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 사회의 복잡성이 세 가지 수준이라고 파악한다.
가장 단순한 수준의 사회는 수렵 채집인 무리와 작은 농경 마을로서 그 구성원들은 대체로 평등주의자들이다. 지도자의 지위는 지성과 용맹을 토대로 개인에게 부여되며, 그가 늙어 죽으면 그 지위는 가까운 친족이나 아니면 남에게 전해진다. 평등주의 사회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공동체 잔치, 축제, 종교 행사 때 한다. 주로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에 흩어져 있으며, 신석기 시대 이전에 오랜 세월 주류였던 인류 집단과 가장 가까운 사회 조직을 지닌, 살아남은 소수의 수렵 채집인 무리들이 그런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
복잡성의 다음 단계인 군장 사회는 서열 사회라고도 하는데, 엘리트 계층이 통치하며, 엘리트가 쇠약해지거나 죽으면 가족이나 적어도 위계서열이 같은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역사 기록이 시작될 때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던 사회 형태가 바로 군장 사회였다.
사회의 문화적 진화에서 마지막 단계인 국가에서는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었다. 통치자들은 수도와 그 주변에 권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걸어서 하루 넘게 걸리는 곳에 있는 마을, 성, 그밖의 영토까지, 통치자가 피통치자와 의사소통하는 영역 너머까지 다스렸다.
평등한 무리와 촌락에서 군장 사회를 거쳐 국가에 이르는 문명의 발전은 유전자의 변화가 아니라 문화적 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것은 군거성 곤충 집단이 가족으로, 이어서 계급과 분업을 갖춘 진사회성 군체로 발전한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장엄한 방식으로 펼쳐진, 강한 추진력을 지닌 변화였다.
국가 수준의 위계 구조는 상호 작용하는 하위 체계들로 이루어진다. 층층이 이루어진 하위 체계들은 모여 국가라는 위계 구조를 이루고, 이 경우 가장 낮은 하위 체계는 국가의 개별 시민 또는 신민으로 이루어진다. 진정한 하위 체계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하위 체계로 분할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고도로 분할가능한 체계는 그렇지 않은 체계보다 더 잘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론 수학자 하버트 알렉산더 사이먼은 "이론적으로 볼 때, 복잡성이 단순성에서 진화한 것이 분명한 세계에서는 복잡계가 위계 구조를 이룬다고 예상할 수 있다. 위계 구조는 동역학적 측면에서 볼 대 자신의 작동 방식을 크게 단순화시켜 주는 특성인 근(近)분할 가능성을 지닌다. 또 근분할 가능성은 복잡계를 단순하게 기술할 수 있게 해주며, 계의 발달이나 재생산에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합리적인 규모로 저장할 수 있는지를 더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고 했다.
사이먼의 원리를 더 단순한 사회에서 국가로 나아가는 문화적 진화에 적용하면, 위계 구조가 잘 조직된 집합체가 그렇지 않은 집합체보다 더 잘 돌아가며, 통치자의 이해와 관리를 수월하게 해 준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조립 라인의 노동자가 이사회에서 투표를 하거나 신병이 군 작전 계획을 짠다면,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약1만년 전 농경이 출현하기 직전, 여러 조건들이 조합된 덕분에 유라시아 초대륙의 사람들은 곧바로 문화적 혁신을 이룰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 거대한 크기, 동서로 드넓게 펼쳐진 땅, 지중해 연안의 생물학적으로 풍부한 주변부 덕분에 유라시아에는 다른 대륙이나 섬보다 국지적으로 가축화하고 작물화학에 적당한 동식물 종이 더 많았다. 작물과 목축에 관한 지식, 잉여물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기술도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서 점점 확대되어 가던 초기 국가의 영토 전체로 더 빠르게 전파되었다. 신석기 혁명을 낳은 것은 어느 시점에 특정한 지역에서 출현한 그 지역 고유의 인간 유전체가 아니라, 바로 이 유라시아 심장부의 규모와 비옥함이었다.
3부. 사회성 곤충의 무척추동물계 정복사
인간의 사회적 행동만이 아니라 동물계의 사회적 행동 전체를 파노라마로 볼 때, 한 가지 패턴이 뚜렷이 드러난다. 과거의 진화 생물학자들은 거의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그 패턴은 인간 관계로서 연결된 두 현상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현상은 육상 환경에서 서식하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 체제를 갖춘 종들이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현상은 진사회적으로 볼 때, 그런 종들이 아주 드물게 출현한다는 것이다. 가장 복잡한 계는 진사회성, 말 그대로 '진정한 사회적 조건'을 지닌 것이다. 개미 군체 같은 진사회성 동물 집단의 구성원들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간다. 그들은 분업을 하며, 그것은 적어도 바깥에서 보기에는 이타적 행동 같다. 일부는 두 가지 업무를 모두 맡는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다른 개체들은 번식 업무를 맡아서 더 오래 살면서 더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진사회성 곤충은 약 2만종이 알려져 있으며, 개미, 벌, 말벌, 흰개미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약 100만종에 달하는 곤충 중 겨우 2%를 차지하지만 이 소수의 종은 개체수, 몸무게, 환경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 나머지 곤충들을 압도한다.
독일의 한 연구자는 아마존의 한 조사 지역에서 우림 1헥타르에 있는 모든 동물들의 몸무게를 재는 엄청난 일을 해 냈다. 그들은 개미와 흰개미가 모든 곤충 몸무게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진사회성 벌과 말벌도 10분의 1을 차지한다. 개미만 해도 모든 육상 척추동물, 즉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를 합친 것보다 몸무게가 4배 더 나간다.
개미는 목재를 먹는 흰개미와 더불어 1억 2000만년 전보다 이전인 파충류 시대 중반에 출현했다. 반면에 방계 친족들과 동맹자들끼리 이타적인 분업을 하고 조직된 사회를 갖춘 최초의 사람족은 기껏해야 300만 년 전에 출현했을 뿐이다.
매우 엉성한 수준에서 추정하자면, 현재 살고 있는 개미의 수는 1경, 즉 10^16마리에 이른다. 개미 한 마리의 평균 무게가 사람 평균 몸무게의 100만분의 1(10^-6배)이라면, 개미가 사람보다 100억배(10^10배) 많으므로, 지구의 모든 개미를 더한 무게는 모든 사람을 더한 것과 비숫하다. 언뜻 보면 놀라울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차곡차곡 쌓으면 한 변의 길이가 약 1.7킬로미터인 정육면체 안에 들어갈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개미를 모아 쌓아도 비슷한 부피가 될 것이다. 둘 다 그랜드캐니언의 한구석에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4부. 사회성 진화를 일으키는 힘
진사회성은 생명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주요 혁신 중 하나였다. 이타적인 분업을 통해 여러 세대가 한 집단을 구성하는 진사회성을 통해 유기체보다 한 단계 높은 생물학적 복잡성을 지닌 초유기체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 성취는 진화 생물학이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도 하나 내놓았다. 진사회성의 희소성이라는 문제이다. 운 좋은 말벌 집단 하나가 개미를 낳을 수 있었고, 목재를 먹던 바퀴처럼 생긴 곤충 집단 하나가 운 좋게 흰개미로 진화할 수 있었고, 그 둘이 육상 무척추동물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생명의 역사에서 진사회성은 더 많이 출현하지 않은 것일까?
지난 2억 5000만 년 동안 대형동물들에게서 진사회성이 출현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벌어질 기회는 많았다. 중생대에 진화하던 공룡 계통 중에는 적어도 필수 조건 중 일부를 획득한 것들이 많았다. 인간만한 몸집, 육식성의 식성, 무리 사냥, 두발 보행, 자유로운 손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설령 원시적인 수준으로라도 진사회성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를 밟은 종은 전혀 없었다. 그 후 신생대의 거의 전 기간인 6000만년 동안, 한창 늘어나던 대형 포유동물 종들의 앞에도 똑같은 기회가 놓여 있었다. 게다가 포유동물 종과 그 자손 종의 평균 수명은 50만 년으로 비교적 짧았기에 적응 형질들이 새롭게 재편되는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비영장류 포유동물 중에서 두더지만이, 그리고 수백만년 동안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 살았던 모든 영장류들 가운데 아프리카에 살던 대형 유인원 중 하나, 즉 호모 사피엔스의 선조만이 진사회성으로 넘어가는 문턱을 넘었다.
진화는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째, 진사회성을 달성한 모든 동물종의 개체들은 예외 없이 이타적 협동을 통해 포식자, 기생 식물, 경쟁자 같은 적으로부터 항구적이고 방어 가능한 보금자리 또는 집을 지킨다. 둘째, 집단의 구성원들은 두 세대 이상으로 이루어지고 적어도 자신의 사적인 이익 중 일부를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방식으로 분업한다. 이 단계에 도달하자, 진사회성이 출현할 무대가 마련되었다.
집단의 창벌적 형질은 만드는 대립 유전자가 집을 떠나 분산하도록 이끄는 경쟁 관계에 있는 대립 유전자보다 우세해질 때, 유전체의 나머지 영역에 작용하는 자연 선택은 자유롭게 더 복잡한 사회 조직을 형성할 수 있다.
진사회성 군체 내 일꾼들 사이에 형질들의 유전적 다양성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군체에게 유익한 기능을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군체는 각자가 자기 유전자의 적합도를 최대화하기 위해 애쓰는 개체들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여왕의 유전체가 다음 두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즉 유전자가 규정하는 형질이 불변성을 띨 필요가 있어서 대립 유전자들의 다양성이 비교적 낮은 영역과, 형질이 융통성을 띨 필요가 있어서 대립 유전자의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유전적 불변성은 일꾼 계급 체게의 필수 조건이며, 계급들을 체계화하고 각자에게 업무를 분담시키는 수단이다. 대조적으로 군체의 질병 내성을 높이고 집의 공기 조절을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일꾼들 사이에 유전적 융통성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군체가 가진 유전 형질이 다양할수록, 그리고 더 많을 수록, 질병이 집을 휩쓸 때 일부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리고 온도, 습도, 공기 농도 같은 게 바람직한 상태에서 벗어났음을 알아차리는 민감성의 폭이 더 클수록, 집의 환경 구성 요소들은 군체의 생활에 더 적합하게, 더 나아가 최적 상태에 더 가깝게 유지할 수 있다.
독립 생활을 하는 종에게 진사회성의 문턱 가까이에 다가간다는 것은 방어 가능한 집을 짓는 방향으로 점점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턱에 다가가는 것은 개체 수준에서 일어나는 기존의 자연 선택을 통해 우연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어떤 진사회성 대립 유전자가 성공하여 집단 전체로 퍼질지는 순전히 운에 달려 있다. 그것의 운명은 집 주변의 특정한 환경이 개체보다 진사회성 집단을 선호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필수 조건들이 충족될 때, 즉 알맞은 선행 진사회성 형질들이 자리 잡고, 아주 낮은 수준으로라도 집단 내에 진사회성 대립 유전자가 존재하고, 마지막으로 집단 활동을 선호하는 환경 압력이 존재할 때, 독립 생활을 하는 종은 진사회성의 문턱을 넘을 것이다.이 진화 단계의 놀라운 측면은 새로운 형태의 행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무작위 돌연변이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행동을 침묵시키기만 해도 변화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성장한 자식이 부모가 있는 집을 떠나지 않게 막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족은 한 집에 머물게 된다. 이 문제를 다른 식으로 보면, 자식들이 어미인 여왕과 공유하는 진사회성 유전자는 자식들이 가진 유연한 표현형 중 하나를 발현시킴으로써 그들을 로봇으로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원시적인 군체가 초유기체라고 주장해 왔다. 초유기체는 본질적으로 한 마리의 생물이다. 다만 일반 세포가 아니라 복종하도록 미리 정해진 생물들로 이루어지고, 그 생물들에게 일을 분담시키는 생물이다. 진사회성 또는 우리가 이타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모가 이미 집을 짓고 있고 새끼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를 공급할 때, 한 대립 유전자 또는 대립 유전자 집합의 유연한 발현을 통해 생겨날 수 있다. 집에 머무는 가족들을 선호하는 집단 형질에 작용하는 집단 선택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생태적 우점 또는 생태계 정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생물학적 조직화의 새 단계에 올라선다. 여왕이 새로 않은 일꾼 계급을 거느리기 시작한 작은 걸음이 곤충에게는 큰 도약이 되었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를 생각할 때는 어떤 구조나 과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뜻하는 근접원인(proximate causation)과 구조나 과정이 애당초 왜 존재하는지를 말하는 궁극원인(ultimate causation)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둥지를 지을 곳을 참나무에서 소나무로 바꾼 가상의 새를 생각해보자. 이 진화의 근접 원인은 참나무보다 소나무를 더 선호하는 성향을 부여하는 대립 유전자 b를 지닌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립 유전자 b는 참나무에서 소나무로 둥지 짓기 행동의 변화를 매개하는 내분비계와 신경계의 발달을 규정한다. 궁극원인은 환경이 가하는 선택압이다. 즉 참나무의 쇠퇴와 소나무의 득세는 원래 우세했던 대립유전자 a보다 돌연변이체인 대립유전자 b를 유리하게 만든다. 집단 전체에서 대립 유전자 a가 b로 바뀌는 것은 자연선택 과정이다.
개별사례에서, 특히 인류 진화라는 복잡한 다수준적 과정에서는 근접 원인과 궁극 원인을 혼동하기 쉽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인류의 지능이 진화적으로 발달한 것이 불의 제어나 직립 보행의 습득이나 끈질긴 추적 사냥법의 채택이나 그것들의 조합에서 유래했다는 글을 자주 접한다. 이런 혁신들이 인류의 진화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들은 원동자(prime mover)가 아니다. 그것들은 현생 인류의 고등한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놓인 예비 단계들이었다. 최종 단계는 호모 사피엔스 뇌의 형성이었고, 그 뇌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창의성의 폭발을 일으켰다.
포괄 적합도는 혈연 선택의 산물이다. 개체가 형제자매와 사촌 등 방계 친족의 번식에 영향을 끼치는 수단이다. 엄밀한 생물학적 의미에서, 방계 친족의 유전적 적합도는 높아지고 이타주의자 자신의 유전적 적합도는 낮아질 때, 개체는 이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다. 개체의 포괄 적합도는 개체의 적합도, 다시 말해 성장해서 각자 대를 이어 가는 자식의 수에, 자신의 행동이 형제자매, 고모, 삼촌, 사촌 등 방계 친족들의 적합도에 미치는 영향을 더한 것이다. 그 이론은 개체 자신의 포괄 적합도와 그 집단의 적합도가 어느 한쪽이 줄어든다고 할지라도 총괄적으로 증가한다면 이타성의 유전자도 종 전체에서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혈연선택 개념은 처음부터 과학자와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으며, 단순해 보였고, 사회 생활에서 이타성이 중요한 이유를 확인해 주는 듯했기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혈연 선택 개념은 1955년 영국 생물학자 존 버든 샌더슨 홀데인이 처음으로 발표했지만, 온전한 이론적 토대는 1964년 같은 영국인인 윌리엄 도널드 해밀턴이 구축했다. 주요 공식은 부등식인 rb〉c 였다. 이타적 행동의 수혜자가 받는 혜택 b에 그 이타주의자의 근친도 r를 곱한 값이 이타주의자가 치르는 비용 c 보다 크다면, 집단 내에서 이타성을 빚어내는 대립 유전자의 빈도가 증가한다는 의미이다. 이타주의자가 치르는 비용보다 한 형제나 자매(r=1/2)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2배 크거나 사촌(r=1/8)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8배 클 때, 이타성은 진화할 것이다. 엉성한 사례를 들어 이 개념을 표현하자면, 당신이 이타적으로 행동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지만, 당신이 자매를 위해 이타성을 발휘한 결과 그녀가 낳은 자식의 수가 2배 이상 늘어난다면 당신은 이타성 유전자의 증가에 기여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려면 혜택 b와 비용 c를 측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포괄 적합도를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또 그런 측정을 하려면 야외 조사와 실험실에서 대단히 어려운 연구들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측정값을 얻은 사례는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한 시도된 적도 없다. 더군다나 근친도인 r를 정의하는 데에도 수학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있다.
해밀턴 부등식은 매우 제한된 조건에서만 집단 내의 협력자 수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증가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그 조건들이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일정한 정상분포를 이룬다고 보기에, 근본적으로 역동적인 진화의 과정을 기술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포괄 적합도 이론의 핵심적인 추론 줄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혈연 선택은 일어난다고 여겨지며, 사실상 많은 생물학 체계에서 불가피하다고 추정된다. 혈연 선택이 일어날때, 해밀턴 부등식은 가장 단순한 사례에서 적어도 이타성의 유전자가 집단 전체에서 증가할지 아닐지를 예측한다. 해밀턴 부등식을 한 집단의 모든 구성원에게 적용하면 그 집단의 포괄 적합도를 계산할 수 있고, 그 포괄 적합도를 알면 그 집단의 어떤 개체군이 이타성을 토대로 한 사회조직을 향해 진화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정들 중 어느 것도 입증된 것이 없다.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분업을 수반한 진사회성을 낳았을 법한 최초의 단계는 독립 생활을 하는 개체들이 자유롭게 뒤섞인 개체군 내에서 집단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론상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보금자리를 지을 자리나 종에게 특화된 먹이 자원이 국지적으로 분포할 때, 자식이 부모 곁에 머물 때, 떼 지어 이주하다가 정착하기 전에 반복해서 계속 갈라질 때, 알려진 섭식지로 향하는 지도자를 따를 때 집단이 형성될 수 있다. 국소적인 상호 인력에 끌려서 무작위로 모일 수도 있다.
집단이 형성되는 방식은 아마 진사회성을 향한 발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집단의 응집성과 지속성을 강화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방식에 속한다.
적응 방산은 종이 갈라져서 서로 다른 생태적 지위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분화한 생태적 지위에 따라서, 다른 종보다 강력한 선적응을 획득할 가능성이 더 높은 종도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종은 상대적으로 포식자가 별로 없는 서식지에서 살게 될 수도 있다. 새끼를 절박하게 보호할 필요가 덜하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성 진화 측면에서 답보 상태에 빠지거나 아예 독립 생활 쪽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위험한 포식자가 우글거리는 서식지에서는 진사회성 문턱 가까이 다가가서,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면, 진사회성 진화에 대한 완전한 이론은 실험으로 입증해야 할 일련의 단계들로 이루어질 것이며, 다음과 같은 단계들이 포함될 것이다.
1. 집단의 형성
2. 집단을 치밀하게 만드는, 최소한이자 필수적인 선적응 형질 조합의 출현. 적어도 동물에게서는 가치있고 방어 가능한 보금자리가 그 조합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 보금자리 의존성은 가족이 원식적인 진사회성 집단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도록 미리 결정한다. 곤충과 다른 무척추동물에서는 부모와 새끼가, 척추동물에게서는 확대 가족이 여기에 해당한다.
3. 집단의 지속서을 빚어내는 돌연변이의 출현. 집단의 지속은 분산 행동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안전한 보금자리는 이 단계에서도 집단의 출현율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남아 있다. 원시적인 진사회성은 스프링으로서 장착된 선적응 때문에 즉시 출현할 수도 있다. 더 이전 단계에서 진화한 이 선적응들은 뜻하지 않게 집단으로 하여금 진사회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4. 곤충에게서 로봇 같은 일꾼의 출현이나 집단 구성원들의 상호 작용에서 나온 창발적 형질들이, 환경의 힘이 가하는 집단 수준의 선택을 통해 다듬어진다.
5. 집단 수준의 선택은 곤충 군체의 생활사와 사회 구조에 변화를 일으키며, 때로는 기이하게 극단으로 치달아 정교한 초유기체를 만든다.
5부.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 본성이란
최근 수천 년 동안 일어나고 있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교과서적인 사례는 성인의 젖당 내성 발달이다. 이전의 모든 인류 세대들에서 젖당을 소화할 수 있는 당으로 전환시키는 효소인 락타아제는 유아에게서만 생산되었다. 아이가 젖을 떼면 몸은 자동적으로 락타아제 생산을 중단한다. 그러다가 9000~3000년 전에 북유럽과 동아프리카의 다양한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목축이 발달했을 때, 우유를 계속 마실 수 있도록 어른이 되어도 락타아제를 계속 생산하게 만드는 돌연변이가 문화적으로 퍼졌다.
근친상간 금기는 보편적인 문화적 특징이다.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수백 개 사회는 모두 사촌끼리의 혼인은 용인하지만, 형제자매와 이복 형제자매 사이의 혼인은 금지한다. 역사 시대에 소수의 사회는 일부 구성원들의 형제-자매 간 근친상간을 제도화했다. 잉카 인, 하와이 인, 타이 인 일부, 고대 이집트 인, 집바브웨의 모노모타파 족, 우간다의 앙칼레 족, 부간다 족, 부니오로 족, 콩고의 니안자 족, 수단의 잔데 족과 실쿠르 족, 다호메안 족이 그렇다. 각 사례에서 그 풍습은 의례를 수반했고, 왕족이나 그 밖의 고위 집단에 한정되었다. 정치 권력은 부계를 통해 대물림되었고, 남자는 아내를 여럿 두는 것이 허용되었기에 근친상간이 아닌 관계로부터도 자식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회들은 근친상간을 엄하게 금한다. 그 문화들은 근친상간으로 결함 있는 아이를 낳을 위험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근친상간의 파괴적인 결과는 인간만이 아니라 식물과 다른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온건하든 심각하든 근친 교배의 결과에 취약한 종들은 거의 다 어떤 식으로든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램된 방법을 사용하여 근친상간을 피한다.
마찬가지로 잘 연구된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두 번째 사례는 색 이름이라는 전혀 다른 범주에 혹한 것이다. 색깔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자연에서 뇌가 소박하게 생각하는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시광선은 연속적인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기에 고유의 색깔같은 것은 전혀 없다. 색깔 지각은 빛 에너지가 원뿔 세포들의 세 가지 다른 색소에 흡수되면서 시작된다.
색깔 지각의 유전적 토대와 그것이 색 이름에 미치는 전반적인 효과를 생각할 때, 형질은 문화마다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웨스터마크 효과와 그것이 빚어내는 근친상간 회피 사례에서는 모든 사회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색 이름은 이것과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몇몇 소수 사회는 색깔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은 채 원시적인 색깔 분류 체계로도 그럭저럭 살아간다. 반면에 기본 색깔을 다시 세기와 색조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세분하는 사회도 있다.
이 세분화된 어휘들의 색깔 간격이 임의로 설정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후속 연구에서 벌린과 케이는 각 사회가 두 가지와 열한 가지 사이의 기본 색 이름을 사용하며, 그 색 이름들의 초점은 먼셀 색 체계에서 파악된 네 가지 기본 색깔 집합들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진화 심리학자들로 인류 문화가 일반적으로 색 이름을 추가할 때 왜 특정한 순서로 색깔 범주들을 선택하는가 하는 질문에 나름대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엿보이는 한 가지 추측은 빨간색이 우위에 있어서, 진화 순서상 일찍 출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설득력 있는 설명은 빨간색과 오렌지색이 나무 열매 특유의 색깔이라는 것이다. 나무 위에 살던 초기 영장류는 거의 갈색과 초록색뿐인 환경에서 이 색깔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일부 종은 사회성을 띄게 되었을 때 자신이 성적으로 준비되었음을 광고하기 위해 이 색깔을 택했다고 한다. 본능 진화의 일반 이론은 빨간색을 비롯한 불그름한 색조가 조상인 구대륙 영장류에게서 의례화되어 시각적 의사 소통에 쓰이게 되었다고 본다.
문화의 문턱
인류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폭넓게 정의한 바에 따르면, 문화는 한 집단을 다른 집단과 구분하는 형질들의 조합이다. 문화 형질은 처음에 한 집단에서 창안되거나 다른 집단에게서 배운 다음에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전파되는 행동이다. 또 대다수 연구자들은 인간의 행동이 훨씬 복잡하다고 해도 동물로부터 인간에게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강조하려면, 문화 개념이 동물과 인간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돌고래는 모든 동물 중에서 원숭이와 유인원 다음으로 지능이 높다. 또 돌고래는 사회적 상호 작용을 할 때 모방 행동, 즉 흉내내기에 열중하는 경향이 있따. 그렇다면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한 돌고래를 비롯한 영리한 고래류는 왜 더 이상의 사회성 진화를 이루지 못한 것일까? 세 가지 이유가 눈에 띈다. 영장류와 달리, 그들은 집이나 야영지가 없다. 그들은 앞발 대신에 지느러미 발이 있다. 그리고 물속에 살기에 그들은 결코 불을 제어할 수 없다.
문화의 정교화는 장기 기억에 의존하며, 인류는 다른 모든 동물보다 이 능력이 더 뛰어나다. 엄청나게 확장된 앞 뇌에 저장된 방대한 양의 기억 덕분에 우리는 탁월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경험한 일들을 회상하고 꿈을 떠올릴 수 있고, 그것들을 원료로 삼아 과거와 미래의 시나리오를 창작한다. 우리는 실제 행동이든 상상한 행동이든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의식하면서 살아간다.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을 가정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칠 수 있기에, 우리는 나중에 올 쾌락을 생각하면서 당장의 욕망을 억누를 수 있다. 장기 계획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잠시만이라도 감정의 충동을 물리칠 수 있다. 개인이 저마다 독특하며 소중한 이유는 바로 이 내면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날 때, 그것은 경험과 상상으로 가득 채워졌던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내가 죽으면 내 기억과 더불어 옛 세계와 그 세계가 품고 있던 방대한 지식도 사라지리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 모든 기억의 그물, 기억의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더라도 그것이 인류의 중요한 일부였다는 것을 안다. 바로 그것이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는 이유다.
과학자들은 뇌가 빈 서판이라는 개념을 버린 지 오래다. 문화의 모든 것이 학습을 통해 뇌에 새겨진다는 이 낡은 관점은 진화가 일군 것이 오로지 엄청난 장기 기억 용량을 토대로 한 비범한 학습 능력뿐이라고 본다. 지금은 다른 관점이 우세하다. 뇌가 선천적으로 복잡한 구조라는 것이다. 뇌가 구축되는 방식의 한 결과물, 즉 그 구조의 한 산물인 의식적인 마음은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복잡한 상호 작용인 유전자-문화 공진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후기 구석기에 인류 문화가 대폭 발전한 것은 서로 다른 영역들에 저장된 기억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형태의 추상 개념과 비유를 생성하는 능력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필적하는 다른 인류 종이기에 모든 면에서 흥미로우며, 우리 종과 비교할 수 있는 진화적 실험 사례이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누구였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왜 더 발전하지 못했는가일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발전을 거듭했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질 무렵에 사피엔스는 경이로운 인지적 성취를 이루었다. 우아한 동굴 예술, 인간의 몸에 사자의 머리를 단 상징을 비롯한 조각상, 뼈피리, 원하는 곳에 불을 피워서 사냥감을 몰아 잡는 행위, 독특한 복장을 한 샤먼이 그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를 이 수준으로 밀어붙인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늘어난 장기기억, 특히 꺼내어 작업 기억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장기 기억과 단기간에 시나리오를 짜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직전과 이후에 유럽을 비롯한 각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 동의한다. 복잡한 문화의 턱밑까지 밀고 간 추진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집단 선택이었을 것이다. 서로 의도를 읽고 협력하는 한편, 경쟁하는 집단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구성원들을 지닌 집단은 그것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집단보다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새 환경으로 진출하고 강력한 적수와 경쟁하는 종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내의 단결과 협동이었다. 다시 말해 도덕, 지도자에 대한 복종, 종교적 열정, 전투 능력이 상상력 및 기억과 결합됨으로써 승자를 낳았다.
언어의 기원
호모 사피엔스는 주의를 공유하는 법을 발전시켰다. 다시 말해 어떤 사건이 일어나거나, 어떤 일을 할 때 남들과 같은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면(혹은 그런 시도를 하려는 남들을 방해하려면) 함께 행동할 필요가 있음을 고도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이론, 즉 자신의 마음 상태를 남들이 공유할 것이라는 인식을 획득했다. 이 자질들이 충분히 계발되었을 때, 오늘날 널리 쓰이는 것들에 상응하는 언어들이 창안되었다.
벌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의 의사 소통과 달리, 인간의 언어는 원격 표상을 할 수 있다. 즉 주변에 있지 않은, 아니 더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사건까지도 가리킬 수 있다. 바로 특정한 단어를 강조하고 흐름을 조절하는 운율을 통해 정보를 추가할 수 있다.
언어는 세대마다 아주 빠르게 변하고, 문화마다 다르기 때문에 유전적 진화가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문장 구조를 규정하는 추상적인 구문 원리들을 비롯한 언어의 임의성과 유전자 표지가 진화를 통해 뇌에 특수한 언어 모형을 구축해 왔다고 기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인간 언어 습득의 유전적 토대는 언어와 공진화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언어의 출현보다 앞서 형성되었다. 다윈이 시사했듯이, 언어와 그 기본 메커니즘이 들어맞는 것은 언어가 인간의 뇌에 들어맞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도덕과 명예의 기원
인간은 본래 선한데 악의 힘이 타락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본래 악하므로, 선의 힘만이 구제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은 양쪽을 다 지닌다. 그리고 우리의 유전자를 바꾸지 않는 한 영원히 그럴 것이다. 딜레마는 다수준 선택을 통해 생겨났다. 즉,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이 한 개인에게 동시에, 하지만 대체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개체 선택은 한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경쟁이 벌어짐으로써 일어난다. 그것은 각 구성원에게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근본저긍로 이기적인 본능을 빚어낸다. 집단선택은 서로에게 이타적인 경향을 띠는(하지만 다른 집단의 구성원에게는 아니다) 본능을 빚어낸다. 개체 선택은 우리가 죄악이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수를 만들어내는 반면, 집단 선택은 미덕의 많은 부분을 형성한다. 둘은 결합되어 우리 본성의 더 못한 부분과 더 잘난 부분 사이에 충돌을 빚어왔다. 개체 선택은 정확히 말하자면, 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경쟁하는 개체들의 차등적인 수명과 번식력을 말한다. 집단 선택은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비롯된, 집단 구성원 사이의 상호 작용 형질을 규정하는 유전자의 차등적인 수명과 평생 번식력을 뜻한다.
진정한 이타성은 부족의 공익을 추구하는 생물학적 본능에 토대를 두며, 집단 선택에서 나왔다. 선사 시대에 이타주의자의 집단이 이기적으로 구는 개인들의 집단보다 우세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우리 종은 호모 오이코노미쿠스(homo oeconomicus,경제적 인간)가 아니다. 우리 인류는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무언가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것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서, 예측 불가능하고 무자비하게 위협적인 세계를, 상충되는 충동들을 지닌 채 헤치고 나아가는 불완전한 존재, 호모 사피엔스이다. 그리고 평범한 이타주의적 본능 너머에는 더 미묘한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본래 덧없는 것이지만 잘만 활용한다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바로 명예심이다. 그것은 타고난 공감 능력과 협동의 본능에서 태어나는 감정이다. 그리고 우리 종족을 구원할 수도 있는 이타성의 마지막 무기이기도 하다.
종교의 기원
1910년 <미국의 과학인>에 실린 조사에 따르면, 위대한(저명한)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에는 인격신을 믿는 사람이 32%로 아직 비율이 높았고, 영생을 믿는 사람이 32%에 달했다. 1933년 조사했을 때에는 신을 믿는 과학자는 13%, 영생을 믿는 과학자는 15%로 줄어들었다. 1998년 미국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엘리트 과학자들의 단체인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들은 거의 다 무신론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이나 영생을 믿는다고 말한 과학자는 10%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중 물리학자는 2%도 채 안 되었다.
모든 종교는 신자들에게 그들이 특수한 집단에 속해 있으며 자신들의 창조신화, 도덕규범, 신에게 받은 특권이 다른 종교들이 내세우는 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가르친다. 외부인에게까지 확장될 때에는 대개 개종시킴으로써 동족과 동맹자의 규모를 늘리기 위함이다. 종교 사이의 갈등은 전쟁의 직접 원인까지는 아니어도 촉진제일 때가 종종 있따. 독실한 신자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 자신의 신앙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의문을 제기하면 즉시 분개한다. 조직 종교의 힘은 진리 추구가 아니라 사회 질서와 개인의 안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토대로 한다. 종교의 목표는 개인을 부족의 의지와 공익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6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과학 지식과 기술은 정보가 측정되는 분야에 따라 10~2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 이 기하 급수적 성장 때문에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은 커녕 10년 이후조차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나름의 방향제시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종으로서의 자기 이해가 딱할 정도로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금으로서는 가지 말아야 할 방향을 고르는 것이 더 나은 목표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두 가지 생물학 법칙에 속박되어 있다. 삶의 모든 실체와 과정이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 삶의 모든 실체와 과정이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물질적 존재 양식을 더 많이 알수록, 가장 복잡한 형태의 인간 행동조차 궁극적으로 생물학적인 것임이 더 명백해진다 그 행동들은 우리 영장류 조상들에게서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한 형질들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 의지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자유의지는 대뇌피질에 독립된 행동이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뇌의 무의식적 의사 결정 중추의 산물이다. 의식의 물질적 과정이 과학 연구를 통해 더 상세히 규정됨에 따라, 자유 의지라고 직관적으로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현상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독립된 존재로서는 자유롭지만, 우리의 결정은 자신의 뇌와 마음을 만들어 낸 모든 유기적 과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결국 생물학적 문제인 듯 하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인류는 단연코 생명의 가장 위대한 성취물이다. 우리를 이렇게 높은 지위로 올려놓은 역동적인 힘은 무엇일까? 답은 다수준 자연선택임이 분명해 보인다.
첫째, 협동, 공감능력, 관계망 패턴을 비롯한 집단 수준의 형질들은 인류에게서 유전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즉 사람마다 어느정도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둘째, 협동과 통합은 경쟁하는 집단들의 생존에 명백히 영향을 미친다.
조직 종교는 출생부터 성숙에 이르기까지, 혼인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통과 의례들을 주재한다. 한 부족이 제공해야 할 최상의 것을 제공한다. 진심 어린 정서직 지원, 환대, 용서를 제공하는 헌신적인 공동체를 말이다. 유일신이든 여러 신들이든 신에 대한 믿음은 지도자 임명, 법 준수, 선전 포고 등 공동체의 행동을 신성화한다. 불멸성과 신의 궁극적인 심판에 대한 믿음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위안을 제공하고, 어려운 시기에 결단력과 용기를 심어준다. 수천 년 동안 조직 종교는 최고의 창작 예술 작품 중 상당수의 원천이 되었다.
그렇다면 신과 조직 종교의 신화에 공공연히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왜 현명하다는 것일까?
그것들이 어리석음과 불화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무지를 부추기고, 현실 세계의 문제를 인정하지 못하게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종종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여 끔찍한 행동을 일으키고는 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편협성은 그 정의상 특정한 신앙에 몰두하는 것이다.
새로운 계몽운동이 필요하다는 또 다른 논거는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든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간에 이 행성에서 우리만이 그렇게 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만이 종으로서의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복해 온 행성은 저 너머 어떤 다른 차원에 있는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들른 정류장 같은 게 아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이자, 앞으로도 인류의 유일한 고향일 곳을 파괴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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