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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Ecomomics

21세기 자본 by 토마 피게티

by hoyony 2018. 10. 19.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글항아리
2014. 09. 12
Thomas Piketty



분배 문제는 중요하다. 단지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1970년대 이후 선진국들에서 소득불평등은 크게 증가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2000년 들어 소득 집중도가 1910년대 수준으로ㅡ사실은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ㅡ되돌아갔다. 그러므로 불평등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는지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수십 년간 나타난 금융, 석유, 부동산 시장의 엄청난 불균형은 자연히 솔로와 쿠즈네츠가 이야기한 균형성장 경로의 필연성에 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2050년이나 2100년의 세계는 상품과 금융거래자들, 최고위 경영자들, 엄청난 거부들의 소유가 될까? 혹은 산유국이나 중국런민은행 손안에 들어갈까? 아니며 이런 주역들이 은신처로 찾는 조세피난처에 넘어갈까?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하지 않은 채 단순히 장기적으로 성장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루리라고 처음부터 가정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연구의 주요 결과

1) 부의 분배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불평등의 역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행위자들이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부당한지에 대해 형성한 표상들, 이 행위자들 사이의 역학관계,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되는 집합적 선택들에 의존한다.

2) 부의 분배의 동학이 수렴과 양극화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을 가동시킨다는 것, 그리고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힘이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막는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과정은 없다는 것이다.

지식과 기술의 확산은 국가 내, 국가 간 불평등을 줄일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산성을 제고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메커니즘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금 중국을 비롯해 예전에 가난했던 신흥국들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개발 국가들은 부유한 국가들의 생산 방식을 채택하고 다른 국가들과 견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생산성 면에서 약진하고 국민소득을 늘려왔다. 기술적인 수렴과정은 무역을 위해 국경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촉진할 수도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이 아니라ㅡ탁월한 공공재인ㅡ지식의 확산과 공유의 과정이다.

내가 r>g라는 부등식으로 표현할 이 근본적인 불평등은 이 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여기서 r은 연평균 자본수익률을 뜻하며, 자본에서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기타 소득을 자본총액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g는 경제성장률, 즉 소득이나 생산의 연간 증가율을 의미한다)

19세기 이전의 역사에서 대부분 그랬고 21세기에 다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듯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 때는, 논리적으로 상속재산이 생산이나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에서 얻는 소득의 일부만 저축해도 전체 경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늘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상속재산이 노동으로 평생 동안 쌓은 부를 압도할 것이고 자본의 집중도는 극히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집중도는 능력주의의 가치, 그리고 현대 민주사회의 근본이 되는 사회정의의 원칙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제1부. 소득과 자본

제1장. 소득과 생산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 : α = r × β

자본/소득비율 β는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을 지칭하는 α, 즉 자본소득 분배율과 간단한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r은 자본수익율rate of return on capital을 말한다.

자본수익률은 법적형태(이윤, 임대료, 배당금, 이자, 로열티, 자본이득 등)와 상관없이 해당 연도에 자본이 거둬들인 수익을 측정하며, 투자된 자본가치에 대비한 백분율로 나타낸다.

β는 논의대상이 되는 사회가 얼마나 자본집약적인지를 측정하는 수단이 된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추가적인 관계들, 특히 저축률과 투자율 및 성장률을 도입해야 한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저축률이 높고 성장률이 낮을수록 자본/소득 비율은 높다는 법칙이다.

국민계정 : 진화하는 사회적 개념

1940년대 이래 통계 작성의 주요 목적은 대공황이라는 충격적 경험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당시 각국 정부는 신뢰할 만한 경제적 생산의 연간 추정치를 갖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경제를 적절히 운용하고 대공황과 같은 재난 재발을 막기 위한 통계와 정책적 도구들이 필요했다. 이들 정부는 생산과 소득의 연간 자료, 심지어 분기별 자료를 강력히 요구했다. 1914년 이전 그토록 대단한 것처럼 여겨졌던 국부에 대한 추정치의 중요성은 이제 뒷전으로 밀려났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부의 회계wealth accounting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여러 선진국의 통계 기관은 중앙은행과의 협력 아래 일반적인 소득과 생산에 관한 자료 외에도 다양한 집단의 자산과 부채에 대한 연간 자료를 모아 발표했다. 이러한 국부 통계는 완벽함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예를 들어 천연자원과 환경이 입은 피해는 제대로 계상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로지 끝없는 생산의 성장에만 관심이 있었던 전후 시기 초기부터 만들어진 국민계정과 비교하면 실질적인 발전을 의미한다.

국민계정의 짧은 역사를 살펴보면 국민계정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국민계정은 언제나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선입견을 반영한다. 한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유로라고 할 때, 이 숫자는 다른 모든 경제 및 사회 통계가 그렇듯이 확실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추정치이자 구성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저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추청치에 불과하다. 이것은 전혀 다른 출처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놓은, 제한적이면서 불완전한 조사 도구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국민계정은 추가적인 역사적 자료와 분배에 관한 자료가 완벽히 준비됐을 때에만 우리 분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글로벌 불평등 : 월소득 150유로부터 3000유로까지

국가 사이의 불평등(혹은 서로 다른 시기 사이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것은 항상 한 국가 안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구매력평가가 아니라 시장환율을 적용하면 글로벌 불평등은 현저하게 더 커질 것이다. 구매력평가환율 방식의 또 다른 장점은 시장환율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라는 데 있다. 실제로 시장환율은 각 국가의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 및 공급뿐만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통화정책은 물론이고, 국제 투자자들의 갑작스런 투자 전략 변화 그리고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급변하는 평가를 반영한다. 시장환율은 변동성이 극도로 심하다. 가난한 국가들의 경우, 구매력평가방식에 따른 수정폭이 훨씬 크다. 이는 주로 국제적으로 교역이 불가능한 상품이 많고 서비스의 가격이 낮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이들 상품과 서비스가 일반적으로 (후진국들에서는 비교적 구하기 힘든) 숙련노동과 자본이 아닌, 비교적 노동집약적인 방식과 비숙련노동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소득 분배가 생산 분배보다 더 불균등하다

1인당 생산이 가장 높은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의 자본 일부를 소유함으로써 1인당 생산이 낮은 국가들에서 생기는 자본소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은 자국 내에서 더 많이 생산하고, 해외로 더 많이 투자함으로써 2배로 부유해지기 때문에 그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1인당 생산보다 더 크다.

어떤 힘들이 수렴을 유발하는가

이론적으로는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국가들의 자본 일부를 소유한다는 사실은 수렴을 촉진하여 선순환 효과를 낼 수 있다. 부유한 국가들의 저축과 자본이 넘쳐나서 신규 주택을 짓거나 새 기계류를 구입할 이유가 별로 없다면(이런 경우 경제학자들은 자본의 한계생산성, 즉 새로운 자본 한 단위의 증가가 가져오는 추가적인 생산의 증가가 매우 낮다고 말한다) 국내 저축을 해외의 가난한 국가들에 일부 투자할 경우 양측 모두에게 효율적일 수 있다. 잉여자본을 소유한 부유한 국가의 국민은 해외로 투자해 더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리고 가난한 국가들은 생산성 제고를 통해 그들과 부유한 국가 사이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고전파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과 자본의 한계 생산성 균등화에 기초한 이러한 메커니즘은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를 서로 수렴시키며, 궁극적으로 시장의 힘과 경쟁을 통해 불평등을 감소시켜야 한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국가들은 자유로운 해외자본의 흐름보다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개방 및 유리한 교역 조건으로 인해 훨씬 더 큰 혜택을 입었다. 자유무역을 통해 얻는 이득은 분업화와 관련된 매우 미약해 보이는 정태적인 이득으로부터가 아니라, 주로 지식의 확산 및 국경 개방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형성된 생산성의 향상으로부터 나온다는 시실을 보여준다.

제2장. 성장 : 환상과 현실

현대의 경제성장이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발현시켜주는 경이로운 수단이라는 통념은 경계해야 한다. 이런 관점은 어느 정도는 옳지만, 바로 그런 생각이 19세기 초 이후의 온갖 불평등ㅡ그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하든 그리고 불평등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이든 상관없이ㅡ을 정당화하는 데 상당히 자주 이용되었으며, 동시에 상상 가능한 온갖 미덕을 들어 새로운 산업경제의 승자들을 미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우월한 능력이 모든 것을 위대하고 유용하게 하는 원천이다.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면 모든 것은 정체되고 만다.” 오늘날 우리는 때로 이와 같은 생각이 담긴 말을 듣게 되는데, 즉 새로운 정보기술 덕분에 가장 재능 있는 이들이 생산성을 몇 배로 높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흔히 극심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승자들의 특권을 지키는 데 이용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30~60년의 기간을 보면 연 0.1% 성장률(한 세대에 3%)과 연 1% 성장률(한 세대에 35%) 혹은 연 3%(한 세대에 143%)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성장률 통계가 매우 장기적으로 작성되어 소득 증가 배수가 아주 높아질 때, 성장률 수치는 그 의미를 부문적으로 상실하고 비교적 추상적이며 자의적인 숫자가 되어버린다.

성장 : 다양해지는 생활양식

경제를 1차 산업, 2차 산업, 3차 산업의 세 부문으로 구분하는 것은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개념인데, 당시 사회에서는 이들 각 부문이 동질적이거나 적어도 비슷한 경제활동과 인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70~80%의 노동인구가 서비스부문에 종사하게 되면서 이 범주는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고, 어떤 사회의 상거래와 서비스의 속성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하게 되었다.

첫째 대부분 선진국의 총고용에서 20% 이상을 차지하는(또는 고용 비중 면에서 모든 제조업 부문을 합한 것과 맞먹는) 의료와 교육 분야. 다음으로 호텔, 까페, 식당과 같은 소매업과 문화, 레저활동 분야로 전체 고용의 20%를 차지한다(몇몇 국가에선 25%). 기업에 대한 서비스(컨설팅, 회계, 디자인, 데이터 처리 등), 부동산과 금융서비스업(부동산중개업, 은행, 보험), 운송업이 또한 전체 고용의 20%를 차지한다. 여기에 더해 정부와 치안서비스(일반행정, 사법, 경찰, 군대)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거의 10%의 고용을 차지한다. 이를 합하면 공식 통계에서 서비스부문은 전체 고용의 70~80%에 이른다.

제2부.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

제3장. 자본의 변신

부의 속성 : 문학에서 현실까지

자본은 결코 조용한 법이 없다. 자본은 적어도 형성기에는 언제나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축적되면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본의 사명이자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의 사회적 불평등과 발자크 및 오스틴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이 아주 다르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게 될까? 현대의 자본이 더 역동적이며 지대 추구의 속성은 약해졌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설명할 만한 객관적인 요인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영국과 프랑스에서 자본의 변신

자본/소득 비율은 우리가 막 지나온 세기에 걸쳐 안정적인 U자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자본/소득 비율은 1914~1945년 거의 3분의 2나 떨어졌다가 1945~2012년 다시 2배 상승했다. 이는 20세기를 특징짓는 폭력적인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갈등에 따른 엄청난 변동이다. 결국 2010년이 되자 자본/소득 비율은 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자본총량을 국민소득이 아닌 가계가처분소득으로 나눌 경우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1950년대에 시작된 과정이 완결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영국과 프랑스가 20세기 초 이후 볼 수 없었던 수준의 높은 부를 다시 쌓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세기 중반에 자본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반세기가 조금 더 지난 지금, 자본은 다시 18,19세기와 같은 수준으로 되돌아가려는 듯 보인다. 부는 다시 번창하고 있다.

국민총자본 = 농경지 + 주택 + 기타 국내자본 + 순해외자본

18세기에는 농업이 모든 경제활동과 고용의 거의 4분의 3을 차지했지만 현재는 겨우 몇 %에 불과하다. 국민소득과 국민총자본에 비해 급락한 농경지의 가치를 상쇄한 것은 먼저 주택 가격의 상승이다. 18세기, 겨우 한 해 국민소득에 해당되는 수준이었던 주택가격은 오늘날 국민소득의 3배 이상으로 올랐다. 이 장기간에 걸친 구조적 변화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반영한다. 하나는 경제와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갈수록 주택이 규모뿐만 아니라 질과 가치 면에서도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산업혁명 이후 기업과 정부 기관이 비농업 분야의 온갖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업용 건물, 설비, 기계, 창고, 사무실, 장비 그리고 물질적, 빗물질적 자본이 대규모로 축적되었다는 사실이다. 자본의 성격은 변했다. 과거에 주로 토지였던 자본은 이제 부동산, 산업 및 금융자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중요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

공공부채는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

19세기에는 채권자가 부채에 대한 두둑한 이자를 받아 사적인 부를 늘릴 수 있었던 반면, 20세기에 들어서 부채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치가 하락했고 가치가 줄어든 화폐로 지불되었다. 이런 상황은 실제로 그만한 세금 인상 없이 국가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재정적자를 메우도록 해주었다.

1913년~1951년 프랑스의 인플레이션은 연평균 13% 이상이었는데, 이 기간 전체로 보면 물가가 100배 상승했음을 의미했다. 1950년에 이르러 그 국채의 구매력은 과거의 100분의 1이 되었고, 그 결과 1913년의 자본소득자와 그 후손들은 사실상 가진 게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 편안한 자본소득자의 시대부터 20세기 인플레이션이 재산을몰수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길고 격동적인 공공부채의 역사는 그 시대의 집단적인 기억과 논의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20세기 자본이 받은 충격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한 재정적, 정치적 충격은 전쟁이 가져온 파괴보다도 자본에 훨씬 더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리적 파괴와 더불어 1913년부터 1950년까지 자본/소득 비율의 급격한 하락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해외자산 가치의 급락과 그 당시의 특징인 매우 낮은 저축률이고(이 두 가지가 물리적 파괴와 합쳐져서 비율 하락의 3분의 2에서 4분의 3을 설명한다), 다른 하나는 소유권 변화와 규제 등 전후의 새로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낮은 자산 가격이다(이는 비율 하락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해외자본의 감소는 부분적으로 혁명과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나타난 강제수용(벨 에포크 시대 프랑스인들이 저축한 돈을 투자했으나 1917년 볼셰비키들이 무효화한 대 러시아 대출이나 1956년에 나세르가 국유화한 수에즈 운하를 생각해보라. 이로 인해 1869년부터 이 운하를 소유해 배당금과 운하 이용료를 챙기던 영국과 프랑스의 주주들은 커다란 손해를 입었다), 그리고 더 많은 부분은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 매우 낮은 저축률ㅡ이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의 저축인들은 자신들의 해외자산을 점차 처분해야 했다 ㅡ로 설명될 수 있다.

게다가 1930년대에는 대공황이 밀어닥쳐 기업들이 하나둘 계속해서 파산하자 수많은 주주와 채권자가 함께 몰락했다.

1913년에서 1950년 기간 자본/소득 비율의 하락은 유럽의 자살과도 같은 역사였으며, 특히 유럽 자본가들에게는 안락사나 다름없었다. 낮은 자본/소득 비율은 부분적으로는 자산의 시장가치와 그 소유주의 경제력을 줄이려는 계획적인 정책 선택이 반영됐다.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 : β = s/g

장기적으로 자본/소득 비율 β와 저축률, 성장률 g의 관계는 단순하고 명백하다. 즉 한 국가가 매년 소득의 12%를 저축하고 국민소득 성장률이 연간 2%라면 장기적으로 자본/소득 비율은 600%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그 국가는 국민소득의 6배에 해당되는 자본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저축을 많이 하고 느리게 성장하는 국가는 장기적으로 (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대한 자본총량을 축적할 것이고, 이는 사회 구조와 부의 분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시 말해 거의 정체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과거에 축적된 부가 필연적으로 엄청난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다. 따라서 18, 19세기에 관찰된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21세기에 자본/소득 비율이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회귀한 것은 저성장 체제로의 회귀로 설명될 수 있다. 이처럼 성장 둔화, 특히 인구 성장의 둔화는 자본이 귀환하는 원인이다.

제1기본법칙인 α = r × β에 따르면,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 α는 평균 자본수익률 r과 자본/소득비율 β를 곱한 값과 같다. 사실 α = r × β는 법칙이라기보다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의 정의로 볼 수 있다. 반면 β = s/g법칙은 동태적인 과정의 결과다. 왜냐하면 이 법칙은 저축률이 s, 성장률이 g라고 할 때 경제가 도달하려는 경향이 있는 균형 상태를 나타내지만, 실제로 균형 상태는 결코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β = s/g법칙은 인간이 축적할 수 있는 형태의 자본에 초점을 맞출 때에만 유효하다. 국민총자본의 상당 부분이 순수한 천연자원, 즉 그 가치가 인간이 개발하거나 과거에 투자한 것과 관련이 없는 천연자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β는 저축의 기여 없이도 매우 높을 수 있다.

부유한 국가들의 자산 민영화

1970년과 2010년 사이에 부유한 국가들, 특히 유럽과 일본에서 나타난 민간자산의 급격한 증가는 β = s/g 법칙을 적용하여 성장률 둔화와 지속적으로 높은 저축률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강화시킨 서로 다른 두 가지 보완적 현상이 있다. 공공자산이 민간으로 서서히 이전된 민영화 현상과 장기간에 걸친 자산 가격의 따라잡기 현상이다.

자산가격의 역사적 반등

계속 반복되는 중단기적 거품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추세 이탈의 가능성을 차치하면 자본 가격은 언제나 어느 정도는 사회정치적 결과이다. 자본 가격은 한 사회의 재산 개념을 반영하고 다양한 관련 사회집단 ㅡ특히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ㅡ간의 관계를 조정하는 정책과 제도에 좌우된다. 예를 들어 건물주와 임차인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고 임대료를 규제하는 법에 좌우되는 부동산 가격의 경우 이러한 점이 분명하다.

제6장. 21세기 자본-노동의 소득분배

자본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

자본수익률은 두 가지 힘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는 기술(자본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이고 둘째는 자본총량의 규모다(너무 많은 자본은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린다)

모든 문명사회에서 자본은 두 가지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자본은 주택을 제공한다. 좀 더 엄밀히 말해서 자본은 주거서비스를 창출한다. 이것의 가치는 동등한 주택의 임대가치에 의해 측정되며, 밖에서 자는 것에 비해 집 안에서 잠자고 생활함으로써 발생하는 안락함의 증가분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둘째, 자본은 다른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생산요소(생산과정에 필요한 토지, 도구, 건물, 사무실, 기계, 사회기반시설, 특허 등)의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초기 자본축적의 형태는 도구(부싯돌 등)와 토지의 개선(울타리, 관개시설, 배수시설 등) 그리고 초보적 형태의 주거시설(동굴, 천막, 오두막 등)과 관련이 있었다.

만약 생산함수의 계수가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면 대체탄력성은 제로다. 즉 농부에게는 더도 덜도 아닌 1헥타르의 농지와 하나의 도구만이 필요하다. 반대로 대체탄력성이 무한대라면 자본(그리고 노동)의 한계생산성은 이용 가능한 자본과 노동의 양으로 완전히 독립적이다. 특히 자본수익률이 고정되어 있고 그것이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이 경우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면 언제나 고정된 비율로, 예를 들어 추가적인 자본은 한 단위당 연5% 혹은 10%라는 식으로 생산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을 더 추가하는 것만으로 마음대로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완전히 자동화된 경제를 생각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큰가, 아니면 작은가 하는 것이다. 대체탄력성이 0과 1사이라면 자본/소득 비율 β의 증가는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충분히 감소시켜 자본의 몫 α = r × β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면 자본/소득 비율 β의 증가는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제한적으로 감소시켜 자본의 몫 α = r × β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탄력성이 정확히 1이라면 이 두 효과가 상쇄된다.

21세기 자본-노동의 대체 : 1보다 큰 대체탄력성

만약 21세기 성장이(특히 인구 성장이) 둔화된다면, β의 상승세는 세계 곳곳에서 확산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추세는 아마도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인 α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분명히 바존수익률 r은 β가 증가함에 따라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결국 물량효과가 가격효과를 능가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이는 자본축적의 효과가 자본수익률 하락의 효과를 능가할 것임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와 이윤율의 재검토

마르크스에게 “부르주아는 제 스스로 무덤을 판다”라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은 ‘무한 축적의 원리’였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증가하는 자본을 축적하는데, 이는 결국 참담한 이윤율, 즉 자본수익률의 하락으로 이어져 마침내 그들 스스로 몰락한다는 것이다.

구조적 성장이 없고 생산성과 인구증가율의 합인 g가 제로일 경우, 마르크스가 묘사했던 것과 아주 유사한 논리적 모순에 처하게 된다. 저축률 s가 플러스가 되는 순간부터, 즉 자본가가 권력을 키우고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삶의 수준이 이미 풍족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매년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순간부터, 자본/소득 비율은 무한대로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g가 제로에 가까우면 장기적으로 자본/소득 비율 β =s/g는 무한대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β가 극도로 커지면 자본수익률 r은 점점 더 낮아져 제로에 근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 α는 결국 전체 국민소득을 잠식해버릴 것이다.

제3부. 불평등의 구조

제7장. 불평등과 집중 : 기본적인 지표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 : 온건한 불평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를 포함해 오늘날 임금불평등이 평균 수준인 국가들에서는 상위 10%가 총임금의 25~30%, 하위 50%가 약 30%를 받는다. 그리고 2010년대 초의 미국처럼 가장 불평등한 국가들에서는 상위 10%가 총임금의 35%를 버는 반면, 하위 50%에게는 겨우 25%만 돌아간다. 다시 말하면, 두 집단 간의 균형이 거의 바뀐 셈이다. 가장 편등한 사회에서는 하위 50%의 총노동소득이 상위 10%의 거의 2배다.(어떤 사람들은 이 비율이 그럼에도 무척 낮다고 생각한다. 하위 50%에 속하는 인구가 상위 10%의 5배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장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하위 50%의 총노동소득이 상위 10%의 2/3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진행된 노동소득의 편중이 계속해서 심화된다면, 2030년에는 하위 50%가 받는 보수 총액이 상위 10%의 절반에 불과하게 될 수도 있다.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 : 극심한 불평등

부가 가장 평등하게 배분되는 사회(이번에도 1970~1980년대의 스칸다나비아 국가들)에서는 재산이 가장 많은 사람들의 부를 제대로 고려한다면, 가장 부유한 10%가 국부의 절반가량 혹은 50~60%를 소유한다. 2010년대 초인 현재 대부분의 부유한 유럽국가, 특히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부유한 10%가 국부의 약 60%를 소유하고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사회들 모두에서 인구의 절반이 거의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가난한 50%는 예외 없이 국부의 10% 이하를 소유하며, 일반적으로 5% 이하를 소유한다. 이용 가능한 최근(2010~2011)의 데이터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부의 62%를 장악한 반면 가장 가난한 50%는 고작 4%를 소유한다. 같은 시기를 다른 연방준비은행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상위 10%가 국부의 72%를, 하위 50%는 고작 2%를 소유한다.

인구 절반에게 있어 부와 자본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추상적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부란 당좌예금 계좌나 저금리 보통예금에 들어 있는 몇 주 분의 임금, 자동차, 약간의 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부의 분배에서 상위 10%에 속하는 계층 내에서도 극도로 불평등한 양상이 나타나는데, 그 불평등 정도가 임금 분포에서의 상위 10%보다 훨씬 더 심하다. 오늘날 유럽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상위 10%가 전체 부의 약 60%를 차지할 때 일반적으로 상위 1%가 약 25%, 다음 9%가 약 35%를 차지한다. 따라서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대체로 25배나 부유한 반면, 그다음 9%에 속하는 사람들은 겨우 4배 더 부유하다. 구체적인 수치로 환산하자면, 상위 10%에 속하는 개인들의 평균적인 부는 1인당 120만 유로인데, 여기서 상위 1%는 500만 유로에 이르고, 그 다음 9%는 80만 유로에 약간 못 미친다.

더구나 부의 구성 요소도 집단마다 크게 차이가 난다. 상위 10%에 속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부의 계층 구조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부동산의 중요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약 100만 유로의 부를 가진 9%집단에서는 부동산이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일부 개인에게서는 3/4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상위 1% 집단에서는 금융자산 및 사업자산이 부동산ㄴ보다 분명하게 두드러진다. 특히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소유한 부는 거의 전부가 주식이나 합자회사 지분이다. 주택은 중산층과 적당히 잘 사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 대상이지만, 진정한 부를 주로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금융자산 및 사업자산이다.

제8장. 두 개의 세계

프랑스의 경우 소득불평등의 축소가 매우 뚜렷한 시기, 즉 1914~1945년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 속에 상위 10%와 상위 1%의 소득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모두 최하위점에 이른 뒤 결국 전쟁 시기의 극심한 충격으로부터 결코 회복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 불평등을 감소시킨 요인은 상당 부문 전쟁의 혼란과 그에 뒤따른 경제적, 정치적 충격이었다. 20세기에 과거를 지우고 사회가 새로 출발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조화로운 민주적 혹은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바로 전쟁이었다.

이 충격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한 파괴, 대공황이 불러온 파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시행된 모든 새로운 공공정책(임대료 규제 정책부터 국유화, 국채에 기초하여 생활하던 자본소득자 계층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안락사에 이르기까지)이다. 이 모든 것이 1914년~1945년 사이에 자본/소득 비율을 급격하게 떨어뜨렸고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감소시켰다.

불평등의 증가가 금융위기를 불러왔을까?

미국 국민소득에서 사위 10%가 차지하는 몫이 지난 세기에 두 번, 즉 1928년(1929년 증시 대폭락 직전)에 한 번, 2007년(2008년 증시 대폭락 직전)에 다시 한번 정점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불평등의 증가가 미국의 금융 불안정에 한몫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평등의 증가의 결과로 미국의 하류층과 중산층의 구매력이 거의 정체되었고 그리하여 평범한 가구가 빚을 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특히 규제에서 자유로워진, 그리고 부유층이 금융시스템에 투입한 거대한 저축으로부터 높은 수익률을 얻고자 갈망했던 비양심적인 은행과 금융기관들이 점점 더 관대한 조건으로 신용을 제공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1970년대 이후 국민소득에서 상당 부분이(대략 15%p)가 하위 90%에서 상위 10%에게로 이전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융위기 전의 30년 동안, 즉 1977년에서 2007년까지 미국의 경제성장을 검토해보면 가장 부유한 10%가 전체 성장의 3/4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에 가장 부유한 1%가 미국 국민소득 증가분의 거의 60%를 흡수했다. 따라서 하위 90%의 소득증가율은 연 0.5% 이하였다.

소득세 신고에 나타난 소득과 기업의 보수 기록을 연결시킨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2000~2010년에 소득계층 상위 0.1%의 대다수(어떤 정의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60~70%)가 최고위 경영자들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온갖 운동선수, 배우, 예술가들은 이 집단의 5%도 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새로운 불평등은 슈퍼스타보다 슈퍼경영자의 등장과 훨씬 관련이 높았다.

소득이 매우 높은 집단의 구성원들 중(은행 및 기타 금융기관들의 경영자들과 트레이더들을 포함) 금융 전문가들의 비중이 전체 경제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의 약 두 배라는 점도 흥미롭다.(이들은 소득 상위 0.1%의 약 20%를 차지하는 반면 금융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상위 소득집단의 80%는 금융업 종사자가 아니면 소득이 높은 미국인들의 몫의 증가는 금융 부문뿐 아니라 비금융부문에 속한 대기업 최고위 경영자들이 받는 보수의 급상승으로 주로 설명된다.

제9장. 노동소득의 불평등

임금불평등 : 교육과 기술 간의 경주?

궁극적으로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을 줄일 뿐 아니라 노동력의 평균 생산성과 전체적인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세기에 임금의 구매력이 다섯 배 증가했다면, 이는 노동력의 기능 향상이 기술 발전과 결합하여 1인당 생산을 5배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교육과 기술은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프랑스가 질적으로 높은 전문교육과 고등교육 기회에 대한 투자를 늘려서 더 많은 인구가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급여 체계의 최저에서부터 중간 단계의 끝에까지 위치한 임금을 상승시키고 임금과 총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몫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될 것이다. 모든 징후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임금불평등이 다른 지역보다 심하지 않은 데에는 교육제도가 비교적 평등하고 포용적이라는 사실이 큰 몫을 했음을 알려준다.

고용주들이 노동자들보다 협상력이 더 크고, 가장 단순한 경제모델에서 발견되는 순수하고 완전한 경쟁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임금에 규칙을 부과해 고용주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지역 노동시장에서 소규모 고용주 집단이 수요를 독점하고 있다면, 즉 지역 노동력의 이동성이 제한되어 있는 등의 이유로 이 집단이 사실상 유일한 고용 창구일 경우, 이들은 가능한 한 임금을 낮춰 자신들의 우위를 악용하려 할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노동자의 한계생산성보다 임금을 더 낮출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기준을 부과하면 경제는 경쟁적인 균형에 더 가까워질 수 있고 고용 수준을 높인다는 점에서 공정할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경쟁을 바탕으로 한 이 이론 모형은 최저임금제를 정당화하는 가장 명확한 근거다.

임금을 인상하고 궁극적으로 임금불평등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ㅂ은 교육과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최저임금과 임금제도가 임금을 5배나 10배로 높이진 못한다. 그러한 수준의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과 기술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교육과 기술의 상대적인 발전이 정해주는 기간 내에서는 노동시장의 규칙들이 임금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슈퍼경영자들의 도약 : 강력한 양극화 요인

한계생산성 이론, 기술과 교육 간의 경주 이론은 임금 분포의 장기적인 변화 양상에 대해 적어도 어떤 수준의 급여까지는, 그리고 어느 정도의 정확성 내에서는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한다. 기술과 기능은 대부분의 임금 결정에 한계를 설정해준다. 그러나 특정 직무, 특히 대기업 고위경영진의 직무는 대체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주어진 직무의 생산성 측정에 오차가 더 커진다. 그러면 기능-기술 논리의 설득력이 약해지고 사회 규범 논리의 설득력이 커진다.

기업지배구조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경영진이 받는 극도로 높은 급여를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합리적인 것으로 정당화할 수 없음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증거는 개별 기업의 데이터를 수집했을 때(모든 부유한 국가의 상장기업에 대해 이런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관찰되는 급여의 변화를 기업 성과의 변화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매출액 증가, 이익 등 다양한 성과 지표들을 살펴보았을 때 관찰되는 변화는 다른 변화들을 합한 것이다. 즉 이는 기업 외부적 요인(전반적인 경제 상태, 원자재 가격 쇼크, 환율 변동, 같은 부문 내 다른 기업들의 평균적인 성과 등)으로 인한 변화에 비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변화로 나누어질 수 있다. 기업 경영자들의 결정으로 중대하게 영향을 받는 것은 후자뿐이다. 경영진의 급여가 한계생산성으로 결정된다면, 기업 성과의 변화는 외부적 요인과 거의 관련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영진의 급여가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매출과 이익이 증가할 때다. 미국 기업들에서 특히 이런 현상이 뚜렷한 데 이를 행운의 보수라고 부른다.

제10장. 자본 소유의 불평등

노동력이 보수가 낮은 직업에서 높은 직업으로 점진적이고 기계적으로 이동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쿠즈네츠의 이론에서 낙관적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였다. 총소득 불평등이 급격히 완화된 것은 본질적으로 자본으로 인한 고소득의 급속한 감소 때문이었다.

부의 양극화 메커니즘 : 역사 속 자본수익률 대 성장률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모든 사회에서 대체로 부가 과도하게 집중된 주된 원인은 이 사회들이,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지속적으로 현저하게 높은 저성장사회였기 때문이다. g가 1%이고 r이 5%일 경우, 자본소득이(5분의 4는 소비하면서) 5분의 1을 저축하면 이전 세대에서 물려받은 자본이 경제성장과 같은 비율로 증가하도록 하는 데는 충분하다. 해마다 들어오는 임대 수입보다 조금 적은 소비를 하면서도 잘살 수 있기 때문에 저축을 더 하게 되면 재산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고 노동소득 없이도 부의 불평등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정확히 수학적인 이유로 이는 상속사회가 번창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이다.

자본수익률은 왜 성장률보다 높은가

인류 역사의 오랜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은 사실상 제로였다.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을 결합시켜 보면, 고대에서 17세기까지 연간 성장률은 오랫동안 0.1~0.2%를 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불확실한 많은 면이 있지만, 자본수익률이 항상 이보다는 상당히 더 높았다. 장기적으로 관찰되는 대푯값은 1년에 4~5%다. 특히 매우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토지수익률이 이 정도였다.

완전 자본시장(각 자본소유자가 경제 내에서 실현 가능한 최고의 한계생산성과 동일한 수익률을 얻고,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이자율로 원하는 만큼 돈을 빌릴 수 있는 시장)의 존재에 기초한 표준 경제모형에서 자본수익률 r이 구조적, 필연적으로 성장률 g보다 높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r이 g보다 낮으면 경제 주체들은 자신(그리고 후손들)의 미래 소득이 이자율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임을 알아차려서 자신이 무한히 부유한 것처럼 느낄 것이고, 따라서 (r이 g보다 높아질 때까지) 즉각적인 소비를 위해 무한정 돈을 빌리려고 할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형태에서는 이 메커니즘이 전적으로 타당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표준 경제모형에서 r>g가 성립되고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r>g의 성립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많은 전통적인 귀족사회는 장자상속 원칙에 기초해 있었다. 가산이 쪼개지는 대신 유지되거나 늘어나게 하기 위해 장남이 가족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다. 장남의 특권은 가족의 가장 중요한 상속재산과 관련되어 있었고, 물려받은 재산에는 종종 심한 제약이 가해졌다. 상속인은 재산의 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안 되고 자본소득으로 생활해야 했으며, 재산은 다시 승계 서열의 다음 상속인, 보통은 장손에게 전달되었다. 영국의 법에서 이런 원칙이 반영된 부분이 ‘상속권자 지정제도’였다. (이와 상응하는 프랑스 법은 앙시앵레짐 시대의 ‘대리 상속인 지정제도’다)

오늘날 부가 과거만큼 불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1945년 이후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1900~1910년에 관찰된 매우 높은 부의 집중은 장기간 큰 전쟁이나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금이 없었거나 거의 없었던 결과다.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자본소득이나 기업 이윤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드물게 세금이 부과된 경우라도 세율이 아주 낮았다. 따라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해 물려주고, 그런 재산에서 얻은 소득으로 생활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20세기에는 지대, 이자, 이윤, 임대료에 다양한 세금이 부과되었고, 그리하여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자본소득에 부과된 세금의 효과는 부의 전체적인 축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부의 분배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역사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이론 모형에서 보면,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이 0%에서 30%로 올라도(자본에 대한 순수익률이 5%에서 3.5%로 줄어도) 장기적으로 자본총량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위 1%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몫의 감소가 중산층의 부상으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2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20세기에 최대 규모의 상속세와 함께 누진세, 즉 최상위 소득과 최상위 자본소득에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세금이 강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적 성장의 특징이나 시장경제 법칙과 같은 어떤 것이 부의 불평등을 줄이고 조화로운 안정을 달성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21세기에는 상속액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저축에서 연력집단 사이의 차이는 훨씬 적다. 대략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연령과 관계없이 평균적으로 비슷한 비율로 저축을 한다. 특히 아무리 기대수명이 높아져도 저축 생애주기 이론의 예측과는 달리 노인층이 거액의 예금을 인출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틀림없이 가족에 대한 상속 동기에 잇다. 또한 부가 가져다주는 ㅡ단지 위신이나 권력만이 아니라ㅡ안전하다는 느낌과 순수한 축적의 논리도 이와 관계가 있다. 1950~1960년 이후 왕조적 형태의 부의 불평등이 서서히 다시 나타나는 것은 노년층이 예금을 거의 인출하지 않는 현실을 설명해주며 따라서 높은 상속액이 지속되고 새로운 균형이 영속화되는 것을 설명해준다.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프랑스에서는 상속자산이 민간자본의 약 2/3를 차지한 반면 저축으로 축적한 자본은 1/3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매우 큰 상속액을 감안하면 현재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향후 수십 년간 상속자산의 비율이 계속 증가해 2020년에는 70%를 넘어서고 2030년에는 80%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성장률이 1%, 자본수익률이 5%라는 시나리오가 정확하다면 상속자산의 비율은 계속 상승해 2050년에는 벨 에포크 시대와 거의 같은 수준인 90%에 이를 수 있다.

소자본소득자들의 사회

2010년대의 프랑스에서 상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속자본의 분배가 변했을 뿐이다. 오늘날 프랑스에는 막대한 상속자산이 19세기보다 줄었다. 그러나 상속자산의 총규모는 이전의 수준을 거의 되찾았다. 상속인이 직없 없이 이자만으로 살 수 있기에는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구가 평생 일해서 버는 돈과 비교하면 상당한 액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소수로 이루어진 아주 부유한 자본소득자의 사회에서 훨씬 더 많은 수의 덜 부유한 자본소득자의 사회로 옮겨왔다. 말하자면 자본소득자들의 사회인 셈이다.

자본소득자, 민주주의의 적

격차를 확대하는 근본적인 힘은 r>g라는 부등식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것은 시장의 불완전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시장이 더 자유로워지고 경쟁이 강화되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제한적인 경쟁이 상속을 없애고 능력이 더욱 중시되는 사회를 향해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한 착각이다. 보통선거권이 생기고 투표 시 재산에 대한 자격이 없어지면서(19세기에는 투표권이 최소한의 자산 요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에게 제한되었다. 일반적으로 1820~1840년에 프랑스와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1~2%였으며, 이는 2000~2010년에 프랑스에서 부유세 과세 대상인 인구 비율과 거의 동일하다) 부자들의 합법적인 정치적 지배는 끝났다. 그러나 이것이 자본소득자 사회를 낳을 수 있는 경제적 힘을 없애지는 않았다.

제4부. 21세기의 자본 규제

제13장. 21세기를 위한 사회적 국가

많은 전문가는 경제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국가의 귀환이 부재함을 한탄하고 있다. 그들은 대공황이 실로 끔찍했지만 적어도 조세정책과 예산정책에 있어서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온 공은 인정받을 만하다고 지적한다. 사실상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후 몇 년 내에 후버 대통령 시절 25%에 불과했던 초고소득층에 대한 연방소득세의 최고한계세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현대적 재분배 : 기본권의 논리

현대적 재분배는 부자로부터 빈자에게로 소득이 이전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렇게 노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의료, 교육, 연금을 비롯해 대체로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이 돌아가는 공공서비스와 대체소득을 위한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체소득의 경우, 형평성 원칙은 종종 평생 소득에 대략 비례하는 대체소득을 지급하는 형태를 띤다. 교육 및 의료와 관련해서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실제로 동등한 혜택이 주어진다. 현대적 재분배는 기본권의 논리 그리고 기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일정한 상품에 대한 평등한 접근이라는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20세기의 선진 국가들이 보여주었던 사회적 국가의 현대적 재분배는 교육, 의료 및 퇴직연금과 관련된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들에 기초하고 있다.

제14장. 누진적 소득세를 다시 생각 한다

과세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과세는 상당히 정치적이며 철학적이고, 아마도 모든 정치적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세금이 없다면 운명공동체를 이루지 못할 것이고 집단행동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모든 주요 정치적 격변의 핵심에는 국가재정의 혁명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화가 부유한 국가들의 미숙련 노동자들에게 특히 악영향을 주는 만큼 기본적으로 더욱 누진적인 세금제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가파른 누진세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미숙련 노동자들의 처지를 상당히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제15장. 글로벌 자본세

내가 제안한 자본세는 이런저런 나라에서 부과하고 있는 자본세와 분명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우선 거의 모든 나라가 부동산에 과세한다. 영미권 국가에는 재산세가 있고 프랑스에는 토지세가 있다. 이들 세금의 결점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에만 과세한다는 것이다. (금융자산은 간과되고, 부채와 상관없이 부동산의 시장가치에 대해 과세한다. 그래서 부채가 대단히 많은 사람에게도 부채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과세된다) 게다가 부동산은 일반적으로 단일세율 또는 그에 가까운 세율로 과세된다.

글로벌 자본세 과세를 위한 첫걸음은, 사전에 계산되어 개별 납세자에게 통지되는 자산 내역서에 해외 은행에 유치된 자산에 관한 정보를 포함시키고자 은행 데이터의 자동 전송을 국제적 차원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제16장. 공공부채의 문제

오늘날 유럽이 안고 있는 부채와 같은 대규모의 공공부채를 크게 감소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 주된 방법이 있다. 자본에 대한 세금, 인플레이션, 긴축재정이다. 민간자본에 대해 파격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한다면 인플레이션이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대규모 공공부채를 처리하는 주된 방법이었다. 공정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최악의 해결책은 지속적인 긴축재정인데, 이것이 바로 현재 유럽이 따르고 있는 방식이다.

대규모 공공부채를 감소시키는 최상의 방법은 자본에 대해 예외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지만 인플레이션이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분명 국채는 실질자산(그 가격이 경제적 상황에 연동되어 부동산과 주식의 경우처럼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따라 증가하는 자산)이라기보다는 명목자산(그 가격이 인플레이션에 좌우되지 않고 사전에 정해져 있는 자산)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소폭 상승하는 것만으로도 공공부채의 실질 가치를 상당히 낮출 수 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인플레이션이 연 2%가 아닌 5%라면 5년이 지났을 때 공공부채의 실질 가치는 GDP에 대한 비율로 나타냈을 때 15% 이상 감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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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미국경제학회] 맨큐 vs 피케티 '소득 불균형'에 관한 세기의 논쟁 (한국경제)

소득 불균형을 둘러싼 세기적 논쟁이 연초부터 미국 경제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불평등 논쟁을 촉발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경제학 교과서의 교본으로 불리는 ‘맨큐의 경제학’을 쓴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1월 3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 개막 포럼에서 부의 불평등 원인과 해법을 놓고 한치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다.

포문은 맨큐 교수가 먼저 열었다. 피케티 교수가 부의 불평등이 확대 재생산되는 원인으로 정리한 ‘자본소득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다(r>g)’는 전제부터 파고들었다. 이로 인해 자산을 많이 가진 부자의 소득은 갈수록 늘어나 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하는 임금소득자와의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피케티 교수의 논리다. 이날 두 사람의 발표를 쟁점별로 대비해 재구성했다.

▷맨큐=‘r이 g보다 크다’는 것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것이다. 만약 r이 g보다 작으면 경제는 비효율적인 상태가 되고 저축률이 급격히 하락한다. 경제학 전공자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성장모형 공식이 ‘r>g’이다.

▷피케티=당신의 주장대로 ‘r>g’는 경제학의 기본 성장 모델이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r>g’라는 공식이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r>g’ 공식에 따라 자산 축적을 통해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경험적이고 실증적 사실이다. 자본 축적은 필연적으로 자본 소득 증가로 귀결된다.

▷맨큐=그렇다 하더라도 소득 불평등이 왜 문제가 되나. r>g라는 공식이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이자 나선형 불평등 구조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부의 불평등은 생산 기여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자본주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당신의 비전은 받아들일 수 없다.

▷피케티=다시 강조하지만 불평등의 유일한 원인이 자본 집중화는 아니다. 과거에는 불평등의 원인이 대부분 자본의 집중화와 이로 인한 자본 소득의 격차에 있었다. 최근 한 세기 동안 자본 소득의 불평등 정도는 크게 완화됐지만 대신 근로소득의 불평등이 심해졌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맨큐=자본 소득의 증가가 부의 세습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도 허점이 많다. 우선 후손이 부를 소비한다. 경제적 지출 외에 남을 돕기도 한다. 통계에 의하면 이런 유형의 소비가 연 3%의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린다. 자손의 숫자도 증가한다. 평균 2명의 자녀를 둔다고 가정할 경우 35년(1세대) 기준으로 자손의 숫자가 2배로 증가한다. 당신도 애가 있지 않으냐. 이는 연평균 자본수익률을 2% 감소시킨다. 상속세도 자본수익률을 연 3% 떨어뜨린다.

▷피케티=‘r>g’는 각 가정이 안정된 자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본 소득의 일부분을 재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고 자본의 축적이 경제성장률과 같이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투자수익률이 개인에 따라 다르고, 가족들이 병이 걸리는 등의 불가피한 이유로 자본 투자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부의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맨큐=당신은 자본수익률을 약 연 4~5%로 가정하고 있다.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을 3% 안팎으로 보더라도 앞서 말한 자손의 수와 소비가 늘어나면서 자본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부의 세습이 강화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피케티=그렇지 않다. ‘r>g’가 갖고 있는 승수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본수익률과 성장률의 격차가 클수록 불평등은 커진다.

▷맨큐=당신이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 누진적 부유세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부의 재분배를 원한다면 최상의 수단은 소비세다. 소비에 대한 세금을 매기면 부자들은 부를 유지하기 위해 소비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부유세 제안은 나쁜 정책이다. 모든 사람을 가난하게 하면서 평등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피케티=소비세는 빈약한 대안이다.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수성가를 통해 이룬 부보다 세습 재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더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세로는 이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맨큐=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우리는 부의 불평등을 우려하는가. 왜 자본을 축적하고, 보다 윤택한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나. 사람들은 부의 불평등보다 정당하지 않은 부에 대해 분노할 뿐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있지만 실리콘밸리나 할리우드, 메이저리그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피케티=현대 복지국가에서 강조하는 부의 사회적 전환, 즉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부의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적 과세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날 두 석학의 발표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이어졌다. 회의장은 두 사람의 발표를 듣기 위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찼다. 포럼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웃으며 간단히 악수한 뒤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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