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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Humanities

(Opinion) 학문, 가문, 직업 빼고, 사자 갈기 같은 나만의 상징이 있나요? by 서광원

by hoyony 2023. 5. 6.

사자는 초원의 제왕이지만 모든 사자가 제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컷 사자 중 3% 정도만이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려면 두 가지가 필수.
첫째, 기존의 제왕과 싸워서 이겨야 하니 힘이나 근육과 같은 전투력이 필요. 둘째, 집단을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암컷 사자들이 새로운 제왕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멋진 갈기가 필요. 최상의 건강 상태로 힘이 넘칠 뿐만 아니라 경험이 쌓여 성숙하다는 징표. 
사자만이 아니다. 적이든 우리 편이든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리, 특히 집단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려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강력한 상징이 있어야. 
로마 황제들 역시 사자를 애완용으로 길렀고, 자신들이 죽으면 자신을 태우는 불길 속에서 독소리로 변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끔 애썼는데, 집단을 이끌려면 권력만이 아니라 권위가 필요하기에 누구나 인정하는 이런 상징을 통해 우러르는 마음을 만들어내려 했던 것. 상징이란 손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어야 가능한 까닭. 
시각을 가진 생명체에게 이미지는 그 자체로 강력한 메세지인데, 이런 이미지 중에서도 가장 농축된 의미를 담은 게 상징이기 때문. 그래서 미국의 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상징은 문화의 정수"라고 했는데,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나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들이 이걸 생명처럼 여기는 게 그래서다. 누군가를 무너뜨리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그 사람을 상징하는 걸 공격하고 망가뜨리는 것도 이래서다. 예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한 게 그렇고,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항거할 때 먼저 그의 초상화나 동상을 불태우고 무너뜨리는 것도 마찬가지.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할 때, 그를 상징하는 것들을 치워버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사자의 갈기가 그렇듯, 상징이란 자신이 쌓고 만든 고유한 정체성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표현이어야 하고 품격 역시 여기서 나오는 건데, 이걸 돈과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과시가 아닌 자신 만의 매력 같은 상징이 그렇게 없을까. 상징물은 차고 넘치지만 진짜는 드문, 가히 상징의 빈곤 시대라 할 만 하다. 한 번쯤 생각해보자. 명함 빼고, 명품 빼고, 고급 자동차 빼고, 내 힘으로 이룬 게 아닌 집안 배경 빼고, 한때 공부 열심히 해 나온 출신 대학 뺏을 때, 나를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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