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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Ecomomics

달러 트랩 by 에스와르 S. 프라사드

by hoyony 2017. 5. 6.

The Dollar Trap




청림출판
2015.11.11
Eswar S. Prasad


1. 달러화는 무너지지 않는다

2008년 10월 미국 금융시장은 휘청거렸다. 그해 초 주택시장이 붕괴된 데 이어 9월에는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공황에 가까운 충격이 금융 시스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회사채 시장은 거래가 얼어붙었고 주식시장은 무너져내렸다. 대형 머니마켓펀드였던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는 순 자산가치가 원금 아래로 떨어져 전체 자금시장을 위협했다. 위기로 인한 파장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역사상 전례를 보면 앞으로 닥칠 일은 자명했다. 금융위기나 통화위기가 발생한 다른 국가들이 직면한 것과 비슷한 상황에 미국도 맞닥뜨리게 될 것이었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그 국가 통화로 표시된 자산을 팔아 자본을 거둬들여 통화가치가 급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련의 자금들이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투자자들은 해외 자산을 팔아 고국인 미국으로 가져왔고, 외국 투자자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흐름에 동참했다. 2008년 9월부터 12월까지 미국 금융시장에는 5000억 달러의 자금이 순 유입됐다. 대부분은 민간 투자자의 자금이었다. 이는 2008년 첫 8개월간 미국 금융시장에 순 유입된 자금보다 3배 이상 많은 규모였다. 유입된 자금 대부분은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에 투자됐다. 반대로 독일과 일본을 포함한 다른 많은 선진국들은 같은 기간 전반적으로 자금 순 유출을 경험했다.
미국 국채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올라갔다.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가 금융시장과 경제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 재정 지출 프로그램을 시행했음에도 미국 국채 금리는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금리의 전형적인 반응에 반대되는 것이다. 금리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 자금을 더 많이 빌리게 되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미국의 3년물 국채 수익률은 2008년 12월 며칠 동안은 소폭 마이너스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보유할 수 있는 특권을 갖는 대가로 사실상 미국 정부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는 의미다.

전세계 금융시장이 차츰 회복되면서 정상을 찾아가도 있던 2009년 11월 그리스를 둘러싼 우려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리스 정부 관료들은 재정 회계가 조작됐으며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113%에 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 같은 부채 비율은 유로존 회원국들이 10년전 유로화 도입을 합의할 때 지키기로 약속했던 부채비율 상한선 60%를 거의 두배 가량 상회하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10년 1월에 그리스의 2009년 재정적자가 그리스 정부의 추정치인 GDP대비 12.5%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통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로존의 재정적자 상한선은 GDP대비 3%였다.
해외에서 발생한 이 같은 위기로 다시 한 번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왔다. 2009년 12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채무위기가 유로존 전체로 확산되고 심각한 문제들이 쌓여가면서 미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3.6%에서 2.5%로 1%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유로존 위기가 제어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되는 것처럼 보였던 2010년 3분기에 미국 금융시장에는 거의 1800억 달러의 자금이 순 유입됐다. 그해 첫 2개 분기 동안 미국 금융시장에 유입된 자금은 분기당 평균 150억 달러에 불과했다. 외국 민간 투자자들의 자금이 그해 3분기 미국에 순 유입된 자금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중앙은행과 다른 공적 투자자들의 자금이었다.

다른 금융시장에서 혼란이 발생해 전세계 자금이 안전자산을 찾아 미국으로 흘러들어와 미국의 국채 금리를 끌어내리고 달러화 가치를 끌어 올린다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개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알수있듯이 미국 경제가 재정문제나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충격을 받을 때조차 달러화 가치는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상과 반대로 움직여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결국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인가? 미국 금융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해도 혼란을 피하고 안전한 곳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 달러화는 왜 그렇게 특별한가

역설적이게도 미국 주택시장의 붕괴로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으면서 전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간 글로벌 금융위기는 달러화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라앉자 유로존에서 채무위기가 불거지는 식으로, 한 위기가 끝나면 다른 위기가 닥치는 상황에서 전세계 투자자들은 신경과민 상태에 놓이게 됐다. 전세계 금융시장에서는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시장의 취약한 부분들과 이를 관리할 효과적인 규제의 부재가 노출됐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이 취한 조치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거의 주지 못했다. 이 결과 최소한 원금은 보장해주고 쉽게 다른 통화로 바꿀 수 있으며 유동성이 풍부한, 즉 많은 액수라도 쉽게 거래할 수 있는 안전한 금융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됐다. 일반적으로 주요 선진국의 국채만이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킨다. 위기 이후 금융당국이 안전장치로써 유동성 증권을 대량으로 확보하라고 요구하면서 금융기관들도 안전자산 수요를 늘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신흥국들이 외환보유액을 늘리면서 달러화를 쌓고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화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신흥국 정부 관리들은 자본시장이 점점 개방되면서 해외 자금의 유출입이 늘어나면 자국의 금융 시스템이 자본흐름의 변동성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점을 우려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신흥국들의 상황이 좋을 때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자금을 빌려줘 인플레이션 문제를 야기하고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운다. 하지만 일단 문제의 조짐이 나타나면 얼굴을 싹 바꾸고 돈을 거둬들여 도망가기 바쁘다. 이 과정에서 자산시장은 폭락하고 통화가치는 무너지게 된다. 신흥국 정책 결정자들은 외환 보유액이 많으면 자본 유출입과 환율 변동성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은 2013년 6월 현재 외환보유액이 3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한 어떠한 위기에도 다 대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세계 중앙은행들 역시 외환시장에 개입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 중앙은행들은 자국 통화의 가치가 절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끼어든다. 자국 통화의 가치 절상은 수출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국 같은 일부 신흥국들은 오랫동안 이 같은 중상주의적 동기를 가지고 외환시장에 개입해왔다. 이러한 외환시장 개입은 경화가 축적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경화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유동성도 풍부한 금융자산에 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에 역시 안전자산의 수요를 늘리는 원인이 된다.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에 대한 공급은 위축되고 있다. 위기는 수많은 대기업과 은행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이 중 일부는 오랫동안 다채로운 역사를 쌓아온 유서깊은 기업과 은행이었다. 이에 따라 설사 매우 탄탄한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발행했다 해도 민간에서 발행한 증권은 안전하다는 그간의 인식이 사라지게 됐다. 앞으로 수년간은 유동성이 풍부하고 신뢰할 만한 중앙은행과 국가 정부가 보증하는 정부 국채만이 믿을 만한 안전자산으로 간주될 것이다. 미국은 공공부채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안전자산의 주요 공급자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달러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세계의 기축통화였다. 미국 경제가 세계 최대 규모가 된 것은 이보다 훨씬 빠른 1870년대였다. 1900년대 초에는 미국이 세계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점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앙은행이 없는 데다 해외 자본 유출입에 대한 수많은 제약 때문에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영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미국은 민간 은행들이 통화를 발행해 화폐가 통일되지 않고 뒤죽박죽인 데다 통화 발행권을 정부가 가져간 뒤에도 은행 시스템이 불안정해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깊지 못했다.
1913년 미국은 연방준비법을 제정하면서 통화를 좀 더 탄력적으로 공급하고 은행을 효과적으로 감독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앙은행인 연준을 만들었다. 연준의 설립은 국제 무역과 금융거래에서 달러화 사용을 확대하는 데 상당한 촉매제가 됐다. 미국의 경제정책 외에 외적인 요인들도 달러화의 중요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준비통화의 지위를 두고 미국과 경쟁하던 다른 국가들이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찍어내면서 자국 통화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 태환을 일시적으로 중지했다. 이 결과 준비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이 올라가게 됐다.

달러화의 지배력은 1945년 출범한 고정환율제인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30년대 대공황 때 국제 무역을 위축시켰던 지열한 환율전쟁을 사라지게 했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다른 주요 통화들은 달러화에 고정되어 가치가 결정됐고 달러화는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미국이 금 태환을 중지한다고 밝히면서 금본위제가 끝났지만 이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달러화는 금융시장이 곤경에 처했을 때, 비록 문제의 진원지가 미국이라 할지라도 가장 선호되는 피난처이다. 이런 상황은 누구라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외국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은 안전한 피난처가 되기는 커녕 극히 취약한 곳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씀씀이가 헤픈 국가라는 평판을 쌓아오긴 했지만 다른 국가에서 자금을 조달받아 낭비벽을 충당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이 외국 자본으로 소비와 투자를 충당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금융시장의 세계화 추세와 맞물리면서부터였다. 실제로 미국의 경상수지가 지속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낸 것은 1990년대 초부터였다. 1990년에는 큰 폭의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더니 2006년에는 8000억 달러에 달했다. 경상수지 적자폭은 1998~2000년 사이에도 증가세를 보였다. 2000년에는 재정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섰고 적자폭은 부시 대통령 집권시절에도 꾸준히 늘어났다. 재정적자가 급증한 이 4년간 미국의 공공부채는 6조달러 가까이 늘어났다. 이런 식으로 미국은 안전자산 생산, 즉 국채 발행을 상당폭 늘리고 나머지 국가들은 의도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현상이 지난 10년 이상 동안 급속하게 심화됐다. 이는 금융시장의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국가 간 자본흐름이 급증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칠레가 몇 년간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내다 봉착한 1982년의 위기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릐까지 다른 경제적 위기들도 민간 부문의 부채가 종종 사회 문제화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따라서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경상수지 적자도 걱정할 만한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는 재정수지 적자가 낮은 저축률과 함께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선진국의 민간 부문과 경제가 왜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리고자 하는지 이해하려면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국가가 왜 선진국에 돈을 빌려줘 적자를 메워주는지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상수지 불균형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린스턴 대학의 대니 로드릭은 자본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흘러가는 이유는 전형적인 경제이론에서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신흥국에는 저축에 대한 제한이 없지만 투자에 대한 제한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상당수의 신흥국들이 높은 수준의 저축률을 보이고 있는 만큼 신흥국에서 자본의 부족은 문제가 아니다. 로드릭은 신흥국들이 정책과 제도상에 많은 약점이 있어 이 돈을 자국 내에서 생산성 있게 투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해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 이론에 반대되는 사례로 보일 수 있다 중국은 GDP대비 투자 비율이 매우 높다. 하지만 중국의 투자 형태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역시 이 이론에 부합한다. 중국은 비효율적인 은행 시스템이 투자를 매우 빠르게 증가시켜왔기 때문에 상당 규모의 자본이 비생산적인 투자에 잘못 배분됐다는 지적이 있다.
신흥국들은 사실상 자본으 선진국에 수출한 뒤 선진국 투자자들이 이 돈을 다시 자국에 돌려보내 자본을 좋은 투자 기회에 배분해주기를 희만한다는 것이다. 신흥국이 선진국에 자본을 내보내는 것은 취약한 자국 금융시스템을 피하기위한 한 가지 방법이라는 의견이다.
선진국의 금융 시스템이 신흥국보다 더 복잡하고 세련되어 보이긴 하지만 반드시 더 튼튼하고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경상수지 불균형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우려는 신흥국의 과잉 저축이 미국의 금융시장 대혼란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자본이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흘러 들어오지 않았다면 2000년대 중반에 신용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미국의 금리가 올라가 생긴 자산 버블은 없었을 것이란 논리다. 금리가 올라갔어도 자산시장에 어느 정도 버블은 생겼을 수는 있지만 그 버블은 벼다른 충격 없이 꺼졌을 것이다. 실제로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자본이 유입되면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렸을 때조차 시중 금리는 낮게 유지됐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값싸게 조달받을 수 있는 자금이 넘쳐났고, 이 자금이 더 높은 수익을 찾으면서 투기적인 거래가 대대적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 미국뿐만 아니라 신흥국에까지 불똥이 튀는 치명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금융위기는 신흥국들이 전세계 금융시장으로 계속 통합되어가는 과정 중에 만난 도로상의 굴곡에 불과하다.

3. 선진국으로 들어오는 자금흐름의 역설

국가 분류 : 2012년 기준으로 시장 환율을 이용해 달러화로 환산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6000달러를 넘으면 선진국 그룹, 넘지 않으면 신흥국 그룹에 포함시켰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6000달러를 넘긴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신흥국으로 분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제 대부분이 산업이 아니라 석유 생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흥국은 보통 1인당 국민소득이 1000~6000달러 사이다. 국가별 생활비 차이를 조정한 구매력 평가 환율을 이용해도 선진국과 신흥국은 비슷하게 나뉘지만 분류이 기준이 되는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1000달러로 올라간다.

선진국 :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캐나다,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홍콩,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한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포르투갈, 싱가포르, 슬로바키아,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영국, 미국

신흥국 : 아르헨티나, 브라질, 불가리아, 칠레, 중국, 콜롬비아, 헝가리, 인도, 인도네시아, 요르단, 카자흐스탄, 케냐,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말레이시아, 멕시코, 모로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페루, 필리핀, 루마니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터키, 우크라이나

4. 신흥국, 종교에 빠지다

총 포지션 증가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 국가의 경제가 잘 굴러가지 않을 때 그 국가가 해외 자산에서 더 높은 수익을 얻고 해외 부채에 대해서는 더 낮은 금리를 지불하도록 자산과 부채의 구성이 짜여 있다면 이는 국제적인 리스크 분산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이같은 일종의 보험은 금융 통합 추세의 두드러진 혜택가운데 하나다. 달러화로 산추되는 총 자산과 총 부채는 2000년대 들어 가장 큰 3개 신흥국, 즉 브라질, 중국, 인도에서 크게 늘어났다. 중국과 인도는 총 자산과 부채가 2000년대 초입에 브라질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 시작해 더 높은 수준으로 늘어났다. 브라질과 인도는 대외부채가 대외 자산보다 많아 순 자산 포지션이 마이너스 상태다. 중극은 2004년 이후 순자산 포지션이 서서히 늘면서 큰 폭의 플러스를 나타내고 있다.

한 국가가 금융시장 붕괴나 디폴트와 같은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 그 국가의 통화가치는 절하되고 이에 따른 조정 비용 일부는 자동적으로 외국인 채권 보유자에게 전가된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이 그 국가의 통화로 발행됐을 때만 적용된다. 채권이 외국 통화로 발행됐을 때, 예를 들어 달러화로 발행되어 원리금을 달러화로 갚아야 할 때는 그 국가의 통화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똑같은 금액의 달러화를 갚기 위해서 그 국가의 통화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달러화 환산 부채 부담까지 늘어나 충격이 커지게 되고 이는 다시 그 국가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신흥국 입장에서 금융시장 개방으로 인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시장 개방이 국내 리스크를 높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융시장의 거래량이 적고 감독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국가로 외국 자본이 흘러 들어온다면 이 자본은 생산성이 높은 장기투자로 배분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자본은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흘러 들어가 거품을 키울 가능성이 높고, 이 같은 자산시장의 버블은 대게 꺼지게 마련이다.
자본흐름이 배분의 문제를 낳는 것도 신흥국 정부가 심각하게 걱정하는 문제다. 신흥국들은 사회 안전망이 취약해 사회 안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문제는 개방된 경제일수록 몇 가지 이유로 불평등의 정도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첫째, 경제 개방의 초기 단계에서 자본시장 개방은 부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더 우호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 시장 개방 초기에는 여전히 외국 자본에 대한 제한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데 이때는 정치권과 관계가 밀접한 대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우선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외국 자본을 이용할 수 있는 이런 기업들은 불충분한 국내 자본에 의존해야 하는 작은 국내 기업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이 같은 자본주의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촉발시키는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다.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들은 대개 자본 집약적으로 중소기업보다 일자리를 덜 창출하는 경향이 있어 금융시장 개발의 혜택을 더 왜곡하게 된다.
둘째, 시장 개방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참여해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면 주식 형태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가계가 금융자산이 없는 가계보다 더 큰 혜택을 입게 된다.
셋째, 자본시장 개방은 자산 다각화와 리스크 분산 측면에서 불평등을 초래한다. 부유한 가계만이 뮤추얼 펀드 등 해외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넷째, 가난한 가계는 해외 투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은행 예금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국내 저금리 정책의 비용을 상대적으로 많이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가계의 해외 투자를 허용하면서 자본유출에 대한 통제를 완화했다. 가난한 가계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변동성이 큰 중국 주식시장에 투자하거나, 안전하지만 중국정부가 상한선을 정해놓아 지난 10년간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금리가 극히 낮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인 은행 예금에 넣어두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5. 안전에 대한 갈망

위기가 임박했을 때 외환보유액이 가장 많을 때에 비해 25%가량 줄어들었다고 혼란에 빠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은 위기 때 중요한 것은 외환보유액의 수준이 아니라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느냐 줄어드느냐의 방향과 변화의 속도라고 애기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외환보유액은 일단 감소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많이 쌓여 있더라도 상당히 급격한 속도로 줄어든다. 어떤 국가의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면 불안한 투자자들은 그 나라에서 더 많은 돈을 빼가게 되고 상황은 빠르게 악화된다. 신흥국들은 위기 때 외환보유액이 얼마나 급속하게 줄어들 수 있는지 경험한 뒤 외환보유액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7. 환율전쟁

최근 수십년간 중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은 대외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가난한 국가들은 제조업 주도로 고성장 궤도에 진입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가 높은 성장세를 경험하기 시작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이 물밀듯이 유입되면서 통화가치가 올라가게 된다는 점이다. 이 같은 통화가치 절상은 수출 경쟁력을 낮춰 제조업 성장세를 질식시킨다. 통화가치 저평가 전략은 통화가치 절상의 부정적인 영향을 막고 국제 시장에서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여준다.
통화가치 절상의 문제점은 이른바 '네덜란드병'이라 불리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병이란 별다른 경쟁력 없이 자원만 풍부한 국가들이 주로 겪는 문제로 자원 수출로 경제가 급성장하다 통화가치와 물가가 올라가면서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져 경게가 침체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자원이 풍부하지만 이 자원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만한 금융 역량이 부족하다.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자원을 활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전문성과 금융 기법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을 두팔 벌려 환영했다. 다국적 기업들도 큰 개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정치 체제가 취약하고 불안정한 국가에 투자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대규모 자금을 아프리카에 쏟아 부었다.
이러한 자본 유입은 통화가치 절상이라는 반갑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며 아프리카에 그나마 존재하던 산업들을 파괴했다. 천연자원 개발에 따른 이익은 주로 외국인 투자자들과 그 나라의 정치세력 및 경제 지배층에 돌아갔고 이들 국가는 천연자원의 저주에 시달렸다. 천연자원을 개발하였음에도 국민 대다수는 생활수준이 올라가기는 커녕 제조업 일자리마저 사라지고 부정부채로 자원 개발의 이익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면서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왜 미국이 지배할 수밖에 없는가

미국은 어떤 측면에서는 충격적일 정도로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데도 어떻게 여전히 전세계의 마지막 유동성 공급자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정부가 결국에는 채무상환 의무를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란 순진한 믿음을 전세계 투자자들이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상당 부분 미국이 가진 건전하고 탄력적인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제도가 핵심이다

MIT의 대런 애스모글루와 사이먼 존슨, 하버드대학의 제인ㅁ스 로빈슨은 과거의 방대한 실증적 자료를 분석해 제도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제도들이 담당하는 역할의 가치를 평가했다. 이 결과 정부나 고위 정치 인사, 권력자들의 강제 몰수로부터 일반 국민들의 재산을 보호해주는 재산권 제도가 장기적인 경제 성장과 투자, 금융발전에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또 개인 간 계약이 집행되도록 해주는 계약 제도는 경제 성장보다 금융중개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연구자들은 참정권과 민주주의적 책임감이 재산권 제도보다 국가 간 경제적, 사회적 발전 지표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미국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려 채권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이나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채무를 불이행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국 중앙은행들과 투자자들이 믿는 핵심 이유는, 미국의 개방적이고 투명한 민주주의 시스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국채 4조 5000억 달러가량을 은퇴자를 비롯해 다양한 미국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따. 이 사실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게다가 미국 은퇴자들은 상당히 영향력있는 유권자들이다. 아울러 미국 국채 투자자들이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특정 국가를 겨냥해 그 국가에 대한 채무를 불이행한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고 법적으로도 가능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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