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rspace : A Scientific Odyssey Through Parallel Universes, Time Warps and the Tenth Dimension
2018. 06. 07
김영사
Michio Kaku
차원을 높이면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고대 로마시대의 전면적은 여러 곳에서동시에 벌어지는 국지전의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사방에서 날아오는 유언비어와 잘못된 정보 때문에 아군과 적군 모두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실제로 로마제국의 장군들은 전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서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고지점령을 제1계명으로 삼았다. 평평한 2차원 땅에 머물지 말고 세 번째 차원으로 올라가보라는 이야기다. 높은 곳으로 가면 전횡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혼란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고차원이론의 원조는 빛을 다섯 번째 차원의 진동으로 설명한 칼루자-클라인 이론이다. 여기서 무대를 N차원으로 확장하면 너저분했던 소립자이론이 깔끔한 대칭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칼루자-클라인 이론은 N값을 결정하지 못하여 온갖 기술적 문제를 양산했고, 이 이론을 개선한 초중력이론도 비슷한 난관에 직면했다.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 바로 초끈이론이다. 1984년 마이클 그린과 존 슈워츠에 의해 물리학의 전면에 등장한 모든 물질을 미세한 끈의 진동으로 설명한다.
고차원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1870~1920년 무렵이었다. 이 시기에는 네 번째 차원(4차원 시공간의 시간이 아니라, 공간의 네 번째 차원)이 대중문화 속으로 파고들어 예술과 문학에 다양한 형태로 접목되었는데, 대표적인 작가로는 오스카 와일드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마르셀 프루스트, 조지 웰스, 조지프 콘래드를 들 수 있다. 또한 알렉산드르 스크랴빈과 에드가르 바레즈, 조지 앤타일과 같은 음악가들도 4차원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와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 사회주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네 번째 차원은 파블로 피카소와 마르셀 뒤샹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 입체파와 표현주으라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탄생시켰다.
우주의 비밀은 고차원에 담겨 있다. 초공간이론에 의하면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의 우주는 완벽한 10차원이었고 차원간 이동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온도가 내려가면서 불안정했던 10차원 공간은 4차원과 6차원으로 양분되었으며, 4차원 공간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동안 6차원 공간은 무한히 작은 영역으로 오그라들었다. 이것이 바로 초공간이론에서 말하는 빅뱅의 기원이다. 이 이론이 옳다면 우주의 고속팽창은 시공간의 균열이라는 더욱 큰 사건의 파급효과에 불과하며, 10차원 시공간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에너지가 팽창을 유도한 셈이다. 초공간이론에 의하면 멀리 있는 별과 은하들이 지금도 빠르게 멀어져가는 근본적 이유는 우주탄생 초기에 10차원 시공간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힘이 순수한 기하학만으로 서술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예로 들어보자. 회전목마를 타다가 도중에 말을 갈아타기 위해 회전하는 바닥을 걷다 보면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힘이 느껴진다. 원형바닥의 바깥쪽은 안쪽보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해 바깥쪽 테두리가 수축된다. 그런데 회전판의 테두리가 수축되면 회전판 자체가 휘어질 수밖에 없다. 그 위에 서있는 사람이 볼 때 빛은 더 이상 직선경로를 따라가지 않는다. 마치 어떤 힘이 빛줄기를 원판의 테두리 쪽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는 기존의 기하학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회전판 위를 걸어갈 때 느껴지는 힘은 회전판이 휘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겨진 종이 위에 사는 평면생명체들은 직선경로를 따라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을 좌우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리만이 볼 때 힘이란 공간이 휘어지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그러므로 힘이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휘어진 공간이었다. 행성이 태양 주변을 공전하는 것은 태양의 중력 때문에 그 근처의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우주공간으로 날아가지 않고 지표면에 붙어 있을 수 있는 것도 지구의 중력에 의해 지표면 근처의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통일장이론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인슈타인이 실패한 것은 자신이 유도한 방정식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었다. 장방정식의 좌변에 있는 시공간의 곡률은 기하학적 구조가 매우 아름답고 매끈하여, 그는 그것을 대리석에 비유하곤 했다. 반면 질량-에너지의 분포에 해당하는 우변을 거친 나무에 비유했다. 질량-에너지를 생성하는 기원이 다양한 데다 생긴 모습도 전혀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질-에너지의 나무는 소립자, 원자, 분자, 중합체, 결정체 등에서 바위와 행성, 그리고 별에 이르기까지 형태가 제각각이라 아름다움이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아인슈타인의 기하학이론과 양자이론의 차이는 다음 네 가지 항목으로 요약된다.
1. 양자역학에서 힘은 양자라는 불연속의 에너지 덩어리가 교환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의 기하학적 힘과는 대조적으로, 양자이론에서 빛은 광자라는 미세한 알갱이로 나뉘어져 있으며, 광자의 거동방식은 다른 입자들과 비슷하다. 두 개의 전자가 충돌했을 때 서로 밀어내는 것은 공간의 곡률 때문이 아니라, 광자라는 에너지 알갱이를 서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광자의 에너지는 플랑크상수라는 단위로 측정된다. 플랑크상수는 지극히 작은 값이지만 0이 아니기 때문에 뉴턴의 법칙은 약간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것을 양자보정이라고 하는데, 일상적인 거시세계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작다.
2. 힘의 종류가 다르면 교환되는 양자의 종류도 다르다. 즉, 교환되는 양자가 힘의 종류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약한 핵력은 W입자가 교환되면서 발생하고, 원자핵 안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어주는 강한 핵력은 파이중간자라는 입자가 교환되면서 발생한다. W보손(소립자는 크게 페르미온과 보손으로 구분된다. 페르미온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의 총칭이고, 보손은 힘을 매개하는 입자의 총칭이다)과 파이중간자는 원자분쇄기(입자가속기)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파이 중간자까지 묶어주는 힘은 글루온이라는 입자의 교환을 통해 발생한다(파이중간자는 기본입자가 아니라 쿼크와 반쿼크로 이루어진 복합입자이다. 양성자와 중성자도 쿼크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루온은 쿼크들 사이의 결합을 매개한다. 따라서 강력의 궁극적 매개입자는 글루온이다)
3.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가 특정 위치에서 특정 속도로 움직일 확률을 계산하는 것뿐이다. 전자는 양자역학에서 점입자로 간주되지만, 그와 동시에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 따르는 파동이기도 하다. 대충 말하자면 파동의 진폭이 클수록 그 지점에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은 높아진다. 자연을 구성하는 기본적 객체들은 입자의 속성을 갖고 있지만, 특정 시간, 특정 위치에서 입자가 발견될 확률은 확률파동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이 파동은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된 방정식, 즉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을 만족한다.
4. 물체가 이동하다가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나면 뒤로 되튀거나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양자세계에서 입자는 특정 확률로 방해물을 투과할 수 있다(이 현상을 양자도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흔히 터널링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현대과학의 다방면에 응용되고 있으며, 또 다른 이름인 양자도약은 일반대중들 사이에서 갑작스런 진전이나 개선을 뜻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양자역학은 근 50년 동안 수억 달러의 정부지원을 받으며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모든 물질은 쿼크와 렙톤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양-밀스 장으로 서술되는 몇 가지 형태의 양자를 교환하면서 힘을 행사한다.’ 지난 100년 동안 물리학자들이 아원자(원자 이하의 작은 영역) 규모의 미시세계를 연구하면서 겪었던 희로애락이 이 한 문장에 축약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이 간단한 청사진으로부터 오로지 수학만을 이용하여 오만가지 물질의 복잡하고 난해한 특성을 유도해낼 수 있게 되었다.
표준모형으로 계산된 값들은 실험결과와 잘 일치하며 예외적인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표준모형이 궁극의 이론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표준모형이 궁극의 이론으로 등극할 수 없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표준모형은 중력을 다룰 수 없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예를 들어 전자의 궤적이 중력장 안에서 휘어질 확률을 계산하면 무한대가 나오는 식이다. 물리학자들은 양자중력이론을 두고 재규격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곧 사방에서 속출하는 무한대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둘째, 표준모형은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상호작용(힘)을 강제로 붙여놓았기 때문에 외관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 표준모형을 만든 사람들조차 당혹스러울 정도로 보기 흉하고 부자연스럽다.
과학자들은 경제적인 자연을 선호한다. 아니, 자연의 본성이 원래 경제적이라고 믿는다. 자연은 물리적, 생물학적, 화학적 구조물을 창조할 때 절대로 과잉공급을 하지 않는다. 판다곰이나 단백질분자, 또는 블랙홀의 구조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최소한의 설계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는 효율성의 철학이 곳곳에 배어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중국계 물리학자 양전닝은 이 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자연은 대칭의 단순한 수학적 표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수학논리와 복잡하고 광범위한 물리적 결과를 비교해보면 대칭이 얼마나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단순함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비슷한 입자족이 세 개나 존재한다는 것은 표준모형이 갖고 있는 가장 불편한 진실 중의 하나이다.
입자물리학의 기본신조 중 하나는 모든 물체가 양의 에너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진동하는 분자와 달리는 자동차, 하늘을 나는 새, 포효하며 솟아오르는 로켓 등 모든 만물은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텅 빈 공간, 즉 진공의 에너지는 0이다). 그러나 에너지가 음인 물체(진공보다 에너지가 작은 물체)가 존재한다면, 시간이 원형으로 휘어진 희한한 시공간을 만들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에너지가 양수여야 한다는 개념을 평균 약에너지 조건(averaged weak energy condition, AWEC)이라는 난해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즉 시간여행이 가능하려면 에너지가 일시적으로 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에너지가 존재하면 밀어내는 중력을 비롯하여 상식에 위배되는 현상이 이미 관측되었어야 하는데, 천문학 역사상 그런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인류원리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약인류원리는 우주에 지적생명체(인간)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주의 상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실험적 가설로 간주한다.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스티븐 와인버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이 세상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이 왜 지금과 같은지 의문을 제기할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하려면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들이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가야 한다. 생명은 복잡하고 다양한 생화학적 반응의 산물이기 때문에, 화학과 물리학의 상수들이 지금과 조금만 달랐다면 생명체는 애초부터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핵력의 크기를 좌우하는 상수가 지금과 조금만 달랐다면 별이나 초신성의 내부에서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다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철보다 무거운 원소에 기반을 둔 DNA와 단백질 분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체 탄생에 기여한 또 하나의 일등공신은 양성자의 안정성이다. 원시지구에 바다가 형성된 후 생명체가 탄생할 때까지는 약 10~20억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양성자의 수명이 수백만 년에 불과했다면, 분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충돌해도 생명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인간중심적 요소를 조금더 추가하여 물리학의 모든 상수들은 생명이 탄생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값으로 세팅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인류원리의 강력한 버전인 강인류원리이다. 강원리는 과학에 신을 노골적으로 개입시키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다분하다.
1957년, 미국의 물리학자 휴 에버렛은 우주가 마치 분열하는 세포처럼 끊임없이 두 개로 분리된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에버렛의 다중세계들 사이에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따라서 각 우주에 사는 생명체들은 다른 우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실험적으로 관측되지 않은 것은 오컴의 면도날 원리에서 말하는 1차 제거 대상이므로, 다중세계 가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호킹의 우주 파동함수 이론이 등장하면서 다중세계 가설이 하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 에버렛은 하나의 입자를 대상으로 상호교신이 불가능한 다중세계를 가정햇지만, 호킹은 우주 전체를 대상으로 (웜홀을 통해) 상호교신이 가능한 다중우주이론을 구축했다.
구소련의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셰프는 미래의 문명을 3단계로 구분했다.
I단계 문명은 지구 전체의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단계로서 날씨를 바꾸고 지진을 방지하며, 지각 깊숙이 터널을 뚫거나 해류를 조절할 수 있다. 이런 문명은 태양계 탐사를 이미 마친 상태이다.
II단계 문명은 태양에너지를 수동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태양의 총 에너지를 조절하는 단계이다. 간단히 말해서 태양을 통째로 소유한 문명이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엄청난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태양 자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미래를 위해 가까운 별을 식민지로 삼는다.
III단계 문명은 은하 전체의 에너지를 제어하는 수준으로, 수십억 개의 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이런 문명은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을 완전히 마스터하여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다.
카르다셰프가 도입한 분류 기준은 에너지원이다. I단계 문명의 에너지원은 지구 전체이고, II단계는 태양 전체, 그리고 III단계는 물리법칙의 범주 안에서 이해 가능한 특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현재 우리의 문명은 지구 에너지의 극히 일부만 사용하고 있을 뿐, 총 에너지를 제어하는 기술이 전혀 없으므로 0단계에 해당한다. 0단계 문명은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로에서 에너지를 충당하고, 기술이 낙후된 지역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컴퓨터도 날씨를 조절하기는커녕, 예측하는 것조차 버거운 수준이다. 다른 단계의 문명과 비교하면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아기에 불과하다.
우라늄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는 문명이라면 가난과 무지, 굶주림으로부터 동족을 구할 수도 있고, 행성 전체를 핵무기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라늄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려면 문명의 수준이 최소한 0단계에 도달해야 하며, 그 여부는 사회 단위의 규모와 산업의 수준에 의해 좌우된다. 예를 들어 불은 고립된 지적 집단(종족)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하여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제련술과 기초적 야금술을 확보하려면 사회의 기본단위가 수천 명 수준(소규모 마을)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자동차 엔진 같은 내연기관은 복잡한 화학지식과 산업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사회의 규모가 수백만 명(국가)까지 커져야 개발 가능하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수준과 사회집단의 규모는 오랜 세월 동안 상호 비례관계를 유지한 채 성장해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환원주의 물리학의 아킬레스건이다. 환원주의자들은 최소단위 입자에서 출발하여 대부분의 자연현상을 설명했지만, 이 역설만은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다. 고차원이론은 이 난제를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문제의 핵심은 관측자와 관측대상을 구별하는 것인데, 양자중력이론에서는 우주전체의 파동함수를 논하기 때문에 관측자와 관측대상을 분리할 수가 없다. 양자중력이론에서는 모든 만물의 파동함수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주 전체를 서술하는 우주 파동함수는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모든 가능한 우주의 조합이기 때문에 관측자와 관측대상을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다. 하이젠베르크가 최초로 발견했던 불확정성원리도 우주 전체로 확장된다. 이 이론에서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는 우주 전체이며, 양자화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는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가 공존하는 모든 가능한 우주이다. 즉 하나의 우주에서 고양이는 살아 있고, 다른 우주에서는 죽어 있다. 그러나 두 우주는 우주의 파동함수라는 하나의 집에 존재한다.
물리학의 원리 vs 논리적 구조
나는 물리학이 궁극적으로 몇 개의 물리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원리들은 수학기호 없이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서 뉴턴의 운동법치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의 기본원리는 수학과 무관한 몇 개의 문장으로 표현 가능하다. 그 방대한 현대물리학이 몇 개의 기본원리로 요약된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수학은 자체 모순이 없는 모든 가능한 구조의 집합이며, 물리학의 기본원리보다 훨씬 많은 논리적 구조를 갖고 있다. 산술학과 대수학, 그리고 기하학 등 임의의 수학체계는 공리axiom와 정리theorem가 모순 없이 양립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수학자들은 수학쳬계가 모순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질 뿐, 그들의 상대적 가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체 모순이 없는 임의의 수학구조는 어떤 종류이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수학은 물리학보다 훨씬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으며, 같은 수학자라도 분야가 다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고립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원리에 기초한) 물리학과 (자체 모순이 없는 구조에 기초한) 수학의 관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리학자가 물리적 원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체 모순이 없는 수학적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수학의 다양한 분야들은 물리학을 통해 자연스럽게 통합된다.
뉴턴은 중력법칙을 연구할 때 수학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그는 떨어지는 물체의 운동을 분석할 끝에 달도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지만,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달과 충돌하지 않는다. 지표면의 곡률이 달의 낙하운동을 보상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로부터 만유인력(중력)이라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뉴턴이 중력의 원리를 떠올린 후 수학적 표현을 알아낼 때까지는 무려 30년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체모순이 없는 수학적 구조를 여러 개 발견했는데, 이들을 뭉뚱그려서 미적분학이라 부른다. 즉 뉴턴은 물리학적 원리(중력법칙)을 먼저 떠올린 후 자체모순이 없는 수학적 구조(해석기하학, 미분방정식, 미분, 적분 등)를 나중에 개발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수학적 구조들을 하나의 수학(미적분학)으로 통합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원리(광속 불변의 원리, 등가원리 등)를 가정한 후 일련의 수학적 과정을 거쳐 자체 모순이 없는 수학적 구조(리 군, 리만의 텐서해석학, 미분기하학)에 도달했고, 이 구조는 처음에 가정했던 원리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끈이론도 이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끈이론은 수학적 구조가 매우 복잡하여 이론체계를 갖추는 과정에서 수학자들까지 놀랄 정도로 방대한 수학분야들(리만곡면, 카츠-무디 대수, 초리대수, 유한군, 모듈함수, 대수적 위상수학 등)이 하나로 통합되었으나, 이론의 기본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과학과 종교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시대를 불문하고 문명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다고 했다. 종교가 원시종족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간 이유는 종교를 수용한 종족이 진화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동물들은 육체적 능력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기 때문에 우두머리에게 복종하는 규율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 년 전에 우리의 선조들은 지능이 높아지면서 우두머리의 능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지능이 높으면 매사를 논리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이런 능력은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해로운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개인의 지능을 제어하는 강력한 구심점이 없으면 이탈자가 생기면서 집단이 와해되고, 뿔뿔이 흩어진 개인은 생존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윌슨은 지능이 높아진 원시인류에게 우두머리를 따르고 그와 관련된 신화를 맹신하는 쪽으로 선택압(selection pressure, 생존에 불리한 유전적 요인이 제거되는 경향)이 작용했다고 결론지었다. 복종심 없이 논리적 생각만 앞세우는 개인은 집단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도구를 사용하고 음식을 구할 때는 지능이 높을수록 유리하지만, 종족의 결속이 위태로울 때는 지적능력은 접어두고 규율을 따르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즉 신화를 보유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확률이 높다.
'about Scie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적 원자 by 마크 뷰캐넌 (0) | 2018.10.28 |
---|---|
최후의 질문 by 아이작 아시모프 (0) | 2018.09.19 |
원자, 인간을 완성하다 by 커트 스테이저 (0) | 2018.09.10 |
불멸의 원자 by 이강영 (0) | 2018.09.04 |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by 카를로 로벨리 (0) | 2018.08.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