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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cience

불멸의 원자 by 이강영

by hoyony 2018. 9. 4.

불멸의 원자 필멸의 물리학자가 좇는 불멸의 꿈





2016. 06. 25
사이언스북스



불멸의 원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늘 가까이 있고, 인생에서 정말 드물게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일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가장 친밀한 사건이었다. 고대의 죽음은 종의 집단적 운명에 대한 익숙한 체념이었고, 중세 이후 개인이 발견되고 해방됨에 따라 죽음은 인간이 자신에 대해 가장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장소였다. 죽음은 살아 있는 존재에게 가장 커다란 사건이지만, 나의 죽음 이후에도 시간은 계속 가고 세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유족들은 장례를 위한 절차를 밟을 테고, 유산과 뒷일을 이야기할 것이다. 
죽음 그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인간은 또한 사회 속에서 정의되는 존재이므로 대부분의 죽음은 여러 사람에게 크건 작건 영향을 미친다. 죽은 이의 주변 사람들은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용서하거나 사죄하거나 마음의 짐을 내려놓거나 새로이 지거나 이익을 셈하거나 부끄러워한다. 어떤 사람의 죽음은 특별히 큰 파문을 남기기도 한다. 가족도 아니고 아무런 혈연도 없는 사람도 그의 죽음에 며칠 몇 달을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사람도 애통함을 못 이겨 쓰러져 울고, 슬픔과 자책과 허무함에 수백만 명이 기어이 빈소를 찾아가서 몇 시간을 줄을 서서라도 애도를 표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예전에는 심장이 멎은 것을 죽음의 기준으로 삼았으나, 의학이 발전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상태를 더욱 정밀하게 알게 되면서 죽음을 정확하게 생물학적으로 정의하는 일이 쉽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심장과 뇌와 폐가 모두 죽게 되면 개체가 더 이상 살아있을 수 없는 것이 확실하며, 보통 이 상태를 죽음이라고 한다. 사실 이 세 장기 중 어느 하나가 죽게 되면 곧 다른 두 장기도 기능이 정지하며 개체는 곧 죽음을 맞는다. 심장이 멎으면 혈액이 더 이상 몸을 돌지 않는다. 호흡이 멈추고 더 이상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다. 뇌에도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서 조직이 괴사되기 시작한다. 안구의 움직임도 멎는다. 그러나 개체가 죽더라도 몸을 이루는 세포들이 동시에 죽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각각의 세포들은 살아서 혈액 안에 산소를 소비하면서 자기 일을 다 한다. 그러다가 차츰 온몸에 죽음이 퍼져 나가고, 결국 모든 세포가 다 죽는 순간이 온다. 
동물은 죽은 뒤에 대부분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어 직접적으로 생물학적인 순환을 하지만 인간은 대체로 땅에 묻히거나 화장을 한다. 먼저 세포 안의 효소로 인해 자기 분해 과정이 일어난다. 죽은 이가 땅에 묻히면, 시신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것은 곤충이다. 시신에 몰려든 곤충은 직접, 혹은 유충을 낳아서 시신을 먹고, 몸 안의 세균도 조직에 침범해서 대사 활동을 한다. 이 과정을 부패라고 한다. 질소는 미생물을 통해서 암모니아가 되어 토양에 남아 있다가 세균을 통해서 질화되어 질산염이 되고, 이것은 식물에 의해 흡수되어 식물의 세포를 이룬다. 늪과 같은 곳에 쌓인 유기체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가 되기도 한다. 화장을 하면 남은 유골의 대부분은 인산칼슘이다. 물에는 잘 녹지 않으나 산성 용액에는 쉽게 녹는다. 인산칼슘은 토양에 남아 있으며 일부 식물에 흡수되기도 한다. 이렇게 죽음은 자연 속에서 생물학적, 화학적 순환의 연결고리가 된다.
그러면 이제 물리학자의 눈으로 죽음의 과정 속에서 원자를 보자.
원자에게는 인간의 죽음이 특별할 게 없다. 죽음 후에도 피 속의 철 원자는 여전히 철 원자이고, 뼈 속의 칼슘 원자는 여전히 칼슘 원자다. 살아 있었을 때,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를 200개라고 하면 그중 126개는 수소이고, 51개는 산소이며, 19개는 탄소, 3개는 질소이고, 나머지 다른 원소들은 모두 합쳐야 하나 정도다. 이중 생명체를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원소는 탄소다. 탄소는 다른 원소와 다양하게 결합해서 우리 몸의 필수적인 구성 성분인 단백질과 DNA를 이룬다. 그러나 생명체를 이루는 핵심인 탄소 원자에게도 몸의 주인이 죽었다는 것은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다. 미생물이 시신을 분해하거나, 곤충이 조직을 먹고 소화를 시키면 단백질은 더 단순한 아니모산 분자가 되는데, 아미노산 속에서도 탄소 원자는 역시 탄소 원자다. 시신을 화장했다면 세포 안의 탄소 원자가 이산화탄소 분자가 되어서 공기 중으로 흩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뒷산의 배롱나무에 흡수될 수도 있고, 혹은 거대한 대기의 순환에 휩쓸려 지구 저편까지 밀려갈 수도 있다. 그러다가 티그리스 강가의 대추야자나무가 광합성을 할 때 흡수돼서 포도당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도당 속에서도 여전히 탄소 원자는 탄소 원자다.
그렇게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 형태를 바꿔가며 상태를 바꿔가며 이런저런 화합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뿐이다. 누군가의 몸속에 있었던 원자든지 인간이 나고 자라고 죽고 문명이 성하고 쇠하고 꽃이 피고 지고 숲이 우거지고 새가 울다가 날아가 버리는 동안 언제나 원자인 체로 남아서 세상을 떠돈다. 원자는 불멸의 존재다. 
원자는 어디서 왔을까? 우주와 함께 태어났을까? 누가 만들었을까?
20세기에 인간은 원자뿐 아니라 우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핵물리학과 우주론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폭발의 약 1초후 양성자와 중성자가 분리되었고 3분이 지났을 무렵에는 우주가 충분히 식어서 핵반응이 끝나는데, 그동안 지금 우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수소와 헬륨, 중수소, 리튬과 베릴륨 원자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헬륨의 양은 우주의 물질 전체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데, 이것은 대폭발 우주론의 중요한 증거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만큼의 헬륨을 만들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붕소보다 무거운 원자는 대폭발에서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러면 나머지 원자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구에서 가장 많은 원자는 지구 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철이고 그다음은 산소, 그리고 규소다. 그러나 우주 전체에 가장 많은 원자는 수소다. 수소는 우주 전체에 있는 원자 개수의 약 90%에 달한다. 그리고 나머지 10%는 헬륨이다. 세 번째로 많은 원자인 산소도 0.06%에 불과하다. 무거운 원자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초신성이다. 초신성이란 태양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별이 수축하고 그 충격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내부에서는 온도와 압력이 급격하게 올라가서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핵반응을 통해서 보통 별 안의 핵융합으로 만들 수 없는 무거운 원자들이 만들어진다. 초신성은 또한 별 속에서 만들어진 원자를 우주에 퍼뜨리는 주역이다.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초신성에서 만들어진 물질은 우주 공간에 흩뿌려진다. 그 결과 은하와 은하 사이의 희박한 구름 같은 성간 물질 속에도 무거운 원자들이 섞여든다. 또한 초신성의 충격파는 성간 물질을 휘저어서 불균일하게 만든다. 그러면 초신성의 흔적인 풍부한 원자를 지난 성간 물질이 뭉치게 되고 새로운 별이 탄생한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젊은 별들은 오래된 별들보다 무거운 원소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수십억 년 전 어느 별 안에서 만들어져서 초신성의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에 흩어지거나 적색 거성의 표면에서 흩날려서 떠다니다가 서로 만났다. 우리는 언젠가 우주 어디선가 일어났던 초신성의 흔적이며 수많은 별들의 죽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다. 우리는 언젠가 죽겠지만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언제까지나 남아서 지구 어느 곳인가, 혹은 우주 어느 곳인가에서 또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의 불멸성을 아는 물리학자라고 해도 죽음을 접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죽은 이를 생각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과정은 현재 우리의 물리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현상이지만, 물리학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그의 몸을 이루던 원자가 세상 어디엔가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의 죽음은 아직도 슬프고, 아프고,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서, 새벽에 문득 눈을 떴다가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망연자실하곤 한다.

다른 차원
인간이 경험하고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은 20세기에 접어들어 커다란 전환을 겪는다. 특히 물리학 분야에서 아인슈타인은 혁명적이고 결정적인 변화를 제시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절대적인 것은 빛의 속도이고, 시간과 공간은 빛의 속도를 절대적으로 유지하도록 서로 얽혀 있다. 시간과 공간은 관측하는 계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존재다. 또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더이상 물질과 무관하게 세상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함께 세상을 구성하는 실체다.
그런데 공간이 물질과 동등한 실체라면 공간의 차원이 그저 관측되는 숫자에 불과할까? 이 점에 관해 최초로 3차원 외의 다른 차원의 물리적 의미에 관해 주목할 만한 연구를 한 것은 독일의 젊은 수학 강사 테오도르 칼루차와 닐스 보어 연구소의 오스카르 클라인이었다. 칼루차는 1919년에 4차원 공간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과 전자기력이 통일된 이론이 될 수 있음을 보였으며, 클라인은 1926년에 네 번째 차원이 둥글게 말려 있는 이론을 발표했다. 칼루차와 클라인은 여분의 차원이 우리에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마치 우리가 3차원의 물질인 종이를 2차원이라고 여기듯이 여분의 차원이 매우 작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여분 차원 방향의 운동량을 가진 물질은 3차원 공간에서는 그만큼의 질량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칼루차ㅡ클라인의 이론은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시도는 여분의 차원을 다루는 표준적인 방법이 되었다.
우리와 다른 모든 물질은 어떤 이유로 오지 3차원 위에만 존재한다면 물리학의 오래되고 중요한 질문인 중력은 다른 힘보다 왜 그렇게 약한가?라는 물음에 새로운 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원자 이하의 세계에서 입자들이 직접 상호 작용을 할 때 중력의 세기는 전자기력의 약 1조분의 1조분의 1조분의 1에 불과하다. 전자기력력에 비해 강한 상호작용은 야양 100배 강하고 약한 상호작용은 약 1000분의 1 약한 것을 생각하면 중력은 너무나도 약하다. 그러나 우리가 거시적인 세계에서 중력을 강력한 힘으로 느끼는 이유는, 다른 상호 작용들은 안정된 상태를 이루면서 상쇄되는 반면 중력은 계속 더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자와 원자핵이 원자를 이루면 각각의 전하는 상쇄되어 전기적으로 중성으로 보인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란 시공간 그 자체다. 따라서 물질과 다른 상호 작용은 3차원 공간에만 존재한다고 해도 중력만은 3차원 외의 여분 차원을 포함한 전체 공간에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3차원 안에서만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것은 중력 전체가 아니라 3차원 공간의 중력뿐이다. 즉 중력도 원래 다른 힘들과 비슷한 세기였지만 우리가 그중 3차원에 국한된 극히 일부만을 느끼기 때문에 다른 힘들에 비해서 그토록 약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개미를 다른 힘, 파리를 중력이라고 할 때, 개미와 파리를 비슷한 수만큼 상자에 넣으면, 개미는 전부 바닥에서 기어 다니지만, 파리는 날아다니기 떄문에 바닥에 있는 파리 숫자는 개미보다 훨씬 적은 것과 같다. 상자의 천장이 충분히 높으면 파리들은 거의 모두 날아다니고 바닥에는 앉지 않을 것이다. 천장이 낮으면 바닥에 앉은 파리가 좀 더 많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력의 세기는 여분 차원의 크기, 그리고 여분 차원의 개수에 따라 달라진다. 반대로 말하면 여분 차원의 크기와 개수는 중력의 크기를 측정함으로써 알 수 있다. 가장 간단한 경우로서 여분 차원이 하나 있다면, 관측되는 중력으로부터 계산한 여분 차원의 크기는 수 킬로미터 정도다. 그런데 이 이론이 맞다면 수 킬로미터보다 작은 크기인 일상 공간에서 느끼는 중력은 3차원 공간의 중력이 아니라 4차원 공간의 중력이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실험에서 확인한 뉴턴의 중력 법칙과 맞지 않으므로, 여분 차원이 하나만 있는 경우는 옳지 않다.  

온도 이야기
열이라는 현상에 관해서 이해가 깊어지고 열역학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열역학은 주로 온도, 압력, 부피라는 세 가지 거시적인 양으로 물질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런데 기체 상태의 경우에는 기체가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입자는 뉴턴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며, 입자와 입자가 서로 충돌는 것이 입자들 사이의 유일한 상호 작용이라고 생각하면 기체의 여러 성질을 잘 설명할 수 있었다. 이를 기체 운동론이라고 한다. 기체의 온도란 기체 입자가 평균적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고 있느냐를 보여 주는 값이다. 이제 온도가 다른 두 기체를 같이 놓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온도가 높은, 즉 속도가 빠른 입자들이 온도가 낮은, 즉 속도가 느린 입자와 충돌하게 된다. 속도가 빠른 입자에 충돌한 느린 입자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그래서 온도가 낮은 기체는 차츰 온도가 올라간다. 속도가 빨랐던 입자가 느린 입자에 부딪히면 속도가 느려므로, 온도가 높은 기체는 온도가 내려간다. 결국 기체에서 열이 이동한다는 것은 기체 분자들의 충돌을 통해서 운동에너지가 전달되는 과정이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온도란 이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온도란 계의 에너지를 나타내는 양이고, 이때 에너지는 물질을 이루는 입자, 곧 원자의 에너지다. 단 액체와 고체에서는 물질을 이루는 입자인 원자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강해져서 운동 에너지만으로 온도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고체의 경우에는 많은 경우, 원자들이 서로 강하게 결합해서 제자리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제 온도란 진동하는 원자의 에너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체의 경우는 모든 기체가 어느 정도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과는 달리, 액체와 고체에서는 물질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성질이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기체는 하나의 방정식으로 거의 모든 기체를 기술할 수 있는 반면, 고체의 물성은 일일이 따로 연구해야 한다.(이것이 고체 물리학이라는 분야는 있어도, 기체 물리학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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