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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Humanities

가 보지 않은 길 by 송호근

by hoyony 2017. 9. 12.

가 보지 않은 길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


송호근
(주)나남
2017. 02. 15



성공의 위기는 오히려 내부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세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세대교체는 직무태도의 변화, 연구자세의 변화, 의욕과 열정의 변화를 동반한다. 젊은 세대들은 퇴근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싶어 한다. 지시된 업무를 달성하는 데에 목을 매지 않는다. 승진보다는 보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직장보다는 가정과 사생활이 우선이다. 회식도 2차는 잘 가지 않는다. 좋은 면도 있겠으나 '끈끈한 연대'는 점차 소멸된다. '끈끈한 연대'는 업무수행의 에너지이자 소통의 윤활유다. '동료애'가 약화되면 그만큼 집단지능도 하락한다. 기술은 반드시 교과서에 쓰인 대로 적용되거나 응용되지 않는다. 경험에서 얻은 '암묵지'가 제대로 전승되어야 경쟁력을 갖는데 '충성심'과 '동료애'가 흩어진 신세대는 암묵지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열정의 점진적 소멸과 암묵지의 상실은 당장은 큰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급격히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의 적응력과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내부적 쟁점이다. 이는 역으로 기술 연구능력 자체에 큰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도 아직은 현대차 그룹 특유의 끈끈한 연대가 작업현장에 작동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질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1987년까지 한국 대기업 공장은 강성 권위주의국가의 지배하에 있었고, 1987년 이후 1998년까지는 세력 각축상태로 변했다. 전자를 전제주의적 체제 혹은 자본 헤게모니적 체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의 힘이 워낙 강해서 노동이 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작업체제를 뜻한다.
그러나 자본의 힘이 항상 그렇게 강할 수는 없다. 해당 산업이 확장일로에 있고, 시장상황이 좋아지면 노조의 교섭력도 더불어 커진다. 그러면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자본이 노조와 타협을 시도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말하자면 각축전이 일어난다. 각축전은 양자의 세력균형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학습과정이다. 학습비용 또는 파업의 사회적 손실이 너무나 커서 양자가 공히 큰 상처를 입을 때 비로소 산업평화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각축전의 결과 산업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바로 이때가 앞서 예를 든 상생정책이 출현하는 시점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스웨덴의 연대임금정책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호기를 놓칠세라 노조가 질주하면 작업장에서 세력 역전이 발생한다. 노조지배적 작업장이 되는 것이다. 노조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노동해방, 노동자 천국이 될지는 몰라도 그것은 결국 그릇을 깨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마치 자본지배적 공장이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정당한 저항에 직면하듯이 말이다. 각축전은 상생으로 가는 학습과정이자, 역지사지를 통해 최대다수의 공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세대교체는 직무태도의 변화, 연구자세의 변화, 의욕과 열정의 변화를 동반한다. 현대차의 50대 이상 구성원들은 모든 인생을 직장과 업무에 쏟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해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충성심이다. 직무헌신, 직무몰입, 직무기여라고 할 수있는 이 충성심은 애사심이자, 기업의 성장을 자신의 성장으로 여기는 자세다. 보상이 높은 수준이었던 것도 아닌데, 그들은 직장에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붇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알았다. 사실 이는 현대차를 포함하여 한국에 있는 모든 일류 기업의 성장스토리이다.

그런데 한국사회가 달라지고 있다. 현대차도 변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퇴근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싶어 한다. 지시된 업무를 달성하는 데에 목을 매지 않는다. 승진보다는 보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직장보다 가정과 사생활이 우선이다. 뛰어난 스팩과 자질을 가진 신입사원들이 현대차를 선택한 이유는 세계적 기업이라는 자부심과 최고 연봉을 보장해주기 때문이지, 자신이 몸담은 청춘을 바쳐 1등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꿈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들에게 현대차가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돈 많이 주고 덜 일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에 입사하는 것, 그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여가와 취미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은 당연히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회식문화에서도 2차는 잘 가지 않는다. 좋은 면도 있겠으나 끈끈한 연대는 점차 소멸된다. 끈끈한 연대는 업무수행의 에너지이자 소통의 윤활유다. 동료애가 약화되면 그만큼 집단지능도 하락한다는 것이 40대 중반 이상 중간관리자들의 걱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걱정조차도 하위직급 사원들에게는 곧 퇴사할 꼰대의 무용담이자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 

조직에서 다양성은 만족, 몰입, 성과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세기 후반부터 주목을 받는 것은 기업 구성원이 보유한 네트워크의 이질성이 갖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성과에 대한 긍정적 효과이다. 네트워크의 이질성이 향상되면 조직학습 능력이 강화되고, 조직학습 능력은 조직혁신 성과를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반면, 조직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조직 몰입과 응집성이 훼손된다는 지적도 있다.  상호 이질적인 구성원이 증가하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편견, 불신, 갈등이 촉발될 수도 있다. 
그 효과에 대한 분분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직 다양성의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질적인 집단의 유입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다른 생각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조직에서 함께 일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질성과 다양성이 특징이 될 제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기업들도 곧 생존의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 젊은 세대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차이에 대해 보다 수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획일성보다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SNS를 끼고 사는 젊은 세대는 혼자만의 시간을 더 원하고 프라이버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전통적인 목표지상주의의 시각으로 다루는 대신 이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주어 정서적 안정감을 증대시키고 사적 영역에 대하여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관리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의 경우 일방적인 의사소통이나 비효율적인 업무관행에 대해 더 이상 복종하지 않으며, 평가와 보상에 있어서 능력에 따른 합리적 기준이 적용되기를 바라고, 조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원치 않는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기성세대 관리자들은 비판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20대와 30대는 상급자가 자신을 불공정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현대차는 함대형 생산체제(fleet-style production system)를 고안한 최초의 글로벌 기업이다. 이 체제에 대해 학계와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소 비판적이다. 사령탑과 직영업체 간, 기업본부와 협력업체 간 갑을관계 혹은 주종관계를 고착시켰다는 점에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수직계열화는 사령탑의 결단력과 전략을 일사분란하게 수행하는 기본구조이며, 계열사들에게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주는 대신 생산에 주력하도록 만드는 독특한 기업환경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 일본, 독일과 차별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부품조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고객불만을 즉각 해소하며, 품질개선을 위한 대응시간을 줄이는 효율적 방식이었다.

현대차는 약 330여 개에 달하는 직영업체와 1차 벤더로 구성된 복합선단이다. 부품의 원활한 공급과 업체 간 조율을 위해 매우 긴밀한 조율체제가 작동한다. 모기업이 엄정 관리하는 품질인증제도가 부품업체의 기술개선과 향상을 촉진하는 핵심적 규율이고, 제품개발을 위해 부품업체에 제공하는 R&D 자금, 기술진 파견 등이 후속조치로 이루어진다. 부품공급원의 숫자를 줄이고 기술특화를 촉진하기 위해 현대차가 도입한 제도가 모듈화이다. 자동차 생산구조를 통합형과 모듈형으로 구분하면, 현대차는 중요 파트를 외주에 맡기는 모듈형에 속하고, 중요한 핵심모듈의 생산업체가 직영구조에 편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폐쇄적 모듈형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모기업에 대한 의존성은 일감과 물량 확보에는 좋으나 자동차시장 위축과 경기침체 시에는 동반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함대형 생산체제가 기반한 수직적 위계질서를 서서히 재고해 볼 시점이 되었다. 기업네트워크의 한국적 구조에 해당하는 현대차의 생산체제가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작동하였으나 환경이 바뀌면 비효율을 낳는 중대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모기업은 330여 개에 달하는 협력사에 최근 독자적 시장개척과 기술개발을 독려하고 많은 지원책을 제공하지만 본질적 구조개혁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직영 계열사의 최고 경영자가 모기업의 평가를 받고 진퇴가 좌우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럴지 모른다. 

산업사회로 넘어온 지 오래 되었지만, 가장 일관성 있는 직업은 농민, 어민이다. 그것을 1차 산업이라 부르는 이유도 변하지 않은 속성 때문일 것인데, 농민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감자 심은 데 감자 심고, 고추 심은 데 고추 심는다. 돈이 되는 다른 작물을 심었다가 실패하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상업작물로 재미를 본 사람을 농민들은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아예 농업이 아니라 투기라고 코웃음 친다. 어민도 마찬가지다. 어업기술이 좀 발달하기는 했어도 평생 나갔던 어장으로 나가고, 평생 해온 기술로 양식을 한다. 자신의 생계가 날씨와 기후에 달려있다고 믿는 직업은 외부환경의 변화가 가져오는 리스크를 자신의 무변화로 상쇄하려는 습성이 강하다. 
환경과 태생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경쟁력을 최대화해야 하는 운명, 이것이 신이 내려 준 제조업의 숙명이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시장의 변화와 기술변화가 동시적으로 발생하고, 여기에 소비자의 취향이 죽 끓듯 바뀐다. 항시적으로 적응하고, 항시적으로 변신하지 않는 기업은 죽는다. 20세기 명성을 날리던 세계적 기업이 오늘날 어느 정도 남아 있는가?

한국의 오너 중심적 의사결정 구조는 민첩한 리더십의 한 유형일 뿐 효율적, 진취적, 미래지향적 정책결정을 항상 보장하지 않는다. 향후 3세대 리더십 시대가 열릴 것이기에 몇 가지 보완 장치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보회로의 분산과 집중이다. 모든 부서가 생산하고 수집한 정보를 특정 직급 이상의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분산), 그릭 그 정보들은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지도부에 집중되어야 한다(집중). 각 부서장, 부문장들은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정확한 정보를 가져야 하며, 위기상황을 촉발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미래대응적 정책을 구상할 수 있는 자료를 활용해야 한다. 지도부는 이렇게 올라온 체계화된 정보에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서간, 부문간 갈등상황을 잘 파악해서 정보흐름이 끈어질 개연성을 차단해야 한다. 정보와 정책능력은 그 자체가 권력자원이기 때문에 부서, 부문의 독점 욕구를 낳는다. 거대기업일수록 사내 파벌을 경쟁해야 하는데, 파벌은 정보선택과 왜곡을 초래하는 굴절선이다.

핵심지도부는 밑에서 올라오는 체계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구상된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게 되는데, 이때 특정 그룹의 성정이 투사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특정 파벌의 권력욕심과 충성심이 투영된 의사결정은 필연코 하이 리스크를 초래한다. 핵심지도부 간에는 적절한 경쟁과 적절한 견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일단 이런 과정을 거쳐 채택된 최종 정책에 대해서는 합심,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은 해외공장, 해외지사와의 긴밀한 네트워크로 운영된다. 정보의 원활한 흐름과 체계적, 종합적 집계는 이런 경우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본부와 해외공장 간 신뢰가 구축된다.

오너의 판단은 의지뿐 아니라 정확한 정보체계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것도 왜곡되지 않은 객관적, 종합적 정보다. 오너 중심적 의사결정 구조가 민첩한 리더십의 요소이기는 하나, 정보회로의 개방적 혁신과 지도부의 쌍방적 소통회로가 성공 확률이 높은 민첩한 리더십을 확증하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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