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6. 10, 쌤앤파커스
1부. 시간 파헤치기
현재의 개념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해야지, 멀리 있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우리의 현재는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이라고 생각하며 된다. 그렇다면 이 거품의 적용 범위는 얼마나 될까? 이는 우리가 시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주 곳곳에 잘 정의된 지금이 존재하는 생각은 환상이자 우리 경험의 부적절한 외삽.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고요 속에서 아무런 신체적 경험이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우리는 즉시 어떤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한다’고 말했다. 즉, 우리 내면에서 흐른다고 인지한 시간도 움직임의 척도. 우리 내면의 움직임. 시간은 움직임의 흔적.
뉴턴은 반대의 생각. <자연철학과 수학적 원리>에서 ‘나는 시간, 공간, 장소 그리고 운동을 정의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관찰해야 할 것은 지각 가능한 사물과의 관계로부터 인식한다는 점이다. 절대적인 양과 상대적인 양, 참된 양과 겉보기 양, 수학적인 양과 통속적인 양을 구분하는 것이 편할 것’. 즉, 뉴턴은 날짜와 운동을 측정하는 ‘시간’,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상대적이고 명백하며 통속적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 그러나 그 외 또 다른 시간도 존재할 것이라고 밝힘. 사물의 변화와 상관없이 진짜 시간은 흐른다고 생각.
교육받은 우리는 사물과 관련 없는 뉴턴의 시간이란 존재가 단순하고 자연스러울 것. 교육을 바탕으로 시간에 대한 직관을 만들었기 때문.
뉴턴의 시대가 오기까지, 인류에게 시간은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헤아리는 방식.
빈 공간에 대한 뉴턴의 생각은 토리첼 리가 병에서 공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을 때 확인되는 듯 했으나 병 속에는 전기장, 자기장, 양자 입자들의 무리 같은 물리적 존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이 드러남.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시간에 대한 의문과 흡사.
이 그림은 휜 시공간이라 부름. 뒤틀렸기 때문에 탄력적인 종이를 잡아당기면 줄어들거나 늘어나거나 하며 광원뿔들이 기울어진 이유.
중력장은 다른 모든 것들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우리가 미터기나 시계라 부르는 것들의 리듬과 물리적 현상의 리듬을 정하는 역동적인 요소. 그러나 중력장도 다른 모든 사물들처럼 양자적 특성을 가져야 함.
양자역학 덕분에 얻은 발견은 세 가지 :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
1) 입자성 : 시계로 측정한 시간은 양자화. 즉 특정한 값만 취하고 다른 값들은 없다. 시간을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알갱이로 나뉜 것.
시간의 최소 간격이 존재하는데 이 간격 이하로 내려가면,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보다라도 시간으로서의 개념은 부존재. 세계는 미묘하게 분리돼 있으며 연속적이지 않음.
2) 시간의 양자중첩 : 불확정성. 즉 내일 전자가 어디에서 나타날지 예측 불가능.
시간은 전자와 같은 물리적 물체. 시공간도 파동처럼 흔들리며 다양한 형태로 중첩. 광원뿔의 구조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모든 지점에서 요동. 시공간이 중첩되면 한 입자가 공간에서 널리 퍼질 수 있듯, 과거와 미래의 차이도 흔들릴 수 있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전과 후 모두에서 발생 가능.
3) 관계들 : 요동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순간에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결정된다는 의미.
2부. 시간이 없는 세상
세상의 사건들은 변화하고 우연히 벌어진다. 이 우연한 발생은 무질서하게 확산되고 흩어진다. 이동 속도가 다른 시계들은 동일한 시간을 표시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간은 변화의 척도.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과 과정의 총체.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다는 것.
내일 돌이 어디 있을 것인지 궁금해 할 수 있으나, 반면 입맞춤이라는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날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음. 세상은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짐.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 전쟁은 사물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 폭풍우도 돌발적인 사건들의 집합. 가족도 사물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 느낌의 총체. 인간도 음식, 정보, 빛, 언어를 비롯한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복잡한 프로세스.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 화학적 프로세스의 네트워크 속에, 자신과 비슷한 타인들과 교환한 감정의 네트워크 속에 있는 수많은 매듭들이 인간 안에 존재.
시간이 그저 사건을 뜻하는 것뿐이라면, 모든 사물은 시간이다. 시간 속에 있는 것만 존재한다.
장field들은 소립자와 광자, 중력 양자와 같은 입자 형태로 나타남. 이 입자들은 공간 속에 담겨 있지 않고 스스로 공간을 형성. 세상의 공간성은 입자들 간에 성립하는 상호 작용들의 네트워크. 입자들은 시간 속에 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서로 상호작용. 이 상호작용이 세상의 사건, 방향도 없고 선형적이지도 않은 시간의 최소 기본 형태. 상호작용의 동역학은 확률적. 세상은 서로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관점들의 총체.
3부. 시간의 원천
과거와 미래의 전반적 차이는 엔트로피가 과거에 낮았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기인.
속도가 다른 물체와의 관련 속에서 한 물체가 갖는 특성이듯이 엔트로피도 상대적인 양. 아주 먼 과거의 엔트로피는 매우 낮게 나타나는데 우리와 상호 작용해온 일부 변수들의 집합만을 고려한 것. 우리가 세상과 상호 작용하면서 세상을 설명할 때 기술하는 거시적 변수들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극적인 희미함만을 발생.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에너지원이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의 근원들. 낮은 엔트로피가 없다면 에너지는 균일한 열로 약해지고, 세상은 열평형 상태에서 잠들 것. 태양은 따뜻한 광자를 보내고 지구는 차가운 광자를 방출.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도착한 뜨거운 광자 하나당 차가운 광자 열 개를 방출. 뜨거운 광자 하나는 차가운 광자 열 개보다 엔트로피가 적다. 뜨거운 광자 하나의 배열의 수가 차가운 광자 열 개의 배열 수보다 훨씬 적기 때문. 따라서 태양은 우리에게 낮은 엔트로피를 꾸준히 공급. 태양 자체는 매우 낮은 엔트로피 배열에서 탄생.
엔트로피의 성장은 점진적으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짐. 오랫동안 방치해 둔 나무 더미는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가 아니다. 탄소나 수소 같은 구성 성분들이 아주 특별한(질서있는) 방식으로 결합하여 나무를 형성하기 때문. 엔트로피는 이 특별한 조합이 깨져야 성장. 나무가 불에 타면 이 결합이 깨지는데, 나무는 스스로 타기 시작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높은 엔트로피 상태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줄 때까지 낮은 엔트로피 상태로 남아 있다. 불은 나무가 높은 엔트로피 상태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과정.
우주의 모든 역사는 엔트로피 증가가 멈추고 점프하면서 전개. 무엇인가가 개입해 에느로피를 증가시키는 문을 열기 전까지 낮은 엔트로피 분자 속에(나무더미, 수소구름 등) 갇혀 있기 때문에, 엔트로피의 증가는 빠르지도 않고 일정하지도 않음.
우주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무질서해지는 과정. 새로운 통로들이 열려 무질서가 퍼져나갈 때까지, 광활한 영역들은 질서정연한 배열 속에 갇혀 있음. 우주 전체는 조금씩 붕괴.
과거의 흔적이 남으려면 무엇인가 정지해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만, 즉 에너지를 열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 그래서 컴퓨터가 뜨거워지고, 뇌가 뜨거워지고, 달 위로 떨어진 유성들이 달을 가열. 열이 없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탄력적으로 튕기고 그 어떤 것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인간, 곧 살아 있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과정들의 총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그룹화. 왜냐하면 우리 삶은 사회적이고 그들과 많이 상호 작용하기 때문. 우리는 상호 작용하면서 인간이라는 개념을 창출.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며, 그리고 우리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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