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8. 20, ㈜시공사
1장. 제일 원인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 아니다. 정치는 참혹한 것과 불쾌한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 존 갤브레이스
전쟁의 근원은 정치와 역사에서, 지진의 원인은 지구물리학에서, 산불은 날씨와 자연 생태계에서, 시장의 붕괴는 자본과 경제의 원칙과 인간의 행동에서 찾아야 한다. 참사라고 부르건 격변이라고 부르건, 각 사건들은 그 자신의 독특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전히 마음을 끄는 유사성이 있다. 모든 경우에 계의 조직화 때문에 작은 충격이 거대한 반향을 일으킨다. 이 계들은 불안정성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격변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2장. 지진
과학이란 단지, 언제나 성공한 처방들의 축적이다. 다른 모든 것은 문학이다.
- 폴 발레리
작은 지진은 항상 일어나고 있다. 큰 지진은 드물게 일어나지만 작은 지진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 지진들은 뉴스에 보도되지 않는다. 규모가 3 미만이기 때문. 규모 3의 지진은 규모 7의 지진보다 1만 배 약하다. 이런 지진으로는 창문에 앉은 파리조차 꿈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999년 8월 30일에 캘리포니아 여러 지역에서는 지진이 22회나 일어났고, 그중에서 하나만 규모 3에 달했다. 그만큼 이런 정도의 지진은 매일 자주 일어난다.
3장. 터무니없는 추론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추적해서 알려진 것이 나오면 고통이 줄어들고, 마음이 진정되며, 힘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위험, 소란, 불안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볼 때 생기며, 최초의 반응은 이런 고민스러운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다. 제1원칙은 다음과 같다. 어떤 설명이든, 설명이 없는 것보다 낫다. (…) 원인을 만들어내려는 욕구는 공포의 느낌에 의해 생겨나고 조절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에너지로 볼 때 쿠텐베르크-리히터의 법칙은 아주 단순한 규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A형 지진이 B형 지진보다 에너지를 2배 방출하면, A형 지진은 B형 지진보다 4배 드물게 일어난다. 이 단순한 패턴은 매우 넓은 에너지 범위에서 들어맞는다. 이런 관계를 ‘멱함수의 법칙’이라 한다.
대수학에서 멱함수란 높이가 수평 거리의 거듭제곱에 따라 변하는 곡선이다. 높이 = (거리)². 이것은 멱이 2인 멱함수다. 구텐베르크-리히터 곡선에서 에너지에 따른 지진의 횟수는 E²에 반비례한다. 에너지를 2배로 할 때마다, 지진은 4배로 드물어진다.
4장. 역사의 우연
과학이란 이 시대의 바보가 이전 시대의 천재를 능가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말한다.
-맥스 글럭먼
시간이란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존 휠러
물리학에서 역사의 의미는 녹은 소금을 되돌리려고 할 때 분명해진다. 미시적으로 볼 때 소금 알은 염소 원자와 나트륨 원자가 완벽한 기하학적 배열로 서로 얽혀 있는 결정체다. 이 원자들은 에너지에 의해 묶여 있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물 분자가 이 원자들을 거칠게 두들겨댄다. 물 분자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는 물의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 물 분자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결정을 더 세게 때리고, 원자가 떨어져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 물이 충분히 뜨거우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원자가 결정에서 떨어져 나온다. 이제 물속에는 결정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소금이 녹아서, 모든 원자는 고립되어 모든 방향에서 물에 둘러싸여 있다. 이것은 평형이고, 외부 조건이 변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이 상태로 영원히 지속된다. 평형상태에서는 역사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진다.
6장. 자석
자석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정렬하려는 경향이 있다. 원자 자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원자 자석들이 모여 있으면, 잘 훈련된 군대처럼 재빨리 줄을 선다. 그러나 이 화살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적이 있다. 그것은 열이다. 온도란 물질 속에서 조직화되지 않은 에너지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다. 따뜻한 공기 속에서 분자는 차가운 공기에서보다 더 빨리 날아다닌다. 철은 고체이기 때문에, 철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날아다니지 않는다. 대신 철 원자는 고정된 위치에서 진동한다. 이 진동은 쇠가 뜨거워질수록 점점 더 격렬해진다. 따라서 철 원자들은 서로 자기력을 주고받으면서 정력하려고 하고, 한편으로 열은 원자들을 혼란스럽게 흩어놓으려고 한다. 질서의 힘과 카오스의 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전쟁의 결과에 따라 쇳조각이 자석인지 아닌지 결정된다. 차가우면 질서가 이기고, 뜨거우면 무질서가 이긴다. 그러나 그 중간쯤에 아주 흥미로운 영역이 있다. 어떤 중간쯤의 온도에서 질서의 힘과 무질서의 힘이 아주 비슷해서 어느 쪽도 상대방을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 이것을 임계점이라고 한다.
임계상태는 어마어마한 변이를 하고 있어서 초민감성이라는 말조차 임계상태에 대한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나 정렬되기 직전의 상태이고, 가장 작은 영향도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킬 수 있다.
임계상태에 사는 것들은 엇비슷하게 조직되는 경향이 있고, 이 조직은 계의 세부적인 성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계의 기하학적인 구조에만 관계된다. 따라서 어떤 것이 임계상태라면, 계의 세부적인 성질들을 거의 무시하면서도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7장. 임계적 사고
과학적 사고의 목표는 특수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보고,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을 보는 것이다.
-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모델의 목적은 데이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날카롭게 다듬는 것이다.
- 새뮤얼 칼린
산불의 피해면적이 2배면, 그런 산불은 2.48배로 드물어진다. 이러한 규칙성은 아주 작은 산불에서 시작해서 100만 배 크기의 산불에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이것은 생태적 재난에 대한 구텐베르크-리히터의 법칙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1988년에 일어난 산불은 150만 에이커를 태웠다.1890년 이후로 미국 산림청은 산불을 단 한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산림청은 자연적인 이유로 일어난 것을 포함한 모든 산불을 필사적으로 잡으려고 했다. 산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생겼다. 숲이 노령화된 것이다. 늙은 나무들은 젊은 나무로 대치되지 않아서 숲의 자연적인 변화가 방해를 받았다. 죽은 나무, 풀, 잔가지, 관목, 나무껍질, 나뭇잎들이 축적되었고, 그 결과로 숲은 자연적인 임계상태에서 벗어났다. 숲이 임계상태로 유지되는 데는 산불도 일정한 역할을 하는데, 산불을 인위적으로 억제했기 때문에 잘 타는 물질이 모든 곳에 높은 밀도로 쌓여서 초임계상태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산림 관계자들은 중간 규모 이하의 산불을 막을 필요가 없다. 이제 그들은 잘 타는 물질이 많이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계획적으로 불을 내기도 한다. 중간 규모의 산불은 위험한 죽은 나무를 태워 없애서, 산불이 퍼질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한다. 이렇게 되면 작은 교란이 쉽사리 거대한 참사로 번지지는 않는다.
8장. 살육의 시대
멸종에는 두 종류가 있다. 평소의 멸종은 보통의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대량멸종은 기후 변화나 소행성 충돌 같은 생명권의 극심한 충격에서 온다. 절멸의 크기 분포는 멱함수의 법칙을 따른다. 규칙성은 지진과 비슷하다. 사멸의 숫자가 2배면, 그러한 사멸은 4배로 드물게 일어난다. 대량멸종에서 나타나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분포는 끔찍한 대량멸종도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암시를 준다. 멱함수 법칙은 진화에서 대량멸종도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10장. 난폭한 변이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는, 모든 사람이 합리적인 행위자여서 언제나 합리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정통적인 관점은 아주 이상해 보인다.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광고 회사가 있다는 것만 보아도 이 견해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조작당할 수 있기 때문에 광고가 작용하는 것이다.
12장. 지적인 지진
역사는 예측력을 가진 법칙을 만들 수 없다. 과거에 대한 이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미래에 일어날 만한 일이나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조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문제에서는 언제나 잘못된 논의를 하기 쉽다. 이것들은 과학 법칙이 보여주는 예측의 확실성에 전혀 가까이 가지 못한다.
- 리처드 에번스
역사학에서 서사를 가장 중시하게 된 것은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레오폴드 폰 랑케가 역사가의 과업은 본질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하는 것뿐이라고 한 뒤부터였다. 그러나 옥스퍼드의 역사가 E.H.카가 보기에는, 특정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일반화하는 것이 역사 연구의 진정한 핵심이다. 그렇다면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은 무엇인가? 미국의 역사가 코니어스 리드는 일종의 내부 스트레스가 쌓이면 혁명적인 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에 따르면, 부적응은 모든 사회에서 그 성격과 크기에 관계없이 모든 혁명과 모든 갑작스럽고 극적인 변화에 반드시 선행하는 전조다. 여기에는 부적응과 거기에 따르는 인간의 고통이 어떤 문턱 값에 도달하면 사회 조직이 붕괴된다는 통찰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고통이 극심해서 역사가들이 말하는 가장 거대한 사회적인 관성을 극복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13장. 수의 힘
모든 중요한 사회적 변화의 배후에는 궁극적으로 한 가지 단순한 구동력이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능력이다. 이런 측면은 아주 뻔하지만 대단한 효과를 가진다. 친구, 이웃, 가족, 직장 동료가 하는 것을 보고 덩달아 똑같은 제품을 사고, 특정한 견해를 받아들이며, 똑같은 정치인에게 투표하고, 거리에 나가 시위한다고 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대중 운동은 작게 시작해서 퍼지며, 소수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되어 운동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진다.
카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사실은 개인에 대한 사실이다. 하지만 고립된 개인의 행동이나, 실제든 가상이든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동기는 역사적 사실에 포함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은 개인들이 사회 속에서 맺는 관계와 사회적인 힘에 대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힘은 개인들의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결과는 개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때때로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14장. 역사의 문제
어리석은 질문이란 없으며, 질문하기를 그만두지 않는 한 누구도 바보가 되지 않는다.
-찰스 스타인메츠
역사가들은 각각의 거대한 사건마다 그것을 일으킨 특출한 모래알을 찾아낼 것이고, 그 사건을 유지시켜 결정적인 단계로 이끈 다른 몇몇 모래알들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래알들이 역사의 진정한 동인이라고 결론을 낼 것이다. 이런 견해에 동의하고 싶은 유혹은 매우 크지만, 개인에 대해 민감한 관찰력을 가진 우리의 역사가는 모래의 역사에서 모든 개인은 다른 모든 개인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볼 것이며, 따라서 누가 위대한 모래알인지 묻는 것은 좋은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낼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대한 사건에 큰 사람을 찾아내려는 심리적인 매혹인 있건 말건, 이 아이디어는 거부된다.
15장. 결론을 대신하는 비과학적인 후기
나는 짧게 하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짧은 연설을 한 살바도르 달리만큼 짧게 하지는 않곘습니다. 달리는 “나는 아주 짧게 할 것이고, 벌써 끝났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자리에 앉아버렸지요.
- 에드워드 윌슨,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역사는 종의 다양성으로 창발되는 새로움 때문에만 흥미로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짜임새는 대량멸종과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의 개체수의 극심한 변이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임계상태 때문에 매혹적이다.
우리가 자석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하고, 온도는 임계점보다 낮게 유지된다고 하자. 모든 자석들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일ㅆ을 것이며, 이 방향에서 벗어난 자석이 있다고 해도 매우 드물 것이다. 모든 친구들이 똑같은 일을 할 것이며, 삶은 단조롭고 공허할 것이다. 이런 세계의 역사에는 고정된 법칙이 있고, 끝없는 평화가 지배해서 먼 과거로 돌아가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온도가 임계점보다 훨씬 높다고 하자. 이제 모든 자석들은 마구잡이로 방향을 이리 저리 뒤집을 것이고, 어떤 자석이 어떤 순간에 하는 일은 이웃 자석들이 하는 일과 아무 연관이 없을 것이다. 전혀 공동체를 이루지 않으며, 질서와 비슷한 것은 전혀 없고, 과거는 아무 의미 없는 절대적인 마구잡이 변화의 기록일 것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따분한 세계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마구잡이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온도가 임계점에 가까워질 때는 훨씬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갑자기 어느 한 자석이 이웃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석들이 모두 하나로 정렬되지는 못한다. 이 사회는 여러 가지 규모의 공동체로 채워지며, 이 공동체들은 끊임없이 완전히 질서 잡힌 상태도 아니고 완전히 마구잡이도 아닌 방식으로 변화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구조와 무작위가 당황스럽지만 매혹적인 방식으로 뒤섞여 있다. 사물은 진정되어서 예측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다가도 느닷없이 거대한 변이가 전 세계를 혼한에 빠뜨린다. 역사는 지극히 흥미로워진다.
역사는 모래더미처럼 언제나 극적인 요동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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