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Brief Lessons on Physics
2006. 2. 26
(주)쌤앤파커스
Carlo Rovelli
5. 공간입자
현재 한 이론 물리학자 단체는 5개 대륙으로 흩어져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 문야를 양자중력이라고 하는데, 이 학문의 목적은 여러 방정식의 총체이자, 특히 이 세상에 대한 관점이 일관된 이론, 이를테면 정신분열증까지 해결할 수 있는 이론을 찾는 것입니다.
물리학계에서 두 가지 이론이 완전히 상반된 내용임에도 동시에 대성공을 거둔 예는 이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이렇게 상반된 이론들을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어 격찬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뉴턴의 경우 갈릴레오의 포물선과 케플러의 타원을 조합해 만유인력을 찾아냈습니다. 맥스웰은 전기이론과 자기이론을 조합해 전자기 방정식을 찾아냈고, 아인슈타인은 전자기와 역학 사이의 심각한 모순을 해결하려다 상대성이론을 발견했습니다. 이 때문에 물리학자는 성공적인 이론들 사이의 모순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두 이론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연구는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푸양자중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 중에는 아주 총명한 이탈리아 청년들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의 개념은 간단합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공간이 생기 없는 딱딱한 상자가 아니라 무언가 역동적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이 유동성 있는 거대한 연체동물과 같아서 압축될 수도, 비틀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양자역학은 모든 종류의 장이 양자로 이루어지고 미세한 과립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물리적 공간 역시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의 핵심은 공간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무한하게 나누어지지도 않지만 알갱이로, 즉 공간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원자들의 크기는 원자핵 중에서 가장 작은 원자핵보다 수십, 수천억 배나 작은 아주 미세한 크기입니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은 수학적 형식으로 이러한 공간 원자와 원자들의 진화를 정의하는 방정식을 설명합니다. 루프(loop), 즉 고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든 원자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슷한 것들과 고리로 연결되어 공간의 흐름을 이어주는 관계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공간 양자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느 부분에도 없습니다. 양자들은 그 자체가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속에 있지 않습니다. 공간은 각각의 양자들을 통합하여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한 번 세상이 단순한 물체가 아닌 어떠한 관계처럼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이론의 두 번째 결과는 매우 극단적으로 나옵니다. 사물을 수용하는 연속적인 공간에 대한 개념이 사라지자, 사물과는 별개로 흐르는 기본적, 기초적인 시간에 대한 개념도 사라졌습니다. 공간과 물질의 입자를 설명하는 방정시들이 더 이상 시간의 변화를 수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반대로, 변화가 편재하지만 그 기본적인 과정들이 평범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될 수는 없습니다. 아주 작은 규모의 공간 양자들 속에서 자연은 단 한 명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맞춰, 단 하나의 시간의 흐름에 맞춰 리듬을 타 춤을 추지는 않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의 춤은 이웃해 있는 것들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진행됩니다. 시간의 흐름은 세상 안에 있고, 그 세상 안에서 그리고 양자들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이 양자들 간에 발생하는 사건들이 곧 이 세상이고 그 자체가 시간의 원천이지요.
양자중력이론에서 설명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수용하는 공간도 없고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긴 시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공간 양자와 물질이 계속 서로 상호작용하는 기본적인 과정만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계속 맴도는 공간과 시간의 환영은 이 기본적인 과정들이 무더기로 발생할 때의 희미한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고산지대의 어느 조용하고 맑은 호수는 사실 무수히 많은 아주 작은 물 분자들이 빠른 속도로 춤을 추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이 맞는다면, 물질은 무한한 어느 한 지점에서 실제로 붕괴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한한 지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공간에서 존재하는 것은 유한한 영역뿐입니다. 자신의 무게에 짓눌린 물질은 밀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양자역학이 반대 압력을 발생생시킬 필요 없이, 스스로의 무게를 상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릅니다. 이처럼 수명이 다한 별의 마지막 상태를 가상으로 설정한 것을 플랑크의 별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는 시공간의 양자 파동에 의해 발생한 압력이 물질의 무게 균형을 맞춥니다. 만약 태양이 연소를 멈추고 블랙홀을 만든다면, 이 블랙홀의 지름은 약 1.5킬로미터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 안에서 태양을 구성하던 모든 물질이 계속 가라앉아 결국 플랑크의 별이 됩니다. 이때 태양물질, 곧 플랑크의 별의 크기는 원자와 비슷합니다. 태양 물질 전체가 원자 하나의 공간 속에 응집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질이 극단적인 상태가 되면 플랑크의 별이 만들어집니다.
플랑크의 별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일단 최대로 압축되면 튕겨 올라 다시 팽창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블랙홀을 폭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가상의 관찰자가 블랙홀 안의 플랑크의 별 위에 앉아 이것을 관찰한다면 이 과정이 한 순간의 점프처럼 빠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바다에서보다 산 위에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이 가상의 관찰자와 블랙홀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간튼 속도로 흐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극단적인 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플랑크의 별에 앉아 있는 관찰자에게는 도약의 순간이 아주 짧지만 블랙홀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아주 길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블랙홀이 아주 오랜 시간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블랙홀은 바깥에서 보면 매우 느린 속도로 도약하는 별이기 때문입니다.
10.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우리가 만든 우주의 이미지들은 우리 안에, 우리 사고의 공간 속에서 존재합니다. 이러한 이미지(우리가 가진 한정된 수단을 동원해 재구성해서 파악한 모습들)와 우리가 실재하는 현실 사이에는 우리의 무지를 비롯해 감각과 지식 그리고 특별한 주체로서의 특성을 경험하게 하는 조건 자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과 장치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은 칸트가 상상한 것처럼 보편적이지 않았고, 나중에는 유클리드 공간의 특성과 뉴턴의 역학까지 정말 실재하는 것처럼 추론되는 등등 눈에 띄게 왜곡됐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류의 정신적 진화의 이면이며, 이러한 이면 또한 계속 진화 중입니다. 우리는 학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해서 얻은 지식들을 바탕으로 우리의 개념 구조를 조금씩 바꾸는 법과 그에 적응하는 법도 익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속도가 느리고 정확한 배경도 없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해 알아내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만든 세상의 이미지들은 우리 안에,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의 공간 속에 살고 있으며, 이 이미지들이 우리가 속한 현실 세계를 어느 정도 설명해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조금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그 이미지들의 흔적을 따라가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물들은 꾸준히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함께한 다른 사물들의 상태를 알고 흔적을 얻습니다. 이러한 미에서 볼 때 사물은 서로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합니다. 하나의 물리 체계가 갖고 있는 다른 체계에 대한 정보는 전혀 의식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습니다. 물리학은 그저 어떤 무엇인가의 상태와 다른 무엇인가의 상태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건일 뿐입니다. 비 한 방울에는 하늘에 구름이 있다는 정보가 담겨 있고, 한 줄기 빛에는 그 빛이 나온 물질의 세상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시계에는 하루의 시간에 대한 정보가, 바람에는 근처 지역의 천둥 번개에 대한 정보가, 감기 바이러스에는 우리 코의 취약성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뿐이라면, 우리가 자유롭게 결정을 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우리의 자율성과,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통제하는 자연법칙의 엄격성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는 걸까요? 혹시 우리의 내면에 자연의 규칙성을 왜곡하여 밀어내고, 그 자리를 자유로운 생각으로 대체하도록 만드는 무엇이 있는 걸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자연의 규칙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자연의 규칙성을 반하는 무엇인가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알아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물의 자연스러운 행동 양식을 침범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할 때 정말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거은 우리의 행동들이 우리 스스로의 내면과 뇌가 제한하는 명령을 통해 이루어지고 외부의 그 무엇인가에 의해 강요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롭다는 것이 우리의 행동이 자연의 법칙에 의해 제한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우리 뇌 안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로운 결정은 우리 뇌에 있는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결과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즉, 신경세포들의 상호작용이 우리의 판단을 정의할 때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결정할 때 결정을 하는 주체가 내가 되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만약 내가 내 신경세포들의 총체가 결정하는 것과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면 그건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결정을 내린리는 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비춰보고 스스로를 대변하며, 스스로 변화무쌍한 관점에 따라 정보를 관리하고 표현 방식을 구축하는, 즉 뇌의 구조를 구축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형성되는 나 자신입니다. 결정을 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우리는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프로세스에 적합한 다양한 언어를 이용해 세상을 가둡니다. 각각의 프로세스마다 서로 다른 수준의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곤 하지요. 다양한 언어들이 서로 교차되고 얽히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며, 프로세스 자체도 마찬가지로 그러합니다. 자연에서 우리는 통합된 부분이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자연의 표현 방식 중 한 가지로 살아가는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점이 우리에게 세상의 일들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해서 우리가 자연과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또한 우리의 자연이기 때문이지요. 자연은 여기, 우리 지구에서 자신의 일부분들과 상관관계를 맺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정보를 교류하면서 끝없이 조합하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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