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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cience

다윈이 돌아왔다 (4)

by hoyony 2016. 4. 29.

장례식이 진행 중인 무덤앞에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어젯밤 생사의 기로에서 숨을 헐떡이는 어린 딸의 소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그였다. 그는 한때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고, 신앙인인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다. 하지만 아이는 끝내 숨졌고 그는 사랑하는 딸을 빼앗아간 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따. 찰스 다윈, 그에게 신의 존재는 실좀의 문제이기도 했다.

세상을 바꾼 과학자 중에서 다윈만큼 종교 때문에 가슴앓이를 한 이도 드물다. 그는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부터 줄곧 이 문제와 씨름했다. 창조론이 대세였던 당시의 영국 사회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그의 생각은 이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장롱 속으로 숨어버렸다. 비밀공책에 "신에 대한 사랑이 단지 두뇌 작용의 산물일지 모른다"고 끼적였고, 후배와의 편지에서는 자신이 마치 살인을 자백하는 자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하지만 낙인 찍히는 게 두려웠던지 《종의 기원》 2판부터는 '창조자에 의해'라는 구절을 슬쩍 끼워 넣는다. 그는 "마흔 살에 기독교를 버렸다"고도 했지만, 드러내놓고 무신론을 옹호한 적은 없었다. 대신 하루에도 수십 번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을 택했다.

도대체 왜 진화 혁명을 이끈 다윈마저도 신의 언저리를 맴돌았던 것일까? 혹시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유전자나 뇌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신앙을 가진 이가 진화 역사에서 더 큰 이득을 봤기 때문에 여태까지 종교가 건재한 것은 아닐까?

최근 학계에서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종교 현상을 설명하려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신을 믿는 행위 자체가 독 있는 음식을 피하는 행위처럼 하나의 적응적 행동이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고, 인간이 우연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과(因果)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을 진화시키다 보니 신을 최종 원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입장도 있다. 이 두 입장에 따르면 신은 인간과 공동 운명체다.

하지만 유신론적 종교가 박멸되어야 할 '정신 바이러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영국의 과학자 도킨스는 저서 《만들어진 신》을 한 손에 들고 '신이 있다는 망상'으로부터 인류가 탈출해야 할 이유를 역설한다. 그는 자신의 복제만을 위해 인간 숙주를 무차별 공격하는 감기 바이러스를 보라고 말한다. 종교도 그 자체만을 위해 작동하는 정신 바이러스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종교를 통해 삶의 의미와 재미를 느끼는 이들에게는 황당한 얘기다. 하지만 체제 유지에 급급한 제도권 종교와 광기어린 신앙으로 시끄러운 우리네 상황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이처럼 종교와 진화론의 접점이 최근에는 단지 진화냐 창조냐라는 해묵은 논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 현상 자체를 진화론적 관점으로 해부하려는 시도들로 진화해가고 있다.

다윈의 후예들이 종교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도킨스와 함께 현대 진화론 계보의 양대 축을 형성하는 미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굴드(1941~2002)는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말한다. 요컨대 과학은 '사실'의 영역, 종교는 '가치와 의미'의 영역에서 봉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진화론과 종교는 애당초 충돌할 이유가 없다.반면 도킨스는 신의 존재 여부가 과학의 문제라고 되받아친다. 세계관을 가진 유신론적 종교가 어찌 '사실의 문제'에 함구하고 있겠냐면서 과학자의 눈으로 유신론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 비판 중에서, "신이 인간보다 더 탁월한 존재라면 인간의 진화 이후에야 나온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압권이다.하지만 이들이 종교에 관해 합창하는 대목도 있다. 창조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사이비라는 데 두 사람 모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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