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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Science

New Philosopher (vol 15) : 우주를 생각한다

by hoyony 2021. 9. 8.

우리는 별을 향해 간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동중이었다. 약 8만년 전, 오늘날의 아프리카 지역에서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 호모 사피엔스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고, 그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 같은 경쟁 종을 멸종시켰다. 그 후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적어도 인류의 일부는 이런 대이동을 거듭. 목표는 항상 똑같았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였다. 더 많은 땅, 더 많은 광물, 더 많은 무역, 더 많은 향신료 등등. 이 과정은 유럽에서 기술 발전과 전 세계를 기독교 군주들의 당연한 지배지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맞물리면서 급속하게 가속화. 이로써 유럽 경제가 탐욕스럽게 식민지의 부를 빨아들이고, 계속 부를 축적하기 위해 새로운 외부 세계를 필요로 하는 약탈적인 착취가 시작.
하지만 최근까지도 인류의 이동은 행성의 경계라는 견고한 벽에 부딪혔다. 고대 로마 시인 버질이 “그리하여 우리는 별을 향해 간다”라고 썼을 때 “별”은 신화적이었다. 별과 행성은 문화적 은유나 신성한 예언, 숭배의 대상이었을 뿐 사람들이 천체를 물질적으로 이용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
우주 식민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번에도 같은 타령.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공간, 그리고 탐험가, 개척자, 모험가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골칫거리만 짊어지고 온거야

인간이 화성에서 살아남으려면 그곳 환경을 지구인이 살 수 있도록 만들 필요. 표면 평균온도인 영하 60도를 인간이 견딜 만한 온도로 올려야 하고 대기도 포유류가 안전하게 호흡할 수 있는 상태로 바꿔야. 현재 화성의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는 96% 차지.
우주 개발에서 핵심 문제는 운송. 정착에서 핵심 문제는 행성의 원료를 자원으로 바꾸는 능력. 화성에서 식량을 재배할 수 있어야 한다. 강철, 유리, 플라스틱, 세라믹 등 모든 종류의 자재를 만들 수 있어야.
고수준의 우주 방사선과 지구의 38% 수준에 불과한 표면 중력이 가장 긴급한 문제.
방사능에 대응하는 방법은 지하 도시 건설. 방사선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표면 중력. 뼈와 근육은 체중 부하를 받쳐주면서 튼튼해지는데, 무중력 상태에서는 무게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뼈와 근육이 빠르게 약화. 무중력 상태에서 한 달만 지내도 골 질량이 1.5% 감소. 지구에서는 3% 줄어드는데 10년. 게대가 체액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가슴과 머리로 솟구쳐 오르기 때문에 얼굴, 장기가 붓고 균형감각과 시력에도 문제.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주요 위협이 무엇인가? 기후변화, 자원고갈, 인구과잉? 이것들 중 그 어떤 것도 제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캄보디아 학살 같은 20세기 거대한 재앙을 일으킨 원인이 아니었다. 이런 재앙은 나쁜 사상 때문에 벌어졌다. 나쁜 사상은 수많은 모습으로 발현. 그것은 바로 모두가 충분히 가질 만큼은 없다는 생각. 자원이 제한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국가들이 서로 대립.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있다면 해결. 그렇다면 화성에 도착한 인간이 똑같이 화성 환경을 망쳐놓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콜롬버스가 상륙했을 때 아메리카 대륙이 지하의 미생물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었다고 가정. 이런 상태에서 최초의 정착민들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만들어냈다면 분쟁이 생기지 않을 것.

우주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대체로 서로 협력한다. 우리가 인식한 단기적인 감정적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는 협력이 알맞기 때문이다. 여러 책임감 있는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다소 더 성공한 것도 책임감 있고, 투명하고, 독립적인 기관과 제도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기관과 제도는 홉스주의적 자연 상태의 위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우리의 취약한 인간 본성을 안심시켜 준다. 우리는 이성과 도덕성, 심사숙고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믿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는 우리 대부분이 어찌해 볼 수 없는 문제다. 적어도 대체로는 그렇다.
인류는 상업적 이동과 휴대전화, 인터넷 등을 포함해 일상적 필요를 충족하고 평범한 활동을 해나가는 데 평시에서나 전시에나 갈수록 우주에 의존. 따라서 지구 궤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행위는 무엇이든지 우리 모두에게 해로울 것.
우주에서의 재산 소유권은 1967년 조약이 성문화했지만, 강대국이 조약을 준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강대국은 필요한 일이라면 실행에 옮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난장판인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 세가다 새로운 규제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더욱 난장판이 될 것.

신경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혼자가 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멀어지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사회적 고립은 인간의 정신을 몹시 괴롭힌다. 애착과 소속감뿐만 아니라 웰빙 감각과 안정감의 중심 동기 요소인 공포 때문. 우리는 고립되어도 그럭저럭 살아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 역학은 약화될 것.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제대로 기능할 수는 있더라도 행복하지는 않을 것.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

건축 모형에서 얻는 건물 정보가 부족한 한 가지 이유는 모형이 우리를 닫힌 공간 속으로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 기껏해야 모형은 건물의 외형이 어떤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지, 시간대별 일조량이 얼마인지 등의 정보만 전달할 뿐. 오늘날 가상 건물 견학에서는 실물이 주는 다양한 감각 정보가 누락되는데, 이는 화상 통화가 대면 만남을 제대로 대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방에 들어갔을 때, 예컨대 황금 비율에 따라 공간이 구획되어 있으며, 인간 척도에 따라 창문을 통해 자연광과 맑은 공기가 들어오고 멀리 구름과 지평선을 볼 수 있게 설계된 건물 안에 있다면, 우리의 감정은 공간의 영향을 받게 될 것. 아마도 이런 환경은 차분하고 사색적이며 평화롭고 친근한 느낌을 줄 것. 이와 달리 형편없이 설계되어 공간이 비좁고 더우며, 천장이 낮고 빛도 잘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먼지 냄새마저 나는 방은 기분이 나빠진 원인을 파악하기도 전에 즉시 폐쇄 공포증과 불쾌감을 유발.
건물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을 하도록 의식적으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도구.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률라르가 <공간과 시학>에서 설명했듯이, 새로운 주거 공간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의 눈이나 마음은 순수한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과거, 특별히 어릴 때 살았던 장소를 떠올리며 새로운 공간에 기대감을 품는다. 우리가 폐쇄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나고 자란 장소들에 의해 결정. 바슐라르가 말했듯이,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집은 “우리 몸에 새겨진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기억이 아니라 일련의 동작과 습관, 그리고 정서와 기분이다.
생각보다 공간의 질감과 외관은 중요. 이것들은 위안을 주기도 하고 소외감이나 당혹감을 주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우리가 무한한 우주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두려운 공간으로 여기는 이유는 아마도 우주가 닫혀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즉 우주에 경계가 없기 때문. 우주는 우리가 어릴 때 숨바꼭질하던 공간에서 느끼던 안락함이 없으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가상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시시함

우리는 온라인상에서 돌아다닐 곳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착각속에서 일한다. 하지만 실은 알고리즘이 우리의 기호와 행동 패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혹하는 것. 우리는 한 사이트에서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는 동안 알고리즘이 이끄는 끝없는 토끼굴을 따라 웹의 미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빨려든다. 이러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우리는 스스로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
불과 20년 만에 사이버 공간의 개척자들이 꿈꾸던 유토피아가 웹 사용자를 데이터 수집용 제품으로 취급하는 기술 대기업의 소수 사제들이 장악한 독재적 공간으로 전락한 것은 순전히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된 결과일까? 원래 사이버 공간은 아무도 없고 무한히 확장되며 자유롭고 규제가 없는 대담하고 새로운 미개척지였다. 어떤 미개척지(아메리카 대륙, 우주, 디지털 공간 등)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일종의 이상주의적 꿈이 생겨나 가시화된다. 이것은 경쟁의 꿈보다는 공동체, 연결, 협력의 꿈이다. 하지만 가상 공간의 퇴화는 처음부터 인터넷의 DNA에 새겨져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다른 지리적인 미개척지와 달리, 사이버 공간은 결코 진정으로 정착될 수 없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물질성과 차원성이 모두 부족.

달은 누구의 것인가

악의 근원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악의 근원으로 ‘돈’을 지목. 약 2000년 후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가 악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토머스 홉스는 ‘인간 본성’이 문제라고 주장. 강력한 군주가 없으면 인간은 서로에게 위험이 될 뿐. 자연 상태의 삶은 ‘더럽고 잔인하며 짧은 것’.

장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폭력적인 탐욕이 아니라 연민을 인간 본성의 특징으로 파악. 악의 근원으로 인간을 망가트리는 외부 요인을 발견. 사회화 자체가 문제라는 것. 재산 소유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결말. 자연 상태에서 인류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자유럽기에 진정으로 개별적이었다. 그런데 석기의 발명으로 땅을 파고 나무를 자르고 최초의 오두막을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첫 번째 혁명이 시작. 공간을 분배하면서 가족이 형성되고 원시적으로나마 재산이 형성. 훌륭한 감정을 길러낸 최초의 가족 단위도 루소가 보기에는 자유의 상실이자 종의 노쇠로 가는 첫 단계.
가족 단위의 집단들이 마을을 이뤘고 가족 집단끼리 교류가 시작되면서 점차 서로에게 의존. 공간적 거리가 좁혀지자 서로의 살림살이를 비교했다. 루소의 표현대로 사랑에는 질투가 따라붙기 마련. 비로소 사람들 간의 계급이 매겨졌고, 그렇게 평등이 종말을 고했다.

루소는 이른바 재산의 탄생이라고 하는 발달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극화. “땅을 구획지어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인정받은 최초의 사람이야말로 시민 사회의 진정한 설립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최초의 구획 짓기로부터 인류에게 불어 닥친 “온갖 범죄와 전쟁과 살육...그리고 공포와 불행”이 비롯된다. 루소는 미래를 내다본 누군가가 말뚝을 뽑아버리고 배수로를 메우고 이웃들에게 “이 사기꾼의 말을 믿지 마시오. 이 땅의 열매는 우리 모두의 것이며, 이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님을 망각하는 순간 당신들은 폭삭 망하게 된다오”라고 외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탄한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구세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재산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면서 강탈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는 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법은 정의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라, 힘으로 얻은 걸 다시 힘으로 빼앗길지 모른다는 재산 소유자의 공포심으로부터 출발.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홉스식의 자연 상태를 도덕적 서사로 가공. 무장 강도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재산을 똑같이 보호하는 법적 제도를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 루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인간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심오한 계획”이었다. 이로 인해 약탈이 불변의 권리로 둔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계획은 “자유를 향한 희망과 뒤섞여 계급 사슬 전반으로 돌진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모든 악이 처음 울타리를 친 순간에 근원을 두고 있는 거라면, 악의 확산은 법과 기술에 기인. 법은 공간을 강제로 차지하는 행위를 정당화. 법의 권세가 없으면 재산은 소유자 개인의 힘으로만 지켜질 수 있고 재산의 영역도 소유자의 힘이 미치는 범위로만 한정. 법이 존재하고 경찰처럼 법을 지탱하는 강제적 제도가 있기에 멀리 떨어진 재산일지라도 영속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부를 물려줄 수도 있는 것. 이제 재산 소유자는 개인의 힘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의 힘에 기댈 수 있게 되었다.
루소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결말은 자명하다. 모두의 것이어야 하는 것들에 울타리가 쳐져 소수만 그 이이을 누렸다는 것.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심해저와 달을 나눠 갖자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가장 소중한 공간인 우리 내면의 생각과 감정까지 착취하려는 계획이 자꾸만 생겨나니 말이다. 과연 이번에는 “이 사기꾼 말을 믿지 마시오!”라고 누가 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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