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by 헨리 조지
비봉출판사
2016.07.15
Henry George
제1장 현재의 임금학설 ㅡ 그 불충분성
생산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왜 임금은 생존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해 현 정치경제학에서는, 임금은 노동자의 수와 자본의 양 사이의 비유에 의해 정해지는데 노동자 수는 자본이 증가하는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임금은 노동자의 생존과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최저 임금으로 낙착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학설은 사상계의 상층부에 침투해 있으며, 하층부라고 할 수 있는 계층에는, 내용은 다소 어설프지만, 더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관성과 논리성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각 사회에서 임금으로 분배될 수 있는 총액은 일정한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경쟁을 하면 그만큼 임금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임금지불에 사용되는 자본은 대부분 투자처를 찾는 자본으로 구성되므로, 이자율은 임금용 자본의 상대적 풍부성 또는 희소성의 척도가 된다. 따라서 만일 임금이 일자리를 구하는 노동의 양과 고용에 지출될 자본의 양 간의 비율에 의해 정해진다면 노동의 상대적 희소성을 반영하는 고임금은 자본의 상대적 풍부성을 반영하는 저이자와 동행해야 하고, 반대로 저임금은 고이자와 동행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반대이다. 이자에서 보험적인 요소를 뺸 순수한 이자, 즉 자본 사용의 대가만을 생각하면 임금이 높은 곳에느 이자도 높고 임금이 낮은 곳에는 이자도 낮다는 것이 보편적인 사실 아닌가?
내가 증명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는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온다.
현대의 복잡한 생산과정을 단순화시켜 보면 고도의 분업과 정교한 생산, 교환 기구에 참여하는 사람의 일도 결국 나무에 올라가서 과일을 따거나 썰물에 맞춰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던 원시시대 사람의 일과 마찬가지다. 즉,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자연으로부터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또 사회의 모든 생산은 각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두가 협동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각자가 자기 노력에 대해 받는 보상은 원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노력의 결과로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사회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원리에 따라 소위 문명사회라고 하는 복잡한 사회를 관찰해 보면, 노동과 상품이 교환되는 모든 경우에 생산이 소비에 선행한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임금이란 노동이 벌어들인 것 또는 노동이 생산한 것이지 자본의 일부를 미리 받는 것이 아니다. 임금을 화폐로 받는 경우에도, 화폐가 노동이 있기 전에 주조되거나 인쇄되었더라도, 부의 증가에 기여한 자기 노동의 대가로 부 중에서 일저량을 인출할 수 있는 일종의 인출권을 받는 것과 같다. 노동자는 그 인출권을 가지고 자신의 욕구에 맞는 형태의 부를 조달할 뿐이다. 인춸권인 화폐 또는 그 화폐로 얻는 특정한 형태의 부도 자신의 노동력 유지를 위해 자본의 일부를 미리 받는 것이 아니며, 그 반대로 자신의 노동이 이미 증가시킨 부 또는 부의 일부를 받을 뿐이다.
제2장 용어의 정의
토지, 노동, 자본은 생산의 3요소이다.
토지라는 용어는 단지물이나 공기와 구별되는 지구의 표면만이 아니라 인간 이외의 물질적 우주 전체를 의미한다. 사람이 자연과 접촉하고 자연을 사용하는 것은 토지를 통해서 가능하며 사람의 신체도 토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토지라는 용어는 모든 자연의 물질, 힘, 기회를 포괄한다. 따라서 자연에 의해 무상으로 주어진 것은 자본으로 분류될 수 없다. 비옥한 평야, 풍부한 광맥, 동력을 일으키는 폭포 같은 것이 그 소유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자본과 같지만, 이를 자본에 포함시킨다면 토지와 자본 사이의 구분은 거기서 끝이며 두 용어는 무의미해진다.
노동이라는 용어는 모든 인적 노력을 포함한다.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인력은 자본이 될 수 없다. 흔히 어떤 사람의 지식, 기술, 근면 등을 그의 자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건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일 뿐 정확성을 기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런 용법을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토지나 노동에 해당하는 것은 자본의 범주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토지나 노동이 아닌 것, 이 두 가지 본원적 생산 요소의 결합에 의해 생산된 것만이 남게 된다. 이 범주에 들지 않으면 자본이 될 수 없다. 즉 부가 아닌 것은 자본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자본이라는 용어가 낳는 모호성은 부라는 포괄적인 용어의 모호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증권, 저당권, 약속어음, 은행권 등은 금액을 받으 사람과 함께 지불할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 금액이 증ㄱ한다고 해서 사회저 부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일부가 노예가 된다고 하더라도 주인이 얻는 부는 노예가 잃는 부와 같으므로 국민 전체의 부는 증가하지않는다. 토지의 가치가 증가하더라도 지주의 소득은 토지 임차인 또는 토지 매입자의 부담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사회적 부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대적인 부는 일상생활에서나 법률 등에서 진정한 부와 혼동되어 쓰이고 있지만, 이런 부는 물자를 파괴하거나 소비할 필요도 없이 종이 한 장에 잉크 몇 방울이면 완전히 소멸될 수 있는 성질의 부이다. 즉, 정치경제학적으로는 교환가치르 갖는 물자가 모두 부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그 생산이 사회적 부를 증가시키고 그 소멸이 사회적 부를 감소시키는 것만이 부이다.
이와 같이 정치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부라는 용어는 인간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채취, 이동, 결합, 분리 기타의 노력으로 변형시킨 자연의 생산물을 의미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부는 인간의 욕구에 봉사하기 위해 인간 노동의 힘을 응축하는 방식으로 물질에 각인된 노동력을 말한다. 부는 소위 생산적 노동, 즉 원료에 가치를 부여하는 노동의 목적이자 결과읻. 인간의 노동 없이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은 부가 될 수 없고, 욕구를 만족시키는 힘을 가지는 유형적인 생산물이 나오지 않으면 노동을 하더라도 부가 되지 않는다.
제3장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생산하는 가운데 자신이 생산하는 물품으로 임금을 얻기도 하고, 그 생산물을 팔아서 그 가치만큼 다른 형태로 임금을 얻기도 한다. 남을 위해 일하고 정해진 임금을 돈으로 받는 사람은 어떤 교환 계약 하에 일하는 사람이다.이런 사람은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임금을 창출하지만 정해진 시점에 정해진 금액의 임금을 노동의 생산물이 아닌 다른 형태로 받게 된다. 이때 노동자는 노동을 미리 제공하며, 교환은 임금을 받는 시점에 완료된다. 노동자는 임금을 생산하는 동안에 고용주에게 자본을 선불할 뿐, 고용주가 작업 완료 전에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한, 고용주가 자본을 선불하는 경우는 없다. 임금과 교환으로 생산물을 받은 고용주가 이를 즉시 재교환하든, 일정 기간 보유하든, 거래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
제4장 노동자의 생계비도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거대한 증기엔진을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빵, 고기, 옷, 집 등을 확보해 주는 교환과정을 추적해 보면, 엔진을 생산하는 노동자와 빵과 고기 등의 생산자 사이에 수 천 단계의 교환이 있더라도 결국 이를 가장 간단하게 축소하면 양 쪽의 노동자 간에 노동을 교환하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엔진 생산에 노동을 투입하도록 하는 원인은 엔진 노동자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그 대신 엔진을 원한다는 데 있다. 즉, 빵이나 고기 등을 생산하는 사람 또는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 다른 사람이 엔진을 수요한다는 것이다. 기술자가 엔진 생산에 전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소비에 대한 수요가 생산에 투입될 노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과거나 현재나 노동자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또 세분화된 분업체제 속에서 각자가 얻고자 하는 물자의 극히 일부분의 생산을 담당하거나 때로는 그와 전혀 무관한 생산을 담당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물자를 생산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원하는 물자 생산에 다른 사람의 노동이 투입되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노동자가 자기 노동의 대가로서 취하고 소비하는 것 중에는 노동자에게 선불된 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완전한 진리임을 알게 된다.
제5장 자본의 진정한 기능
자본은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해 사용되는 부로서 욕구의 직접적 만족을 위해 사용되는 부와 구별된다. 혹은 교환과정에 있는 부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자본은 부를 생산하기 위해 노동의 힘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증대시킨다. (1) 노동의 능률을 높인다. 손 대신에 삽을 사용하여 조개를 더 쉽게 잡는 경우, 노를 젓는 대신 기관에 석탄을 때어 배를 움직이는 경우. (2) 노동이 자연의 재생산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예를 들면 씨를 심어 더 많은 옥수수를 수확하거나 가축을 길러 수를 늘리는 경우. (3) 분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분업을 하면 한편으로는 개인의 특별한 능력의 활용, 기술의 습득, 낭비의 감소를 통해 인적 생산요소의 능률이 높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토양, 기후, 입지의 이점을 살려서 자연조건에 가장 적합한 부를 생산함으로써 자연적 생산요소를 최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자본은, 통설과 달리, 노동에 의해 부로 전환되는 원료를 공급하지 않는다. 부의 원료는 자연에 의해 공급된다. 그러나 일부 가공된 원료와 교환 과정에 있는 원료는 자본이다.
자본은, 통설과 달리, 임금을 공급하거나 선불하지 않는다. 임금은 노동의 생산물 중에서 노동자가 획득하는 부분이다.
자본은, 통설과 달리, 작업 기간 동안 노동자의 생계를 유지시켜 주지 않는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의해 생계가 유지되며, 자신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물자와 교환될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은 사실상 자신의 생계용 물자를 생산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통설과 달리, 산업을 제약하지 않으며 산업에 대한 유일한 제약은 천연 원료에 대한 접근의 제약이다. 그러나 자본도 도구 사용과 노동 분업을 제약함으로써 산업의 형태와 생산성을 제약할 수는 있다.
정밀한 분업은 고도문명의 특색이자 필연적인 현상인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모든 종류의 부가 항상 재고로 존재하거나 수송 중에 있어야 한다. 문명사회의 주민이 자신의 노동을 인근의 또는 원격지의 노동과 교환할 수 있으려면 상품이 창고에, 상점에, 수송 중인 선박에, 화물열차에 존재해야 한다. 마치 대도시의 시민이 수돗물 한 컵을 마시려면 저수지의 방대한 물과 장거리 수도관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요약을 한번 더 한 다음에 진행해 보자.
임금이 노동자 수와 노동을 고용하는 데 쓰이는 자본의 양 간의 비율에 의존한다는 현재의 이론은, 임금과 이자가 반대 방향으로 등락하지 않고 동행한다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았다. 이러한 불일치가 드러남에 따라 이론의 근거를 검토해 보았더니 현재의 통념과는 달리,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지 않고 임금과 대가 관계인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에서 직접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본이 임금을 선불하거나 노동자의 생계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며, 자본의 기능은 도구나 종자 등을 통해, 그리고 교환에 필요한 부를 통해, 생산 과정에서 노동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임금이 자본에서가 아니라 노동생산성에서 나온다면,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현재의 이론은 틀렸으며,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 내놓는 각종 처방들, 예를 들면 자본 증대, 노동자 수 제한, 노동자 작업 능률 향상 등은 폐기되어야만 한다. 개별 노동자가 진실로 노동을 통해 자신의 임금이 나오는 기금을 창출한다면 노동자가 증가한다고 해서 임금이 줄어들 이유가 없다. 오히려, 노동자 수가 많아질수록 노동의 능률이 분명히 증가하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임금은 노동자 수와 더불어 오히려 증가해야 한다. 그런데 이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전제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논의를 진행시키기 전에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더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 문제란 '인구 증가에 의해 자연의 이용이 늘어나면 자연의 생산력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가?'하는 것이다
제2권 인구와 생존물자
제1장 맬서스 이론, 그 발생과 지지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억제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생존물자의 한계를 압박할 수밖에 없으며, 생존물자라는 장벽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기는 하지만, 생존을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렵게 된다. 이리하여 출산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있고 또 절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물자 부족 현상이 나타나서 인구가 생존물자의 한계 내에 머물게 된다. 창조적 은혜와 지혜에 의한 조화로운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이론은, 원인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아무 이론도 없이 빈곤과 그 결과의 책임을 헤아릴 수 없는 신의 섭리에 돌리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이 이론은 죄악과 고통이 순수하고 감미로운 애정과 연계된 자연적 본능의 필연적 결과라고 보고 있어 인간의 마음 깊이 자리하는 관념과 충돌하며, 공식 발표 이래 논리보다는 감정이 더 지배하는 가운데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멜서스의 이론은 어떤 자연의 장벽을 통해 종 사이에 견제가 이루어지는 동식물의 세계에서 비유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럴듯해 보인다. 인구가 조밀한 지역에 빈곤과 죄악과 궁핍이 많고, 인구 증가 속의 물질적 진보는 가난을 덜어 주지 못하며, 신생 지역에는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지만 인구가 조밀한 지역에는 빈곤 계층의 사망률이 높아 인구 증가가 둔화된다는 사실들이 맬서스의 이론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맬서스의 학설은 빈곤이 불가피하다고 함으로써 개혁에 대한 요구를 얼버무리고 양심의 추구롭로부터 이기심을 보호하는 효과를 갖는다.이 이론에 의하면 빈곤, 궁핍, 굶주림이 개인적 탐욕이나 사회제도의 모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법칙의 ㅡ마치 중력의 법칙과도 같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법칙의ㅡ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궁핍 속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은 울타리를 세워,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는 모래바람으로부터 작은 오아시스를 지킨 것에 불과하다. 자기 힘으로 부를 획득했을 뿐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
부자가 그리스도의 명령에 문자 그대로 복종하여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해도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인구는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라 생존물자 또는 자본의 한계를 압박할 것이며, 그로 인해 생길 평등은 모두가 비참하게 되는 평등일 뿐이다. 그리하여 힘 있는 계층의 이익을 저해하는 어떠한 개혁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사람이 지구에 빽빽하게 들어차는 것을 막기 위해 잉여인구를 제거하는 방법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개인이나 사회가 빈곤을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교육의 효과에 의지하거나 절제의 필요성을 설교하는 것밖에는 없다.
빈곤층의 사고 습관과도 일치하고 부유층의 탐욕과 권력층의 이기심도 정당화하는 이론은 빠른 속로 퍼져 뿌리를 내린다.
제2장 사실로부터의 추론
나는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서, 인구가 생존물자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가정은 경험적나 비유적으로나 이유가 없음을 지적하려고 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 내에는 사람들이 완전히 무인 지역을 새로 개척하여 살았다고 할 수 없고 언제나 이미 다른 민족이 점하고 있던 곳에 들어가서 싸움을 했다. 쇠망해 가는 제국 뒤에는 과거에 존재했던 제국의 자취가 있다.
총 인구와 총 면적을 비교하면 인도와 중국은 세에서 인구밀밀도가 높은 나라가 결코 아니다. 인도의 인구 밀도는 평방마일당 132명, 중국은 119명인 반면에 작센 442명, 벨기에 441명, 영국 442명, 네덜란드 291명, 이탈리아 234명, 일본 233명이다.(1873년 스미소니언 보고서) 이처럼 두 나라에는 비사용 내지 저사용의 넓은 토지가 있으며,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훨씬 더 많은 인구를 훨씬 더 안락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데 의문이 없다.
두 나라의 노동은 극히 비능률적인 방식으로 매우 초보적인 방식으로 매우 초보적인 부문의 생산에 투입되고 있다. 엄청난 천연자원이 완전히 유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두 나라의 국민이 선천적으로 열등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힌두족은 우리와 같은 혈통이며 중국은 우리 조상이 미개인이었을 때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였고 가장 중요한 현대적 발명품의 싹을 이미 갖고 있었다. 이런 결과를 낳은 원인은 두 라의 사회 조직이 생산력에 족쇄를 채우고 근면의 대가를 강탈하는 형태를 취했다는 데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인도의 노동 계층은 수탈과 압박 아래 절망적인 상태로 살아왔다. 오랜 세월 동안 토지 경작자는 권력자가 생산물을 수탈하더라도 식량과 종자만 남겨주면 그나마 행복하게 여길 정도였다. 어느 곳에서도 자본이 안전하게 축적될 여지가 없었고, 생산에 도움을 줄 만큼 자본이 사용될 수도 없었다. 국민으로부터 짜낼 수 있는 부는 도처에 출몰하던 강도떼의 두목이나 다를 바 없는 군주 또는 주군의 심복이 모두 가져가서, 무용하게 또는 무용보다 더 해로운 사치로 낭비했다.
당시 종교는 정교하고 무시무시한 미신으로 타락해버려, 마치 물리력으로 인간의 신체를 휘어잡듯이, 인간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지배자의 치장과 사치를 위한 기술 이외에는 발달할 수 없었다. 왕이 타는 코끼리는 탁월한 장인이 세공한 금장식으로 번쩍였고, 왕권을 상징하는 일산(日傘)은 보석으로 찬란히 빛났다. 그러나 농부가 쓰는 쟁기는 나무를 대충 깎아 만들었을 뿐이다. 왕의 후궁들은 직조된 바람결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부드러운 모슬린 천으로 목을 감았으나 기술자의 도구는 너무나 보잘 것 없었으며, 상업은 그저 도둑질에 의해서나 이루어질 정도였다.
인도의 결핍과 굶주림은 이러한 압제와 불안정으로 인해 생겼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설혹 아일랜드에 바나나와 빵나무가 무성하더라도, 찬자스 섬의 구아노와 같은 비료가 해안에 즐비하다고 하더라도, 또 열대처럼 태양열을 듬뿍 받아 토양이 기름지다고 하더라도, 사회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역시 빈곤과 굶주림이 계속될 것이다.
가혹한 소작료로 인해 풍년에도 소작인의 생산물 중에 겨우 생존을 유지할 정도 이상의 물자들은 모두 짜내어 가는 곳에서 빈곤과 기근이 어찌 사라질 수 있을까? 소작 조건이 불안정하여 토지를 개량할 수 없으며 낭비적이고 가난에 찌든 생활밖에 할 수 없는 곳이라면? 소작인이 지주가 지대를 올려 받을까 염려하여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형편이 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곳이라면? 농민이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어 다른 사람의 고갯짓 한 번에 보잘 것 없는 흙집마저 박탈당하고, 집도 없이 굶주리면서 떠돌이 생활로 쫓겨나고, 야생의 과일 하나도 따먹을 수 없고, 산토끼 한 마리도 잡아먹을 길이 없는 곳이라면? 인구가 아무리 적고 천연자원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도 부의 생산자가 희망도 자존심도 의욕도 절약심도 가질 수 없는 곳에서는 빈곤과 굶주림은 피할 수 없지 않을까? 부재지주가 토지 생산물의 4분의 1도 남겨 두지 않고 긁어 가버리는 곳이라면? 또 부재지주 이외에도 현지 지주, 그들의 말과 사냥개, 대리인, 중개인, 마름을 먹여 살려야 하고 또 이런 부당한 제도에 대한 저항을 경찰과 군대가 짓눌러버리는 곳이라면? 이렇게 생겨난 비참한 상황의 원인을 자연법에 돌린다면 무신론을 넘어 독신론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제3장 비유로부터의 추론
인간에게 식품을 공급하는 자연은 인간보다 재생산력이 훨씬 클 뿐만 아니라 일체의 생물 중에서 인간은 자연의 재생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짐승, 곤충, 새, 물고기는 단지 주어진 것만을 먹고 산다. 이런 생물이 증가하면 그 먹이의 양은 감소한다. 먹이의 한계에 이르면 새로운 먹이가 생겨야만 이 생물의 수가 더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생물과 달라서 인구가 증가하면 식품도 증가한다. 사람 아닌 곰이 유럽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고 해도 현재의 곰의 숫자는 콜롬버스가 대륙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적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곰이 건너왔다고 해서 곰의 먹이가 더 늘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곰의 생활조건이 더 개선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그 반대의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미국에 국한시켜 말하면, 과거 수십만에 불과했던 인구가 현재 4천 5백만으로 늘어났으나 일인당 식품의 양은 과거보다 훨씬 늘어났다. 이로써 식품 증가가 인구 증가의 원인이 아니라 반대로 인구 증가가 식품 증가의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즉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에 식품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동식물은 생존물자의 한계에 의해 제약을 받지만 인간은 지구의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는 생존물자의 한계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다.
맬서스 이론에 큰 힘을 실어주는 또 하나의 견해가 있다. 토지 생산성이 체감한다는 견해다. 그러나 이는 외견상으로만 그럴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의 비파괴성 또는 힘의 계속성으로 인해 인간은 자연력을 소진시킬 수도 없고 감소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는 상대적인 용어에 불과하다. 절대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은 생산도 소비도 할 수 없다. 모든 인류가 무한히 일한다고 해도 회전하는 지구를 원자 하나만큼도 무겁게나 가볍게 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모든 운동을 만들어내고 모든 생물을 지탱하는 힘의 총계를 단 한 치도 보태거나 줄일 수 없다. 바다에서 나온 물은 반드시 바다로 되돌아가며, 자연이라는 창고에서 취한 식품도 취하는 순간부터 다시 그 창고로 되돌아간다. 한정된 면적의 토지에서 무언가를 취하면 그 토지의 생산성은 일시 줄어들 것이다. 되돌아가는 곳이 그 토지일 수도 있지만 다른 토지일 수도 있고 모든 토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은, 대상 면적이 넓어짐에 따라 줄어들다가 전 지구가 대상이 되면 사라지고 만다.
생명의 유지력을 생명이 소진시키는 일은 없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우주에 태어났고 우리가 떠날 때도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인간은, 육체만을 본다면 물질이 일시적으로 취하는 한 형태이자 운동이 변환하는 한 방식이다. 물질은 남고 힘은 계속된다. 줄어든 것도 없고 약해진 것도 없다. 이런 관계로 인구에 대한 지구의 한계는 공간의 한계뿐이다.
제4장 멜서스 이론의 부정
기성지역에서는 인구 중 부의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의 비율이 낮아도 일인당 부의 소비는 더 많다는 뜻인 동시에 적은 수의 노동자가 많은 부를 생산한다는 뜻이다. 부가 소비되려면 생산이 먼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성 지역의 부가 우위에 있는 것은 생산력의 우위 때문이 아니라 부의 축적 때문이며, 신생 지역에서는 시간이 없어 부를 축적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부가 축적될 수 있는 양은 아주 조금밖에 안 되며, 사회도 대부분의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산다. 몇 가지 사소한 형태를 제외하면 부의 축적이 많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주의 물질은 노동에 의해 원하는 형태로 변했다가 끊임없이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어떤 형태의 부는 몇 시간, 어떤 것은 며칠, 어떤 것은 몇 달, 어떤 것은 몇 년 지속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세대에서 다름 세대로 이어지는 형태의 부는 드물다. 매우 유용하고 수명이 긴 형태, 예를 들면 선박, 가옥, 철도, 기계류 등의 부를 보더라도, 노동을 통해 계속 보수하지 않으면 얼마 안 가서 못쓰게 된다. 어느 사회에 노동이 중단되면, 마치 분수로 흘러가는 물을 잠그는 것처럼 부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축적된 부가 많기 때문에 부의 소비가 많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축적된 부가 줄어드는 경우뿐이며, 축적된 부의 양이 변하지 않거나 증가하는 곳에서 부를 더 소비하려면 반드시 부의 생산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여러 사회를 비교해 보거나 한 사회의 여러 시점을 비교해 보면 진보라는 상태는 인구가 증가한다는 특징을 가지며, 동시에 총소비 및 일인당 소비가 증가하고 부의 축적이 증가한다는 특징을 가짐이 명백히 드러난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어느 곳에서나 인구 증가는 부의 평균적 생산량의 감소가 아니라 증가를 의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이 풍부하고 부의 생산이 최대가 되는 사회에서 빈곤이 발생한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문명세계를 당황하게 하는 수수께끼이며 우리가 해명하려고 하는 문제이다.
제3권 분배의 법칙
제1장 분배의 법칙과 법칙 간의 필연적 관계
생산 노동자는 일을 함으로써 자기 임금을 창조하며, 노동자가 불어나면 진정한 의미의 임금기금, 즉 부의 총량도 늘어난다. 추가 노동자가 부의 총량에 보태는 양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가 임금으로 취득하는 양보다 훨씬 더 크다. 또한 인구 증가로 인해 자연에서 뽑아내는 양이 증가할수록 자연의 소출이 줄어든다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진보하는 국가에서는 노동 능률이 증가하므로 일인당 생산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가 가장 부유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추론에 의하면, 모든 생산적인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을 생산하며, 노동자 수가 증가하면 일인당 임금도 증가한다. 반면에, 적정한 소득이 나오는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가 존재하고, 노동자 수의 증가가 임금 감소를 초래하는 것도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지금까지 입증한 것은 현실적으로 임금이 최저인 곳의 임금이 실은 최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부의 생산을 제약하는 법칙에서 찾아서는 안 되고 분배에 관한 법칙에서 찾아야 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생산 기술이 향상하는데도 최하층의 빈곤이 깊어지는 원인을 발견하려면 생산물 중 어느 만큼이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불되는가를 결정하는 법칙을 찾아내야 한다. 임금법칙을 새로 발견하거나 최소한 기존의 법칙이 옳은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생산물 중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부분과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가는 부분에 관한 법칙도 알아야 한다. 토지, 노동, 자본이 결합하여 부를 생산하므로 생산물도 세 요소에 분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은 계속해서 소모되고 또 계속해서 대체되므로 생산된 부의 일부는 자본을 대체하기 이해 사용된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이 말하고 생각하듯이 자본이 지속성을 갖는다면 자본의 대체라는 문제는 사라지므로 별도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생산물이라는 개념은 생산된 부 중에서 생산 과정에서 소모된 자본을 대체하는 부분을 제외한 초과 부문만을 의미하며, 이자는 자본이 대체 내지 유지된 후에 자본의 대가로 돌아가는 부분을 의미한다.
생산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토지라는 용어는 자연이 제공하는 모든 기회와 힘을 의미한다. 노동이라는 용어는 모든 인적 노력을 의미한다. 자본이라는 용어는 더 많은 부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부를 의미한다. 총생산물은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한 대가로 모두 분배된다. 자연적 기회의 사용에 대한 대가로 토지소유자에게 지불되는 부분을 지대라고 한다. 인적 노력에 대한 대가가 되는 부분을 임금이라고 한다. 자본 사용에 대한 대가가 되는 부분을 이자라고 한다.
자본은 노동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고용된다. 노동이 투입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반드시 토지가 존재해야 하고, 자본이 생산되려면 노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본이 노동의 결과이고 노동의 생산을 돕기 위해 노동에 의해 사용된다. 노동은 적극적이고 원초적인 힘이며 따라서 노동자는 자본의 사용자가 된다. 노동은 토지가 있어야만 실행될 수 있고 노동에 의해 부로 전환될 물자는 토지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토지는 노동의 선행조건이며, 노동의 장소이고, 노동에 필요한 원료이다. 세 요소의 자연스러운 순서는 토지, 노동, 자본의 순이 된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도 자본에서가 아니라 토지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제2장 지대와 지대법칙
지대는 생산된 부 중에서 자연능력의 배타적 사용권으로 인해 그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말한다. 토지가 교환가치를 가지는 곳에는 언제나 경제학적 의미의 지대가 존재한다. 가치를 가지는 토지는 소유자가 사용하든 임차인이 사용하든 언제나 실현지대가 존재한다. 가치를 가지는 토지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잠재지대가 존재한다. 토지가 가치를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지대 발생능력에 있다. 토지소유권이 어떤 이익을 주기 전에는 토지는 가치를 갖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지대 내지 토지가치는 토지의 생산성이나 효용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지대는 생산에 준 도움이나 이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산의 결과 중 일부분을 취득할 수 있는 힘을 나타낼 뿐이다. 토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이건 간에 토지 사용권을 얻는 대가로 노동 또는 노동 결과를 지불하려는 사람이 없다면 지대도 생기지 않고 가치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용자가 지불하려고 하는 대가는 당해 토지 자체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토지에 대한 상대적 능력에 의존한다.
자유경쟁조건 ㅡ 정치경제학에서 원리를 발견하려고 할 때 늘상 가정하는 조건 ㅡ 하에서 토지소유자가 얻을 수 있는 가격을 결정하는 법칙 내지 관계를 지대법칙이라고 한다. 이 법칙은 흔히 리카도의 지대법칙이라고도 하는데, 리카도가 이 법칙을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 이 법칙에 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토지의 지대는, 동일한 투입으로 사용되고 있는 토지들 중에서 생산성이 가장 낮은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하는 생산물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노동과 자본의 일부는 농업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공업에 투입하는 사회를 생각해 보자. 최열등지의 경작에서 나오는 평균 생산이 20이라면 이 사회의 노동과 자본에 대한 평균적인 대가는 농업과 공업을 막론하고 20이 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인해 공업에서의 대가가 15로 줄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공업에 투입된 노동과 자본은 농업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경작의 한계가 열등한 토지로 또는 같은 토지의 열등한 생산점으로 확장되거나, 공업 생산이 감소되어 공업생산물의 상대적 가치가 상승하거나, 도는 이러한 두 현상이 같이 일어나서 결국 두 분야에서의 노동과 자본에 대한 대가가 일치할 때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공업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마지막 생산성이 얼마든지 간에 거기까지 경작도 확장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지대는 동일한 양의 노동과 자본으로 수익성이 가장 낮은 업종에서 얻을 수 있는 생산을 초과하는 부분이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여 어떤 생산을 하건 이 두 요소가 임금과 이자로 받는 대가는 지대를 지불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토지에서 ㅡ사용되는 토지 중 생산성이 최저인 토지 또는 최저생산점에서 ㅡ얻을 수 있는 생산물에 국한되기 때문에, 지대법칙은 필연적으로 임금과 이자를 합한 것의 법칙이 될 수밖에 없다.
생산량 = 지대 + 임금
+ 이자
생산량 – 지대 = 임금
+ 이자
그러므로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지대가 같은 정도로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 지대 상승이, 진보하는 지역에서 생산력이 증대됨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이자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열쇠가 됨을 쉽게 알 수 있다. 토지가치의 상승이 생산력 향상을 따르지 못할 경우에 한하여 임금과 이자가 생산력 향상과 더불어 상승할 수 있다.
제3장 이자와 그 발생 원인
이자의 근거와 정당성은 무엇인가? 왜 차용자는 대여자에게 빌린 것보다 더 많이 갚아야 하는가? 이자가 근면에 대한 약탈이라는 감정은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대서양 양안의 대중적인 문헌이나 운동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모든 부의 성격이 대패, 판자, 돈과 같이 재생산력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모든 생산이 단순히 이런 생명 없는 물질을 다른 형태로 바꾸는 작업은 아니다. 내가 돈을 가만 내버려 둔다면 돈은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도주를 가만 내버려둔다면 1년이 지나면 포도주의 질이 향상되기 때문에 가치도 증가한다. 또 꿀벌이 살기 적당한 농촌에 벌을 놓아둔다면, 1년이 지난 후에는 벌떼가 늘어나고 벌이 만든 꿀도 얻을 수 있다. 또 목장이 있어서 양이나 돼지나 기타 가축을 방목한다면, 1년 후에는 평균적으로 보아 마릿수가 증가해 있을 것이다.
또한 소유하는 부의 종류에 따라서는 특별한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부의 호환성으로 인해 모든 종류의 부는 평준화된다. 더 유리한 형태의 부로 바꿀 수 있다면 불리한 형태의 부를 지닐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재생산력 내지 생명력이 일부 자본에 대해 부여하는 증식력은 어떤 유통경로에서든 평준화된다. 돈, 대패, 벽돌, 옷을 빌려 주거나 교환과정에서 사용하는 사람도, 증식력이 있는 자본을 빌려주거나 재생산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과 다름없이 증가분을 취득할 힘을 갖게 된다. 자연과 인간의 힘의 다양성을 교환을 통해 활용하면 자연의 생명력에 의해 생산되는 것과 비슷한 증가분이 나온다.
자연과 인간의 힘의 다양성을 교환을 통해 활용하면 자연의 생명력에 의해 생산되는 것과 비슷한 증가분이 나온다. 예를 들어 갑이라는 지역에서 일정한 노동을 투입하면 식물성 식품 200 또는 동물성 식품 100을 생산할 수 있고, 을이라는 지역에서는 같은 노동으로 식물성 식품 100 또는 동물성 식품 200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자. 두 가지 식품이 동일한 양만큼 필요하다면 같은 노동을 투입할 때 각 지역마다 총 150이 생산된다. 그러나 갑 지역에서는 식물성 식품 생산에만 노동을 투입하고 을 지역에서는 동물성 식품에만 노동을 투입하여 필요한 양만큼 서로 교환한다면 각 지역의 주민은 주어진 노동으로 총 200을 얻을 수 있고 단지 교환에 소요되는 손실과 비용이 여기에서 빠질 뿐이다. 이렇게 각 지역마다 생산물 자체에서 소비하지 않고 교환하면 증가분을 얻을 수 있다.
교환에는 물론 노동이 필요하다. 자연의 재생산력을 활용하는 데 노동이 필요한 것과 같다. 교환의 생산물도 농업 생산물과 같이 분명히 노동의 생산물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노동과 협력하는 별도의 힘이 작용한다. 그 때문에, 투입된 노동의 양만으로 결과를 측정할 수 없으며, 사용된 자본이나 시간의 양도 그 힘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자본은 모든 방식의 생산에서 노동을 돕지만 다음의 두 가지 방식 중 어느 쪽이냐에 따라 양자 간의 관계가 달라진다. 하나는 단지 물질의 형태나 장소를 바꾸는 생산방식이다. 예를 들면 대패로 판자를 밀거나 석탄을 캐는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재생산력 또는 자연과 인간의 힘을 적절히 배분하는 데서 생기는 증가력을 이용하는 생산방식이다. 예를 들면 곡물을 재배하거나 얼음과 설탕을 교환하는 것과 같다. 첫 번째 방식에서는 노동만이 생산의 원인이 되며 노동이 중단되면 생산도 중단된다. 투입 노동량에만 의존하는 생산에서는 날이 바뀌고 계절이 지나가도 시간은 요소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생산, 예를 들어 벌목하는 사람이 베어낸 나무를 강물에 던져서 수 마일 하류에 있는 목재소까지 띄워 보내는 경우는 시간이 하나의 요소가 된다. 또 땅에 뿌린 종자는 농부가 잠을 자고 있어도 싹이 트고 성장한다.
물질의 품질과 능력이 어디에서나 균일하고 인간의 생산력도 균일하다면 이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수한 도구는 일시적으로 외견상 이자를 지불하는 것과 비슷한 조건으로 대여될 수 있겠지만 이런 거래는 불규칙적, 일시적이다. 즉 원칙이 아니라 예외이다. 이런 대가를 얻는 힘이, 지금과는 달리, 자본의 소유에 내재하지 않을 것이고 시간의 이익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1천 달러를 소유할 경우에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유는 달리 돈을 구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있어 내 돈을 쓰고 그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 돈 1천 달러는 그 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ㅡ사용자가 백만장자라 해도 ㅡ증가분을 줄 수 있는 힘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의 가격은 매입자가 지불하려고 하는 금액에 의존한다기보다는 매각자가 매각하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금액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생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적응시키기(Adapting) : 자연의 산물의 형태나 장소를 인간의
욕구충족에 적합하도록 바꾼다.
키우기(Growing) : 식물이나 동물을 기르는 경우처럼 자연의
생명력을 활용한다.
교환하기(Exchanging) : 자연의 힘은 위치에 따라 다르고
인간의 힘은 상황, 직업, 성격에 따라 다르므로, 부의 총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그 중 더 큰 힘을 활용한다.
자본은 세 생산방식 모두에서 노동을 도울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용에서 나오는 이익은 노동에 돌아가며, 증가에서 나오는 이익은 자본에 돌아간다. 그러나 노동의 분업과 부의 호환성으로 인해 이익의 평준화 현상이 생기며, 각 생산방식의 상호연관성으로 인해 한 방식에서 생기는 이익은 다른 방식에서 생기는 이익과 평준화된다. 어느 방식에서 더 큰 대가가 생긴다면 그 방식 이외의 다른 방식에 노동과 자본이 투입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첫 번째 생산방식의 경우 투입 노동이 모든 생산결과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다른 생산방식에 투입될 경우에 받을 수 있는 증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차지할 수 있다. 또 두 번째와 세 번째 생산방식의 경우 투입 자본이 모든 증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첫 번째 방식에 투입될 경우에 얻을 수 있는 대가를 제외한 나머지를 차지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이자는 자연의 재생산력과 그에 준하는 효과를 가진 교환의 능력에 의해 자본이 갖게 되는 증가력에서 나온다. 이자는 특정 사회조직에서만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근저에 깔려 있는 보편법칙의 결과이다. 따라서 이자는 정당하다.
제4장 의사자본과 흔히 이자로 오인되는 이윤
이자가 근면에 대한 약탈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진정한 이자와 의사이자(擬似利子), 실질적으로는 이자에 해당되는 이윤과 자본의 사용이 아닌 다른 원천에서 생기는 이윤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고 본다.
강바닥을 준설하거나 등대를 짓거나 공설시장을 세우기 위해 공채를 발행했다고 해보자. 아니면 민간 철도회사가 회사채를 발행했다고 해보자. 이런 채권은 현존하는 자본 또는 생산 목적에 제공된 자본을 대표하는 동시에 주식회사의 주식과 같이 자본 소유의 증거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이 실제로 자본을 대표하고 발행된 채권액이 실제로 사용된 자본을 초과하지 않을 경우에만 그렇게 간주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철도회사 등 법인에서 실제로 1달러 가치의 자본을 사용하면서 2, 3, 4, 5달러 심지어는 10달러까지 증서를 발행하였고, 이런 허구적인 금액에 대해 이자 내지 배당을 거의 정기적으로 지급하였다. 회사는 실제로 투입된 자본에 대한 이자를 초과하는 금액을 이렇게 조성하여 나눠 먹었으며 부패 경영진은 막대한 돈을 횡령하고 회계에서 누락시켰다. 이런 돈은 분명히, 자본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만들어낸 사회 총생산에서 지불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자가 아니다. 경제학자들처럼 이윤을 이자, 위험부담에 대한 보험, 기업 관리에 대한 임금이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이 돈은 기업 관리에 대한 임금에 속한다.
그러나 기업 관리에 대한 임금에는 기술, 재치, 기업정신, 조직력, 창의력, 성격 등의 개인적 자질이 낳은 소득이 포함되는 반면, 여기에서 말하는 이윤에는 그 외의 요소, 즉 독점의 요소도 작용된다. 이윤의 상당 부분이 독점으로 발생하는데, 이것이 자본의 대가로 오인되는 수가 많다. 발명을 촉진하기 위해 몇 년 동안 보장해 주는 발명특허에서 생기는 이익, 국내산업을 육성한다는 허울 아래 부과하는 보호관세로 인해 형성되는 독점의 대가도 이와 같다.
거대한 자본이 집중되면 자본의 일반적 특성이자 이자의 원천이 되는 증가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힘이 생긴다. 자본의 힘을 건설적이라고 한다면 집중이 계속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하여 생기는 힘은 파괴적이다. 조금만 분석해 보면, 흔히 이자라고 착각하는 이윤의 대부분이 실은 자본의 힘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집중된 자본에 의해 또는 집중된 나쁜 사회제도와 결합함으로써 생긴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위험부담에 의해 생기는 이윤도 이자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일부 사람은 부를 취득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손실을 입는다. 이런 투기는 여러 형태가 있으며 특히 주식 거래라고 알려진 일종의 도박도 여기에 속한다.
한편에서는 거대한 부의 축적과 극심한 빈곤이 병존하는 것은 자본이 노동을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자본이 노동을 돕는다고 하면서, 빈부 계층 사이에 놓인 커다란 간격은 조금도 정의에 어긋나거나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부는 금면, 지식, 절약의 대가이고 빈곤은 나태, 무지, 무절제에 대한 벌이라는 견해를 펴고 있다.
제5장 이자법칙
자본은 노동에 의해 생산되며, 사실상 노동이 물질에 혼입 또는 축적된 것으로써 필요가 생기면 혼입된 노동이 다시 방출된다. 이것은 마치 태양열이 석탄에 축적되었다가 화로에서 방출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생산에서 자본의 사용은 노동의 한 형태일 뿐이다. 자본은 소모됨으로써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의 사용은 노동의 투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또 자본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자본의 양이 노동을 돕는데 소비되는 자본의 양과 맞먹어야 한다. 이자와 임금 사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자연적 관계가 상호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가령 갑과 을 두 사람이 동업을 한다고 할 때 갑이 공동 소득의 일정 비율을 받는다고 하면 갑의 소득이 많고 적음에 따라 을의 소득은 그 반대로 적고 많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각자가 공동 소득에 기여한 만큼을 가지고 간다고 하면, 한 사람 몫이 많아진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든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관계가 정해지면 이자와 임금이 같이 상승, 하락한다는 사실, 임금을 올리지 않고 이자만 올릴 수 없으며, 이자를 압박하지 않고 임금만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임금이 내려가면 이자도 비례해서 내려가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면 노동을 직접 투입하기보다는 노동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 또 이자가 내려가면 임금도 비례해서 내려가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면 자본의 증가가 억제될 것이다.
임금과 이자 간에는 어떤 관계 내지 비율이 존재하며, 이 관계 내지 비율은 매우 서서히 변화하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이 관계 내지 비율에 따라 노동이 자본으로 전환되어 당시의 지식 정도, 기술 상태, 인구밀도, 직업의 특성, 교환의 다양성과 범위 및 신속성에 비추어 생산에 필요한 만큼의 자본을 공급한다. 이러한 관계 내지 비율은 노동과 자본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지되며 따라서 이자는 임금의 등락과 함께 등락된다.
예를 들어 보자. 밀가루 가격은 밀 가격과 제분 비용에 의해 정해진다. 제분 비용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변하지만 밀의 가격은 자주 큰 폭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밀가루 가격은 밀 가격에 의해 정해진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것을 위와 같은 형태의 명제로 정립하면, ‘밀의 가치와 밀가루의 가치 간에는 어떤 관계 내지 비율이 존재하며, 이 관계내지 비율은 제분 비용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와 같이 된다. 이러한 관계 내지 비율은 밀가루에 대한 수요와 밀의 공급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지되며, 따라서 밀가루 가격은 밀 가격의 등락과 함께 등락된다. 또는 밀의 가격이라고 하는 중간 요소를 생략하고, 밀가루 가격은 계절적 특성이나 전쟁 등에 의해 달라진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자법칙도 중간 요소를 생략하고 지대법칙과 바로 연결하면, 일반적인 이자율은 자본이 자유롭게 투입될 수 있는 토지에서 자본에 돌아가는 대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이자법칙도 지대법칙에서 나온 파생법칙의 형태로 표시할 수 있다.
요약하면 이자법칙은 다음과 같다
임금과 이자 간의 관계는 자본이 재생산 형태로 사용될 때 그 자본이 가지는 평균적인 증가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대가 상승하면 이자는 임금과 더불어 하락한다. 즉 이자는 경작의 한계에 의해 결정된다.
제6장 임금과 임금법칙
인간 행동의 기본 원리는 최소의 노력으로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가 정치경제학에서 갖는 의의는 물리학에서 중력의 법칙이 갖는 의의와 같다. 이 원리에 의하면 동일한 조건에서 투입된 동일한 노력에 대한 보수는 경쟁 과정을 통해 균등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자가노동을 할 경우에는 임금의 평준화가 가격의 균등화에 의해 대체로 이루어진다. 또 자가노동자와 임금노동자 간에도 평준화 경향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최소의 노력으로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는 원리에 의하면, 임금은 노동에 개방된 자연, 즉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연 중 가장 생산성이 높은 자연에서 나오는 생산과 일치한다. 같은 원리에 의해, 현재 상태에서 노동에 개방된 자연 중 생산력의 최고점은 생산이 계속되는 곳 중 최저점과 일치한다. 최소의 노력으로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는 최고원리에 의해, 이보다 우등한 자연이 개방되어 있다면 누구든 열등한 자연에 노동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고용주가 지불해야 하는 임금은 생산이 이루어지는 자연적 생산력의 최저점에 의해 정해지고, 임금은 이 최저점의 등락에 따라 등락한다.
토질이 우수한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그보다 못한 토지에서 같은 노력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보다 더 많은 생산물을 얻게 된다. 그러나 우수한 토지에서 경작자가 얻는 초과생산은 실제로는 지대이기 때문에 임금은 어느 토지에서나 동일하다. 그리고 이 토지가 개인 소유라면 토지가치가 발생한다. 이렇게 변화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고용할 때 지불하는 임금은 경작의 최저 생산점에서 노동이 생산하는 만큼이면 된다. 이후 더 낮은 생산점으로 경작의 한계가 내려가다면 임금도 따라서 내려가며, 반대로 그 한계가 올라간다면 임금도 역시 올라간다.
임금은 경작의 한계에 의존하고, 임금의 크기는 노동에 개방된 최고의 자연적 기회로부터 노동이 얻을 수 있는 생산물의 크기에 의해 정해지며, 이는 인간이 최소의 노력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는 원리에서 나온다.
여러 직업 간의 임금 차등을 야기하는 여러 가지 사정의 효과를 공급과 수요로 설명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직업의 임금은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차이에 의해 상대적으로 변한다고 하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임금의 상대적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진리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임금률이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면 이는 무의미하다. 공급과 수요라는 용어는 상대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공급이란 다른 노동 또는 다른 노동 생산물과 교환하려는 목적으로 어떤 노동을 제공하는 것을 말하며, 노동의 수요란 다른 노동 또는 다른 노동 생산물을 제공하면서 어떤 노동과 교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직업 간의 임금 차등을 빚는 사정은 다양하고 또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하며, 시대별 또는 장소별로도 상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직업의 임금률이 다른 직업의 임금률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명백하다. 왜냐하면 직업의 난이도에 따른 장벽은 있겠지만, 어느 분야에 투입될 수 있는 노동의 양이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직업에서든 직업 간을 연결하는 사람, 즉 직업을 넘나드는 사람이 있다. 또 계속해서 새로 노동 연령에 도달하는 젊은이들은 직업 중에서 인력(引力)이 강하고 저항이 적은 방향으로 이끌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임금 간의 격차는 분명한 것이 아니라 경계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겹쳐져 있다. 최고 수립의 변호사는 최고 수입의 서기보다 임금이 훨씬 높지만, 최고 수입의 서기는 최저 수입의 변호사보다 수입이 많다. 이렇듯 각 직업의 경계에는 직업 간의 이동이 가능한 사람들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노동 투입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직업의 노동 수요가 증가 또는 감소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현상을 제외하면, 그 직업의 임금이 다른 직업의 임금에 비한 상대적 수준보다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없다. 또 법률적인 제한 조치, 업종 내의 규제, 신분제도 등에 의해 인위적인 장벽이 있는 경우에도,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장벽이 어느 정도 간섭을 하기는 하겠지만 임금의 균형을 깨지는 못한다. 임금 간의 관계는 각 직업의 상대적인 수준을 결정하는 사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어떤 직업의 임금이든 궁극적으로는 가장 낮고 가장 넓은 직업층의 임금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른 모든 직업의 임금률에 기초가 되는 이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직업은 자연으로부터 부를 직접 획득하는 직업이다. 따라서 이 직업에서의 임금법칙은 임금의 일반법칙이 된다. 그리고 이 직업에서의 임금은 노동이 관습적으로 투입되는 자연 중 생산력이 최저인 자연에서 노동이 생산할 수 있는 양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경작의 한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지대를 지불하지 않고 노동을 자유롭게 투입할 수 있는 자연의 최고생산점에 의존한다.
임금은 생산의 한계, 즉 지대를 지불할 필요 없이 개방된 자연의 최고생산점에서 노동이 얻을 수 있는 생산물에 의존한다.
토지가 무상이고 노동이 자본의 보조를 받지 않는 경우에는 총생산물이 임금으로 노동에 귀속된다.
토지가 무상이고 노동이 자본의 보조를 받는 경우의 임금은, 총생산물에서
노동을 자본의 형태로 축적하도록 유도하는 데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것이다.
토지에 소유자가 있고 지대가 상승하는 경우의 임금은 지대를 지불할 필요 없이 개방된 최상의 자연의 기회에서 노동이 얻을 수 있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자연의 기회가 모두 독점된 경우의 임금은 노동자 간의 경쟁에 의해 노동자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으로 내려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농사 지을 땅을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노동이 생산하는 양보다 적게 받고 남 밑에서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토지가 독점되어 자연의 기회가 노동으로부터 봉쇄되어 있을 때에 한해서, 노동자는 일자리를 얻으려고 경쟁하며 농장주인은 이들을 고용하여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과 임금과의 차이를 소득으로 취할 수 있다.
이 장을 끝내기 전에 지적해 둘 것은, 여기에서 사용한 임금이라는 용어는 임금의 절대량이 아니라 비율로서의 임금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임금이 하락하고 지대가 상승한다고 할 때 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부의 총액이 줄어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임금의 비율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비율이 줄더라도 그 절대량은 변동이 없거나 늘어날 경우도 있다. 임금의 상대적 하락은 노동자의 필수품이나 편리품의 감소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토직지가치의 증대와 토지소유자의 계층의 소득 및 사치성 지출의 증가로 나타난다.
제4권 물질적 진보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제1장 문제의 동태적 측면에 대한 검토
문제는 지대 상승의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생산물 중에서 지대로 분배되는 비율이 생산력의 향상에 따라 계속 높아지도록 하는 힘 내지 필연성은 과연 무엇일까?
리카도는 지대 상승의 원인으로 인구증가만을 들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식품 증산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열등한 토지로, 또는 같은 토지에서 생산성이 열등한 점으로 경작이 확장된다고 하였다. 인구증가의 압력으로 인해 저생산점로의 확장이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지대가 상승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물질적 진보에 따른 지대상승을 충분히 설명한다고 볼 수 없다.
물질적 진보의 내용 또는 원인이 되는 변화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1) 인구의 증가 (2) 생산과 교환의 기술 개선 (3) 부의 생산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진 지식, 교육, 정부, 치안, 예절, 도덕 등의 개선.
제2장 인구 증가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인구증가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를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오해를 반드시 불식시켜야 한다. 그 오해란, 인구와 관련하여 지대를 검토할 때 명시적 내지 묵시적으로 전제하는 것으로서, 저생산점을 사용하게 되면 투입된 노동에 비해 총생산물이 적게 나온다는 내용이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100명의 노동은 한 사람의 노동의 백 배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한다. 즉, 인구 증가에 따라 일하는 손이 늘어나면 노동 생산력의 증가는 비율적으로 보아 더 커진다. 이와 같이 인구 증가에 따라 생산력이 낮은 자연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부의 평균 생산이 줄어든다고 할 수도 없고 최저생산점에서의 생산이 줄어든다고 할 수도 없다.
토질에 차가 있는 지역을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당연히 가장 좋은 토지에 정착할 것이고, 인구가 증가하면 차례로 그 다음 등급의 토지에서 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면 경제성이 높아져서 노동의 효율이 향상되므로, 새로 경작되는 토지의 토질이 종전보다 열등하더라도 같은 양의 노동에 의해 생산할 수 있는 부는 종전보다 많아진다. 인구 증가의 효과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이미 경작되고 있던 더 좋은 토지에서도 부의 생산력이 높아진다. 비율로서의 임금은 하락하더라도 양으로서의 임금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구 증가로 인해 필연적으로 열등한 토지를 추가 사용함으로써 생긴다기보다는 인구 증가가 기존에 사용하던 토지에 더 높은 생산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생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깐 토지, 지대가 제일 높은 토지는 자연적 비옥도가 특히 높은 토지가 아니라 인구 증가로 인해 생긴 효용이 특히 높은 토지이다. 지금깢 강조해 왔듯이, 인구 증로 인해 특정 토지에서 생기는 생산성 내지 효용의 증가는 단순히 마을의 확장에서 생긴 것이다. 인구의 중심지가 되어 있는 토지가 비싼 것은 지지표(地表)의 능력을을 반영할 뿐이며, 필라델피아처럼 비옥한 충적토이든, 뉴올리언스처럼 풍요로운 충적지이든, 세인트피터즈버그처럼 늪을 매립한 땅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를 탱고 우주를 항해하는 이 지구는 풍성하게 물자를 실은 배와 같다. 갑판 위의 빵과 고기가 부족해 보일 경우에는 갑판 뚜껑을 들어올리기만 하면 꿈에도 몰랐던 보급품이 나온다. 특정인에게 이런 보급품의 소유를 허용한다면 결국 다른 사람들이 제공한 서비스를 차지할 수 있는 엄청난 권리를 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이상을 요약해 보자. 인구 증가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는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지대를 상승시키고 그 결과 총생산 중 자본과 노동의 대가로 귀속되는 비율을 감소시킨다. 첫째는 경작의 한계를 낮추는 방식. 둘째는 잠재해 있던 특별한 능력을 토지에 발현시키고 이 특별한 능력을 특정 토지에 결부시키는 과정.
제3장 기술 개선이 부의 분배에 미치는 효과
생산 기술에 관한 발명과 개선은 노동을 절약하는 효과를 갖는다. 즉, 적은 노동에 의해서도 같은 결과가 생기며, 같은 노동을 투입하면 더 큰 결과가 생긴다. 사회의 물질적 욕구가 현재의 노동력으로 완전히 충족되고 앞으로 새로운 욕구도 생기기 않는다고 한다면, 노동 절약적 개선의 효과는 단순히 노동력 투입량의 감소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믿으며, 설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동물이나 다름없는 곳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부의 생산력이 부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켜 주는 경우는 없으며, 더구나 부에 대한 욕구는 충족이 될수록 더 커진다.
일상생활의 평범한 사실을 통해서나 각자 가고 있는 무한한 잠재욕구를 통해, 우리는 모든 형태의 부의 생산력이 커지면 반드시 토지와 토지의 직접 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거친 음식을 먹고 작은 집에서 는 사람도 소득이 높아지면 고급 음식을 머먹고 큰 집에서 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더 부자가 되면 말, 시종, 정원, 잔디를 마련할 것이고 토지 사용 수요는 부와 더불어 늘어날 것읻이다. 그래서 더 많은 부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을 노동에 부여하는 모든 개선과 발명은, 종류를 불문하고, 토지와 그 직접 생산물에 대한 수욜요를 증가시키고, 그로 인해 인구 증가에 의해 생기는 수요처럼 경작의 한계를 끌어내리는 경향이 있다.
모든 형태의 부는 토지에 투입된 노동의 생산물이거나 토지의 생산물이다. 부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으므로, 노동의 힘의 증가는 더 많은 부를 마련하는 데 활용될 것이고 그리하여 토지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발명과 개선이 더 진행되면 노동의 능률성이 더 높아질 것이고, 같은 결과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과 자본의 양은 더 줄어들게 된다. 러면 새로이 증가된 생산력이 활용되어 더 많은 부가 생산될 것이며, 경작의 한계는 다시 확장되고, 지대는 비율에서나 양에서나 증가하고, 임금과 이자는 증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발명과 개선이 진행되면면 인구가 일정하더라도 노동 능률은 계속 향상되고 생산의 한계는 더 낮은 곳으로 밀려나고 지대는 계속 늘어난다.
제4장 물질적 진보에 의해 생기는 기대의 효과
물질적 진보가 부의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명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언급하지 않은 또 하나의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그 요인이란 미래의 토지가치 상승에 대한 확실한 기대이다. 이러한 기대는 모든 진보하는 지역에서 지대가 꾸준히 상승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서 토지투지, 즉 정상적으로 형성될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바라면서 토지를 보유하는 행위를 야기한다. 진보의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는 지대가 급속히 또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지대가 더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는데 이런 사회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격 상승에 대한 확실한 기대로 인해 토지소유자끼리 일종의 담합이 이루어지고 이들은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면서 토지를 유휴화하게 되며, 이에 따라 경작의 한계는 생산적 필요성보다 더 낮아진다.
화폐가치가 급속히 하락하는 시기에는 구입한 물건을 다음 날에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사실 떄문에 화폐가치 하락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품가격이 오른다. 이처럼 물질적 진보로 인해 토지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그로 인해 상승이 더욱 가속화된다. 신생 지역의 성장에는 토지투기 열풍이 하나의 특색으로 나타나는데 그 속에서 이차적인 원인이 최대로 작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품의 경우에는 가격 상승이 추가 공급을 이끌어 냄으로써 투기를 억제할 수 있으나 토지는 그 존재량이 고정되어 있어 인간이 늘리지도 줄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임금을 0에 이르기까지 계속 줄일 수 있다면 지대를 모든 생산물을 흡수할 때까지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제5권 문제의 해결
제1장 반복적으로 발작하는 산업불황의 근본 원인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으로 인해 노동과 자본의 소득이 깎이고 생산이 제약되는 현상에 대해 고찰하면, 토지투기가 반복적 산업불황의 주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산업불황은 모든 문명국가의 문제이며, 또 모든 문명국가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그밖의 원인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생산 장치의 복잡성과 상호 의존성이 높아져서 한 군데서 발생한 충격 내지 생산 중단이 산업 연결망을 타고 널리 번져나는 것도 원인이 된다. 화폐는 가장 필요할 때 줄어드는 본질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 어떤 형태의 화폐보다 교환의 매개 내지 유동성 수단으로서의 비중이 큰 단순한 형태의 산업신용이 양적 변화가 심하다는 점도 원인이 된다. 생산력을 상호 활용하는 데 인공적인 장애가 되는 보호관세도 원인들이 된다. 그 밖에도 소위 불경기의 발생, 지속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인이 있다. 그러나 원리 면에서나 현상의 관찰을 통해서나 경제불황을 야기하는 커다란 원인은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자신이 획득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원하는데 어떻게 과잉생산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생산 설비가 놀고 생산자가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는데 어떻게 과잉소비가 있을 수 있을까? 분명히 생산과 소비가 서로 조화되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투기의 결과는 사실은 분명하게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문제는 무엇에 대한 투기인가 하는 것이다. 투기가 경제불황의 원인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노동 생산물에 대한 투기일 수는 없고 노동의 생산 활동에 필요는 하지만 그 양이 고정된 것, 즉 토지에 대한 투기일 수밖에 없다.
모든 거래는 상품과 상품의 교환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에 대한 수요 중단은 ㅡ이것이 상업불황의 특징이다 ㅡ실제로 다른 상품의 공급 중단이다. 상인은 팔려고 하고 제조업자는 만들려고 하는 상품이 있고 이런 상품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데도 상인의 매상고가 줄고 제조업자의 수주액이 줄어든다면, 결국 이 상품과 교환될 다른 상품의 공급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흔히 "구매자가 돈이 없다"라든지 "돈이 귀해졌다"고 하지만, 이는 돈이 교환의 매개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고서 하는 말이다. 잠재적인 구매자에게 정말로 없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이며, 정말로 희소해진 것은 어떤 생산물이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유효수요 감소는 생산 감소의 결과에 불과하다. 교환 단계 내지 업종을 하나씩 추적해 보면 생산 제약 및 그로 인한 구매력 감소의 원인인이 궁극적으로 토지에 노동이 투입되는 것을 제약하는 어떤 장애오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장애는 지대 또는 토지가치의 투기적 상승임이 분명하다.
흔히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말도 하는데, 인간이 물자를 필요로 하는 한 일잘자리의 부족이란 있을 수 없다. 노동 생산물이 부족한데도 노동동의 공급이 너무 많거나 노동에 대한 수요가 너무 적은 경우는 분명히 있을 수 없다. 문제의 원인은 수요에 맞는 공급이 어디에선가 제약된다는 데 있으며, 또 필요한 물자를 노동이 생산하는 것을 막는 장애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데 있다.
현재의 상공업 불황의 원인은 대부분 무리한 철도 건설에 있으며 그 관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사례도 많다. 철도가 건설되거나 계획되는 곳에서는 토지가 독점되었고, 개선의 혜택에 대한 기대가 미리 반영되어 토지가치를 상승시켰다. 지대의 투기적 상승이 이렇게 정상적인 상승을 앞지름으로써 생산이 제약되고 수요가 감소하였다. 노동과 자본은 토지와 직접 관련된 직종에서 거부되고, 토지가치가 비교적 덜 중요한 요소가 되는 직종으로 몰렸다.
제2장 부의 증가 속에 영속되는 빈곤
일반적인 생산력 향상이 이루어져도 단순 노동자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설탕 가격이 올라도 쿠바의 노예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설탕 가격이 오르면 주인이 일을 더 많이 시켜서 노예생활이 더 고달파질 수 있듯이, 자유노동자의 생활도 자기 노동의 생산력이 증가하면 절대적, 상대적으로 더 악화될 수 있다. 지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투기 경향이 발생하는데, 투기는 지대를 더욱 상승시킴으로써 앞으로 이룩될 개선의 효과를 반감시켜 버린다. 또 임금을 노동자가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노예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린다.
진리는 자명하다. 어느 정도의 사고력을 갖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보자.
"영국해협이나 영국 북해에 주인없는 섬이 솟아올랐다고 하고, 이 섬에서는 단순노동을 무한정 투입할 수 있으며 그 소득은 하루에 10실링이라고 가정해보자. 또 이 섬은 사유돠되지 않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영국의 임금에 어떤 효과가 생길까?"
이 사람은, 영국 전역의 단순노동의 임금이 곧 하루에 10실링으로 상승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또 "영국의 지대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라고 질문하면 이 사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지대는 필연적으로 하락단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 사람이 조금 더 생각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영국의 노동자가 새 섬으로 대량 이동하지 않더라도 생기고, 영국 산업의 형태나 방향에 큰 변화가 없어도 생기며, 임금과 지대를 다 합해도 새 섬의 노동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종류의 산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임금이 대폭 상승하는 것은 지대가 줄기 때문이다.
또 같은 사람람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든 이렇게 말해 보자. "어느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이 10년 후에는 큰 도시로 성장하여 마차 대신 기차가 다니고 기계류와 기술이 많이 발달하여 노동력의 효과가 대폭 상승한다고 하자. 그러면 10년 후에 이자율이 높아질 것으로 보는가?"
그는 대답할 것이다. "아니다!" "그러면 단순노동의 임금이 오르겠는가" "아니다. 단순노동의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더 내릴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순전히 노동만 하는 사람은 독립적 생활을 하기가 쉬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면 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지대, 즉 토지가치이다. 당신도 토지를 구입해서 보유하도록 하라"
이러한 상황에서 이 사람의 조언에 따른다면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담배나 피우고 있으면 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또 사회의 부에 아무런 보탬을 주지 않더라도 10년 후에는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새로운 도시의 호화주택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의 공공건물에는 빈민구호소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제6권 해결책
제1장 현재 옹호되는 해결책의 불충분성
① 정부의 절약
미국에서 최대한으로 정부 지출을 감축하고 내국세로 이를 충당한다고 해도 그 혜택은 철도가 가져다 준 혜택에 못 미친다. 철도로 인해 국민의 수중에 부가 더 많이 생겼듯이, 전체적으로 보아 국민의 부가 전보다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분배에 있어서는 예외 없이 동일한 법칙이 작용하여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상태는 개선되지 않는다.
② 교육의 확산 및 근면, 절약의 습관
지적 능력은 현재도 교육의 목표이고 또 교육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데, 지적 능력이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원인을 발견하고 제거하도록 중을 인도는 데 활용되지 않는 한, 지적 능력은 노동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경우에만 임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적 능력은 기술이나 근면의 증가와 동일한 효과를 낸다. 지적 능력은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게 될 경우에 한하여 임금을 높일 수 있다.
어느 국민 또는 어느 계층의 물질적 생활이 개선된다고 해서 지적, 도덕적 개선이 당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상승하면 처음에는 나태하고 낭비하는 버릇이 어느 기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근면, 기술, 지적능력, 절약이 나타난다. 서로 다른 국가, 같은 국가의 다른 계층, 같은 민족의 다른 시대, 같은 민족의 이민 전후의 상태를 비교해 보아도 언제나 일관성 있는 결과를 보여 준다. 즉, 물질적 생활이 개선되면 위와 같은 인간적 품성이 나타나고, 물질적 생활이 악화되면 그러한 인간적 품성이 사라진다. 인간의 근면, 절제, 기술, 지적 능력이 향상되면 궁핍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예에게서 자유인의 덕목을 기대하려면 우선 노예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
③ 노동자의 단결
단결에 의해서는 임금을 전반적으로 상승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나, 특정 분야의 임금 상승이 이루어지면 다른 분야의 임금이나 자본 이윤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임금이 자본에서 나온다는 오류에서 비롯된다.
노동조합에 의해 임금을 어느 정도라도 지속성있게 인상해 가려면 국제노동자동맹이 의도한 것처럼 모든 분야의 노동자가 총단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총단결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고임금 직종이나 소규모 업종에서는 노동자의 단결이 어려우며, 또 하위산업으로 내려갈수록 단결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도 일단 군대에 입대하고 나면 개인적 자유를 포기하고 거대한 기구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파업을 위한 조직에 참여하는 노동자도 개인적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단결은 그들이 투쟁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 즉 부와 자유를 반드시 희생시카고 만다.
④ 협동조합
최근에는 협동조합이나 노동자 계층의 고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는 주장이 유행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협동합은 사회악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효능에 의문이 있다. 사회악은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관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목적하는 바는 생산, 교환방법과 기계 개선의 효과와 같다. 즉,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고 노동의 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기성 지역이 신개척지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면 이러한 면에서이다. 그러나 우의 경험이 충분하게 증명해 주듯이, 생산, 교환 방법의 개선과 기계의 개선은 최저층의 생활을 개선해 주지 못하며, 교환의 비용이 극소화되고 최상의 기계를 사용하여 생산이 이루어질 때 임금은 낮아지고 빈곤의 정도는 심해진다. 개선의 이익은 지대를 올릴 뿐이다.
⑤ 정부의 지시와 간섭
사회주의적 이상에 들어 있는 제와 제약이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말아야 할 방법이다. 사회주의의 이상은 위댛대하고 숭고하다. 또 실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는 인위적으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성장해야 한다. 사회는 유기체이지 기계가 아니다.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삶에 의해서만 지속된다. 각 개인의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발전 속에서 전체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⑥ 토지 분배의 확산
토지가 개척되고 또 인구 증가에 따라 토지의 용도가 고高용도 내지 집약적 용도로 이행하면, 소유 면적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목장을 하기에는 좁은 땅이라 해도 농장으로는 넓다. 농장으로는 좁은 땅이 과수원, 포도밭, 양어장, 채소밭으로는 넓다. 또 과수원 등으로는 좁은 땅도 도시 토지로는 매우 넓다. 이렇게 서 인구가 증가하면 토지가 고용도 내지 집약적 용도로 이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유 면적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은 신생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통계표에서는 평균 토지 소유 면적이 줄면서도 토지 소유 집중 경향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는 통계표를 제시하면서 토지 독점이라는 악이 저절로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오류이다. 그 반대로 전체 인구 중에서 토지 소유자의 비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영국에서와 같이 농지의 소유집중 경향은 분명히 나타난다. 이 경향으로부터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토지의 소규모 분할을 허용 내지 촉진하는 대책은 별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둘째는 토지의 소규모 분할을 강제하는 조치는 생산을 억제하게 된다는 점이다. 소규모 토지로 나누는 것보다 대규모로 토지를 경작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면, 토지 소유를 적은 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의 총생산을 줄이며, 이렇게 부과되는 제한의 효과만큼 노동과 자본의 일반적 생산성도 떨어지게 된다. 소유 면적 제한을 통해 부의 공정한 분배를 확보하려는 노력에는 분배의 총량을 감소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집중이 발전의 순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도시에 사람이 집중하고, 수공업이 큰 공장에 집중하고, 수송이 철도와 증기선에 집중하고, 농업도 대규모 농지로 집중한다. 가장 미미한 사업인 심부름업이나 여행가방 운반업도 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 시대의 조류는 집중으로 나아간다. 이 흐름을 제대로 억제하려면 인간이 이용하고 있는 증기를 막고 전기를 방전시켜야할 판이다.
제2장 진정한 해결책
그렇다면 현대 문명에서 명백히 나타나고 있는 부정의고 불평등한 부의 분배,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온갖 악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이것이다.
토지를 공동소유해야 한다.
제7권 해결책의 정의성
제1장 토지사유제의 부정의성
소유권의 올바른 근거는 무엇인가? 사람이 정당하게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 배타적 권리를 가진다고 인식하는 감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러한 근거는 각 인간이 독립된 유기체라는 자연적 사실에서 발생하고, 또 이 사실에 의해 인정되는 개인적 권리가 아니겠는가? 독립된 유기체라는 의미는 인간이 각자 특정한 두 손과 특정한 두뇌와 특정한 위장을 가지며, 그리고 한정성, 일체성, 독립성을 가진 전체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각자 자기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상에 투입되는 노동도 자신의 것이다. 또 같은 이유로 해서 어느 사람이 만들거나 생산한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이것을 향유하고 파괴하고 사용하고 교환하고 증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노력에 의해 생산된 것에 대해서는 배타적으로 보유고 향유할 수 있는 명백하고 다툼의 여지가 없는 권원(權原, title)이 발생한다. 소유에 대한 모든 정당한 권원은 모두 생산자의 권원과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연권에서 도출된다. 그 밖에는 정당한 권원의 근가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다른 정당한 권원을 도출할 수 있는 자연권이 재하기 않기 때문이며, 둘째 만일 다른 권원이 존재한다면 두 권원이 상호 모순되어 이 근거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생산으로 인해 배타적 보유와 향유의 권리를 갖는다면, 노동의 생산물이 아닌 것의 배타적 보유와 향유는 정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토지의 사적 소유는 옳지 않다. 자연이 제공하는 기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면 노동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향유할 수 없고, 그 기회의 사적 소유를 인정한다면 노동 생산물에 대한 권리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창출한 부의 일부를 비생산자가 지대로 취할 수 있다고 하면 노동의 결과에 대한 생산자의 권리는 그만큼 부정된다.
모든 인간의 토지 사용에 대한 권리의 평등성은 공기를 호흡하는 권리의 평등성처럼 명백하며 인간의 존재 그 자체에 의해 인정된다. 인간이 창조주의 평등한 허락을 받아 이 땅에 재한다고 하면, 우리 모두는 창조주의 하사품을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또 자연이 공평하게 제공하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자연은 상속무제한 토지소유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토지의 배타적 소유를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현재 고 있는 모든 인류가 합의하여 토지에 대한 자기들의 평등한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후세대의 권리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토지에 대한 개인의 완전하고 배타적인 권리가 토지의 선점에서 생긴다는 주장도 있지만, 토지사유제를 방어하는 근거로서는 가장 불합리하다. 잔치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고 해서 연회석의 의자를 돌려놓고서 자기와 계약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할 권리가 있는가? 극장에 제일 먼저 표를 내고 입장했다고 해서 극장 문을 닫아 걸고 자기 혼자서만 공연을 관람할 권리가 있는가? 차에 먼저 승차했다고 해서 자기 짐을 온 좌석에 흩어 놓고 뒤에 타는 승객을 세워둘 권리가 있는가? 기차의 첫 승객이 다른 사람의 승차 전에는 자기 짐을 여러 좌석에 흩어 놓을 수 있듯이, 토지의 첫 정착자는 토지를 마음대로 취득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그 토지를 원하면 다른 사람의 동등한 권리에 의해 첫 정착자의 권리는 제한된다.
제2장 토지사유제의 궁극적 결과는 노동자의 노예화
토지 소유는 귀족제의 근거가 된다. 귀족 신분이 토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토지가 귀족 신분을 만들어 준다. 중세 유럽 귀족의 엄청난 특권은 땅의 소유자라는 지위에서 나왔다. 오늘날 영국의 지주는 토지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법에 의해, 과거 봉건 귀족이 가지고 있던 모든 힘을 가진다.
모든 문명국가에서 대중의 생활은 자유라는 형식 하에 사실상의 노예상태가 되고 있다. 이것은 노예제도 중에서 아마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한 유형일 것이다. 현대 노동자는 노동 생산물을 강탈당하면서 단순 생존을 위해 억지로 하지만, 누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의 노예 소유자가 가장 선진화된 문명국의 가난한 자유 노동자를 보고는, 노예제도가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남부에서 밭일을 하는 노예들의 의식주 상태가 평균적으로 보아 더 낫기 때문이다. 짐승을 공공장소에서 학대해도 체포 내지 처벌을 하고 노예 해방을 위해 돈과 피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사는 런던, 뉴욕, 보스턴에서는 어린읻이들이 겨울에도 맨발에 누더기를 걸치고 거리를 뛰어 다니며, 여성들이 적절한 난방과 음식도 마련할 수 없는 임금을 벌기 위해 누추한 구석방에서 생명을 소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예제도의 철폐 요구에 대해 남부의 노예소유자가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노예제도가 철폐된 지금 남부의 농장주들은 아무 손실도 입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면 전과 다름없이 노동을 지배할 수 있는 동시에 노동에 대한 책임은 면제되었기 때문이다.
제3장 토지소유자의 보상 요구
토지를 공동재산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쪽에서조차 주저하는 이유는 오래 존속해 온 토지사유제를 철폐하면 이 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고 경제생활을 해온 사람들에게 손실을 준다는 생각, 즉 토지를 정당한 재산으로 인정해 왔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공동의 권리를 회복시킨면 정당성에 의문이 없는 다른 재산을 지불하고 토지를 구입한 사람들에게 불공평하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토지소유자의 이익이 보존되면 일반 국민의 이익과 권리는 그만큼 무시되며, 토지소유자가 특권을 잃지 않으면 일반 국민은 얻는 것이 없게 된다. 개인의 재산권을 매수하는 방법은 현재 토지소유자가 토지 소유를 통해 얻고 있는 이익을 다른 형태로 주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의 노예제도 철폐 운동은 노예 소유자에 대한 보상에 관한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4백만 명의 노예가 해방되자 노예 소유자는 보상을 받지 못했고 보상을 대놓고 요구하지도 못했다.
토지가 국민의 것이라면 무슨 이유로 토지소유자가 지대를 취득하도록 계속 허용하거나 지대의 손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해주려고 하는가? 지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 지대는 토징지에서 자연히 생기는 것도 아니고 토지소유자의 행위에 의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대는 사회 전체에 의해 창출된 가치를 대표한다. 사회에 다른 사람이 없다면 토지소유자로 하여금 토지 보유로 인해 생기는 모든 것을 갖게 해도 좋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창출한 지대는 반드시 사회 전체의 것이 되어야 한다.
제4장 토지사유제의 역사적 고찰
토지사유제의 본질적 부정의성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고 토지사유제 철폐 주장에 대한 편견없는 판단을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래된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사고 습관이다. 과거에 토지가 언제 어디서나 사유재산으로 취급되었음이 사실이라 해도, 앞으로는 언제나 그렇게 취급애햐 하는 것은 아닐 뿐더러, 실은 그것이 사실도 아니다. 역사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토지사유제는 강탈에 의해 생겼다. 토지사유제가 계약에 의해 생긴 경우는 없고 정의와 효율을 고려하여 생긴 경우도 없다. 어느 곳에서나 전쟁과 정복 또는 교활한 자들이 미신과 법률이라는 수단을 이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생겼다.
평등한 인간적 권리가 부인되고 특권층이 형성된 원인은 어디에서나 같다.
첫째, 소수 권력자 내지 군부로의 권력집중. 이들은 전쟁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고 공동의 토지를 독점할 수 있었다.
둘째, 정복의 결과. 피정복민은 농노 상태로 전락하였고 토지는 정복자들끼리 나누어 가졌다.
셋째, 성직자 계층 및 전문 법률가 계층의 형성과 영향력. 이들은 토지에 대한 공동의 권리 대신 배타적 권리를 확립함으로써 이익을 취했다.
봉권제가 성립, 발전하는 과정에서 토지에 대한 공동권 개념이 승리하였다. 토지의 절대적 소유제도는 조건적 소유제도로 변모되었고, 봉신은 지대 수취권을 갖는 대신 일정한 의무도 부담하였다. 이 시기에 토지소유자의 힘은 아래로부터도 줄어들었다. 토지 경작자의 소작 조건이 지가 임의적으로 정할 수 있는 방식에서부터 점차로 관습에 의해 확립되는 쪽으로 변해갔으며, 지주가 농민에게서 징수할 수 있는 지대도 정액으로 고정되어갔다. 봉건제도 속에서 토지 경작자의 집단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일정한 봉납의 의무를 지는 한편 토지를 공동재산으로서 경작하였다.
봉건시대 이후 근대문명은 토지의 공동소유라는 자연적이고 근본적인 관념을 뒤집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역설적이지만, 봉건적 둘레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생긴 새로운 토지 소유제에 의해 노동계층이 예속되는 경향이 발생하였다. 군주제를 취하든 의회제를 취하든, 국가의 권한이 커지면서 대지주의 힘과 영향력, 관할권과 주민에 대한 권력을 박탈하였다.
제5장 미국의 토지사유제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토지를 정당한 개인 재산으로 보는 제도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상 처음으로, 물로 씻어내는 단순한 방법에 의해 금을 획득할 수 있는 토지와 접촉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든 토지가 비옥한 농지나 목초지나 산림지였다면, 이 토지가 상업용으로 위치가 좋거나 토지 내의 수력이 풍부하거나 하여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면, 토는 관련된 광물이 석탄, 철, 납이었다면, 이 토지에는 사람들엑에게 익숙한 제도가 시행되었을 것이고, 토지는 사유화되어 큰 필지로 분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특이한 경우였기 때문에 관습적 관념이 깨지고 제일 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금을 함유하고 있는 이 토지는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 공동재산으로 유지되었고, 아무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상을 취득할 수 없었으며, 토지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계속 보유할 수도 없었다.
캘리포닝니아에서 노천금광이 쇠퇴하자 관습적인 사유재산 관념이 발생하여 광산의 특허를 허용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광산 소유자가 스스로 활용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활용까지 막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광산을 굴착하고 개발하려면 광산 소유자에게 엄청난 금액을, 때로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였다.
신대륙에는 광대한 토지가 존재하여 사람의 이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토지 사유제라는 제도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새로운 나라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토지 취득을 배제하지만 않는다면 평등성이 충분히 확보될 것으로 생각되었기 떄문이다.
제8권 해결책의 응용
제1장 토지사유제는 토지의 최선 사용에 어긋난다
토지 사용에 필요한 것은 토지의 사적적 소유가 아닐니라 개량물에 대한 보장이다. 토지의 경작과 개량을 유도하기 위해서 "이 땅은 당신의 것"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이 땅에서 당신이 노동과 자본을 들여 생산한 것은 당신의 것"이라고 하면 족하다. 수확을 보장해 주면 씨를 뿌릴 것이고,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면 집을 지을 것이다. 선박을 반으로 쪼개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한 척을 소유할 수 있다. 철도가 수십만의 소유 지분으로 나뉘어 있더라도 한 사람이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차는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운행된다.
제2장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확립하고 보장하는 방법
어떤 방법으로 공유화할 것인가? 내가 주장하는 것은 사유 토지의 매수도 몰수도 아니다. 현재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토지를 가지게 한다. 토지 매매도 허용하고, 유증, 상속도 하도록 한다. 토지를 몰수할 필요는 없고 단지 지대만 환수하면 된다. 이 제도는 지대를 징수하여 공공경비에 충당하면 그만이다.
제9권 해결책의 효과
제1장 부의 생산에 미치는 효과
모든 조세를 토지가치에 부과하는 이런 간단한 방법은 국가에 최고액의 지대를 납부하려는 사람에게 토지를 경매하는 효과를 낸다. 토지에 대한 수요가 토지가치를 결정하므로, 세액이 토지가치와 거의 유사하면 토지를 보유하면서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토지 사용을 원하는 사람이 내려고 하는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농지만이 아니라 모든 토지에서 나타난다. 토지가 가치를 가지는 곳에 조세를 부과한다면, 조세는 현재처럼 개량 행위에 매기는 벌금이 아니라 오히려 개량의 추진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칠 효과를 생각해보자. 노동자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을 벌여 임금이 최저 생존수준으로 하락하는 대신, 어디서든지 고용주가 노동자를 구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임금은 정당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왜냐하면, 노동 수요에 있어 최대의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자가노동 수요가 노동시장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제2장 분배에 미치는 효과 및 이를 통해 생산에 미치는 효과
지대를 징수하여 공공목적에 사용한다면 실질적으로 토지사유제를 철폐하는 것이 되며, 토지의 투기적 독점과 지대의 투기적 상승승을 봉쇄하여 임금과 이자의 절대액이 줄어드는 경향을 봉쇄한다. 독점되어 있는 자연의 기회를 개방하고 지가를 하락시킴으로써 임금과 이자를 크게 상승시킨다. 노동과 자본은 세금을 안 내는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투기적 토지가치가 사라져 지대가 상당히 하락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평균적인 임금률과 이자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는 새로운 균형이 형성된다. 모든 곳에서 낭비가 방지되고, 모든 곳에서 힘이 증가할 것이다.
부의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하는 사회제도는 부를 생산하는 노동의 능력을 무한정 끌어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제10권 인간 진보의 법칙
제1장 인간 진보에 관한 현재의 이론 ㅡ 그 불충분성
아무리 수준이 낮은 인간이라도 반드시 갖추고 있으나 다른 동물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요소가 하나 있다. 이 요소는는 분명하게 인식되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우며, 인간에게 개량하는 힘을 주는 그 무엇이다. 그로 인해 인간은 진보하는 동물이 되었다.
비버는 댐을 만들고, 새는 둥지를 틀고, 벌도 집을을 짓지만 동물의 집은 언제나 같은 방법,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인간의 집은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지은 집에서부터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저택으로까지 변화되어 왔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에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서 보태는 힘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같이 삶으로써만 원시적인 단계를 넘어 개선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인간의 힘과 상태의 개선 일체를 우리는 간단히 문명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간의 문명화는 곧 사회 속에서 협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이를 통해 개선이 이루어진다. 각종 사회회제도 중에 어떤 것은 문명의 진보를 촉진하고 어떤 것은 그 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같은 제도가 어떤 때에는 진보를, 어떤 때에는 퇴보를 촉진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현재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견해는 이렇다. "생존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인간은 새로운 노력과 발명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개선 및 개선능력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며, 또 가장 잘 적응했거나 가장 많이 개량된 사람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는 경향과, 가장 잘 적응했거나 가장 많이 개량된 부족, 민족, 인종이 사회집단 간 투쟁에서 살아남는 경향에 의해 확대된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진보는 인간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서서히, 꾸준히, 냉정하게 작용하는 힘의 결과이다. 현대문명을 괴롭히는 전쟁, 노예제도, 미신, 기근, 페스트, 궁핍과 비참 등의 강력한 원인에 의해 열등한 유형이 배제되고 우등한 유형이 확대됨으로써 인간이 전진한다.
서구문명이 과거의 어느 문명보다 기반이 넓고 보다 선진적이며 빨리 움직이고 높이 솟아오르는 것은 의심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구문명이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로마 문명보다 앞서 있다고 할 수 없고, 또 그리스로마 문명 역시 아시아 문명보다 더 앞섰다고 볼 수 없다. 또 설혹 서구문명이 앞선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문명의 몰락을 초래한 원인이 서구문명에 존재하지 않는다믄 증거가 없는 한, 서구문명의 영속성이나 미래의 발전을 증명해 주지 못한다. 진보하던 모든 문명이 지속되지 않고 반드시 정체 내지 퇴보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진화론적 견해와 완전히 배치된다.
제2장 문명의 차이와 그 원인
시간과 장소가 다른 여러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 즉 문명의 차이는 개인에 내재하는 차이가 아니라 사회에 내재하는 차이이다. 이 차이는 개인이 가진 차이가 아니라 개인이 처한 사회적 환경 조건에서 발생하는 차이다. 이 차이는 하버트 스펜서의 견해와는 달리 개인이 가진 차이가 이나라 개인이 처한 사회적 환경 조건에서 발생하는 이다. 간략히 말해서, 크고 작은 여러 사회는 각기 지식, 신념, 관습, 언어, 취향, 제도, 법률 드등으로 하나의 그물을 짠다. 개인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짠 그물에 출생 때부터 편입되어 죽을 때까지 머문다. 이 그물은 인간의 정신이 싹트고 발전하는 바탕이 된다. 관습, 종교, 편견, 취향, 언어 등이 이 그물에서 자라고 지속된다. 또 그물을 통해 기술이 전해지고 지식이 축적되며, 한 세대의 발견이 다음 세대의 공동 자산이자 디딤돌이 된다. 이 그물은 때에 따라서는 진보에 대한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이 그물이 있기 때문에 진보가 능해지기도 한다. 이 그물을 통해 오늘날의 초등학생이 우주에 대해 톨렝레아미오스 보다 더 나은 지식을 몇 시간 안에 배울 수 있으며, 오늘날의 평범한 과학자가 아리스텔레스 같은 위인보다 더 앞선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그물은 종족 전체에 대해 개인의 기억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 시대의 기술, 과학, 발명이 굉장한 정도로 이루어지는 것도 이러한 그물을 통해서 가능하다. 한 세대가 이룩한 발전이 이런 방식으로 다음 세대의 공동재산으로 보존되고 새로운 발전의 출발점이 됨으로써 인류의 진보가 계속된다.
제3장 인간 진보의 법칙
진보를 자극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의욕이다. 인간의 동물적 본성의 욕구, 지적 본성의 욕구, 정서적 본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의욕읻이다. 이는 생존하고, 알고, 행동하려는 의욕으로서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의욕이며, 충족할수록 더 커지는 의욕이다.
정신은 인간이 전진하는 수단이다. 모든 전진은 정신을 통해 이룩되고 또 새로운 전진을 위한 유리한 기초가 된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체구를 키울 수는 없지만, 생각을 통해 우주에 대한 지식과 힘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다. 짧은 일생동안 개인이 나갈 수 있는 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각 세대는 조금밖에 이루지 못하지만 앞 세대의 업적을 계승함으로써 인류의 수준을 점차 높일 수 있다. 마치 산호가 해저에서 다른 세대의 층 위에 자기 세대의 층을 형성하면서 높아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정신력은 진보의 동력이며, 인간은 진보에 투입하는 정신력에 ㅡ지식의 확대, 방법의 개량, 사회 상태의 개선에 투입하는 정신력에 ㅡ 비례하여 전진한다.
정신력을 소비하지만 진보와는 무관한 목적은 유지와 갈등의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유지에는 생존의 확보뿐만 아니라 사회의 지속 및 기존 발전 성과의 보존도 포함된다. 갈등에는 전쟁과 전쟁 준비 외에도 타인을 희생시켜 만족을 얻거나 이를 막는 데 드는 모든 정신력 소모가 포함된다.
사람이 따로 떨어져 살면 개인의 모든 힘이 생존 유지에 다 소요된다. 정신력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서로 어울릴 때에만 자유롭게 되어 고차적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 어울림으로 인해 분업이 가능해지고 다수인의 협력에 의해 생기는 경제성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울림은 진보의 첫째 요소이다. 개선은 사람들이 평롭게 어울릴 때 이루어지며, 어울림이 넓고 긴밀할수록 개선선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 그리고 인간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도덕법칙이 무시되느냐 존중되느냐에 따라 정신력이 대립 속에 낭비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므로, 평등 또는 정의는 진보의 둘째 요소이다. 이렇듯 평등 속의 어울림(associaition in equality)이 진보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