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by 폴 크루그먼
End this depression now!
예금과 대출시장에서 빚어진 혼란을 통해 우리 사회는 규제 완화가 은행들을 제멋대로 날뛰게 풀어줬다는 사실을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닫게 됐다. 조만간 경제위기가 벌어질 것이라는 조짐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물론 경제 성장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강력한 규제가 이뤄졌던 시대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불과했다.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보수 진영의 대다수 인물들 사이에서 규제 완화 시대가 경제적 성공의 시대였다고 하는 기묘한 착각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간가구 소득은 1980년대 이후로 그 성장세가 크게 둔화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성장이 가져다준 열매의 상당부분이 소수 최상층으로 집중됐기 때문이다.
금융규제 완화 이후의 상위 1%의 소득 성장은 매우 놀랍다.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이들의 소득수준은 주식 시장의 상승 및 하락과 더불어 요동을 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980년 이후로 소득수준은 거의 4배로 증가했따. 규제 완화 이후로 미국 엘리트 집단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고, 상위 0.1%에 해당하는 슈퍼 엘리트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게다가 0.01%에 해당하는 슈퍼 듀퍼 엘리트들의 소득은 660%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니치 지역에 들어선 타지마할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이야기다.
중산층의 경제 성장이 지지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층이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2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준다. 첫째는 왜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다. 다음으로 둘째는 그런 사실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기침체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다.
부시 행정부시절에 대규모 주택 거품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모기지 대출을 떠받치고 있었던 금융 시장이 손실을 기록하면서 금융 기관들이 치명타를 맞았다. 이후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상황은 파국으로 치달았고 결국 그림자 금융 시스템은 대규모 인출 사태를 맞이하게 됐따. 당시 급한불을 끄는 방안을 넘어서, 보다 과감하고 신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거센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실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2005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플로리다와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와 같은 모래지역 주(sand states)의 경우, 도심 지역 집값은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비해 150%나 상승했따. 다른 도시 지역의 집값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값 상승의 조짐은 미국 전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집값이 앞으로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더 높아지기 전에 주택 구입을 서두르면서 투기활동이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주택 거품은 조금씩 꺼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집값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지만, 주택 판매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널리 사용되고 있는 케이스-쉴러 지수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집값은 2006년 봄에 절정을 기록했으며, 그 이후로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무참히 깨졌다. 마이애미에서는 50%, 라스베거스에서는 60% 정도가 주택 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놀라운 사실은 주택 거품의 폭발이 곧바로 경기침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주택 시장은 순식간에 주저앉았지만, 그대로 달러 약세로 인해 미국 제조업의 비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수출 시장의 호조가 이를 만회했다. 하지만 2007년 여름, 주택 문제가 은행 문제로 이어지면서, 은행들은 우선순위 채권에 대한 상환요구와 더불어 다양한 모기지에 대한 권리를 판매하는 방식의 금융 상품인 모기지 담보증권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9일, 프랑스 투자은행 BNP 파리바가 2가지 펀드의 투자자들에게 거래가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에 더 이상 인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통보하면서 상황의 심각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앞으로 벌어질 추가 손실에 대한 걱정으로 은행들이 서로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면서 신용경색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은 주택 시장 위축과 집값 하락이 더해지면서 2007년말 미국 경제 전체를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실업률은 4.7%에서 5.8%로 증가했따. 그러나 최악의 사태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2008년 9월15일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의 자유낙하는 비로소 시작됐다.
그런데 중간규모에 불과한 투자은행의 파산이 그렇게 막대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직접적인 대답은 리먼의 파산이 그림자 금융시스템, 특히 환매조건부 채권매매인 리포와 관련해 그림자 금융에 대규모 인출 사태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정부지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부채는 결국 모두 똑같은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정말로 모든 부채가 똑같은 부채라면 문제는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부채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빌린 돈이다. 세상이 단 하나의 국가로 이뤄져 있다면 부채의 전체 규모는 순부채 가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부채가 곧 다른 사람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채 규모가 문제가 되는 것은 순 부채의 가치의 분배에 문제가 있을 때다. 다시 말해 부채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부채 수준이 낮은 사람들과는 다른 제약에 직면할 때다. 이 말은 부채가 다 똑같지 않다는 뜻이다.
부채가 증가한다고 해서 하나의 경제 전체가 더 많은 돈을 빌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이유로 나중이 아니라 지금 지출을 원하는 참을성 없는 사람들이 참을성 높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부채와 관련해 중요한 제약은 빌려준 돈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참을성 높은 대여자들의 걱정이다. 그들의 걱정은 개인의 차입 능력에 대한 일종의 상한선을 결정한다.
그런데 2008년 이런 상한선이 갑작스럽게 낮아졌다. 그러면서 채무자들은 기존 부채를 빨리 갚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는 곧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제는 채무자들이 줄인 지출만큼 채권자들은 소비를 늘릴 동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한 디레버리징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제로 금리는 채무자들의 수요 감소로 생긴 구멍을 메우는데 충분치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지 경기침체로 끝난게 아니었다. 낮은 소득과 낮은 인플레이션은 채무자들이 자신의 부채를 갚으려는 노력들을 더 힘들게 만들어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할까? 부채의 실질 가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채무 면제 및 탕감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도 가능하다. 인플레이션은 2가지 역할을 한다. 실질 금리를 마이너스로 떨어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부채 규모를 크게 줄어들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인플레이션은 채무자들에게 과거의 잘못에 대한 보상을 어느 정도 제공해준다.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그 과정은 간접적인 형태로 이뤄진다. 칼 스미스라는 블로거는 깨끗한 인플레이션(immaculate inflation)이라는 재치있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이 용어를 통해 돈을 찍어내면 수요와 공급의 일반적인 법칙을 뛰어넘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은 돈이 시중에 많이 풀렸다고 해서 가격을 높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을 높여도 매출을 어느정도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로자들은 신용확대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게 아니다. 다만 다른 일자리들이 많이 생겨났기 때무에 임금을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금이 인상되면 그만큼 그들의 구매력이 높아진다. 돈을 찍어내는 일, 정확히 말하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자산을 사들이는 일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촉발한 신용확대가 더 높은 지출과 수요를 자극해야 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은행들로부터 엄청난 규모로 채권을 사들이고, 이에 대한 대가로 은행들의 지급 준비계정에 돈을 넣어주는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은행들은 그 자금을 그냥 계정에 보관해두지 않는다. 이를 인출해서 적극적으로 대출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안전한 자산의 이자율은 제로에 가깝다. 즉, 안전한 대출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대단히 낮다. 그렇다면 대출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반면 위험 요소가 있는 중소기업이나 대기업들에 대한 대출은 수익률은 높다. 그런데 안전하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자산을 매입하면서 은행들의 지급준비계정에 돈을 입금했을 때 은행들 대부분은 그냥 그대로 놔뒀다.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유럽 내에서 전쟁을 원칙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이상주의적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 공동체를 기반으로 유럽은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석탄 및 철강 시장에서 자유무역시스템을 구축했다. 유럽내 국가들 간의 수출입 운송에서 모든 관세와 제약을 철폐함으로써 철강 기업들은 국경의 제한을 넘어서 가장 가까운 생산자들로부터 석탄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프랑스 철강 기업들이 독일에서 생산된 석탄을 사용하고, 마찬가지로 독일 기업들이 프랑스 석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향후 양국 간의 갈등은 극단적으로 파괴적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할 뿐이었다.
석탄철강공동체는 대성공을 이루었다. 이에 유럽은 계속해서 성격이 비슷한 기구들을 창설하기 시작했다. 1657년 유럽 6개국은 회원국들 사이에 자유무역을 보장하고, 외부 국가들로부터의 수입에 공통 관세를 부과하는 관세협약 기구인 유럽경제공동체를 발족했다. 1970년대 들어서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덴마크가 여기에 추가적으로 가입했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경제공동체는 가난한 국가에 원조를 제공하고, 유럽 전역에 걸쳐 민주주의를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역할을 확대해갔다. 1980년대에 독재자를 몰아낸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정부는 회원국으로 인정받았다. 유럽 국가들은 경제 규제를 조율하고 국경경비를 없애고 근로자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경제협력을 강화해나갔다.
어떻게 긴축재정을 촉구하는 경제이론이 사회적 모순과 잔인함을 전반적으로 합리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를 통해 정부를 설득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특히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할 칼레츠키의 연구까지 살펴보자. 1943년 칼레츠키는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시장의 신뢰를 높이지 않고서는 완전고용을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로비를 통해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가령 기업들은 세금을 인상하거나 노종조합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그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철회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그런 정책들이 신뢰를 위축시키고 국가경제를 침체로 몰아갈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업 문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통화 및 재정 정책을 활용한다면 신뢰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 것이며, 자본가들의 우려를 해소해줘야 하는 긴박함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보자. 실업보다는 재정적자에 초점을 맞추는 재정정책 또는 사소한 인플레이션 조짐에도 과잉 반응하고 대량 실업사태에 직면해서도 금리를 높이는 통화 정책처럼, 긴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정책들을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채권자들, 즉 생계를 위해 일하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차입자들이 안전하게 부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금리를 인하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은행가들의 수입을 줄어들게 만드는 통화와 관련된 모든 시도들에 반대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위기를 권선징악 이야기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경기침체가 과거의 잘못에 대해 주어지는 마땅한 벌이며, 그 벌을 인위적으로 줄이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