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론 by 최재천
이상적인 숙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다. 2005년 하버드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를 우리말로 번역해 <통섭 :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며 내가 옮긴이 서문에서 언급했던 내용인데 여기 다시 정리해서 소개한다.
Consilience가 출간되기 1년전인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와인 클럽이 만들어졌다. 이 와인 클럽을 함께 만든 네 명의 친구들은 곧 출하할 와인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각자 하나씩 지은 이름 넷을 놓고 한 가지 이름을 써서 모자 안에 던졌다. 그들이 만장일치로 선택한 와인의 이름은 바로 Consilience였다. 그들의 홈페이지에는 그들이 결정한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올라와있다.
Consilience는 한마디로 지식의 통일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옛날 어느 교수가 과학과 그 방법론에 관해 가졌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그는 그의 동료들이 과학을 이용해 모든 것을 지극히 작은 단위들로 쪼개는 데 여념이 없어 전체를 보지 못함을 걱정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거은 다른 것과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있으며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이유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이 같은 관점을 잃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래야 모든 과학이 개념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이긴 하지만 와인에 더할 수 없이 어울리는 말이며 우리 네 사람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단어다. 와인은 바로 우주와 인간의 통일을 의미하며 와인 제조자는 이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다.
모든 유전적 형질의 분포는 대체로 정규분포를 나타낸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서구 국가에서 온 백인들이 자기 나라에서도 좋은 직장에 다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었는데 구태여 그걸 버리고 우리나라까지 와서 영어 강사를 하며 살고 있을까? 그와 달리 지금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은 아마도 훨씬 더 진취적이고 유전적으로도 탁월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백인들이 대체로 정규분포 곡선의 왼쪽에 분포한다면 비록 피부색은 다소 검을지 몰라도 그들의 다른 유전적 성향은 곡선의 오른쪽, 즉 평균 이상일 것으로 예측한다.
개인적인 창의성은 주로 홀로 있으며 몰입할 때 나타난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